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함께여서 더 빛나는 문화예술계 콤비들

2025년 07월 25일

  • writer 정수진(대중문화 칼럼니스트)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는데, 사람들 마음을 훔치는 작품을 만들려면 오죽 합이 좋아야 할까. 끈끈한 협업으로 대중을 홀린 창작 파트너들을 살펴봤다.

나영석 PD(왼쪽)와 예능을, 신원호 PD와 드라마를 함께 하는 이우정 작가(가운데). © 에그이즈커밍

최근 공연계의 뜨거운 이슈는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었다. 한국에서 시작해 브로드웨이로 진출한 이 작품은 토니상 뮤지컬 부문 작품상, 극본상, 음악상, 연출상, 남우주연상, 무대 디자인상까지 무려 6관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 중심엔 윌 애런슨(작곡·극본)과 박천휴(작사·극본)가 공동 창작한 대본과 음악이 있다. ‘뮤덕’들 사이에서 ‘윌휴 콤비’라 불리는 이들은 첫 작품 <번지점프를 하다>를 시작으로 <어쩌면 해피엔딩> <일 테노레> <고스트 베이커리>까지 네 작품을 함께 했다.
공연계에서 ‘윌휴 콤비’ 같은 파트너십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뮤지컬, 연극 같은 공연 예술은 각기 다른 능력을 가진 창작자들이 모여 작품의 완성도를 극대화하는 것이 관건인지라 한번 합이 잘 맞으면 다음 작품을 기약하는 게 자연스럽다. 특히 대사만큼 음악이 주요한 표현 방식인 뮤지컬에선 연출-극본 외에 작곡-작사 콤비의 활약이 많다. 해외에선 1940~1950년대 브로드웨이 황금기를 이끌며 <왕과 나> <신데렐라> <사운드 오브 뮤직> 등을 내놓은 리처드 로저스-오스카 해머스타인 2세부터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에비타>의 앤드루 로이드 웨버-팀 라이스, <엘리자벳> <모차르트!> <레베카> 등으로 수십 년째 이어 오는 실베스터 르베이-미하엘 쿤체까지 명콤비의 역사가 깊다. 2000년대 이후 뮤지컬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한국에서도 왕용범-이성준, 장유정-김혜성, 성재준-원미솔, 한정석-이선영 등 믿고 보는 콤비들이 나왔다. 윌휴 콤비도 그런 흐름 중 하나다.

<어쩌면 해피엔딩>으로 한국 뮤지컬 역사를 새롭게 쓴 박천휴(왼쪽)-윌 애런슨. © CJ ENM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대니얼스’ 콤비.

