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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E IN WONJU

2025년 08월 29일

  • WRITER 우지경(여행 칼럼니스트)
  • photographer 김은주
  • 제작 지원 원주시청

원주를 만드는 공간과 사람, 일곱 가지 이야기

원주의 미술관

워터가든에서 12개의 육중한 파이프를 이어 만든 작품 ‘Archway’를 지나 뮤지엄 본관으로 향한다.
경북 경주의 고분을 닮은 스톤가든.
뮤지엄 본관 내 청조갤러리에서 안토니 곰리의 전시 가 열리고 있다.

뮤지엄 산

공간 예술 자연의 하모니
원주에는 세 개의 산이 있다. 치악산, 소금산 그리고 뮤지엄 산(SAN). 공간(Space)과 예술(Art), 자연(Nature) 각 단어의 머리글자에서 따온 이름처럼 뮤지엄 산은 노출 콘크리트 건축의 대가 안도 다다오가 빚어 낸 건물과 예술 작품, 원주의 자연이 어우러지는 미술관이다. 웰컴 센터를 시작으로 플라워가든, 워터가든, 뮤지엄 본관, 명상관, 스톤가든, 제임스 터렐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공간을 잇는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틈틈이 자연 속에 녹아든 예술 작품을 만나게 된다. 마크 디 수베로의 거대한 작품이 시선을 끄는 플라워가든 옆엔 그라운드가 숨어 있다. 지하 동굴 구조로 설계한 그라운드는 안도 다다오와 영국의 조각 거장 안토니 곰리가 협업한 전시 공간으로, 안토니 곰리의 ‘Blockworks’ 시리즈 중 일곱 점이 전시되어 있다. 천창을 투과해 내리쬐는 햇살, 입구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멀리서 들려오는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마저 작품의 일부가 된다. 그라운드 맞은편, 빛의 공간에서는 십자 모양 틈 사이로 새어 나온 빛이 만들어 낸 또 다른 세계를 마주한다. 워터가든을 지나 뮤지엄 본관으로 가는 길, 알렉산더 리버만의 작품 ‘Archway’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뮤지엄 본관을 빠져나오면 신라 고분에서 영감을 받아 조성한 스톤가든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사이를 지나 제임스 터렐관에 이르기까지 뮤지엄 산의 모든 공간은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예술적 풍경의 연속이다.
주소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2길 260

원주의 문학

정원이 아름다운 박경리문학공원.
소설 <토지>의 세계관을 인테리어로 표현한 카페 서희.
옛집 거실에선 작가가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던 소파를 만난다.

박경리문학공원

작가의 숨결이 머무는
“원래의 대지, 본질적인 땅이란 의미로 해석되는 원주(原州), 이름 그 자체를 나는 사랑했는지 모른다.” 한국 현대문학의 거장 박경리 작가가 남긴 말이다. 작가는 대표작 <토지>를 25년간 집필했는데 그중 18년은 원주 단구동에 살며 4, 5부를 완성했다. <토지>는 구한말에서 광복까지 부산, 서울, 간도 용정 등 삼천리를 배경으로 민중의 삶을 생생히 그려 낸 작품으로 등장인물만 600명이 넘는다. 1994년 8월 15일 마지막 원고를 탈고하기까지 작가가 머물던 집과 정원은 2008년 박경리문학공원으로 변모했다. 이곳에서 특히 인기 있는 장소는 서재와 집필실이 오롯이 남아 있는 옛집이다. 박경리 작가가 5년간 정성껏 만든 돌길을 따라 걸으면 옛집 앞에 너른 잔디밭이 펼쳐진다. 손수 가꾸던 텃밭은 아름다운 정원이 되었고, 텃밭에서 일하다 쉬던 자리에는 작가와 그가 아끼던 고양이 동상이 있다. 옛집 안으로 들어서면 거실엔 커피를 즐겨 마시던 소파가, 부엌엔 평소 사용하던 식기가 작가를 추억하게 한다. 주인이 잠시 외출한 집에 방문한 손님이 된 듯한 기분이다. 상만 하나 덩그러니 놓인 집필실에는 생전에 쓰던 안경, 만년필, 사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옛집 관람의 여운은 명상 음악이 흐르는 ‘카페 서희’에서 느껴 보자. <토지>를 모티브로 조성한 공간에는 작품을 상징하는 조형물과 박경리 작가의 여러 대표작을 비치해 놓았다.
주소 강원도 원주시 토지길 1

원주의 맛

2024 원주만두축제 풍경.
중앙시장은 소고기 골목으로 유명하다.
중앙시장 2층에 자리한 미로예술중앙시장에는 아기자기한
가게가 모여 있다.

