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퍼포먼스 공연 <허난설헌-수월경화(水月鏡花)>를 허난설헌의 고장 강원도 강릉에서 만난다. 국립발레단과 강릉아트센터가 눈부시고 애달픈 예술가의 삶과 시를 무대로 옮겨 놓았다.

물에 비친 달, 거울에 비친 꽃
춤으로 승화한 허난설헌의 시
조선 중기의 천재 시인 허난설헌은 여성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는 시대를 한스럽게 살다 갔다. 자신을 평생 외롭게 내버려 둔 남편, 몰락한 친정, 일찍 떠나보낸 두 아이에 대한 슬픔으로 몸이 점차 쇠약해지다 시로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고 세상을 떠났다. 가혹한 삶 속에서 탄생한 허난설헌의 문장은 독창성이 돋보이는 눈부시고 아름다운 글이었으나 생전에 빛을 보지 못하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야 중국 문인들 사이에서 칭송받았다.
작품 제목이기도 한 ‘수월경화(水月鏡花)’란 ‘물에 비친 달과 거울에 비친 꽃’을 의미한다. 눈으로 볼 수는 있으나 손으로 잡을 수 없음을 뜻하며, 시적 정취가 빼어남을 비유한 사자성어다. 허난설헌의 시 중에서도 손꼽히는 ‘감우(感遇)’와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이 <허난설헌-수월경화(水月鏡花)>를 통해 무용으로 피어난다. 국립발레단 솔리스트이자 안무가 강효형은 두 작품에 등장하는 잎, 새, 난초, 바다, 부용꽃 등 자연물을 무용수의 움직임으로 형상화해 70분간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세계를 빚어 냈다.

강릉 예술의 수호 기지, 강릉아트센터
여행자가 사랑하는 도시 강릉은 남다른 문화적 저력을 지닌 고장이다. 강릉아트센터는 1993년 강릉문화예술관으로 건립한 이래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의 전당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강릉 시민은 물론 강릉을 찾은 여행객에게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자 양질의 공연과 전시, 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대공연장 사임당홀은 972개 객석, 150여 명이 오를 수 있는 무대, 최대 70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추고 뮤지컬, 오페라, 음악회 등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소화한다. 훌륭한 콘텐츠에 예술적 영감과 감흥이 흐르는 이곳에서 강릉의 새로운 예술적 면모를 확인할 시간이다.

위대하고 창의로운 몸짓, 국립발레단
한국 발레를 대표하는 국립발레단은 1962년에 창단한 이래 다채로운 창작 레퍼토리를 선보여 왔다. <허난설헌-수월경화> <왕자호동> <호이 랑>에 이어 2015년에 시작한 ‘KNB 무브먼트 시리즈’를 통해 신진 안무가를 발굴하고 소품 레퍼토리를 개발하며 창작 발레의 대중화에 힘썼다. ‘찾아가는 발레 이야기’ ‘찾아가는 발레교실’ ‘해설이 있는 발레’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문화 활성화에 기여하는 한편, 해외에도 대한민국 발레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2023년 5월 독일 비스바덴에서 <해적>을, 2024년 4월 영국 로열발레단 초청으로 <계절 ; 봄>을 선보이는 등 세계 무대에서 한국 발레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허난설헌의 시를 읽는 시간
감우(感遇)
느낀 대로 노래한다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초 가지와 잎
그리도 향그럽더니,
가을바람 잎새에 한번 스치고 가자
슬프게도 찬 서리에 다 시들었네.
빼어난 그 모습은 이울어져도
맑은 향기만은 끝내 죽지 않아,
그 모습 보면서 내 마음이 아파져 눈물이
흘러 옷소매를 적시네.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
꿈속 광상산에서 노닐다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허난설헌- 수월경화(水月鏡花)>
음악 황병기, 한진, 김준영, 심영섭, 박우재
안무 강효형
음악감독 김준영
무대 박연주
의상 정윤민
조명·영상 백시원
출연 국립발레단 단장 겸 예술감독 강수진
공연 시간 70분(휴식 없음)
공연 일시 2월 14일 19:30, 15일 14:00, 16일 14:00
문의 www.gn.go.kr/arts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