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꿈을 꾸는 건 남녀노소 불문이다

2026년 03월 01일

  • WRITER 배선애(연극평론가)

연극 <노인의 꿈>은 꿈을 향해 나아가는 두 노인을 비춘다. 누구나 꿈꿀 수 있다는 메시지가 관객에게 용기를 주는 작품이다.

“당신의 꿈은 뭔가요?” 이 질문을 들어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어느덧 꿈이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는 나이가 된 것 같다. 그러면서도 어린 조카들에게는 서슴없이 묻는다. “너는 꿈이 뭐야? 커서 뭐가 될 거야?” 인생의 목표라고 삼을 만한, 매우 거창한 일만 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꿈을 조금은 작게, 조금은 덜 거창하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연극 <노인의 꿈>은 소박한 꿈을 꾸는 두 노인을 통해 꿈꾸는 일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 수컴퍼니

웹툰을 흥미진진한 연극으로

연극 <노인의 꿈>은 동명의 웹툰을 바탕으로 한다. 원작의 주인공은 50세가 된 봄희. 어느 날 그가 운영하는 미술 학원에 심춘애 할머니가 찾아와 자신의 장례식에 영정 사진 대신 직접 그린 초상화를 사용하고 싶다고 말한다. 봄희는 처음에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이지만 춘애와의 수업은 갈수록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깨닫는 시간이 된다. 한편 봄희의 아버지 상길은 전형적인 가부장적 인물로, 자신도 모르게 아내와 딸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쏟아 낸다.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후에야 자신의 과오를 뉘우친 상길은 기타를 배워 아내와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려고 한다. 봄희를 중심으로 춘애의 자화상과 상길의 기타 연주가 조금씩 완성되어 가지만, 시한부 판정을 받은 춘애는 그림에 자신의 이름을 사인하기 전 삶을 마감한다. 이후 봄희에게 전달된 편지를 통해 봄희의 의붓딸 꽃님의 외할머니가 춘애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노인의 꿈> 원작은 정말 ‘착한 웹툰’이다. 봄희의 삶은 격랑에 휘둘리지만, 그저 그것이 인생의 순리인 듯 덤덤하게 그려 낸다. 이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웹툰에 비하면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연극적으로 보면 폭발하는 갈등이 부재해 밋밋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무대화하는 과정에서 과감한 각색이 이루어졌다. 먼저 봄희가 살아온 삶의 여정을 생략했다. 10년을 만난 첫사랑도, 미술 학원 상가 상인들과의 관계도, 지긋지긋한 성장 과정도 지웠다. 그랬더니 사춘기 의붓딸과 데면데면한 갱년기 여성, 미술 학원 운영을 걱정하다가도 춘애와 상길을 생각하면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눈물을 흘리는 감성적인 사람이 되었다. 나름대로 숱한 풍파를 겪으며 산 원작의 봄희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50대로 변했다. 결과적으로 작품의 보편성을 획득한 것이다.
봄희의 굴곡진 서사를 지우니 두 노인의 꿈이 전면적으로 강조된다. 어린 손녀 덕분에 신조어에도 능통한 춘애의 명랑함, 투덜대지만 진심을 전하고 싶어 하는 상길의 마음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춘애가 죽기 전 봄희에게 꽃님과의 관계를 모두 이야기하는 장면을 추가해 둘의 관계가 소중하고 애틋하다는 사실도 드러난다. 봄희의 학생인 춘애가 인생에서는 스승이라는 점도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봄희가 상길과 충돌하고 감정이 폭발하는 장면, 꽃님과 춘애가 함께 인생네컷 사진을 찍는 장면, 상길이 아내의 묘비 앞에서 근사하게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장면 등은 원작을 변용하거나 새로 추가한 설정으로, 연극적 문법에 맞춰 인물들 간의 극적인 갈등과 분위기를 최대치로 이끌어 낸다. 이렇게 각색한 덕분에 관객은 ‘노인’과 ‘꿈’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지 충분히 공감한다.

