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를 만드는 공간과 사람, 일곱 가지 이야기
경주의 역사


경주역사유적지구 월성지구
고분을 따라 걷는 산책
경주 천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야외 박물관. 경주 시내 어디서든 마주하게 되는 부드러운 곡선의 언덕과 고분군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월성지구의 너른 대지 한가운데에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인 첨성대가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화강암을 다듬어 쌓아 올린 첨성대의 유려한 곡선미는 낮에는 단아한 기품을, 밤에는 은은한 조명을 받아 신비로운 오라를 뿜어낸다. 첨성대 뒤편으로 조금만 발걸음을 옮기면 신라 김씨의 시조 김알지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깃든 숲, 계림(鷄林)이 나타난다. 수령을 가늠하기 힘든 회화나무와 느티나무 고목들이 얽히고설켜 만들어 낸 짙은 그늘은 이곳이 도심 한복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깊고 아늑한 고요함을 선사한다. 월성지구는 경주 시민과 여행자가 가장 사랑하는 사색의 공간이기도 하다. 흙길을 밟으며 걷다 보면 거대한 고분의 우아한 능선과 첨성대 그리고 울창한 숲이 하나의 수묵화처럼 어우러진다. 해 질 녘 노을이 고분의 능선을 황금빛으로 물들일 때 숲 어귀 벤치에 앉아 보자. 천년 전 신라의 달밤을 바라보던 시선과 지금 우리의 시선이 교차하는, 시공간을 초월한 평온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주소 경북 경주시 교동 38-13
경주의 바다


2 등대에서 바라본 동해 바다와 무인 등표.
송대말등대 & 문무대왕릉
동해 바다가 빚어내는 절경
경주를 거대한 고분과 유적지가 가득한 내륙 도시로만 기억한다면 반쪽만 아는 것이다. 토함산 터널을 지나 동쪽 끝으로 달리면 감포 바다가 펼쳐지고, 그 시작점에 ‘소나무 숲 끝자락’이라는 뜻을 지닌 송대말(松臺末)등대가 자리한다. 이름 그대로 200~300년 된 해송(海松)이 기암괴석 위로 빽빽하게 숲을 이루고, 그 끝에 하얀 등대가 아득하게 펼쳐진 망망대해를 응시하고 있다. 송대말등대는 감은사지 3층 석탑을 형상화한 것이 특징이다. 바다 위에서도 신라의 우아한 미감을 엿볼 수 있다. 해안 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세계 유일의 수중 능인 문무대왕릉이 모습을 드러낸다. 삼국 통일의 대업을 완수한 문무왕은 “죽어서도 용이 되어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차가운 바닷속에 잠들기를 자처했다. 궂은 날씨에 해무가 피어오르면 파도가 부서지며 생성되는 하얀 포말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답답한 속을 뚫어 주는 송대말등대의 바람과 묵직한 울림을 주는 문무대왕릉의 파도, 이 둘은 경주의 바다가 전하는 서사시의 절정이다.
주소 경북 경주시 감포읍 척사길 18-94(송대말등대), 문무대왕면 봉길리 30-1(문무대왕릉)
문의 054-744-3233(송대말등대), 054-779-8166(문무대왕릉)
경주의 커피
커피플레이스



2 매장 벽면을 채운 싱글 오리진에 대한 기록물.
경주의 커피 문화를 선도하는
2010년부터 매일 오전 8시에 경주의 아침을 여는 카페다. 경주와 커피를 사랑하는 정동욱 대표의 배려가 가득 담긴 곳. 그는 커피 한 잔으로 세상을 구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누군가의 하루를 안녕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매일 원두를 볶고 커피를 내린다. 커피플레이스는 경주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내는 카페로도 첫손에 꼽힌다. 이곳에서 꼭 맛봐야 하는 시그너처는 ‘직원용 라테’. 바쁘게 일하는 직원들이 적은 양의 우유에 에스프레소를 넣어 한입에 털어 넣던 것에서 비롯되었다. 얼음을 넣지 않은 차가운 우유에 뜨거운 에스프레소를 부으면 흰색과 갈색 액체가 층을 이루는데, 일반 라테보다 진하고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에스프레소는 3000원대, 카페라테는 4000원대로 가격이 저렴한 것도 이곳이 사랑받는 이유다. 카페 공간은 은은한 조명과 나무 소재가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중심에 바 형태의 좌석을 두었는데, 바로 앞에서 내려 주는 커피를 눈으로 보고 코로 느낀 후 입으로 즐길 수 있다. 카페 건너편에 세계문화유산인 경주 대릉원의 봉황대가 자리해 향긋한 커피를 마시며 경주의 고즈넉한 정취에 빠져들기 좋다.
주소 경북 경주시 중앙로 18
문의 0507-1387-2573
경주의 펍


