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면 생명력 넘치는 조형미에 오묘한 푸른빛을 지닌 상형청자의 세계와 조우한다.

나무를 베니 남산이 붉게 물들었고/ 불을 피워 연기가 해를 가렸네/ 청자 잔을 빚어 내고/ 열 가운데 하나, 빼어난 것을 골랐구나/ 선명하게 푸른 옥빛이 반짝이니/ 몇 번이나 매연 속에 묻혔던가/ 영롱하기는 수정처럼 맑고/ 단단하기는 바위와 견줄 만하네/ 이제 알겠네 술잔 만든 솜씨는/ 하늘의 조화를 빌려 왔나 보구나/ 가늘게 새긴 꽃무늬는/ 묘하게 정성스러운 그림 같구나 -이규보, <동국이상국집> 중에서
고려 시대의 문인 이규보가 쓴 <동국이상국집> 제8권에 나오는 시의 일부다. 청자를 묘사한 이 시는 후대에 이르러 ‘청자송’ 혹은 ‘녹자배’라 불리는데, 글귀마다 고려청자의 고유한 아름다움에 대한 진심 어린 찬사와 기쁨이 서려 있다. 작은 술잔이 탄생하기까지의 고된 여정과 그것을 귀하게 빚었을 장인에 대한 존중도 함께 읽힌다. 술잔에 생명이 깃든 듯 귀히 여긴 태도가 소박하고, 고려청자의 조형성과 오묘한 비색을 자연의 맑은 빛깔에 비유한 문장은 청아하다.
많은 문인이 노래한 아름다움의 원천은 아마 세심하고도 재치 넘치는 조형미와 고려청자 특유의 비색에 있을 것이다. 반투명한 막을 여러 겹 덧씌운 듯한 도자 표면의 오묘한 청색을 비색이라 한다. 유약의 두께가 얇아 비취옥과 같은 녹색이 비치며 유약 안에 미세한 기포가 많아 반실투성(半失透性)으로 태토가 은은하게 드러나 미묘하고 기품 어린 색을 띤다.

