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방송에서 자취를 감췄던 토크쇼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유튜브에서 꽃피운 토크쇼 전성시대가 OTT와 TV로 확장하며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가는 모습이다.
1989년 <자니윤 쇼>로 시작한 국내 토크쇼는 늘 TV 예능의 중심에 있었다. 유명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진행자가 능숙한 질문으로 대화를 풀어내는 형식은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높은 화제성을 만들어 내는 ‘고효율 방송’이었다. 한국 대중문화가 급성장하던 시기와 맞물려 토크쇼는 자연스럽게 스타들의 대표적인 홍보 창구로도 자리 잡았다. 그러다 버라이어티와 관찰 예능, 서바이벌 오디션 등 도파민 충만한 프로그램들이 트렌드를 타기 시작했다. 2020년대에 들어 정통 형식의 토크쇼는 방송가에서 자취를 감췄고, 에피소드 위주의 가십을 다루는 몇몇 프로만 남았다. 토크쇼의 명맥을 잇는 건 TV에서는 <유 퀴즈 온 더 블럭>(tvN)밖에 남지 않았다는 평이었다. 물론 토크쇼의 ‘말’들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오히려 유튜브로 무대를 옮기면서 토크쇼 전성시대가 열렸으니까.

허물없는 친숙함, 유튜브 토크쇼
레거시 방송이 더 이상 주목을 끌지 못해 유튜브 같은 뉴미디어로 대중의 관심이 쏠렸을 때, 많은 연예인도 유튜브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토크쇼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브이로그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내는 건 한계가 있다. 대신 이들에게는 방송으로 단련된 입담과 게스트 확보가 용이한 인맥이 있다. 게다가 유튜브는 레거시 방송보다 표현 수위와 PPL 등의 제약이 덜하고, 러닝타임과 방송 날짜 등 편성 면에서도 자유롭다. 유튜브의 이런 장점은 토크쇼의 진행자는 물론 게스트, 제작진 모두의 부담을 덜어 준다.
봇물이 터진 건 2022~2023년경. 유재석이 좋아하는 친구들과 사소한 주제로 자유롭게 토크를 나누는 뜬뜬 채널의 ‘핑계고’가 나왔고, 신동엽이 자신의 특기를 살린 음주 토크쇼 ‘짠한형 신동엽’으로 게스트는 물론 시청자들을 얼큰하게 취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정재형이 게스트와 함께 요리와 수다를 즐기는 ‘요정재형’ 속 ‘요정식탁’, 탁재훈의 ‘노빠꾸탁재훈’, 김태호 PD의 테오(TEO)가 제작하는 장도연 진행의 ‘살롱드립’, 나영석 PD가 연출하고 진행하는 비정기 토크 웹 예능 ‘나영석의 나불나불’, 피식대학 채널의 ‘피식쇼’, 이영지의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 등도 이 시기에 탄생해 기존 예능을 능가하는 화제성과 파급력을 보였다. 이후로 더 많은 연예인이 유튜브 채널에서 토크를 얹은 콘텐츠를 제작했다.
연예인이 주도하는 유튜브 토크쇼의 매력은 마치 친구와 수다를 떠는 듯한 친근함에 있다. 진행자와 사적으로 친한 게스트가 주로 초대되기에 그만큼 허물없는 이야기를 끌어내기가 용이한 것이다. 이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는 사례가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핑계고’다. 두 프로그램 모두 유재석이 진행하는 토크 중심 콘텐츠지만 전자가 질문을 통해 한 인물의 서사를 차분히 ‘듣는’ 프로그램이라면, 후자는 상황과 분위기에 따라 자유롭고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에 가깝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의 정제된 이야기가 주는 울림도 좋지만, ‘핑계고’처럼 소소한 근황을 깔깔거리며 이야기하다 순간순간 상대방의 이면을 발견하는 것도 재밌다.
반려견을 위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 조승우나 ‘예쁘다’는 칭찬에 유난히 약한 임지연의 천진난만함은 유튜브 토크쇼가 아니면 쉽게 드러나지 않을 모습이다. TV 토크쇼가 홍보 행사처럼 굳어 가는 동안, 시청자들은 몰라도 되는 소소한 이야기를 하는 유튜브 토크쇼로 갈증을 해소했다.