ㅎㅎㅎ
에너지 넘치는 탭룸이자 보틀 숍
간판을 읽는 순간 저절로 웃음이 나오는 곳. 황리단길 좁은 골목에 자리한 ㅎㅎㅎ는 이름 그대로 유쾌한 웃음과 에너지가 넘치는 탭 룸이자 보틀 숍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전 세계에서 수집한 150여 종의 크라프트 맥주와 내추럴 와인이 가득 채워져 있다. 황규석 대표는 ‘맥주는 나를 좋은 곳으로 데려다준다(Beer makes me high)’라는 슬로건 아래 탭 테이크오버(Tap Takeover)나 DJ 파티, 시즈널 페스티벌 등 흥미로운 축제를 기획하며 조용한 골목을 뜨거운 축제의 장으로 만들고 있다. 펍 주인이자 문화 기획자인 것. ㅎㅎㅎ의 백미는 14개의 탭에서 갓 뽑아낸 신선한 수제 맥주다. 그중 국내 브루어리와 협업해 만든 시그너처 사워 맥주 ‘체흐흐흐리’는 상큼하고 톡 쏘는 맛으로 축제의 흥을 돋우기에 제격이다. 곁들이기 좋은 수제 소시지나 이국적인 식료품도 다양해 피크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도 인기 있다. 경주의 정취와 크라프트 맥주 펍의 활기가 공존하는 ㅎㅎㅎ는 경주를 찾는 외국인들의 필수 코스로도 자리 잡았다. 수시로 열리는 파티나 이벤트 정보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지하니 미리 확인해 보자. 예기치 않게 마주하는 축제가 여정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주소 경북 경주시 태종로727번길 23-1
문의 0507-1323-6839
경주의 맛



2 요리에 곁들일 다양한 와인도 준비돼 있다.
위드구스토
한옥에서 즐기는 이탈리아의 맛
황리단길을 걷다 보면 고소한 버터와 향긋한 허브 냄새가 발길을 붙잡는 곳이 있다. 한옥에서 이탈리아 요리를 내는 다이닝 비스트로, 위드구스토다. 구스토(gusto)는 이탈리아어로 맛, 미각 혹은 열정을 뜻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디딤돌이 놓인 통로와 소담한 중정이 나오고 통유리로 마감한 실내가 모습을 드러낸다. 오래된 서까래와 기와를 쌓아 올린 담장이 인상적인 곳. 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살이 테이블 위로 내려앉으면 마치 유럽의 어느 시골 마을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이곳의 셰프는 화려한 기교보다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집중한다. 부드러운 달걀 속에 탱글탱글한 새우와 칠리소스가 숨어 있는 ‘새우 치즈 칠리 오믈렛’과 진한 크림소스에 두툼한 스테이크를 얹은 ‘스테이크 크림 파스타’는 이곳에서 가장 사랑받는 메뉴다. 고즈넉한 한옥에서 즐기는 파스타 한 입과 와인 한 모금은 여행의 피로를 잊게 해 준다. 북적이는 인파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맛(gusto)’이 주는 순수한 기쁨을 만끽하고 싶다면 이곳만 한 선택지가 없다.
주소 경북 경주시 포석로 1083-2
문의 054-776-7688
경주의 추억



