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이란 이름은 오랫동안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해 왔다. 인간과 기술, 시대와 문명,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우리가 더는 외면할 수 없게 된 문제들을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치열하게 탐구해 온 작가, 이불의 오래된 세계.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리움미술관 로비는 지금 수많은 관람객으로 술렁이고 있다. “가끔씩 여기가 파리나 뉴욕인 것 같은 착각이 들 때도 있어요!” 둘러보니 홍보 담당자의 말처럼 한국인과 외국인, 일반 관람객과 미디어 관계자, 어른과 아이, 가족과 친구가 뒤섞인, 꽤 이국적인 풍경이다. 이 흥미로운 문전성시는 무엇보다 이불이라는 작가의 명성 때문일 테다. 지난 40여 년 동안 퍼포먼스와 조각, 설치, 평면을 아우르는 실험적 작업을 해 온 이불은 동시대 미술의 주요한 작가이자 한국 현대미술의 대표자로 자리했다.
이번 전시는 <이불: 1998년 이후>라는 제목 그대로 지난 30여 년간 세계 주요 미술관과 비엔날레를 누비며 펼쳐 보였던 그의 방대한 작업을 종합적으로 조망하는 국내 첫 대규모 전시다. 1990년대 후반의 ‘사이보그’와 ‘아나그램’, 노래방 연작, 2005년부터 이어 온 건축적 설치 연작 ‘몽그랑레시’, 2010년대에 이르러 시작한 평면 작업까지 조각과 대형 설치, 평면, 드로잉 등의 작품 150여 점을 한데 모았다. 모리 미술관(도쿄, 2012)부터 팔레 드 도쿄(파리, 2015), 헤이워드 갤러리(런던, 2018), 마틴 그로피우스바우(베를린, 2018),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뉴욕, 2024, ‘더 제네시스 파사드 커미션’)까지 그간 해외에서 들려온 전시 소식에 발만 동동 굴렀던 이라면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이불, 현란하고 위험한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이 열기가 단순히 이름값 때문만은 아님을 실감한다. 이불의 작업이 주는 시각적 충격은 즉각적이고 강렬하다. 전시장 입구 슬로프 공간에 매달린 길이 17미터에 달하는 은빛 비행선이 시선을 압도한다. 20세기 초 독일 기술 발전의 상징이자 비행선의 대명사였지만 충격적인 폭발 사건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체펠린 비행선을 참조한 이 반짝이는 비행선은 기술 진보에 대한 인류의 열망과 좌절을 동시에 상징한다. 그러나 이 역사적 맥락과 함의를 모르더라도 상관없다. 렘 콜하스의 블랙 콘크리트와 어우러지며 부유하듯 미세하게 흔들리는 비행선 아래로 걸어 들어가는 순간, 기묘한 경험이 시작된다. 현란하고도 위험한 이불의 세계다.
그렇게 ‘블랙박스’라고 불리는 전시 공간으로 들어서면 눈앞에 대규모 거울 설치 작업 ‘태양의 도시 II’가 펼쳐진다. 무한히 반사되는 암흑의 공간 사이에 작가의 초기 대표작들이 흩뿌려지듯 배치되어 있는데, 하나하나 살펴보기도 전에 이미 그 혼란스러운 세계에 깊숙이 빨려든다. 어쩌면 조금 난해하다고 느껴질 법한 풍경 앞에서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작가는 “영화를 보듯 ‘신(scene)’을 만들고 관객을 그 안으로 초대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타임리스(timeless), 어느 시간대인지 모르겠는, 과거이기도 하고 현재이기도 한 장면을 연출하려고 했다”는 의도는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SF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온 듯하지만 이게 유토피아적 신인지 디스토피아적 신인지, 도시인지 폐허인지, 미래인지 과거인지, 심지어 아름다운 건지 추한 건지 알 수 없는 묘한 감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1999년 제48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소개한 노래방 작업 ‘속도보다 거대한 중력 I’ 앞에 유독 많은 관람객이 줄을 서 있다. 고전적 공상 과학 서사에 등장했던 캡슐 형태를 차용했지만, 오늘날 고독한 현대인의 퇴근길 사적 유희 공간이 되어 버린 ‘혼코노’를 연상시키는 1인용 노래방 부스다. 관람객이 안에서 홀로 오아시스나 아바의 노래를 부르는 동안 전시장 입구 벽면에는 노래방 모니터 화면이 플레이되고 노래 가사가 무심히 지나간다. 미술관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사적 유희의 공적 공유’라고 해야 할까.
천장에서는 그 유명한 ‘사이보그’가 관람객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미술 애호가들은 2002년, 서울 한복판 로댕갤러리에 이불의 총천연색 ‘사이보그’가 나타났을 때의 당혹감을 잊지 못한다. 고대 조각상과 일본의 애니메이션, 인간의 신체와 기계적 형상이 혼종된 ‘불완전한 신체 조각’에서 느꼈던 황홀한 불편함! 2025년에 다시, 팔다리가 잘렸지만 이상적인 비례를 갖춘 채 관능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는 순백의 ‘사이보그 W6’를 지켜보는 속내는 복잡하다. 그 미래적인 신체 안에 깃든 초월적 힘은 누구를 위한 것일지. 20년 전 그때와 달리 인간이 만든 기술이 야기한 실존적 공포와 직면한 지금,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돌이켜 보니 이불은 문명과 기술을 일찌감치 정면으로 응시했다. 급진적 퍼포먼스로 예술은 아름답고 고상해야 한다는 편견을 보기 좋게 깨부수었던 그는 구도자의 집념과도 같은 태도로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탐구했고, 그의 끝없는 실험은 결국 오늘의 현실과 맞물려 빛을 발한다. 상상 속에 존재했던 AI의 급속한 발전을 마침내 맞닥뜨린 인류가 느끼는 놀라움과 공포, 당혹과 체념의 감각을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쫓고 쫓았던 작가는 예측 불가능한 풍경을 입체적으로 펼쳐 보인다.

