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큼 다가온 여름의 정취가 여행자의 낭만을 자극한다. 밤의 호숫가가 빛으로 흥건할 때, 형형한 야시장의 열기가 도시의 어둠을 밝힐 때, 강원도 춘천으로 야행을 떠나자.

어떤 여행은 도시의 어둠과 함께 시작된다. 때론 아스라한 가로등 불빛이, 적요를 꿰뚫는 바람의 흔적이 낯선 여정의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야행의 매력은 밤바람에 온기가 맺히는 이 계절에 더욱 무르익는다. 여름, 호수 그리고 야경. 이만큼 여행자의 낭만을 일깨우는 조합이 또 있을까. 올여름 첫 야행지를 고심하다 끝내 춘천으로 향한 이유다. 삼면이 호수에 감싸인 이 청청한 물빛 도시는 일몰을 기점으로 한층 깊은 빛과 어둠의 층위를 드러낸다.

빛이 이끄는 길, 춘천 야경 산책
여정의 출발점은 의암호 상공을 가로지르는 ‘삼악산 호수케이블카’다. 활과 부메랑을 모티브로 설계해 2021년에 문을 열었는데, 삼천동에서 삼악산으로 이어지는 3.61킬로미터 길이의 코스 내내 그윽한 호숫가 풍광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하기 좋다. 특히 일몰 직전에 의암호 정차장을 찾으면 해가 뉘엿거리는 기암절벽을 병풍 삼아, 케이블카 조명이 호수 수면에 부딪혀 반짝이는 영원 같은 순간을 마주할 수 있다.
북한강 물길을 따라 좀 더 북쪽으로 향하면, 레고랜드가 위치한 하중도 맞은편으로 ‘근화수변 문화광장숲’이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해 말 강원도 춘천시가 의암호의 수생태계를 관람하며 각종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옛 물양장(소형 선박이 접안하는 부두) 자리에 조성한 따끈따끈한 신상 공간이다. 1만 제곱미터 부지에 잔디 마당과 공연장, 야생 화원, 전망대 등이 들어서 있는데, 그중 구름다리 형태의 전망대는 한낮의 경관도 수려하지만 밤에 꼭 한번 걸어 볼 것을 권한다. 전망대를 빙 둘러싼 조명 덕분에 마치 빛과 함께 산책하는 듯 색다른 정취가 느껴진다.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전망대가 춘천대교 야경을 감상하는 데에도 최적의 장소라는 사실. 55미터 높이의 원형 주탑이 뿜어 내는 색색의 조명부터 다리 상판에서 시작되는 272미터 규모의 분수 쇼까지, 전통의 야경 명소로서 춘천대교의 입지는 매년 쉼 없이 등장하는 도시의 랜드마크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공고하다.
형형한 춘천대교 불빛을 끼고 20분가량 산책하다 보면 북한강과 소양강이 맞닿는 물줄기 위로 새로운 빛의 이정표가 나타난다. 춘천을 대표하는 포토존 ‘소양강스카이워크’다. 전체 길이 174미터 중 156미터 구간이 투명 강화유리 덱으로 이루어진 이곳은 교량 끄트머리의 원형 광장에서 감상하는 탁 트인 풍광으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낮에는 모험심을, 밤에는 낭만을 채워 주는 다재다능함 역시 여행객들이 손꼽는 매력 포인트. 일몰 뒤 스카이워크 전체에 조명이 켜지면 물과 하늘 사이를 파고드는 오색 불빛이 여행자의 밤을 황홀하게 만들어 준다.
좀 더 높은 지대에서 호수와 강이 어우러진 전경을 한눈에 담고 싶다면 도시의 동쪽 전망대 격인 ‘구봉산 카페 거리’로 향한다. 1992년 춘천외곽도로가 구봉산 중턱까지 연결되면서 일대에 카페와 레스토랑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는데, 오늘날 춘천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야경 맛집 중 상당수가 이곳에 모여 있다. 멀찍이 봉의산 너머로 떨어지는 붉은 석양과 검푸른 산수 병풍 아래 펼쳐지는 도심부의 야경은 커피 한 잔 값으로 즐기기엔 지나치게 근사하다.


야시장에서 마주친 ‘낭만 춘천’
호수와 산을 오가며 춘천의 야경 명소를 섭렵했다면 이젠 진짜 이 도시의 밤을 맛볼 차례다. 현재 춘천에는 총 일곱 곳의 전통시장이 있는데, 그중 풍물시장과 후평시장에 여름 내내 야시장이 선다. 어두운 골목 어귀를 밝히는 휘황한 불빛과 불판 위에서 지글거리는 맛깔스러운 안주, 가판대 천막 사이로 새어 나오는 훗훗한 온기까지, 과연 야시장은 여름 낭만 야행의 정점이라 할 만하다. 특히 지난 4월 발 빠르게 개장한 후평어울야시장은 소박하면서 정겨운 분위기와 인심 두둑한 먹거리 덕분에 이미 여행객들 사이에서 춘천 야행의 필수 코스로 떠오르는 중이다.
신기루 같은 노란 불빛에 이끌려 느지막이 후평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도시의 어둠 아래 숨어 있던 뜨거운 풍경이 돌연 모습을 드러낸다. 인파로 들썩이는 골목 양쪽의 매대마다 서로 다른 장르의 메뉴가 그득하다. 전이며 국수 같은 전통적인 노포 음식부터 닭꼬치, 치킨, 족발, 떡볶이, 육회, 해산물 구이 등 육해공을 아우르는 주전부리, 여기에 생맥주와 막걸리, 하이볼까지 더해지니 어디 하나 거를 타선이 없다. 사실 후평어울야시장은 문 닫힌 상점 골목에 외부 인력이 들어와 가판을 여는 일반 야시장과 달리, 시장 상인들과 함께 호흡하고 성장하는 지역 축제와 같다는 점에서 한층 의미가 깊다. 새우 꼬치 하나, 오징어회 한 접시에도 수북이 쌓이는 상인들의 이야깃거리가 골목 전체에 살가운 정서를 더한다. 덕분에 지난해만 해도 약 2만 8100명의 방문객이 몰릴 정도로 인기가 높았는데, 전통시장 활성화는 물론 위축된 지역 경제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한편 풍물시장의 꼬꼬야시장 역시 지난해 ‘춘천 핫플’로 SNS를 뜨겁게 달구었고 그 인기에 힘입어 최근 다시 문을 열었다. 1980년대부터 전통시장의 명맥을 이어 온 풍물시장을 터로 삼은 만큼 강원 지역을 대표하는 야시장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각종 콘텐츠 강화에 주력하는 중이다. 상점가 아케이드 안쪽으로 테이블이 꽉꽉 들어찬 후평어울야시장과 달리, 널찍한 잔디밭 광장에 먹고 마시는 공간을 조성해 한결 탁 트인 야장 감성이 느껴진다. 참고로 꼬꼬야시장은 풍물시장 장날과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후 6시부터 11시까지, 후평어울야시장은 금요일과 토요일 오후 6시부터 10시 30분까지 운영한다.

