요리 실력뿐 아니라 방송 센스까지 갖춘 스타 셰프들로 방송계가 뜨겁다.
셰프들이 화려하게 돌아왔다. 대한민국은 2010년대 중반, 스타 셰프들과 함께 ‘요리 프로그램 대항해 시대’를 맞았으나, 권불십년이라는 말처럼 2020년대에 들어서 다소 주춤한 상태였다. 셰프들의 ‘쿡방’ 대신 인기 유튜버를 앞세운 ‘먹방’이 대중의 관심을 끌었던 상황. 그러다 2024년에 등장한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하 흑백)이 판도를 바꿨다. 전례 없던 룰과 압도적인 스케일로 진행하는 이 서바이벌 요리 예능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 되었고, 화제의 중심에 선 셰프들도 각자의 캐릭터와 서사를 어필하며 인기를 끌었다. 올해 초 종영한 시즌 2의 여파도 현재진행형. 침체된 외식업계가 기지개를 켰고, 셰프와의 협업으로 유통업계도 웃음꽃이 피었다. 트렌드에 민감한 방송계가 이 흐름을 놓칠 리 없다. 셰프를 주축으로 하는 요리 프로그램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것이다.

‘흑백’이 쏘아 올린 셰프 예능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랬다고, 흑백 시즌 1 방영 이후 방송계는 셰프를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을 대거 제작하기 시작했다. <정글밥2-페루밥> <정글밥2-카리브밥>(SBS)에서 각각 최현석과 윤남노 셰프를 영입했고, 최강록 셰프와 유튜버 문상훈이 나선 <주관식당>(넷플릭스), 셰프들의 단골집을 찾아 이야기를 풀어낸 <셰프의 이모집>(디즈니+), <복면가왕> 콘셉트를 결합해 도전자와 셰프들이 요리 실력을 겨루는 <마스크 셰프>(채널A), 동네 셰프의 손맛에 스타 셰프의 한 끗을 더해 상생을 꾀한 <셰프의 손길 완벽 한끼>(채널A), 연예인 유튜버 선우용여가 셰프들에게 요리를 배우는 <용여한끼>(tvN STORY) 등이 지난해 선보인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추세는 2026년에도 계속된다. 에드워드 리 셰프와 추성훈을 조합한 <셰프와 사냥꾼>(채널A)이 올해 요리 예능의 포문을 열었고, 권성준 셰프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천하제빵: 베이크 유어 드림>(MBN), 흑백 시즌 2에서 사찰 음식의 진가를 알린 선재 스님을 포함해 명장 스님 6명을 모은 <공양간의 셰프들>(웨이브)을 차례로 선보였다. 뭐니 뭐니 해도 최대 수혜작이자 가장 강렬한 시너지를 일으키는 건 <냉장고를 부탁해>(JTBC)일 것이다. ‘원조 국민 쿡방’ <냉장고를 부탁해>는 흑백이 불을 지핀 거대한 흐름에 힘입어 ‘since 2014’라는 꼬리표를 달고 5년 만에 부활했다. 최현석·샘 킴·정호영 셰프 등 기존 멤버와 손종원·윤남노·권성준·박은영 셰프로 구성된 신규 멤버가 환상의 신구 조화를 이루는 동시에 흑백의 유행어와 에피소드, 관계성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제대로 노를 젓는 상황이다.

