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가장 매혹적인 방법은 예술을 마주하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동시대 미술과의 조우는 여행보다 짜릿하고 독서보다 강렬한 경험을 선사한다. 초 단위로 풍경이 바뀌는 시대에도 여전히 낯선 그곳, 사막 한복판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직관적인 가이드, <근접한 세계>.


지금 미술계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중동’이다. 지난 2월 초 카타르 도하에서 ‘아트 바젤 카타르’가 열렸다. 스위스 바젤에서 시작돼 홍콩, 마이애미, 파리로 이어진 아트 바젤이 최초로 중동에 깃발을 꽂자 유명 컬렉터와 셀럽들이 전세기를 타고 와 아트 쇼핑에 나섰다. 오는 6월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는 ‘구겐하임 아부다비’가 개관하고, 11월에는 아트 바젤과 함께 글로벌 양대 아트 페어인 프리즈가 개최될 예정이다. 이제 미술 애호가들의 발걸음이 뉴욕이나 파리가 아닌 중동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 미술 시장의 주무대가 사막 한가운데로 옮겨 가는 이유는 분명하다. 미래의 먹거리로 ‘문화 관광’을 점찍은 중동 국가들이 천문학적인 오일 머니를 투자해 예술을 육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심리적 거리도 먼 중동 미술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거대 자본의 수혜를 받으며 급성장하는 현대미술은? 지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국내 최초의 아랍에미리트 현대미술전 <근접한 세계>가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오랫동안, 멀고도 낯선
<근접한 세계>는 아랍에미리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46명(팀)의 작가, 110여 점의 작품을 소개하는 대규모 전시다. “세 개 전시실에서 각각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들을 만날 수 있도록 충실히 구성했습니다. 아랍에미리트에 처음으로 현대미술의 온기를 불어넣은 1세대, 그들이 사력을 다해 성장시킨 2세대, 200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 동시대 미술을 대표하는 3세대를 모두 만날 수 있는 기회죠. 다만 시대순이 아니라 가장 새로운 예술을 먼저 만나도록 했습니다.” 바로 ‘지금’의 미술을 먼저 배치한 기획 팀의 전략이 어쩌면 지루할지도 모를 낯선 세계 탐험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일까. 전시장은 덕수궁 돌담길 데이트를 하던 커플이며, 오랜만에 모임을 가진 중년의 친구들로 기분 좋게 북적인다.
첫 번째 섹션 ‘회전의 장소’에 들어서자 벽면을 채운 화려한 사진 작업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3세대 작가의 대표 주자이자 광주비엔날레를 통해 한국에도 소개된 파라 알 카시미의 카메라는 비슷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대화를 나누는 두 소녀, 가정집 소파 위에 올라가 있는 염소, 차도르를 쓰고 게임을 하고 있는 청춘의 모습을 무심히 포착한다. 아부다비 젠지 세대의 SNS를 훔쳐보듯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의 공간이지만, 알 수 없는 관계와 모호한 표정, 과장된 패턴과 컬러 탓에 은근한 긴장감이 감돈다.
익숙하지만 묘한 간극이 감지되는 낯선 세계로의 여행은 여성 작가 마이타 압달라의 ‘몽상과 악몽 사이에서’로 이어진다. 청소년기에서 성인기로 넘어가는 전환적 시기를 담아낸 사진 연작으로 사춘기에 겪는 불안과 환상, 순수와 성장의 이중성을 새와 돼지가 등장하는 아랍 우화에 접목해 표현해 낸다. 작품 속 강렬한 파스텔 핑크 타일은 아랍권에서 직관적으로 화장실을 연상시키는 장치라니, 가장 개인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섬뜩한 판타지랄까. 외부 시선과 내밀한 감각이 충돌했을 때 느끼는 그 시절의 불안을 절묘하게 포착해, 관람자의 기억 한 자락을 기어이 끄집어내고야 마는 작품이다.