도래미시장·자유시장·중앙시장

원주의 시간을 맛보다
원주 중앙동에 자리한 전통시장에 가면 맛깔난 음식의 유혹에 발걸음이 멈춘다. 찜통 뚜껑을 열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며 갓 쪄 낸 만두가 탐스러운 자태를 드러낸다. 이름도 귀여운 도래미시장 골목에는 김치만두를 대표 메뉴로 내건 만두 가게가 줄지어 있다. 원주 김치만두의 역사는 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전쟁 이후 원주에 정착한 피란민들이 만두를 빚어 팔던 것이 시초다. 익은 김치 대신 생김치를 넣는 것이 원주 김치만두의 특징. 바삭한 튀김만두는 물론 칼국수와 만두를 합친 칼만둣국도 이곳만의 별미다. 도래미시장 옆 자유시장 지하에서는 떡볶이, 순대, 김밥 등을 저렴하게 맛볼 수 있는 분식집이 인기다. 중앙시장의 소고기 골목에서 치악산 한우도 꼭 맛볼 것. 뜨거운 숯불 화로에 석쇠를 올려 치익 소리가 나게 구워 먹으면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취향 따라 갈빗살, 안창살, 살치살 등 다양한 부위를 주문해도 좋고 차돌박이, 부채살, 업진살, 치마살을 두루 맛볼 수 있는 모둠구이는 여러 명이서 다양한 맛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주소 도래미시장 강원도 원주시 중앙시장길 35-4
자유시장 강원도 원주시 중앙시장길 11
중앙시장 강원도 원주시 중앙시장길 2

2025 원주만두축제
원주 만두를 흥겹게 즐기고 싶다면 오는 10월 24일부터 26일까지 중앙동 전통시장 및 문화의 거리, 원일로 일원에서 열리는 원주만두축제를 기억하자. 올해 3회를 맞는 축제로 만두 미식존, 만두 만들기 체험존, 만두 주제 전시 등 만두를 오감으로 즐기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시민 참여 행사로 읍면동 만두 만들기 대회, 만두 덕후 서포터즈 발대식, 만두 이색경연대회, 플리마켓 등 풍성한 이벤트도 선보일 예정이다.

원주의 낭만

소금산 피톤치드 글램핑장에선 소금산 너머로 노을이 지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캄파슬로우 내 수제 맥주와 와인을 파는 상점.
캄파슬로우의 우드 카빙 공방에선 새집이나 나무 장난감 만들기 클래스를 진행한다.

소금산 피톤치드 글램핑장·캄파슬로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시간
때로는 자연 속에 머물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듯하다. 도시의 소음 대신 새소리, 물소리가 가득한 원주의 글램핑장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소금산 그랜드밸리 깊은 산속, 무성하게 자란 나무에 둘러싸인 소금산 피톤치드 글램핑장에서 하룻밤을 보내 보자. 손에 닿을 듯 가까이 보이는 소금산 정상과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싼 울창한 숲이 뿜어내는 피톤치드 향을 맡으면 온몸이 정화되는 듯하다. 저녁에는 황홀한 노을이 번지는 소금산을 바라보며 바비큐를 즐기고, 새벽에는 유유히 흘러가는 운무를 감상하며 커피를 홀짝이는 낭만을 만끽할 수 있다. 삼산천 협곡을 가로지르는 소금산 출렁다리 위에서 느끼는 짜릿한 스릴은 덤이다. 백운계곡 옆 캄파슬로우도 숲속 글램핑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다. 나무로 지은 로지, 돔 형태의 호빗하우스 등 각기 다른 유형의 숙소가 마련되어 있다. 숲길을 산책하다 핀란드식 편백나무 사우나까지 즐기다 보면 시간이 멈춘 듯 느리게 흐른다. 지속 가능한 농업을 뜻하는 ‘퍼머컬처’ 철학을 바탕으로 운영하는 우들라농장에서는 제철 농작물을 내 손으로 수확하는 기쁨을 누리고, 우드 카빙 공방에서는 자녀와 함께 새집이나 나무 장난감을 만들며 특별한 추억을 남긴다. 최근에 문을 연 가드닝 숍 온실에서는 농장에서 기른 식물과 친환경 제품을 판매한다.
주소 소금산 피톤치드 글램핑장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 소금산길 12
캄파슬로우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백운산길 67-105

