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예술가, 정·재계 인사들이 모여 담론을 나누던 사보이호텔. 서울 경동시장에 70여 년 전 그 시절로 데려다주는 카페가 등장했다.


때론 우연히 마주한 장면이 벼락같은 영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눈이 펄펄 내리던 지난 1월 어느 날, 서울 경동시장을 거닐던 커피한약방 강윤석 대표도 그러한 장면과 마주했다. 청량리역을 에워싼 마천루 아래 경동시장 골목을 거닐다 나무 전봇대 뒤로 3층짜리 오래된 건물을 본 순간, 1950년대 서울로 타임슬립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서 오래도록 발을 떼지 못하던 그는 반드시 이 건물을 매입해야겠다고 결심했다. 1950년대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이 건물은 본래 방이 50여 개인 여인숙이었다. 건축을 전공한 강 대표가 실력 좋은 목수와 함께 5개월간 건물 전체를 수리한 결과, 70여 년 전 서울 명동의 사보이호텔을 닮은 카페로 변모했다. 을지로, 혜화동에 이은 커피한약방 경동시장점. 그의 손에서 세 번째 커피한약방이 탄생했다.
전체 콘셉트는 사보이호텔이지만 층마다 다른 이야기를 입혔다. 1층 안쪽은 직각의 나무 의자와 격자무늬 창, 괘종시계 등으로 옛 청량리역을 재현했고, 2층은 빈티지 감성 물씬한 타일과 커튼, 그리고 총천연색 물고기가 노니는 어항 등을 활용해 영화 <화양연화>를 연출했다. 3층은 문인과 예술가들이 모여 자유롭게 토론하고 공연도 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조성했다. 근엄한 자태로 중심부를 차지한 진한 초콜릿색 테이블은 강윤석 대표가 삼고초려해서 겨우 사들인 송나라 때 나무로 짠 것이다.
메뉴도 매력적인 공간에 어울릴 만큼 훌륭하다. 반드시 맛봐야 할 시그너처는 강 대표가 로스팅해 직접 내려 주는 필터 커피. 공간을 가득 채우는 커피 향이 마음을 평온하게 적셔 준다. 강 대표가 운영하는 베이커리 ‘혜민당’에서 매일 아침 구워 내는 수십 종의 베이커리도 눈과 입을 사로잡는다. 대표 메뉴는 설밤, 둘세 캐러멜, 무스 오미자, 도몽 등의 무스 케이크. 부드럽고 달콤한 디저트에 커피 한잔 곁들이면 70년 전 모던 보이, 모던 걸이 된 기분이 든다.
주소 서울시 동대문구 왕산로35길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