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형 약국이 빠르게 확산하며 약국 풍경이 달라지고 있다. 진화하는 약국 유통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살펴본다.

약국에 카트가 생겼다. 대형 마트에서 생수와 과자를 고르듯 진열대 사이를 오가며 감기약과 영양제를 집어 담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2025년 6월 경기 성남에 처음 문을 연 창고형 약국에는 330제곱미터가 넘는 공간에 2500여 종의 일반 의약품과 건강 기능 식품이 진열돼 있다. 입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서울과 인천에서 찾아오는 원정 고객도 줄을 이었다. 예상보다 많은 인파가 몰리면서 안전 요원까지 배치되는 이례적인 장면이 펼쳐졌다.
성남에 첫 매장을 연 지 불과 1년 만에 창고형 약국은 전국 40여 곳으로 확산됐다. 처음에는 수도권 중심으로 늘어났지만 최근에는 충남, 전북 등 지방에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아직 진출하지 않은 지역은 강원, 충북, 전남, 경북, 경남 다섯 곳이다. 대형 마트에 입점하는 약국이 증가하는 가운데 서울 용산전자랜드에는 무려 2000제곱미터가 넘는 초대형 매장이 들어섰다. 창고형 약국의 확산과 함께 메디컬 리테일(medical retail), 즉 건강 관련 제품 유통 시장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변화는 어느 정도 예고된 흐름이다. 소비자들은 슈퍼마켓과 대형 마트, 편의점에서 여러 상품을 비교하며 선택하는 소비 방식에 익숙하다. 라면이나 샴푸처럼 약도 그러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여기에 “눈치 보지 않고 필요한 약을 고를 수 있어 좋다”라는 이용 후기가 입소문을 타면서 사람들의 관심은 더욱 증폭했다. 결국 창고형 약국은 익숙한 리테일의 편의성을 의약품 시장에 접목한 결과물이다.
창고형 약국, 기회인가 위협인가
약국업계는 이러한 흐름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대한약사회는 창고형 약국이 등장하자마자 이른바 ‘창고형 약국 대응 TF’를 꾸리고 입법 추진과 실태 조사, 여론 형성에 나섰다. 지난 4월 창고형 약국 인근의 일반 약국 535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약사의 81.6퍼센트가 창고형 약국으로 인한 매출 타격과 운영 위기를 심각하게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상담 기반 품목인 영양제와 상비약 매출이 각각 72.8퍼센트, 53.3퍼센트 감소해 약국 시장의 변화가 현실로 드러났다.
국회는 관련 제도 정비에 착수했다. 보건복지위원회는 ‘창고’ ‘메가’ ‘팩토리’ 등 대량 유통을 연상시키거나 의약품을 공산품처럼 인식할 우려가 있는 단어를 약국 명칭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약사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한 명의 약사가 두 개 이상의 약국을 개설하거나 운영하는 것을 금지하는 ‘네트워크 약국 방지법’도 올해 11월 말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이러한 논란은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처방 의약품은 의사의 처방과 약사의 복약 지도가 반드시 필요하다. 반면 일반 의약품은 소비자가 스스로 선택해 사용할 수 있도록 분류된 약이다. 일반 약국에서도 원하는 약을 구매할 수 있는 만큼, 더 넓은 공간에서 다양한 제품을 비교해 선택하는 일 자체를 문제 삼기 어렵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특히 계산대에 약사가 상주하며 필요할 경우 전문적인 조언을 제공한다면 소비자 편의와 전문성 모두 충족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리 경험한 일본과 미국의 사례
해외 사례는 창고형 약국을 둘러싼 논쟁에 참고할 만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일본의 대형 드러그스토어 체인은 의약품과 건강 기능 식품, 의료 기기를 한 공간에 배치한다. 여기에는 일본 사회에 자리 잡은 셀프 메디케이션(self-medication) 문화가 깔려 있다. ‘스스로 치료한다’는 뜻의 셀프 메디케이션은 알레르기성 비염이나 요통 같은 가벼운 증상이 있을 때 병원을 찾지 않고 시판 약으로 건강을 관리하는 개념이다. 일본에서는 드러그스토어에 약사뿐 아니라 의약품 판매 관리사도 상주한다. 이들은 증상을 듣고 의약품, 건강 기능 식품, 의료 기기 가운데 가장 적합한 선택지를 제안하며 소비자의 구매를 돕는다.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관리 전반을 지원하는 건강 파트너 역할을 하는 것이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드러그스토어 모델은 과도한 병원 진료를 줄여 소비자 비용은 물론 정부의 건강보험 재정 부담도 절감하는 효과를 얻고 있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대형 약국 체인이 의약품 시장을 주도했다. CVS와 월그린은 단독 매장을 중심으로 전국 체인망을 구축했고, 월마트는 대형 마트 내에 자체 약국을 운영한다. 그런데 최근 흥미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CVS가 수년간 약 1000개의 매장을 정리하며 몸집을 줄이고, 지난 4월 시카고에 처방 약과 일부 일반 의약품만 취급하는 소형 약국 전용 매장을 새로 열었다. 이어 2026년까지 미시간, 텍사스, 뉴욕 등지에 비슷한 형태의 약국 전용 매장 10여 곳을 추가로 열 계획이다. 이러한 흐름은 성인의 80퍼센트가 대면 약국 서비스를 선호하고 소매 약국 전문가의 75퍼센트가 소비자에게 더 많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 한다는 2025년 하반기 CVS 자체 조사 결과와도 맞닿아 있다. 결국 약국 규모가 크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시장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약국의 미래를 묻다
일본과 미국 두 나라의 사례는 한국의 약국 시장에도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의약품 시장에서도 소비자 경험과 접근성을 중심에 두어야 하며, 답은 규모가 아니라 방향에 있다. 사람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으면서 전문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공간, 그것이야말로 메디컬 리테일이 지향해야 할 모습이다. 소비자 역시 편의성이 커진 만큼 더 신중해질 필요가 있다. 약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물질이다. 어떤 약이 나에게 맞는지, 다른 약과 함께 복용해도 되는지, 얼마나 복용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건강 정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건강 지능’이 화두가 된 웰니스 시대에 약을 구매하는 경험은 질병 치료를 넘어 건강을 관리하는 과정의 일부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바람직한 약국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약국과 소비자 모두의 몫이다.
이혜원 트렌드 코리아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 <대한민국 외식업 트렌드> Vol.1~2, <미래 트렌드 연구실> 시리즈 공저자. 서울대학교 소비자학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고려대학교 국토계획공기업 고급정책과정에서 ‘소비사회와 트렌드’를 강의하고 있다. 현재 국토교통부 정책홍보자문위원이자 서울시 평생학습 싱크탱크 위원회 위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