2 레트로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카페, 1925감포.
1925 감포 & 배리삼릉공원
경주의 시간을 기억하는 공간
경주의 동해안 끝자락, 감포항 골목에 자리한 1925감포는 경주 여행에 대한 추억을 간직하기 좋은 곳이다. 1925감포는 옛 공중목욕탕 ‘신천탕’을 개조해 만든 카페이자 복합 문화 공간. 감포 바다를 형상화한 ‘부표 라테’, 송대말등대에서 영감을 받은 ‘송대말의 오후’ 등 반짝이는 아이디어의 음료도 재미있고, 타월·가방·티셔츠 등 1925감포를 추억할 만한 굿즈는 소유욕을 자극한다. ‘경주를 담아낸 기념품을 만듭니다.’ 황리단길의 터줏대감, 배리삼릉공원은 이형진 대표의 이러한 철학이 집약된 공간이다. 배리삼릉공원이 로컬 크리에이터들의 제품을 큐레이션해 선보이는 선물 가게인 반면, 카페 2호점 ‘일상차반사’의 콘셉트는 ‘지역에서 만든 차를 마시며 경험하는 경주’다. 경주 곳곳의 풍경을 담은 패키지 속 경주 차 티백은 선물 받는 이의 눈과 입을 즐겁게 한다. 첨성대의 유려한 곡선과 불국사 다보탑의 디테일을 정교하게 살린 마그넷, 지역 작가가 그린 따뜻한 감성의 일러스트 엽서는 그 자체로 작품이다. 엽서 한 장을 골라 벽에 붙여두는 것만으로도 경주에서의 추억을 생생히 불러온다.
주소 경북 경주시 감포읍 감포안길 15-1(1925감포), 포석로 1095(배리삼릉공원)
문의 070-7723-1925(1925감포), 0507-1487-1145(배리삼릉공원)
interview

이형진 배리삼릉공원·일상차반사 대표
경주에 정착해 배리삼릉공원을 열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해요. 10년 동안 음료와 관련된 일을 했어요. 차 음료를 배우러 대만에서 지내기도 했고요. 어려서부터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정서를 품은 동네를 좋아했는데, 그런 제가 서울을 떠나 경주에 살게 된 건 행운이었죠. 배리삼릉공원을 통해 다양한 활동을 한다고 들었어요. 경주에서 생산한 차와 지역 원물을 활용한 차를 선보였고, ‘일상차반사’라는 이름으로 팝업을 열었어요. 2024년에는 정식으로 ‘일상차반사’ 티 카페도 오픈했고요. 최근에는 경주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도록 경주 산책 도슨트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곧 출시할 예정입니다. 10년 넘게 살아 본 경주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요즘은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에 집중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경주는 명상이나 산책, 슬로 러닝을 하기에 정말 좋은 도시라고 생각해요. 여행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요? 저는 계림을 첫손에 꼽아요. 첨성대 인근인데도 몇 걸음만 걸어 들어가면 깊은 숲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들어요.
경주의 서점



2 구석구석 쌓인 책과 따듯한 스탠드 불빛이 아늑함을 더한다.
서점 북미
경주읍성이 보이는 독립 서점
경주읍성 향일문의 웅장한 성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건물 2층에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아지트, 서점 북미(Book-me)가 자리한다. ‘책(book)과 나(me)’ 혹은 ‘책의 아름다움(book+美)’이라는 중의적 이름을 가진 이곳은 영화 번역가 출신인 주인이 자신의 취향을 듬뿍 담아 꾸민 영화 서적 중심의 독립 책방이다. 문을 열면 은은한 조명 아래 대형 서점에서는 만나기 힘든 독립 출판물과 영화 원작 소설, 두툼한 시나리오집, 희귀한 영화 포스터와 굿즈로 오밀조밀하게 채워져 있어 영화광들의 심장을 뛰게 한다. 서점 북미의 클라이맥스는 단연 ‘성곽 전망’이다.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경주읍성의 성곽과 기와지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책을 읽다 무심코 고개를 들면 마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특히 해 질 녘 성곽에 조명이 켜지고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드는 날에는 황홀할 만큼 비현실적인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조용한 영화음악과 읍성의 고즈넉한 풍경, 묵직한 영화책 한 권만 있으면 경주 여행이 한 편의 근사한 롱 테이크 영화로 기억된다.
주소 경북 경주시 북성로 103-1
문의 0507-1331-7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