플랫폼을 확장한 셰프 예능
흥미로운 건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 플랫폼에서의 셰프 활용법이다. 기존 방송은 제작 여건과 편성 등 고려할 요소가 많아 검증된 방송 문법을 따르기 마련이다. 반면 유튜브에서는 보다 직관적으로 셰프의 캐릭터성과 서사에 집중해 독특한 콘텐츠를 만들어 낸다. 대표적인 것이 최강록 셰프의 식재료 탐방기 <식덕후>다. 제작사 테오(TEO)가 선보인 이 웹 예능은 느릿느릿하지만 할 건 다 하는 최강록 셰프의 톤&매너를 충실히 담아내며 예능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오간다. 화려한 볼거리나 게스트는 찾아볼 수 없고, 비정기적인 업로드 날짜 등 기존 예능에서는 쉽지 않은 형식임에도 최강록의 매력을 덕질하는 팬덤을 중심으로 ‘유튜브계의 리틀 포레스트’라는 호평과 함께 편당 10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 중이다. 흑백 제작사인 스튜디오 슬램에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선보이는 웹 예능 <윤남노포>도 눈여겨볼 만하다. 흑백이 낳은 최고의 방송 아웃풋으로 꼽히는 윤남노 셰프를 내세운 이 콘텐츠는 예전의 인기 프로그램 <한끼줍쇼>와 초창기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결합한 형태를 취한다. 윤남노 특유의 넉살과 차진 리액션, 그리고 먹방 유튜버 못지않은 음식에 대한 진심이 빛을 발하며 <윤남노포>는 많은 이들의 ‘밥친구’로 사랑받고 있다. 마찬가지로 스튜디오 슬램이 제작하는 유튜브 채널 ‘셰프 안성재’도 풍성한 흑백 비하인드 에피소드와 함께 안성재의 매력을 ‘이븐하게’ 보여 주며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자녀들과 함께 ‘두쫀쿠’를 만들었다가 전 국민의 원성을 샀던 영상에는 1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릴 정도. 뒤이어 발 빠르게 올린 ‘두쫀쿠 A/S 영상’ 역시 90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할 만큼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냈다.
흑백 시즌 2 방영 시기에 스핀오프 <흑백 애프터서비스: 암흑요리사>로 흥미를 배가시킨 넷플릭스 코리아 유튜브 사례처럼, 뉴미디어는 앞으로도 스타 셰프들을 다채롭게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 대중의 반응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고, 셰프의 매력을 다각도로 극대화하기 용이한 플랫폼이란 점에서 뉴미디어와 셰프 예능의 궁합은 더욱 좋아 보인다.


K-푸드 인기와 함께하는 셰프들
플랫폼의 확장과 함께 눈에 띄는 또 하나의 변화는 ‘K-푸드’로 명명되는 한식의 인기에 셰프들을 적극 소환한다는 점이다. 드라마 <폭군의 셰프>,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 한식이 부각된 프로그램의 인기와 맞물려 K-푸드에 대한 관심도 꾸준히 우상향 중이다. 자연히 한식과 한식 문화를 들여다보는 특집 프로그램이 늘었는데, 인지도가 쌓인 스타 셰프들이 함께하면서 친근함과 신뢰를 더하고 있다. 이젠 스타 셰프가 K-푸드 홍보대사로 활약할 조짐이다. 지난 1~2월에 방영한 <이모카세 김미령의 최고의 재료>(JTBC), 안성재 셰프와 함께 김의 경쟁력을 들여다본 (MBC),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함께 제작하고 배우 장근석과 흑백 출연 셰프들이 참여한 <밥상의 발견>(MBC) 같은 특집 다큐멘터리가 대표적. 음식뿐 아니라 셰프도 K-푸드의 주축이란 점에 주목한 <더 코리안 셰프>(SBS)도 눈길을 끈다. 현재 국내 유일의 미슐랭 3스타 강민구부터 흑백으로 이름을 알린 ‘요리 괴물’ 이하성 셰프까지, 파인 다이닝의 최전선을 이끄는 셰프들의 현실을 밀착 조명해 흑백과는 또 다른 결의 인상을 줬다는 평이다.
스타 셰프들은 하나의 브랜드이자 강력한 인적 IP로 자리 잡고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얼굴을 원하는 방송계에서 음식에 대한 전문성과 함께 방송 감각까지 갖춘 셰프들을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단, 오랜 기간 대중의 심판대에 놓인 바 없기에 흑백 시즌 1, 2 이후 불거진 일부 셰프들의 사생활 논란이나 과거 이력 문제처럼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스타 셰프들을 활용한 방송 제작의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