(Mon grand récit: Weep into stones…)’(2005).

동시에 드러내는 작품 ‘사이보그 W6(Cyborg W6)’(2001). © Lee Bul

이불, 규정할 수 없는
암흑의 공간을 벗어나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그라운드갤러리’로 향하는 신 또한 압권이다. 느린 속도로 지하 공간으로 내려가는 동안 하나씩 정체를 드러내는 일련의 작품은 무채색이거나 별처럼 반짝이며 복잡 미묘한 심리를 자극한다. 관람객들은 리움갤러리라는 공간을 익히 알고 있던 작가가 역시 치밀하게 구상하고 연출한 그 기묘한 신 속으로 다시 한번 홀린 듯 빨려 들어간다.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이불의 세계, 그 자체로의 진입이라고 할까. 그라운드갤러리의 중심을 이루는 작품은 2005년 이후 전개한 연작 ‘몽그랑레시’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러시아 구축주의와 아방가르드, 브루노 타우트의 표현주의 건축, 유토피아 문학, 한국 근현대사 등이 다층적으로 만들어 내는 알레고리적 풍경을 형성한다. 그 방대한 참조들을 이해하려 들면 난해하기 그지없는 작품이지만 작가는 일관되게 말한다. “작품은 완성된 시점에 내 손을 떠난 것이고, 각자가 감상하고 받아들이면 된다. 직접 보고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조각과 설치미술을 주로 해 온 이불이 2000년대 후반부터 독립적 매체로 다뤄 온 방대한 평면 연작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작가의 작업 중 거의 유일하게 색감과 재료의 질감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평면 작업 ‘퍼듀’ 연작은 자개나 돌가루 등의 안료를 층층이 쌓아 올린 뒤 표면을 정밀하게 샌딩해 물감층과 형상이 드러나게 하는 독특한 제작 방식으로 완성했다. 덕분에 액자에 걸려 있지만 회화라기보다 납작하게 만든 조각과 같다. 의도와 즉흥, 형상과 색채를 뒤섞어 완전히 새로운 형식을 발굴해 내는 작가의 솜씨는 2016년부터 시도한 새로운 평면 연작 ‘무제(취약할 의향-벨벳)’에서 극대화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시장에 펼쳐져 있는 대표작들이 콜라주처럼 구성되어 있는데, 벨벳과 자개라는 극단의 소재를 동시에 사용해 다층적 소우주를 재구성한다.