© 수컴퍼니

커튼콜과 함께 펼쳐지는
봄희의 꿈

<노인의 꿈>의 무대는 단조롭다. 시공간이 수시로 바뀌는 서사를 고려해 단순한 무대로 상상력을 극대화했다. 무대의 크고 작은 창문이 눈에 띄는데, 창문 하나하나가 우리가 사는 모습을 상징하는 장치다. 무대 배경은 창문이 많은 상가가 되거나 주거 공간으로 변한다. 극이 전개되며 봄희의 미술 학원이 상길의 집 거실로 자연스럽게 바뀌기도 한다. 무대를 완성하는 요소 중 음악도 주목할 만하다. 상길이 담담하게 고백하듯 부르는 노래는 민찬홍 음악감독의 작업물로, 지나온 삶을 반성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가사를 담아 따뜻하고 잔잔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연극이 막바지에 이르며 봄희는 춘애의 죽음을 계기로 생긴 꿈을 실행에 옮긴다. 춘애가 지불한 거액의 수강료로 심춘애복지재단을 설립한 것이다. 어두운 객석에 불이 켜지고 커튼콜이 시작되는데, 이때 봄희의 꿈이 조금씩 무대에 펼쳐진다. 공연이 끝나며 꿈도 사라졌다고 생각한 순간, 꿈은 항상 존재하고 뜻밖의 순간에 실현된다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전한다. 배우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치던 관객들은 봄희의 꿈이 눈앞에서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며 감동의 박수를 두 배로 보낸다.
이 작품에는 여러 세대의 배우가 출연한다. 원로 배우 김영옥·김용림·손숙은 물론, 하희라·이일화·신은정 등 실력 있는 중견 배우도 제각각 매력을 뽐낸다. 김영옥·하희라 배우가 춘애와 봄희로 호흡을 맞추고, 남경읍 배우가 기타를 든 상길로 등장하는 무대에서는 역할의 비중에 상관없이 모든 배우가 빛난다. 연륜이 느껴지는 김영옥·남경읍 배우가 무게중심을 잡고, 하희라 배우가 작품에 생기를 더한다. 꽃님 역을 맡은 진지희 배우도 사랑스러운 인물을 만들어 냈는데, 좋아하는 선생님 봄희가 엄마가 된 어정쩡한 상황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해 몰입감을 높였다. 상길의 사위 채운을 연기하는 윤희석 배우의 순박한 웃음은 극의 긴장감을 풀어 준다. 그리고 춘애·봄희·꽃님의 어린 시절을 모두 연기한 아역 배우 박채린의 능수능란한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역시 연극은 배우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는 순간이다.
꿈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계속하고 싶거나 좋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꿈이 될 수 있다. 춘애의 자화상 그리기, 상길의 기타 연주와 노래가 누군가에게는 사소해 보이겠지만, 그것에 도달하는 과정은 충분히 즐겁고 가치 있다. 연극 <노인의 꿈>은 잊고 지낸 꿈과 쉽게 행복해지는 법을 연극적으로 잘 담아냈다. 그러고 보니 춘애의 춘, 봄희의 봄, 꽃님의 꽃! 꿈꾸는 것은 꽃이 가득한 봄을 의미하나 보다.

<노인의 꿈>
수많은 독자의 마음을 울린 웹툰 <노인의 꿈>이 연극으로 재탄생했다. 원작의 주인공인 미술 학원 원장 봄희 역에 하희라·이일화·신은정이 출연하고, 영정 사진 대신 사용할 자화상을 그리고 싶다며 학원을 찾아온 노인 춘애 역은 김영옥·김용림·손숙이 맡아 열연한다. 현실적이면서도 동화 같은 이야기가 무대 위에 펼쳐져 웃음과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기간 1월 9일~3월 22일
장소 서울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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