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에서 기차로 1시간이면 운하 도시 아베이루와 줄무늬 마을 코스타노바에 닿는다. 두 도시가 품은 선명한 색에는 긍정의 기운이 넘친다. 아름다운 그림책 같은 기차역도 포르투갈 기차 여행을 특별하게 만든다.

파도빛 아줄레주의 낭만, 포르투
갈매기 울음소리가 번지는 강가에 아줄레주로 알록달록 꾸민 건물이 늘어서 있다. 도루강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유람선 하벨루와 건너편 빌라노바드가이아의 도시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포르투갈의 어원이 된 항구도시 포르투(Potro)의 히베이라 광장 풍경이다. 아줄레주는 유약으로 그림을 그려 넣은 타일 장식으로 포르투갈에서는 15세기부터 성당이나 기차역 등에 사용해 왔다. 도루강 변에서 상벤투역이 있는 언덕을 따라 성 프란시스쿠 대성당, 볼사 궁전, 포르투 대성당이 차례로 등장한다.
미로 같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푸른 아줄레주가 자주 눈에 들어온다. 카르무 성당 앞 건널목에 서면 흰색 바탕에 우아한 창문과 어우러진 아줄레주 장식을, 알마스 성당 앞길에선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쿠와 성녀 카타리나의 생애를 담은 아줄레주를 만난다. 구시가 중심, 상벤투역 내부의 아줄레주 벽화는 마치 한 권의 그림책을 펼쳐 놓은 듯하다. 상벤투역은 성 베네딕토 수도원이 있던 자리에 재건한 기차역으로 건축가 조제 마르케스 다 실바가 설계하고, 화가 조르즈 콜라수가 벽화를 맡았다. 콜라수는 1905년부터 1916년까지 11년에 걸쳐 무려 2만여 장의 타일에 포르투갈 역사의 주요 사건을 그려 넣었다. 포르투갈 초대 군주 아폰수 1세와 포르투갈 대항해 시대를 연 엔히크 왕자도 그림 속 어딘가에 숨어 있다.


이토록 아름다운 상벤투역은 아침부터 밤까지 승객들로 붐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약간의 여유를 즐기고 싶다면 타임 아웃 마켓으로 향할 것. 지난해 5월 상벤투역 남쪽 건물에 문을 연 타임 아웃 마켓에는 최신 유행의 레스토랑과 바 14개가 한 지붕 아래 모여 있다. 야외에 설치한 높이 21미터 탑은 기차역의 물탱크를 리모델링한 것으로 이곳에 포르투갈 와인 전용 테이스팅 룸을 마련했다. 와인 테이스팅 룸 창가에 앉으면 주황색 지붕 너머로 클레리구스탑이 고개를 내민다. 구시가 어디서나 보이는 클레리구스탑은 260년 전에 건축한 포르투의 랜드마크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출신 건축가 니콜라우 나소니는 1753년 성직자형제회의 의뢰로 종탑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1763년 75미터 건물 꼭대기에 철제 십자가를 올리며 바로크양식 종탑을 완성했다. 덕분에 매년 12만 명의 여행자가 밤낮으로 탑 위에 올라 360도로 펼쳐지는 파노라마 전경을 감상할 수 있게 됐다.
클레리구스탑 근처에는 우아한 자태를 뽐내는 아르누보풍의 렐루 서점이 있다. 영국 소설가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의 마법 학교 계단을 탄생시키는 데 영감을 준 장소로 유명하다. 서점의 천장과 맞닿은 갈색 서가와 한가운데 자리한 붉은 계단의 유려한 선이 고혹적이다. 서가에는 희귀한 고서부터 정치서, 역사서와 세계 각국의 소설, 가이드북까지 다양한 책이 꽂혀 있다. 렐루 서점에서 읽고 싶은 책을 골라 바로 옆 올리브 나무 정원의 노천카페, 베이스 포르투로 향한다. 올리브나무 아래 자리한 테이블은 책 읽기에 더할 나위 없다. 책을 읽다 잔디밭에 놓인 빈백에 기대 앉으면 기분 좋은 꿈을 꾸는 것만 같다. 간간이 들려오는 클레리구스탑 종소리가 지금 이곳이 포르투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물길 따라 여유가 흐르는 아베이루
아베이루(Aveiro)는 포르투에서 언제든 훌쩍 떠나기 좋은 운하 도시다. 상벤투역에서 근교선 U 열차로 1시간 거리라 당일치기 여행으로 다녀오기 그만이다. 아베이루역에 도착해 밖으로 나서면 눈처럼 하얀 건물을 캔버스 삼아 푸른 벽화가 그려진 건물이 눈길을 끈다. 건물의 정체는 1861년에 지은 옛 아베이루 기차역. 외벽에는 염전을 일구는 사람들, 몰리세이루(Moliceiro)를 이용해 수초를 나르는 사람 등 아베이루가 지나온 시간을 보여주는 아줄레주 벽화가 가득하다. 옛 아베이루 기차역에서 중심가로 가는 길로 들어서면 물결무늬의 포르투갈 전통 자갈 바닥인 칼사다 포르투게사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운하에 도착하면 이번에는 몰리세이루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곤돌라보다 화려한 몰리세이루는 아베이루 운하를 오가는 배다. 몰리세이루에 깃든 이야기는 수초에서 시작된다. 호수와 바다가 만나는 하구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아베이루 사람들은 석호에서 수초를 채취하고 이를 바다로 나르기 위해 운하를 조성했다. 빨강, 노랑, 초록 등 총천연색 배에 수초를 싣고 운하를 부지런히 오갔다. 사람들은 수초, 즉 몰리수(moliço)를 배에 싣고 나르는 남자와 배를 몰리세이루라고 불렀다. 세월이 흘러 몰리세이루가 몰던 배는 유람선이 되어 여행자를 싣고 몰리세이루의 흔적을 반추하듯 유유히 운하를 떠다닌다.

