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이 불면 자연스레 실내로 발길이 향한다. 아늑한 공간에서 콘텐츠를 즐기고 싶은 사람을 위해 두 가지 선택지를 마련했다.


모든 관객을 반기는 극장
무비랜드
지난해 서울 성수동의 한 골목길에 놀이공원을 표방하는 극장이 들어섰다. 창의적인 시도를 거듭하며 사랑받은 콘텐츠 디자인 브랜드 모베러웍스가 기획부터 설계, 운영까지 도맡았다. 1층은 팝콘과 추로스 등 간식을 판매하는 구역과 기념품을 제작하고 전시하는 공간으로 꾸렸다. 막 튀겨 내 따뜻한 팝콘을 들고 2층 문을 열면 곧 상영할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흘러나온다. 무비랜드는 매달 큐레이터를 선정해 그의 취향을 반영한 영화를 튼다. 크리에이터 문상훈, 뮤지션 김오키, 배우 박정민과 이제훈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큐레이터로 나서 눈길을 끌었다. 2층 공간은 추천인과 추천 작품에 맞춰 구성을 바꾼다.
“곧이어 <컴온 컴온>이 상영됩니다. 지금 입장해 주세요.” 안내에 따라 3층으로 올라가니 30석 규모의 극장이 나온다. 영화 시작 전 이용 안내 영상에는 영화보다 팝콘이 좋은 ‘스낵 킬러’, 방구석 평론가 ‘헤비 스포일러’ 등 모든 관객을 포용한다는 유쾌한 내용이 담겼다. 졸음을 참지 말라는 당부도 인상적이다. 편안한 의자를 내세울 만한데, 푹신한 착석감뿐 아니라 의자 깊숙이 몸을 기대도 발이 땅에 닿는다는 점이 훌륭하다. 좌석의 앞뒤 간격도 넉넉하게 설계했다.
“예상했던 일들은 안 일어날 거예요. 생각 못 한 일들이 일어나겠죠. 그러니까 그냥 하면 돼요.” 작품을 관통하는 이 대사가 무비랜드를 연상시킨다. 영화를 볼 때 하나의 태도를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늘 긴장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우리에게 무비랜드는 적어도 여기서만큼은 몸에 힘을 빼고 머무르라 말하는 듯하다. 여러 상점이 빠르게 생기고 사라지는 성수동이지만 부디 이곳만큼은 그대로이길. 진심을 다해 공간을 꾸려 가는 극장주와 관리자가 언제까지고 관객을 환대해 주길 바란다. 모베러웍스의 캐릭터 로고가 박힌 문을 활짝 열면서 말이다.
주소 서울시 성동구 연무장길 5-5
문의 @movieland.archive

권지우 마케터
“유튜브 채널 <모티비(MoTV)>에 이달의 큐레이터를 인터뷰하는 내용을 담은 콘텐츠 ‘무비랜드 라디오’를 올리고 있어요. 영화 시작 전 대기 공간에서 영상을 보며 기다리는 걸 추천합니다. A열 좌석을 택한 경우 팝콘, 콜라를 무료로 제공한다는 점과 자주 방문하는 관객 ‘마스터즈’에게는 브랜드 협업 행사 때 예매 가능한 링크를 미리 공유한다는 사실도 잊지 마세요.”


만화로 되찾는 유머
그래픽 바이 대신
3년 전 서울 경리단길에 나타난 북 카페 ‘그래픽’은 오픈과 동시에 많은 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독특한 질감의 회색 건물은 물론, 팝이 흘러나오는 실내 공간에 비치한 감각적인 그래픽 노블과 아트 북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지난해 11월, 그래픽의 새 지점 ‘그래픽 바이 대신’이 서울 송파구 대신위례센터에 생겼다는 소식에 걸음을 재촉했다.
자리를 선택하고 QR코드를 스캔하자 입장·퇴장 시간과 좌석 번호가 뜬다. 소지품을 내려놓고 계단을 내려가니 왼쪽에 또 다른 공간 ‘리딩 룸’이 눈에 들어온다. 마블 코믹스, 역사·시대극, 자연·동물, 건축, 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의 무수한 만화책이 책장에 꽂혀 있다. 몰입할 장소가 필요한 이용자를 위해 이태원점과 달리 스피커 대신 노트북 존을 마련했다. 누군가의 취향이 깃든 코너를 놓칠 수 없어 ‘월간 그래픽’ 서가에서 직원이 적은 문구를 훑었다. “어딘가 돌아 있는 책에 진심인 독서광들의 개그 만화.” 웹툰으로 조금 보다 말았던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을 품에 안고 자리로 복귀했다.
그래픽 바이 대신의 진가는 책을 읽는 도중에 깨닫는다. 잠시 숨을 돌리려고 의자에 몸을 기댈 때, 정면에 별빛이 반짝이는 스크린이 보이고, 고개를 들면 높은 층고에 눈이 트인다. 2층 곳곳에 놓인 식물도 눈을 편안하게 한다. 모든 좌석이 앞을 향해 있어 모르는 이와 눈 마주칠 걱정 없이 책을 읽는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구조가 영화관 같다.
<익명의 독서 중독자들>에 나오는 한 독서 모임 회원이 최승자의 시 ‘일찍이 나는’ 속 문장을 되뇐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수많은 정보 사이에서 버둥거리다 나만의 속도로 시간을 보내는 과정에서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만화가의 유머에 한 번 웃고, 이곳저곳 다니며 개성 가득한 책 표지를 구경하고, 공간을 채우는 재즈 음악에 따라 호흡을 가다듬는다.
주소 서울시 송파구 위례순환로 387
문의 @graphic.fan

정다운 매니저
“이태원점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어요. 간편하게 먹기 좋은 조각 피자를 판매하고, 라테 선택이 가능한 무료 커피 머신을 들였습니다. 중정과 ‘불멍’을 할 수 있는 휴식 공간은 환기가 필요할 때 유용할 거예요. 독서에 집중하고 싶다면 음악이 나오지 않는 리딩 룸을 이용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