OTT로 확장하고 TV로 복귀한 토크쇼
유튜브가 토크 콘텐츠의 전성시대를 열며 시장을 키우자 OTT도 움직이고 기존 레거시 방송도 토크쇼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한국 예능에서 주목할 만한 프로그램이 잇달아 등장한 게 그 변화의 조짐. 지난해 11월 MBN은 <김주하의 데이앤나잇>을 론칭했고, 쿠팡플레이는 이수지와 정이랑이 나선 <자매다방>으로 시작해 올해 2월에는 세계관을 확장한 <자매치킨>을 선보였다. <개그콘서트>의 캐릭터 ‘말자 할매’를 내세운 토크 예능 <말자쇼>(KBS2), 탁재훈·이상민·이수지·카이가 출연한 신개념 토크쇼 <아니 근데 진짜!>(SBS), 시사 교양 토크쇼 <손석희의 질문들4>(MBC)도 올해 시작한 토크 프로그램이다. 화룡점정은 지난 3월 6일 방송을 시작한 쿠팡플레이의 <강호동네서점>. 강호동이 <황금어장 무릎팍도사> 이후 14년 만에 돌아온 단독 토크쇼로, 20년 넘게 방송가를 주름잡은 ‘유강신(유재석, 강호동, 신동엽)’이 플랫폼을 떠나 모두 토크 콘텐츠를 한다는 것 자체가 토크쇼의 부활 조짐으로 읽힌다.
OTT로 확장되고 TV로 돌아온 토크쇼는 기존 토크쇼는 물론 유튜브 토크쇼와도 차별화를 꾀하는 중이다. 이들 프로의 공통점은 토크에 상황극과 콘셉트를 더해 예능 요소를 강화했다는 것이다. <김주하의 데이앤나잇>은 아나운서 김주하의 이름을 걸었으나 개그맨 문세윤, 가수 조째즈와 함께하면서 ‘뉴스의 깊이와 예능의 유연함을 결합한 토크테인먼트’를 지향한다. 김주하가 매거진 편집장, 그리고 문세윤과 조째즈가 에디터가 되어 각계각층의 셀럽을 인터뷰하는 형식인데, 김주하가 상황극으로 애교 연기를 펼치는 등 전에는 상상도 못 할 장면이 연출된다. <아니 근데 진짜!>는 ‘감옥’과 ‘소개팅’이라는 독특한 콘셉트로 토크와 함께 게임, 상황극 등을 버무리고, <자매다방>과 <자매치킨>은 이수지와 정이랑의 농익은 상황극 연기로 빛을 발하는 중이다. 최근 시작한 <강호동네서점> 역시 강호동이 소크라테스의 제자인 불멸의 존재 ‘호크라테스’가 되어 책방에서 손님을 맞는다는 상황을 설정했다.
반면 시즌 4를 맞은 <손석희의 질문들4>는 촌철살인과 위트 있는 질문으로 게스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정통 토크쇼의 묘미에 집중한다. 미리 섭외했겠지만,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한 <휴민트>의 류승완 감독과 배우 조인성을 초대해 작금의 상황에 대한 심경을 들어 본 것도 토크쇼만이 할 수 있는 유의미한 장면으로 꼽힌다.
방송 트렌드가 어떻게 흘러가든 토크쇼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인류가 생겨난 이래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감정을 소통하는 행위가 사라지지 않는 것과 맞닿아 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삶과 생각을 궁금해하고, 대화를 통해 때로는 동질감을, 때로는 신선한 충격을 얻길 원한다. 토크쇼는 이러한 인간의 욕망을 충실히 담아내는 클래식한 포맷이다. AI가 아무리 진화하고 영상 플랫폼이 발전한들 결국 사람들이 가장 오래 소비하는 콘텐츠는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장면에 있다. 그러니 지금 일고 있는 토크쇼의 변화는 단순한 귀환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소통하고 싶다는 시대의 염원에 대한 호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