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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돌을 찾아서, 울주를 감각하는 네 가지 방법

2025년 03월 26일

  • EDITOR 강은주(여행 칼럼니스트)
  • PHOTOGRAPHER 전재호

봄볕이 흥건한 땅, 울산 울주로 떠난다. 외고산옹기마을에서 열리는 울산옹기축제에서 흙과 불의 황홀한 조화를 감상하고, 옛 성곽과 너럭바위를 떠돌며 돌과 바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시간이다. 자연을 닮아 풍미 깊은 먹거리는 덤처럼 주어진다.

허진규 옹기장의 작업장 겸 전시 공간 ‘옹기골도예’와 가마터.

1 흙에 가까이 닿다
외고산옹기마을

언젠가 흙으로 돌아갈 존재의 본능일까. 흙의 온기가 고스란한 옹기를 들여다볼 때면 어지러운 머릿속은 가라앉고 마음이 고요해진다. 온양읍 고산리의 완만한 언덕에 펼쳐진 한국 최대 규모의 옹기 집산지, 외고산옹기마을 풍경 또한 이토록 너그럽다. 옹기 수요가 급격히 늘어난 1950년대, 지역 곳곳을 전전하며 가마를 축조하던 허덕만 장인은 외고산에 정착하기로 결심한다. 흙이 좋아 가마를 세우기에 유리했고, 주변 지역보다 기후가 온화해 옹기를 굽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무엇보다 교통이 편리해 전국으로 물건을 실어 나르기에 편리했다. 허 장인을 중심으로 옹기점이 하나둘 모여들어 형성된 외고산옹기마을은 시대와 생활환경에 따라 흥망과 부침을 거듭하며 오늘날에 이르렀다. 25년 역사에 빛나는 울산옹기축제를 통해 생활 공예의 명맥을 잇는 전통의 수호 기지로 자리매김했음은 물론이다. 이곳엔 생애를 바쳐 옹기를 빚어 온 장인들의 작업장, 옹기의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울산옹기박물관, 이 고장의 생활사와 풍속을 망라한 울주민속박물관이 옹기종기 자리해 산책하듯 휘 둘러보기 좋다. 옹기가 담벼락처럼 이어진 정다운 골목 한편엔 온갖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 만든 옹기 조형물이 손님을 마중하듯 늘어서 있다.
주소 울산시 울주군 온양읍 외고산3길 36 문의 052-237-7894

축제 여행자를 위한 추천 코스

울산옹기축제
고려 시대부터 전통을 이어 온 옹기의 가장 현재적인 모습을 마주하고 싶다면, 5월 3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울산옹기축제에 참여한다. 9년 연속 대한민국 축제 콘텐츠 대상을 수상한 울주 대표 축제답게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펼쳐진다. 손수 흙을 빚어 옹기를 만드는 체험 코너와 옹기 콘서트, 주민 참여 공연인 옹기열전 등이 어우러져 흥을 더한다. 외고산옹기마을 장인의 시연 행사는 축제의 하이라이트다.
기간 5월 3일~5일 장소 울산시 외고산옹기마을 일원
문의 052-980-2232, @us.onggi

울산옹기박물관
한국 식문화의 근간을 이루는 전통 공예품, 옹기의 진면모를 만나러 간다. 울산옹기박물관은 옹기의 역사와 전통, 생활 문화와 미학을 보여 주는 곳으로 우리가 익히 아는 장독은 물론, 간수를 받아 내는 간수 독, 소주를 증류하는 소줏고리, 곡식을 갈 때 쓰는 확독과 확돌 등 다채로운 사료를 전시해 옛사람들의 삶을 상상하게 한다. 입구에는 높이 223센티미터, 둘레 517센티미터에 달하는 <기네스북> 인증 세계 최대 옹기가 자리해 이목을 끌고, 1층과 2층 사이에 옹기 가마처럼 꾸민 통로가 색다른 볼거리를 선사한다. 5월 5일까지 열리는 특별전 <心(심): 대한민국 옹기장>은 옹기장의 빼어난 기술과 우아한 신념을 조명한다.
주소 울산시 울주군 온양읍 외고산3길 36 문의 052-237-7894