에코투어
수려한 숲과 호수의 풍광을 그저 눈에 담는 것만으론 부족하다면 춘천시와 춘천레저· 태권도조직위원회가 기획한 ‘에코투어’에 주목할 것. 춘천의 자연을 보다 깊이 만끽할 수 있는 힐링 레저 관광 프로그램으로, 자전거 라이딩과 의암호 카누잉, 붕어섬 둘레길 트레킹 등 세 가지 체험 투어가 결합돼 있다. 올해 상반기 기준 모집 인원은 500명, 운영 기간은 6월 30일까지다.
문의 010-7439-9411


여름의 문을 여는 축제
춘천의 여름을 알리는 건 무르익은 밤의 정서만이 아니다. 풍경의 농담이 짙어지는 6월, 여행자를 설레게 하는 온갖 축제가 개막 준비에 한창이다. 가장 먼저 ‘춘천사이로248(With사이로게임)’이 포문을 연다. 올해 처음으로 개최하는 이 축제는 ‘누구나 와서 즐기는 사이로 놀이터’를 테마로 14일과 15일 공지천 인라인스케이트장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같은 추억의 단체 게임을 비롯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 콘셉트의 미션 프로그램, 나만의 커스터마이징 아이템을 만드는 체험 부스 등이 준비돼 있다. 버블 아트 쇼와 마술 퍼포먼스, 마임 쇼 등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공연 역시 다양하다.
제철 먹거리의 가치를 아는 여행객이라면 21일부터 이틀 동안 신북 샘밭장터 일원에서 열리는 ‘2025 춘천 감자 페스타’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춘천이 자랑하는 하지감자를 단순한 판매 상품이 아닌 문화 체험 소재로 활용하는 행사다. 감자빵의 원조로 유명한 디저트 브랜드 ‘감자밭’과 감자로 수제 맥주를 제조하는 ‘감자아일랜드’, 핫도그 맛집으로 꼽히는 ‘박사마을곰핫도그’, 감자 테마의 이색 소품을 선보이는 ‘포테이토교’ 등 트렌디한 로컬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도 이제 막 오픈 준비에 나섰다. 명랑 감자 운동회, 감자 슬라임 만들기, 감자 요리 쿠킹 클래스 등 가족 단위 방문객을 겨냥한 체험 프로그램 역시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6월 하반기부터는 문화도시 춘천의 면모가 한층 강하게 드러난다. 도시 이름을 내건 간판급 문화 예술 축제가 26일과 27일, 나란히 개막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발 먼저 출발하는 건 2014년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의 선구자인 고(故) 이성규 감독을 기리며 시작한 춘천영화제. 많은 지역 영화제가 그러하듯 규모가 크진 않지만, 춘천의 문화적 정체성과 다양성, 그리고 독립 영화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실험의 장으로 그간 성실하게 기반을 다져 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영화의 봄’을 슬로건으로 삼아 영화인과 관객이 ‘자유롭고 흥겹게 어우러지는 축제’를 만들어 나갈 예정이다.
춘천영화제가 차근차근 성장 중인 지역 기반의 영화 플랫폼이라면, 올해 27회째를 맞는 춘천연극제는 이미 국내외로 명성이 높은 대규모 공연 예술 이벤트다. 6월 27일부터 11월 1일까지 장장 128일간 도시 곳곳을 돌며 펼쳐지는데, 단순한 축제를 넘어 웃음과 메시지를 함께 담은 코미디 연극을 통해 많은 이들과 교감한다. 이 여름, 우리가 춘천을 찾아야 하는 이유 역시 계속 늘어날 거란 이야기다.

춘천투어패스
모바일 티켓 한 장만 있으면 48시간 동안 마음껏 춘천 ‘갓성비’ 여행을 즐길 수 있다. 레고랜드와 애니메이션박물관, 플레이정글 춘천엔타점, 박사마을곰핫도그 등 총 11곳의 인기 시설 및 명소 이용권을 꽉꽉 눌러 담은 ‘춘천투어패스 48시간권’ 덕분이다. 단, 이틀을 알차게 보낼 만큼 일정이 넉넉하지 않다면 앞선 혜택을 합리적으로 압축한 ‘춘천투어패스 라이트권’을 추천한다. 첫 입장 시점부터 24시간 동안 레고랜드와 플레이정글을 제외한 모든 제휴 시설에서 이용 가능하다. 48시간권은 4만 9900원, 라이트권은 1만 5900원이다.
문의 070-4263-77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