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인생에는 크고 작은 태풍이 쉴 새 없이 몰아친다. 혐오와 배제보다는 화해와 용서로 태풍을 같이 이겨 내자는 연극적 제안, 바로 국립극단의 <태풍>이다.
연말에는 다른 공연 예술도 마찬가지지만 연극도 셀 수 없이 무대에 오른다. 그 많은 작품 중에서 특히 관심을 끈 것은 국립극단의 <태풍>이다. 발레의 경우 <호두까기 인형>이 연말의 대표 레퍼토리이듯 국립극단은 매년 셰익스피어 연극을 주로 올리면서 한 해를 마감했다. <한여름 밤의 꿈> <겨울이야기> <준대로 받은대로> <실수연발> 등 대체로 가족이 다 함께 즐기기 좋은 희극을 선정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관객 반응이 좋았던 기존 작품을 다시 상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 <태풍>을 선택했다. 그것도 셰익스피어가 단독 집필한 마지막 희곡을. 연출을 맡은 박정희 예술감독의 지향점은 분명했다. 화해와 용서. <태풍>은 무대 전체에 그 의도가 넘쳐 나는 연극이다.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와
국립극단의 <태풍>
<템페스트>는 복수로 시작한다. 동생 안토니오의 계략으로 권력에서 밀려나 딸 미란다와 외딴섬에 살게 된 밀라노의 공작 프로스페로는 마법을 익히며 복수를 꿈꾼다. 천적인 나폴리 왕 알론조가 딸을 결혼시키고 돌아올 때 태풍을 일으켜 배를 침몰시키고 배에 탄 사람들을 프로스페로가 사는 섬으로 밀려들게 만든다. 그렇게 섬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를 찾아다니는데, 그 과정에서 각자의 욕망이 드러난다.
알론조의 아들 페르디낭은 프로스페로의 딸 미란다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알론조와 그의 충실한 신하 곤잘로는 페르디낭을 찾아다니고, 알론조의 동생 세바스찬은 이 기회를 노려 권력을 찬탈하려 하며 안토니오는 그를 부추긴다. 트린큘로와 스테파노는 섬 원주민인 칼리반과 결탁해 프로스페로를 죽이고 섬의 새로운 주인이 되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 흩어진 사람들은 저마다의 욕망을 채우느라 분주한데, 사실 이 모든 상황은 섬의 주인 프로스페로가 그의 정령 에어리얼을 통해 만들어 냈고 목표는 복수였다. 하지만 원래 의도했던 것과 달리 미란다와 페르디낭이 서로 사랑하게 되자, 여전히 권력을 탐하려는 인간들을 관찰하면서 복수 대신 화해를 선택한다. 프로스페로는 에어리얼에게는 자유를, 칼리반에게는 섬을 남겨 주고 외딴섬을 떠난다. 마지막으로 그는 관객에게 용서와 구원의 말을 남긴다. 마치 셰익스피어 자신의 고별사처럼.
태풍이라는 마법을 통해 모인 다양한 인물이 비록 프로스페로의 복수로 연결되지만, 현실의 모든 양상을 고스란히 보여 주며 화해와 용서의 손을 내미는 원작은 말년의 셰익스피어이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인생의 모든 국면이 태풍이거나 한 사람 한 사람이 전부 태풍일 수 있지만, 그것을 견디고 살아남은 자체로 소중하다는 발언은 생의 끝을 마주한 예술가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래서인지 태풍이 몰아친 작품 초반부터 난파된 사람들의 불안함이 가득한 작품 중반까지 전반적인 분위기는 날카롭다. 화해의 결말에 대한 극적인 강조를 위한 장치이면서 ‘템페스트’(폭풍우라는 뜻)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정서다.
국립극단의 <태풍>에서 주목한 점은 프로스페로가 프로스페라가 되고, 알론조가 알론자로 변했다는 것이다. 최고 권력자를 여성으로 바꾸는 변화를 시도했다. 이렇게 성별을 전환하다 보니 복수의 칼날은 무뎌지고 처음부터 다정함과 따뜻함이 부각됐다. 프로스페라는 딸 미란다에게 어떻게 이 섬에 오게 되었는지 설명하는데, 모녀의 친밀함 때문에 프로스페라가 태풍을 일으킬 정도의 마법사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그저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다정한 엄마로 인식하게 된다. 나폴리 왕 알론자 역시 왕으로서의 권위보다는 아들을 잃은 엄마의 이미지가 먼저 다가온다.