상형청자의 정수를 한자리에서 만나다
삶의 가장 가깝고 귀한 사물, 혹은 예술품으로서 소임을 다했던 고려청자는 오늘날에도 과거의 시간을 몸에 아로새긴 채 우리 곁에 머문다. 천년의 시간을 품은 귀한 청자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는 전시가 지금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특별전 <푸른 세상을 빚다, 고려 상형청자>는 대상의 형상을 본떠 만든 상형청자의 다양한 면모를 만나는 기회다. 이번 전시에는 국보 11건, 보물 9건, 등록문화유산 1건을 포함한 상형청자의 대표 작품과 국내 25개 기관, 개인 소장자, 중국·미국·일본 3개국 4개 기관의 소장품 총 274건이 출품되었다. 주요 작품이 한자리에 집합한 대규모 전시이니만큼 공개하기까지 2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쳤다.
다수의 출품작과 오랜 준비 기간이 증명하듯, 이번 전시는 단순히 작품의 나열이나 연대기적 혹은 평면적 구성에 그치지 않았다. 수많은 개별 자료를 하나의 덩어리와 흐름 안에서 파악하게 하는 기획과 동선, 시각적으로 집중도 높은 연출과 전시 디자인을 바탕으로 상형청자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조형 기법을 살펴보고 음미하도록 했다. 그래서일까. 국보나 최신 출토품이 아닌 매우 작은 크기의 작품, 발굴 당시 훼손된 작품에도 마음이 쓰이고 시선이 오래 머무른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청자 어룡 모양 주자’가 독립된 가벽과 조명 안에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고려 왕실과 상류층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연꽃 위에 어룡이 고개를 들고 앉아 있는 형태인데 표면을 섬세하고 반복적으로 깎아 내 비늘의 입체감을 살렸다. 눈은 철 안료로, 지느러미 끝에는 백토로 점을 찍어 생동감을 강조했다. 상상의 대상을 그대로 청자에 옮긴 듯한 이 작품은 고려 상형청자의 압도적인 조형미를 다각도에서 보여 주는 대표작으로 전시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시각적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감상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사용한 조명은 노을이 지는 강가에서 어룡 주자로 술을 따라 마셨을 고려인의 모습을 상상하게 한다.
고려 시대 이전, 삼국시대 상형 토기와 토우를 통해 특정 대상을 본떠 만드는 ‘상형’의 오랜 전통을 가늠할 수 있는 1부 공간을 지나면, 상형청자가 등장한 문화적 배경과 제작, 유통, 소비 양상을 살펴보는 2부 전시실에 진입한다. 고려는 11~12세기 중국 등 주변국과 문화를 교류하며 상형청자라는 고유한 영역을 구축했다. 당대 국제도시인 개경(현재의 개성)의 왕실과 상류층에게 상형청자는 향, 차, 술, 시와 그림, 완상의 취미를 만족시킨 도자기였다. 상형청자는 초기에 경기도 시흥, 용인 서리 등의 가마에서 만들다가 12세기에 이르러 현재의 전남 강진, 전북 부안 등 남서쪽 가마에서 생산해 서해안 바닷길을 따라 개경으로 옮겨졌는데, 이 과정에서 배가 침몰해 파손된 도자기도 전시한다. 충남 태안 앞바다와 보령 원산도, 전남 진도 등에서 발견된 이 도자기들엔 당시 운송 상황과 모진 풍파의 시간이 그대로 새겨져 있다.
유독 눈길을 끄는 작품은 ‘청자 원앙 모양 향로 뚜껑’이다. 연밥 위에 앉은 수컷 원앙 모양의 향로 뚜껑으로 깃, 날개, 다리와 발을 매우 구체적으로 표현해 독특하다. 각진 형태의 깃은 수컷 원앙이 겨우내 세우는 번식깃이다. 원앙 생태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고 그것을 오랫동안 관찰해 상형청자에 녹여 낸 선조들의 세심함, 그리고 자연의 흐름에 순응하는 태도가 인상 깊다. 실제 자연물뿐 아니라 용, 기린, 사자 등 상상의 동물 역시 상형청자의 주된 소재였다. ‘청자 사자 모양 향로’는 그중에서도 가장 정교하고 빼어난 솜씨를 자랑하며, 북송 사신 서긍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재치와 상상력으로 빚어낸 자연의 세계
전시 하이라이트인 3부에서는 권위의 상징인 상상의 동물, 고려 사람들이 친구처럼 여긴 동식물의 형상을 구현한 대표 상형청자를 감상한다. 화려한 작품이 늘어선 가운데 소박하고 다정한 마음이 느껴지는 자그마한 청자들이 시선을 끈다. 도자기의 이모저모를 자세히 뜯어보니 선조들의 재치에 감탄할 만큼 귀여운 동물이 가득하다.
그 예로 ‘청자 원숭이 모양 묵호’와 ‘청자 원숭이 석류 모양 연적’을 들 수 있다. 원숭이는 고려 공예에서 매우 인기 있는 소재로, 묵호·연적·인장 등을 원숭이 모양 청자로 빚었다. 이것들은 모두 문인이 서재에서 벗처럼 가까이 두고 쓰던 물건이다. ‘청자 원숭이 모양 묵호’를 자세히 살펴보면 원숭이들이 먹물을 담는 항아리를 들고 있다. 처진 눈썹에 입을 살짝 벌린 고된 표정이 생생하다. ‘청자 원숭이 석류 모양 연적’에도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힘들게 숨을 몰아쉬는 듯한 원숭이가 등장한다. 원래는 석류보다 몸집이 훨씬 컸을 원숭이가 석류의 몸통을 끌어안고 매달린 모양새가 귀엽다. 자유로운 조형미를 드러내면서도 묵호와 연적 고유의 기능을 해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 감탄스럽다.
13세기 청자의 대표작이자, 12세기 최항의 무덤에서 출토된 국보 ‘청자 양각·동화 연꽃무늬 조롱박 모양 주자’는 아마 전시를 통틀어 가장 화려한 조형미를 자랑하는 작품일 것이다. 동화 기법으로 청자의 비색에 붉은색을 입히고 조롱박 형태 표면에 연꽃 문양을 양각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이 주자에서도 작은 동물에 대한 고려 사람들의 애정과 재치가 읽힌다. 아래의 큰 조롱박과 위의 작은 조롱박 사이 연꽃 줄기를 품에 안은 동자를 조각했고, 손잡이 위에는 개구리 한 마리가 뚜껑의 벌레와 마주 앉도록 구성했다. 청자의 용도와 의의를 관념적으로만 이해한 관객이라면, 청자를 여러 각도에서 오래 주시하며 표면에 섬세하게 표현한 동식물의 매력에도 빠져 보기를 권한다.
전시를 마무리하는 4부는 현실과 일상을 넘어 내세의 영역까지 확장된 상형청자의 쓰임을 보여 준다. 종교를 통합해 개방적 사회를 이룬 고려이니만큼 도교 의례에 사용한 상형청자, 도교적 도상이 드러나는 문방구, 각종 불상 등을 제작했다. 완상의 대상이었던 상형청자를 종교적 맥락으로 해석한 다채로운 결과물의 면면을 살필 수 있다.
까마득히 먼 시공간의 사람들이 빚고 굽고 칠해 만들어 사용했던 청자를 지금 온전하게 만난다는 것은, 과거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자연과 합일하고 풍류를 즐겼던 선조들의 삶에 감응하는 일과 같다. 오랜 시간 귀하게 쓰다가 현재까지 보존해 온 청자들을 맞닥뜨리면서, 현대인의 삶에 범람하는 수많은 일상적 사물의 의미를 새삼 되새긴다. 지나치게 간소화되고 효율성이 극대화된 사물은 이제 곁에 두는 벗이 아니라 빠르게 사용하고 폐기하는 대상이 된 지 오래다. 오래도록 소중히 사용하는 사물에 대한 애정은 결국 일상을 사랑하는 일일 것이다. 손때 묻은 청자 앞에서, 일상의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굽고 새겨 함께하던 선조들의 귀하고 진심 어린 삶의 태도를 돌아볼 시간이다.

한 걸음 더
컴퓨터 단층촬영, 3차원 형상 데이터 분석 등 과학적 조사로 밝힌 상형청자 10점의 제작 기법을 인터랙티브 영상으로 살펴본다. 음각, 양각, 투각, 상감 등 모든 장식 기법을 활용해 고려 상형청자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의 경우 단층촬영을 통해 몸체에 꽃잎이 붙은 모습이 확인된다. 몸체를 여러 층으로 감싸는 꽃잎은 균일한 형태를 보이는데, 이는 도범을 활용해 정교하게 찍어 낸 결과다. 한편 ‘청자 귀룡 모양 주자’나 ‘청자 석류 모양 주자’와 같이 복잡한 모양을 본떠 만든 주자는 안쪽에 상하부를 이은 경계선이 보인다. 대상의 기본 형태를 만든 뒤에 적당한 곳을 잘라 안에 있는 흙을 파내고 다시 이어 마무리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