오부스 몰르스.
몰리세이루만큼 유명한 아베이루의 명물은 달걀노른자와 설탕을 듬뿍 넣어 만든 과자 오부스 몰르스(ovos moles)다. 본격적으로 운하를 둘러보기 전, 밖에서 벨을 누르면 문을 열어 주는 스피크이지 바 같은 오부스 몰르스 가게, 엠1882(M1882)에 들른다. 1882년 문을 연 이래 143년째 오부스 몰르스를 만들어 파는 노포다. 엠1882에서 산 오부스 몰르스를 들고 몰리세이루에 오르자 가이드가 운하에 깃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운하 옆에는 아르누보풍 건물이 많은데, 과거 소금으로 돈을 번 상인들이 부를 과시하려고 건물을 화려하게 꾸몄다고 한다. 반면 어부들은 빨강, 파랑 등 원색으로 건물 외관을 칠했다. 물 위에 일렁이는 컬러풀한 색을 바라보며 오부스 몰르스를 한 입 베어 물자 입안 가득 달콤함이 퍼진다.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순간이다.

세상의 모든 줄무늬, 코스타노바
아베이루 옆 코스타노바(Costa Nova)에 가면 가로세로 줄무늬에 저마다 다른 색으로 칠한 집들이 줄지어 있다. 파란 하늘 아래 빨강, 노랑, 초록 색깔을 입은 집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모습은 마치 동화 속 한 장면 같다. 줄무늬 집에 얽힌 이야기는 어부의 아내로부터 시작되었다. 마을 앞 바다에는 안개가 잦았다. 먼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나간 남편은 짙은 안개를 뚫고 뭍으로 돌아오며 한시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었을 것이다. 남편의 안전이 걱정되고 그립기도 한 아내는 어느 날, 남편이 멀리서도 집을 또렷이 알아볼 수 있도록 줄무늬를 그리고 등불처럼 밝은색을 칠했다. 그 발랄한 아이디어와 따뜻한 마음이 옆집 또 옆집으로 이어져 호숫가 집들이 모두 줄무늬 옷을 입게 되었다. 세월이 흘러 줄무늬 집들은 카페나 가게, 여름 별장으로 변했지만, 코스타노바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줄무늬 마을이 되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오색찬란한 줄무늬 마을 뒷길은 대서양으로 통한다. 모래언덕 위로 난 산책로를 따라 한참을 걸으면 모래언덕에 가려 보이지 않던 바다가 모습을 드러낸다. 파도는 세차고, 해변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이 먼지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거대한 바다다. 오래전 대서양으로 가는 지름길을 찾아 헤매던 한 어부가 석호 너머로 보이는 이 바다를 발견하고 새로운 해안이란 뜻의 ‘코스타노바’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해변에서 줄무늬 마을로 돌아오는 길, 지붕 아래 ‘메우 소누(Meu Sonho)’라는 글귀가 적힌 집이 눈에 들어온다. 함께 여행을 하던 포르투갈 친구에게 뜻을 묻자, ‘나의 꿈’이라고 말해 준다. “어부들은 가족과 함께 살 집을 장만하는 게 꿈이었어. 이 집은 그 시절 어느 어부가 이룬 꿈이었을 거야.” 꿈을 이룬 어부를 상상하니 어쩐지 벅찬 마음이 되어 ‘메우 소누’를 되뇌어 본다. 새로운 해안, 코스타노바에서 잊고 있었던 나의 꿈을 되찾은 기분이다.

알아 두세요
포르투 가는 법
한국에는 포르투로 가는 직항 노선은 없다.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등 유럽의 도시를 경유해 포르투로 가거나, 리스본 공항으로 입국한 뒤 비행기나 기차, 버스를 타고 포르투로 이동한다. 리스본에서 포르투로 가는 교통수단은 비행기, 기차, 버스 순으로 빠르다.
포르투갈 철도 이용 팁
포르투갈 국영 철도(CP)는 버스보다 요금은 비싸지만 쾌적하다는 장점이 있다. 종류는 고속열차(AP), 급행 열차(IC), 일반 열차(R), 근교선(U 열차) 네 가지로 소요 시간과 배차 간격이 각각 다르다. 포르투갈 국영 철도 홈페이지나 앱에서 회원 가입을 하면 승차권 예매가 가능하다. 출발일 기준 두 달 전에 예매가 시작되며, 일찍 예매하면 행사가로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예약 변경은 한 번만 가능하다. 문의 www.cp.pt
포르투-아베이루-코스타노바 이동 방법
포르투 상벤투역에서 아베이루까지는 U 열차를 이용한다. 오전 6시부터 오후 7시까지 5분마다 출발한다. 예매하지 않더라도 운행 횟수가 많아 역내 자동 발매기나 판매 창구에서 승차권을 구하기 쉽다. 아베이루에서 코스타노바까지는 버스 노선이 있지만 배차 간격이 길어 택시를 이용하는 게 합리적이다.
즐길 거리
아베이루 여행의 백미는 유람선 투어. 몰리세이루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면 45분간 운하에서 도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떠나기 전에
여행은 꿈꾸는 순간 시작되고, 여행 준비는 가이드북을 읽는 순간 시작된다. 진짜 포르투갈을 소개하는 가이드북 <리얼 포르투갈>을 읽으며 포르투갈 기차 여행을 계획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