이 전시실의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은 주마리의 ‘아랍어로, 쉼표’다. 가벽을 돌아 들어가면 시야가 툭 열리며 팬톤 컬러 213C번으로 물들인 형광 핑크빛 모래사막이 펼쳐진다. 인터뷰를 할 때도 토끼 탈을 쓰고 나타날 정도로 신비주의를 고수하는 작가는 종말론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폐쇄적 공간을 ‘생과 사의 중간 지대’로 설정했다. 신발에 커버를 씌우고 황량한 핑크 사막을 저벅저벅 걸어 다니다 보면, 천장에 달린 마이크가 관람객의 소리에 반응해 외계 생명체의 비명 같은 디지털 사운드를 생성해 낸다.

변모시키는 한편 사유의 지평을 잠식하는 과정을 담아낸 2년간의 프로젝트다.
어쩌면, 가깝고도 친밀한
사실 아랍에미리트는 중동에서도 독특한 서사를 가진 나라다. 사우디아라비아처럼 거대한 단일 왕국이 아니라 7개의 사막 부족(토호국)이 한데 모여 만든 연방 국가이자, 이란처럼 수천 년 된 제국이 아니라 1971년 현대적 국가를 이룬 신생국이다. 지금이야 명실공히 ‘슈퍼 리치’의 상징이지만 1960년대에 유전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바다로 나가 진주를 캐며 생계를 이어 가던 가난한 지역이었다. 짧은 기간에 사회·경제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부를 일구었지만, 단일국가로서의 정체성은 굳건하지 않은 나라. 이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알고 나면 아랍에미리트에 대해 호기심이 조금 더 생긴다.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어 보면 이 나라의 현대미술도 궁금해진다. “아랍에미리트와 한국 미술의 서사에는 비슷한 맥락이 많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서구 미술을 접한 예술가들이 있었던 것처럼 이 나라도 영국에서 공부한 유학파들이 돌아와 현대미술을 전파했거든요. 정식 미술 교육은커녕 부족 단위의 전통 공예가 전부였던 시절부터 급변하는 사회를 온몸으로 겪으며 미술의 영토를 넓혀 온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전통이 와해되고 풍경이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이야말로 예술가에게는 좋은 땔감이 됐을 것이다. 자극과 불안이 가중될수록 이야기가 샘솟고 사유가 확장하며 표현은 무르익는다.
바로 이 시기, 그야말로 ‘선구자’라고 불러도 좋을 1세대 작가들은 실존적 개척 정신으로 현대미술의 지평을 넓혀 갔다. ‘지형이 아닌, 거리를 기록하기’라고 이름 붙인 두 번째 섹션은 이들을 소개한다. 그중에서도 누줌 알가넴의 ‘통로’를 만나는 행운을 놓치지 말자.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아랍에미리트 파빌리언을 장식했던 이 유명한 작품은 전시장을 가로지르는 벽 크기의 스크린 양면에 서로 다른 영상이 투사되는 2채널 비디오다. 작가 자신의 이주 기억을 모티브로 한쪽은 현실, 다른 한쪽은 허구의 이야기를 담아내며 서사의 정점에서 두 세계가 하나로 포개진다. 영화감독이자 시인인 작가의 통찰로 가득 찬 이 명상적 영상은 현대 아랍시에 보내는 헌사이자 끝나지 않은 실험이다.
작고 어두운 방에 따로 설치한 모하메드 카짐의 ‘창 2003-2005’도 지나칠 수 없는 수작이다. 작가는 작업실 창문 밖으로 부르즈 할리파가 건설되는 풍경을 2년간 지켜보며 이 거대한 마천루가 점차 수평선을 가리는 과정을 담담히 담아냈다. 도시 개발의 광풍 속에서 자본이 창밖 풍경을, 그리고 인간의 상상력을 어떻게 잠식하는지 보여 주는 동시에 외부에서 수혈된 값싼 노동의 문제도 날카롭게 짚어 낸다. 제3세계 노동자들의 움직임을 주의 깊게 좇은 작가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초호화 건물을 ‘짓는 사람들’의 흔적은 사막의 모래바람과 함께 가장 먼저 지워질 것임을.

사막고사리를 모티브로 척박한 땅에서 살아가는 사막 민족의 삶을 신비롭게 은유한다.