전 영역에서 활약하는 콤비들
영상 분야로 눈을 돌려도 빛나는 결과물을 내는 콤비가 비일비재하다. 영화계에선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가 꼽힌다. 이들은 하나의 컴퓨터에 각자 모니터와 키보드를 연결해 함께 시나리오를 쓰는 독특한 협업 방식으로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헤어질 결심> 등 다섯 편의 파격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정서경 작가는 스스로를 ‘박찬욱 감독 학교의 학생’이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박찬욱 감독 또한 “내 전체적인 영화 경력이 정서경과의 만남 전후로 나뉘게 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라고 할 만큼 서로의 커리어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방송계에선 일찍부터 합이 잘 맞는 작가-PD 콤비가 두드러졌다. 한 시대를 풍미한 김수현-정을영, 송지나-김종학 외에도 <아내의 자격> <밀회> <풍문으로 들었소>의 정성주-안판석, <그 겨울, 바람이 분다> <라이브> <우리들의 블루스>의 노희경-김규태, <파리의 연인> <시크릿 가든> <신사의 품격>의 김은숙-신우철, <태양의 후예>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의 김은숙-이응복 조합이 명콤비 소리를 들었다.
최근엔 예능 출신 작가-PD 조합의 활약이 돋보인다. 대중을 웃겨야 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시트콤에서 치열하게 합을 맞춰 본 경험이 드라마에서도 빛을 발하는 경우인데, 대표 사례가 이우정-신원호 콤비다. 예능 <남자의 자격> 등으로 합을 맞췄던 이우정 작가와 신원호 PD는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와 ‘슬기로운’ 시리즈를 함께 하며 그야말로 경이로운 기록을 썼다. 재미난 건 이우정 작가가 나영석 PD와 손발을 맞추며 <꽃보다 할배> <신서유기> <뿅뿅 지구오락실>에 이르기까지 걸출한 예능 프로그램을 내놓은 현역 예능 작가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능 출신인 이남규 작가와 김석윤 PD의 조합도 눈에 띈다. 시트콤 <달려라 울엄마>부터 지난 5월 종영한 드라마 <천국보다 아름다운>까지 대부분의 커리어를 함께한 사이인데, 전반적으로 따스한 휴머니즘 성격이 강하지만 <송곳> 같은 사회 고발물에서도 합이 좋았다.
영역을 완벽히 분리하지 않는 형태의 협업도 있다. 만화가 최규석은 상명대학교 동문인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작품 캐릭터 원안을 맡아 왔는데, 이후 드라마 <지옥>과 <계시록>에선 연출은 연상호가 맡되 원작이 되는 웹툰과 극본 작업은 함께 하는 작업 방식을 취했다. 해외에선 아예 연출과 극본을 나누지 않고 공동으로 작업하는 듀오 감독이 많다. ‘대니얼스’라 묶여 불리는 대니얼 콴-대니얼 샤이너트가 대표적이다. 뮤직비디오 감독 시절부터 독특한 아이디어와 연출로 이름을 날린 대니얼스는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제95회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을 수상하며 극대화한 시너지 효과를 전 세계에 과시했다. 대니얼스 외에도 <캡틴 마블>의 애나 보든-라이언 플렉, <헤레틱>의 스콧 벡-브라이언 우즈 등이 함께 영화를 만드는 듀오 감독으로 잘 알려져 있다.

만화가 최규석(왼쪽)과 연상호 감독 콤비. © 넷플릭스

쉽지 않은 파트너십, 그럼에도
열거해 보면 많은 것 같지만, 사실 잘 맞는 파트너를 찾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이는 결혼 상대 찾는 것에 비유되곤 하는데, 만남만큼 끊임없이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도 결혼과 비슷한 점이다. <여신님이 보고 계셔> <레드북> <쇼맨> <라이카> 등 여러 편 홈런을 치며 확고한 브랜드를 만든 한정석 작가와 이선영 작곡가(여기에 박소영 연출까지 합해 ‘한이박 트리오’로도 불린다)는 뮤지컬 창작 아카데미 ‘불과 얼음’에서 만났는데, 협업 초반에는 다투는 시간이 많았지만 이제는 서로에게 가감 없는 피드백이 가능한 사이가 됐다. 연극 <모범생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카포네 트릴로지> 등의 협업으로 ‘지탱 콤비’로 통하는 지이선 작가와 김태형 연출의 애증 관계도 대학로에서 유명하다. 농담처럼 ‘잘못된 만남’이라 말하지만 ‘믿고 싸우는 관계’라는 표현처럼 치열한 논쟁 속에서도 서로를 신뢰하며 좋은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물론 결혼이 그렇듯 모든 파트너십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귀결되진 않는다. 예술관이 부딪히며 헤어지기도 하고, 새로운 만남으로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고자 아름다운 이별을 하기도 한다. ‘마블 코믹스’라는 세계를 창조해 낸 스탠 리-잭 커비 콤비가 그 사례다. 이들은 만화 <판타스틱 4>를 비롯해 헐크, 토르, 엑스맨, 아이언맨 등 마블의 쟁쟁한 캐릭터들을 창조했으나 스토리 작가의 역할을 더 중요시한 스탠 리와 마블에 섭섭함을 느낀 잭 커비가 회사를 떠나는 바람에 팬들에게 씁쓸함을 남겼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 함께 하나의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무척이나 경이로운 일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