원주의 술

모월 인을 아메리칸 오크 통에 숙성한 모월 인 오크는 위스키처럼 깊은 맛을 낸다.
모월양조장 2층에는 시음실이 있다.

모월양조장

원주 쌀로 빚은 고품격 소주
원주의 옛 이름은 모월(母月). 어머니의 마음과 은은한 달빛처럼 품어 주는 고장이란 의미가 담겼다. 치악산과 백운산 사이, 원주의 옛 이름을 내걸고 전통 방식 그대로 술을 빚는 모월양조장이 있다. 원주에서 농부의 아들로 나고 자란 김원호 대표가 운영하는 곳으로, 첨가물 없이 오직 원주 쌀 ‘토토미’와 누룩, 물로만 술을 빚는다. 원주 쌀로 좋은 술을 만들면 사라져 가는 고향의 논을 지킬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다. 김 대표는 쌀 시장 개방을 반대하던 농민들마저 미국 쌀로 만든 막걸리를 마시는 현실이 안타까워 2014년 양조에 뛰어들었다. 같은 뜻을 가진 동창생들과 협동조합 모월양조장을 설립하고 술 빚는 데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 발효시킨 밑술을 정제해 추출하는 증류 단계에서 상압식 기법으로 쌀의 감칠맛과 향을 유지하고, 구리 증류기를 사용해 맑고 부드러운 맛을 더한다. 모월양조장에선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소주와는 비교할 수 없는 프리미엄 증류식 소주를 만든다. 맛과 향이 탁월해 모월양조장의 시그너처 ‘모월 인’은 2020년 우리술 품평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모월 인을 아메리칸 오크 통에 숙성해 오크 본연의 순수하고 진한 풍미를 살린 ‘모월 인 오크’(41도)도 인기다. 모월 인 외에도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전통주로는 증류식 소주 ‘모월 로’(25도), 프리미엄 약주 ‘모월 연’(13도)과 ‘모월 청’(16도), 새로 출시한 ‘나랑소주’(19도)가 있다.
주소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판부신촌길 84

interview

모월양조장 김원호 대표

원주 쌀로 술을 빚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술은 결국 농업’이라는 생각으로 양조장을 시작했습니다. 해외에서 수입한 쌀로 한국의 전통주를 만드는 것이 늘 아이러니하다고 느꼈죠. 나라도 앞장서서 우리 쌀로 우리 술을 만들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술은 농업’이라는 말씀이 인상적이에요. 농업은 로컬이고, 로컬이 활기를 띠려면 농업이 살아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방에서 올바르게 농사짓고 술을 빚는 것 또한 로컬 크리에이터의 역할이죠. 로컬 크리에이터로서 목표가 있을까요? 지역의 이름을 건 술을 만들고 싶습니다. 4만 3000명이 거주하는 멕시코의 도시 테킬라를 알린 술 테킬라처럼 원주 쌀로 만든 술로 원주를 알리는 것이 목표입니다.