근접한 세계, 빨간 예술
전시의 마지막 섹션 ‘그것, 양서류’에서는 독특한 제목 그대로 흥미로운 서사가 펼쳐진다. 상황에 따라 피부색을 바꾸는 양서류처럼 정체성을 유연하게 변주하며 살아남는 젊은 예술가들의 오늘을 담아낸 것이다. 생계를 위해 국가 산업과 기꺼이 손잡는 이들의 작업은 사뭇 진지하면서도 묘한 웃음을 자아낸다. 누군가는 건국 50주년 기념 쇼를 디렉팅하고, 누군가는 엄청난 스케일의 우주 산업 전시회 구조물을 만들며(이를테면 우주인이 가져올 미네랄로 만든 미래의 벽돌 같은 기상천외한 것), 누군가는 국빈용 선물을 디자인하기도 한다. 프로파간다에 충실한 창작물들을 천천히 둘러보는 동안 한국의 올림픽이나 엑스포 풍경이 겹쳐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아랍에미리트의 작가들은 그 ‘양서류적 운명’을 충분히 즐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훌루드 샤라피가 만든 ‘아랍에미리트 건국 51주년 기념 담요’를 보라. 7개 토호국을 상징하는 일곱 결의 파동과 각 지역 문양, 전통 알 사두(Al Sadu) 직조를 결합해 누구라도 탐낼 만한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신드바드의 모험처럼 신비한 이 여행(46명(팀)의 작가, 110여 점의 작품)의 끝에는 마지막 작품, 아이만 제다니의 3채널 비디오 작품 ‘사막의 수호자들’이 있다. 작가는 다양한 숙주에 기생하는 사막고사리를 모티브로 척박한 땅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막 민족의 정체성을 신비롭게 드러낸다. 이는 곧 익숙한 것과 변화하는 것 사이에서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존재하는 예술가의 운명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묵직한 내레이션으로 들려주는 “우리는 다만 살아남아 기록할 뿐, 모든 존재는 서로 이어져 있음을 알고 있다”라는 독백을 마지막으로, 외부로 향하는 출구로 천천히 나아가면 마침내 이 탐험이 마무리된다.
다시 서울 한복판,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문득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을 떠올렸다. 전시장에서 마주한 그 강렬한 풍경들이 빨강의 독백을 소환해 냈다. “나는 빨강이라서 행복하다! 나는 뜨겁고 강하다. 나는 눈에 띈다. 그리고 당신들은 나를 거부하지 못한다.” 황색 모래와 검은 차도르에 갇혀 있던 중동 미술은 지금, 새빨간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다. 동양과 서양, 전통과 혁신이 부딪히는 혼란 속에서 길을 찾던 소설 속 화공들처럼, 서구의 언어로 쓰인 현대미술의 각축장에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분투하는 아랍의 예술가들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뽐내고 있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중동은 진짜일까, 만들어진 신기루일까.

중동 미술을 만나는 또 다른 공간
서울시립미술관과 더불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중동 미술을 만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이슬람 미술, 찬란한 빛의 여정’을 주제로 상설 전시실 최초의 이슬람실을 개관한 것이다. 이슬람 문자 예술의 시작점을 보여 주는 초기 <쿠란> 필사본, 아라베스크 무늬와 서예로 장식한 모스크 램프, 이슬람의 높은 과학 수준을 상징하는 천구의와 아스트롤라베 등 83점의 예술품을 통해 이슬람 문명의 정수를 선보인다. 전시는 ‘종교미술’ ‘문화의 포용과 확장’ ‘궁정 문화와 필사본’이라는 세 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7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이슬람 문화의 다채로운 예술 세계와 폭넓은 미감을 조명한다. 모스크에 들어온 듯한 몰입감을 주는 돔 지붕과 팔각형 구조, 다마스쿠스 귀족의 응접실을 미디어로 재현한 신비로운 공간 등 이슬람 문화를 처음 접하는 관람객을 배려한 세심한 연출도 돋보인다. 카타르 도하의 이슬람 예술 박물관과 공동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10월 11일까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