울주민속박물관
선사시대 문화유산을 간직해 온 울주 사람들의 삶과 생활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곳이다. 지역 문화가 지닌 가치를 재구성해 네 가지 테마의 전시를 열고 있다. ‘역사와 민속’ ‘일생의례’ ‘세시풍속과 생업’ ‘사람·삶·사랑’으로 이어지는 전시실엔 지랑마을의 혼례복, 동천리 마을의 동제 문서, 농부의 가마니틀과 삼태기, 해녀의 물안경과 테왁 등을 진열해 이 고장의 풍속을 소개한다. 음력 2월의 칼바람을 신격화한 존재 ‘영등할만네’ 이야기와 그에 얽힌 습속을 다룬 기획전 또한 흥미롭다. “나는 바람이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다.” 나직한 내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실감 영상은 울주 땅을 가로지르는 영등할만네의 모습을 신비롭게 담아냈다.
주소 울산시 울주군 온양읍 외고산1길 4-19 문의 052-204-4033

INTERVIEW

옹기골도예 허진규 옹기장

가업을 이어 옹기를 빚고 계시지요. 네, 외고산옹기마을에서 태어나 평생 옹기를 만들었습니다. 열여덟에 정식으로 옹기를 빚기 시작했고, 그보다 더 어린 시절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도와 이런저런 잡무를 거들었지요. 경남 양산에서 옹기를 만들던 할아버지께서 먼 친척인 허덕만 장인이 외고산에 자리 잡았다는 소식을 듣곤 이곳으로 이주하셨다 들었습니다. 그 이래로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네요.

옹기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게 된 과정이 궁금해요. 여기서 나고 자라 지금껏 옹기를 만드는 사람은 저뿐일 거예요. 워낙 노동 집약적인 일이라 다들 견디지 못하고 떠났거든요. 흙을 빚고 나서 결과물을 보려면 한 달은 족히 걸리니 인내와 기다림이 필수 요건이기도 하고요. 제 눈엔 흙 빚는 마을 어르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해 보였기에, 언젠가 꿋꿋이 이 두 손으로 옹기를 완성하고 싶었어요. 쉽진 않았습니다. 흙가래를 끊임없이 쌓아 타림질을 하고, 형태를 갖춘 그릇을 숯불에 건조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한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으니까요. 잠깐 다른 생각을 하며 발물레를 돌리면 스승님이 “너 무슨 생각 하니?” 하며 귀신같이 알아차리곤 하셨죠. 그렇게 흙 빚는 일 하나에 골몰하다 보니 어느덧 42년이 흘렀네요.

이미 300여 가지 옹기를 만들고 일가를 이룬 옹기장에게도 새로운 목표가 있을까요. 범용성 높은 옹기 제조 기술을 조금 더 널리 알리고 싶어서 후학을 양성하는 중입니다.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것을 건져 올려라.” 작업장에 써 붙인 문장을 등불 삼아 오늘의 옹기, 내일의 옹기를 고민하며 천천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언양읍성에 올라서면 검푸른 산의 능선이 파도처럼 아물거리는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성곽과 마을이 다정하게 어우러진 모습도 인상적이다.
사선으로 비스듬하게 쌓아 올린 서생포왜성은 여느 성곽보다 위압적인 모습이다.

2 돌 사이에 고인 시간
언양읍성과 서생포왜성

여행에 즐거움을 더하는 모험 중 하나는 높은 곳에 올라 발아래를 굽어보는 일일 테다. 그럴싸한 전망대도 좋지만, 오래된 성곽에서 도시를 조망할 때면 옛사람의 마음에 동화된 듯 감상적인 기분에 사로잡힌다. 울주 땅에는 유서 깊은 성곽이 둘 있다. 하나는 울주 중심인 언양에 자리한 언양읍성이다. 삼국시대에 토성으로 축조한 언양읍성은 조선 시대에 석성으로 개축해 사대문과 12개소의 치성, 해자를 갖춘 어엿한 건축물로 거듭났다. 무수한 전쟁과 일제강점기를 견디는 동안 거의 소실되었으나 1991년부터 정밀 지표 조사를 실시해 복원 작업을 시작했고, 2013년 8월에는 진남문인 영화루를 정비해 일반에 공개했다. 최근엔 영화루를 기점으로 한 마을 탐방 코스 ‘언양갈래길’을 마련하기도 했다. 벽화와 과거 사진으로 꾸민 골목길을 거닐며 마을의 역사와 자취를 좇는 재미가 쏠쏠하다. 걸음은 물길을 따라 이어진다. 울주의 또 다른 성곽인 서생포왜성은 회야강과 진하해변이 만나는 요충지에 위치한다. 임진왜란 때 왜장이 세운 구조물로, 현존하는 왜성 중 보존 상태가 양호해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이 견고한 석성을 쌓았을 조선인의 땀과 눈물을 감히 짐작할 수 있을까. 성에서 마주하는 바다와 마을 풍광은 덧없이 눈부시기만 하다.
주소 울산시 울주군 언양읍 성안1길 1(언양읍성),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 서생3길 12-8(서생포왜성)

작괘천 바위 곳곳에 이름과 시구 등이 새겨져 있다.