이렇게 인물의 성별을 바꿔 성공한 작품으로는 <몰타의 유대인>(크리스토퍼 말로 원작, 이곤 연출)이 있다. 주인공 바라바스가 여성이 되니 유대인에 대한 당대 시선, 도덕에 대한 질문 등을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때의 바라바스는 악역이고 가해자다. 끝없는 탐욕으로 자신을 비롯해 모든 상황을 파국으로 밀어 넣는 인물이다. 이와 달리 <태풍>의 프로스페라는 피해자다. 선한 피해자가 복수를 다짐하는 상황인데 여성으로 성이 바뀌다 보니 원작의 의미가 새로 읽히기보다는 화해와 용서만 강조됐다. 프로스페라 개인에게 어떤 전환이나 변화가 감지되지 못한 채 원래부터 선하고 온화한 정서가 만들어졌다. 작품의 의도와 목표는 충실히 수행했으나 프로스페라의 성격은 물론이고 작품 자체도 밋밋해진 점이 아쉽다.

태풍의 불안이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섬과 극장
극장에 들어서면 아름다운 섬이 눈에 들어온다. 초록빛으로 뒤덮인 데다 작고 예쁜 꽃이 피어 있는 섬(안의 야트막한 동산). 섬을 둘러싼 삼면에 하얀 천막이 드리워져 있다. 인물들은 천막 사이로 등장하고 퇴장한다. 음습하거나 비밀스러운 공간이 없는 밝고 화사한 섬이자 무대다. 명동예술극장에 이렇게 예쁜 무대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섬을 아름답게 연출했다.
그런데 작품 제목은 ‘태풍’이다. 거대한 바람과 파도가 만들어 내는 공포, 그 공포를 뚫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불안감 등이 복합적으로 요동치는 역동성이 필요하다. 무대가 아름답다 보니 객석의 통로를 활용하고 사막으로 구분된 무대 앞면을 이용해 태풍을 표현했는데, 불안과 공포는 그렇게 공연 초반에 희석되고 만다. 섬에 떠밀려 온 사람들은 서로를 걱정하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불안해한다. 생존 이후의 불안과 걱정이다. 그런데 그들이 발 딛고 있는 섬이 아름답다 보니 별걱정을 다 한다는 생각이 든다. 난파된 사람들이 서로를 찾고 걱정하는 긴장감과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무대의 섬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박정희 연출가는 라이브 음악을 사용하고 극 중에 노래를 삽입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했다. 밝고 경쾌한 분위기가 시종일관 유지된 데에는 라이브 연주와 음향효과가 큰 몫을 차지한다. 거기에 무대 전체를 아우르면서도 섬의 여러 공간을 강조한 조명도 인상적이다. 열린 듯 닫혀 있는 무대를 확장하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프로스페라를 연기한 예수정 배우는 장난기 가득한 눈웃음과 화술로 관객을 포함한 모든 인물의 마음을 쥐락펴락한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카리스마가 아닌 다정함과 친근함을 무기로 내세운 마법사다.
갈등이 해소되고 난 후, 무대 뒤 천막이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온다. 지금까지 펼쳐진 이야기가 모두 연극이었다는 것을 시각화하는 장면이다. 이어서 프로스페라의 에필로그가 이어진다. 관객이 박수로 극장의 신을 깨워 자신을 풀어 달라며, 연극의 미흡함을 괜찮다고 해 주기를 기원한다. 화해와 용서로 일관된 공연의 마무리답게 관객에게도 연극 자체는 물론 삶에 대해서도 화해하기를 당부하는 엔딩이다. 천막이 모두 내려와 허물어진 무대, 그 앞에서 기원과 당부를 하는 프로스페라는 시각적으로 가장 강렬한 <태풍>의 엔딩을 만들어 낸다. 원작의 복수에서는 많이 멀어졌지만, 연극 <태풍>은 다사다난했던 2025년을 살아 낸 모든 이에게 분열과 혐오가 아닌 화해와 용서의 따뜻함으로 등을 토닥이며 뺨을 어루만지는 위로를 건넨다.

<태풍>
셰익스피어의 희곡 〈템페스트〉가 국립극단 단장 겸 예술감독 박정희의 연출로 새롭게 탄생했다. 원작 특유의 시적인 대사는 살리되, 밀라노 공작 프로스페로와 나폴리 왕 알론조를 여성으로 재해석했다. 배우 예수정이 주인공 프로스페라 역을 맡아 극을 이끈다.
기간 2025년 12월 4일~28일
장소 서울 명동예술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