개인의 서사와 기술 문명을 결합한 이불의 작품은 의도했든 아니든 시대의 파수꾼 역할을 해 왔다. 전시를 찬찬히 둘러보다 보면 성수대교와 세월호, 벙커와 끊어진 다리, 비무장지대와 남북 정상회담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문맥이 읽히는 단어들이 소환된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과 판문점 선언으로 인한 군사적 긴장 완화와 화해의 제스처로 철거한 11개 감시 초소의 폐자재로 만든 작품 ‘오바드 V’ 앞에서는 한참을 서성이게 된다. 녹슨 표면의 타워 형태 구조물에는 지구의 자전축 기울기가 LED 조명으로 점멸해 묘한 대비를 이루는데, 이는 절대 변하지 않을 우주적 섭리와 덧없이 파기되는 이데올로기의 대비를 상징한다. 알다시피 남북 간 합의는 이내 파기됐고, 이 작품은 화해의 불가능성을 상징하며 우리 앞에 서 있다.
한쪽 벽면 전체를 할애해 하나의 전시가 탄생하는 과정을 옮겨 놓은 ‘스튜디오 섹션’은 오랫동안 작가의 전시를 기다렸던 이들에게 선물과도 같다. 작가 스스로 ‘구상에서 실현까지의 설계도’라고 설명하듯 한계 없이 아이디어를 펼쳐 보이는 드로잉과 그 상상을 3차원으로 펼쳐 놓은 모형까지, 수직으로 펼쳐진 생각의 아카이브!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이불의 세계는 쉴 틈을 주지 않는다. 한국적 위장 공간이자 작가의 어린 시절 피난처가 되어 주었던 ‘벙커’, 직접 거울 미로를 빠져나오는 동안 호기심과 두려움이 극대화되는 ‘비아 네가티바’ 등을 지나 전시장을 완전히 벗어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다시 반짝이는 비행선 아래로 걸어 나오면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다. 그러나 결코 아깝지 않은 시간이다.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마음껏 사진도 찍고, 미술관에서 추억의 팝송을 열창하는 경험도 하며 이불의 세계를 누비는 동안 현란하고도 모호하며, 아름답지만 공포스러운 전시장 밖의 현실을 감각하게 될 테니까.
작가는 오랫동안 일관되게 ‘규정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여전사, 페미니즘은 물론이고 한국 대표 작가 같은 수식도 그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한 가지 명확한 것이 있다면, 이불은 그때도 지금도 동시대 미술의 최전선에 꼿꼿이 서 있다는 사실이다. 언제나 현역이자 청년인 채로.

이불 Lee Bul
이불은 작가의 본명이다. 20대였던 1980년대 후반, 격동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신체를 매개로 삼은 급진적 퍼포먼스와 설치 작업을 통해 한국 사회의 가부장제와 젠더 문제, 사회 제도와 권력 구조의 모순을 비판하며 등장했다. 이후 인간과 기술, 유기체와 기계,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자연과 문명을 둘러싼 관계와 구조로 작품 세계를 확장해 나갔다. 1990년대 후반 ‘사이보그’ ‘아나그램’ 연작과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 작가로 참여해 선보인 노래방 작업, 2005년부터 이어진 건축적 설치 ‘몽그랑레시’ 연작을 전개하는 동안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한편, 동시대 미술의 주요한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2010년대 이후에는 평면 작업까지 더해 형식과 재료의 실험을 이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