3 너럭 바위에 누워
작괘천과 작천정

신불산에서 간월산으로 이어지는 북쪽 계곡엔 예부터 묵객들이 찾아와 노닐던 은신처가 있다. 이름하여 작괘천. 널따란 화강암 암반 지대에 생성된 구혈이 꼭 술잔을 닮았다 해서 술 부을 작(酌), 걸 괘(掛) 자를 쓴다. 산 좋고 물 맑으니 몸 기댈 자리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터.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선비들이 열망해 온 정자는 1902년에야 준공되어 작천정이란 이름을 얻었다. 정각 구석구석에는 옛사람들이 작괘천과 작천정을 노래한 시, 노래, 글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억지로 작은 다락을 지어 별세계를 열고/ 기이한 바위에 대응하여 맑은 시내를 끌어 안네/ 무심한 구름은 피어 나와 처마에 기대어 자고/ 심지 않은 꽃이 피어 산기슭이 그윽하네”. 갑진년(1904년) 6월 상한에 만취 오인선이 썼다고 전하는 문장은 각별히 아름다워 시선이 오래 머문다. 정자 마루에 앉아 물길을 바라봐도 좋지만, 너럭바위에 대자로 누워 온몸으로 봄볕을 느끼는 쾌감과 비교하긴 어렵다. 훗훗한 바람, 싱그러운 숲 내음, 음악처럼 반짝이며 흐르는 물소리가 감각세포를 곤두세운다. 작괘천 길목에 늘어선 벚나무도 머지않아 만개해 봄기운을 더할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그 모습을 상상하는 동안 마음이 꽃눈처럼 부풀어 오른다.
주소 울산시 울주군 삼남읍 등억알프스로 133

4 땅의 기운을 들이마시다
왕방요와 묵리459 울산점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 태화강 선바위와 언양지석묘···. 지구의 아득한 시간이 응축된 울주 땅에서 돌과 흙의 심상이 어른거리는 건축물을 발견한다. 삼동면 왕방마을에 자리한 ‘왕방요’는 도예가 신용균이 빚은 다구로 찻자리를 마련한 카페다. 가마터와 아틀리에, 갤러리를 겸한 복합 문화 공간이기도 하다. 노출 콘크리트 벽체로 공간을 구획하며 연결해 나가는 신묘한 구조, 벽과 벽 사이에서 들이치는 빛, 곳곳에 놓인 도자기는 멋과 운치를 더한다. 검박한 덤벙 분청 잔에 향긋한 ‘김탱홍차’를 따라 마시는 동안 자연과 하나 되는 듯한 기분을 만끽한다. 연화천과 주원천이 굽이치는 두동면 구미리엔 카페 ‘묵리459 울산점’이 자리한다. 모던하고 환한 상아색 건물에 들어서자 짙은 먹색과 나무, 바위로 장식한 공간이 들뜬 마음을 가라앉힌다. 채도와 조도를 낮추는 한편, 시시각각 변화하는 풍광을 그대로 담아 차경의 미학을 충실히 실현하는 창호가 인상적이다. 탁 트인 바에 앉아 현무암을 닮은 치킨과 크로플을 곁들인 브런치 메뉴 ‘묵리플’, 농밀한 먹빛을 띤 흑임자 아인슈페너 ‘묵라테’, 먹물 크루아상에 아이스크림을 얹은 디저트 ‘주상절리’를 맛보는 동안은 신선이 부럽지 않다. 배경음악처럼 들리는 물소리마저 상념을 씻어 준다.
주소 울산시 울주군 삼동면 출강왕방길 124(왕방요),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 인보구미로 324-13(묵리459 울산점) 문의 @cafe_wangbangyo(왕방요), @mukri459_ulsan(묵리459 울산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