원주의 자연

치악산 비로봉 정상과 백두대간 능선이 빚어 내는 비경.
치악산 등반은 구룡사에서 시작한다.
가을이면 노란 은행잎 비가 내리는 반계리 은행나무.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치악산

걸어서 단풍 속으로
산세가 수려한 원주에는 크고 아름다운 나무가 유난히 많다.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을 뿜어내는 나무는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문막 반계리를 지켜 온 거대한 은행나무다. 1964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는데 당시 높이가 약 33미터, 둘레는 약 16미터였다. 줄기와 가지가 균형 있게 자라 한국의 은행나무 가운데 가장 크고 아름다운 나무로 꼽힌다. 실제로 보면 사방으로 뻗은 가지의 반경이 어찌나 거대한지 마치 나무 한 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는 것만 같다. 최근에는 SBS 드라마 <우리영화>에 등장해 사시사철 아름다운 은행나무의 자태를 보여 주었다. 사계절 중 특히 가을에는 해마다 은행잎 비가 내리는 풍경을 보러 여행객이 반계리로 몰려든다. 만추에 접어들면 후드득 은행나뭇잎이 떨어져 주변 땅을 황금빛으로 물들인다. 등산을 사랑하는 여행자에겐 단풍으로 물든 가을의 치악산도 놓칠 수 없다. 구룡사 입구에서 시작해 비로봉까지 이어지는 등산길에서 틈틈이 들리는 시원한 폭포 소리가 온몸의 고단함을 달랜다. 비로봉에서 내려다보는 원주 시내와 백두대간의 능선은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깊어 가는 가을, 원주를 찾아야 할 이유다.
주소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 1495-1
치악산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무쇠점2길 26

원주의 지속 가능한 미래

빙하미술관은 물 위에 떠 있는 빙하를 닮았다.
구지은 작가의 ‘뉴제비타운 시리즈’와 ‘회전하는 공동의 숲’.

빙하미술관

예술로 환경을 이야기하는
원주 지정면 판대리에 거대한 빙하가 나타났다.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사라져 가는 시대에, 예술을 매개로 지속 가능한 미래를 고민하는 빙하미술관이 지난 5월 문을 연 것이다. 미술관에 들어서기 전, 물 위에 떠 있는 빙하처럼 보이는 조형물이 먼저 눈길을 끈다. 빙하를 상징하는 스테인리스스틸과 유리 외벽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원주의 자연을 비춘다. 미술관 내부도 빙하 조형물만큼이나 리듬감이 넘친다. 일반적인 화이트 큐브 형식의 전시장과 달리 곡선의 벽과 V자형 통로, 복층 구조 등을 적극 활용해 같은 작품을 다각도로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전시장 너머로 빙하 조형물이 떠 있는 수변 공간이 보여 마치 빙하 속을 거니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실험적인 공간만큼이나 돋보이는 것은 기후 위기를 예술 작품을 통해 마주하는 개관전 <1.5도씨-트루바이(1.5℃-Trouvaille)>다. 1.5도씨는 2015년 파리협정에서 설정한 지구 평균기온 상승 임계치를, 트루바이는 프랑스어로 ‘뜻밖의 발견’을 뜻한다. 미술과 지질을 전공한 황해연 작가가 그린 ‘빙하, 빙산의 형태 연구 드로잉’, 인간과 제비가 공유하는 집을 주제로 한 구지은 작가의 ‘뉴제비타운 시리즈’ 등 작가의 시선이 담긴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환경문제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주소 강원도 원주시 지정면 구재로 66

interview

빙하미술관 조수현 학예팀장

미술관의 첫인상이 강렬해요. 빙하를 닮은 미술관을 구현하기 위해 설계부터 시공까지 많은 노력을 들였습니다. 기후 위기를 예술로 풀어낸 개관전에도 특별히 신경 썼죠. 사람들이 생각하는 빙하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력을 자극하는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개관전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타 지역에서 온 방문객도 많지만, 특히 원주 시민들이 많이 찾아 주셔서 기뻐요. 유치원생이나 중고생이 단체 관람을 와서 전시를 흥미롭게 볼 때 뿌듯합니다. 다음 행보가 기대됩니다. 빙하미술관이 예술과 건축, 자연이 조화를 이루는 열린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다양한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어요. 올겨울에는 빙하미술관 외벽이 꽁꽁 언 모습을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겨울의 빙하미술관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