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yle

종이 위의 무용수, 서예가 이정화

2025년 03월 25일

  • EDITOR 김수아
  • PHOTOGRAPHER 황필주

온 마음을 다해 먹을 갈고 종이 위에 열정을 펼친 이정화 서예가에게 또 하나의 예술을 배운다. 그의 삶 속 수많은 장면이 섬세하고 때론 강렬하게 화선지에 새겨진다.

젓가락 사용법을 배울 무렵, 한 아이의 손에 작은 붓이 쥐여진다. 아이는 바로 달려가 먹물이 가득한 벼루에 붓을 담그고 화선지 위로 거침없이 손을 뻗는다. 이 아이에게 서예 도구는 일종의 놀잇감이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인중 이정화 서예가. 일곱 살 때 송민 이주형 선생을 따라 처음 붓을 잡았고, 대학교 서예학과에 진학하면서 서예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디뎠다. 지난 15년 동안 그는 자신만의 필체를 획득했고, 개인전과 단체전을 통해 개성이 드러나는 작품을 선보였으며, 각종 상을 수상했다.
서예가로서 입지를 다진 후에는 서예를 알릴 기회라면 마다하지 않고 나섰다. 2020년 서예가의 일상을 담은 에세이 <일희일비하는 그대에게>를 출간했고, 이듬해에는 TV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서예를 향한 애정 어린 마음을 드러냈다. 최근에는 향수 브랜드 패키지 작업에 참여하고 한복 디자이너와 협업하는 등 뷰티와 패션 영역까지 발을 넓히고 있다. 드라마 <동이>를 시작으로 <뿌리깊은 나무> <미스터 션샤인> <호텔 델루나> <옥씨부인전> 등 다수의 사극 작품에서 대필 작업도 이어 왔다. 한글 서예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는 소식에 바로 그를 떠올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문방사우를 비롯한 서예에 필요한 도구.

먹색으로 남기는 삶의 철학
서예를 생각했을 때 각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드는 글귀를 붓으로 따라 쓴다고 전부 서예는 아니다. “나만의 철학과 올곧은 뜻이 있어야 비로소 서예가 완성돼요. 별생각 없이 글씨를 썼다면 그건 단순한 먹칠에 불과하죠.” 이정화 서예가가 붓끝에 담고자 하는 건 세상의 아름다움이다. 선현들의 문장을 따라 쓰던 중 글은 평생 남는다는 사실이 그의 마음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이후 글을 통해 후대 사람들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 주고 싶은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가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전하기로 다짐한 건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결국은 따뜻한 말, 진심 어린 표정, 다정한 행동이 그를 일으켜 세웠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야 하니 일상을 세심히 관찰하는 건 기본이다. 기억하고 싶은 말이나 순간, 거기에서 파생되는 생각을 일기장에 기록해 필요한 순간에 주제에 맞는 소재를 꺼내 쓴다. 작품 하나를 만들려면 가장 먼저 벼루에 물을 붓고 먹을 갈아야 한다. 작품 주제에 어울리는 종이와 붓을 꺼낸 후 붓에 먹물을 묻혀 글씨를 쓰는 건 그다음이다. 이 과정을 거칠 때마다 만나는 종이, 붓, 벼루, 먹은 그에게 도구 이상이다. 어린 시절부터 많은 시간을 함께한 것은 물론, 누구에게도 털어놓기 어려운 감정을 종이 위에 써 내려갈 때 늘 곁을 지켜 준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그중 붓은 몸이 닳고 닳을 때까지 희생하기에 망가지더라도 차마 버릴 수가 없다. 나중에 제대로 작별하겠다는 그의 눈빛에 애틋함이 한가득 서려 있다.

‘산을 보면 왜 글이 쓰고 싶을까’는 바위산의 매력을 느낀 후 탄생했다.

자연을 닮은 예술가
이정화 서예가가 본격적으로 서예를 시작할 때 아버지이자 스승인 송민 이주형 선생은 딱 한 가지를 강조했다. 자외구서(字外求書), 즉 글자 밖에서 글씨를 구하라는 뜻이다. 저마다 형태가 다른 나뭇가지와 일정하지 않은 물의 움직임 등 자연이 온몸으로 보여 주는 선을 화선지 위에 옮기라고 조언했다.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테다. 이정화 서예가는 가벼운 빗방울에도 슬픔이 쏟아지고, 얼굴을 스치는 바람에 금세 용기를 얻는 등 주변 상황에 쉽게 마음이 동하는 사람이다. 그야말로 일희일비하는 삶을 산다. 가끔은 그런 모습에 스스로 피로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날마다 다른 하늘이 이상하지 않듯 들쑥날쑥하는 감정도 자연스럽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온 마음을 자연에 맡기고 감정이 흔들리게 두는 삶. 그 감정을 잠시 머금었다가 종이에 옮기는 과정. 하나의 서예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그는 종이, 붓, 벼루, 먹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다.

서예 작품에는 작가의 호흡과 감정이 담겨 있어요. 생생한 기록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맞아요. 이 점이 캘리그래피와 서예의 차이 같아요. 캘리그래피는 정제된 아름다움이 있어야 하지만, 서예는 미학적 요소가 가장 중요한 건 아니에요. 두 번째 개인전을 열며 이 사실을 깨달았어요. 전시장을 채울 작품을 고르는데 아버지께서 몇 개를 제외하는 거예요. 이유를 물었더니 서예라고 부를 수 없는 작품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 알았죠. 감정이나 호흡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으면, 점과 점이 연결된 선일 뿐 획이 되지는 못하는구나.

서예의 매력은 지워지지 않는 점이라고 밝힌 적이 있죠.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 유지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라고요. 이 말에서 서예를 대하는 결의가 느껴져요.
지워지지 않는 게 매력이지만, 그래서 두렵기도 해요. 요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라는 말에 꽂혀 있는데,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예요. 죽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거죠. 제가 써 놓은 글씨는 불태우지 않는 한 죽음 이후에도 남을 테니 자꾸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요. 왜 글을 쓰는지, 어떤 내용을 담고 싶은지. 이렇게 초심이 계속 되살아나요.

불확실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불변’이라는 단어는 희소한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오랜 시간 곁을 지켜 온 문방사우를 특별하게 여기는 걸까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종이는 지워지지 않는 글씨를 새기는 거고, 붓은 사용할수록 자꾸 손상되고, 먹도 벼루와 마찰하면서 닳잖아요. 30년 가까운 시간을 함께 지내면서 이 희생이 새삼 고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선 시대 문인 이언진은 “집에 친구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도 나는 문방사우가 있어 외롭지 않다”라고 했는데, 이 말에 공감해요. 옛사람들에게 문방사우는 친구였고, 저에게도 모든 감정을 털어놓는 소중한 존재예요.

주로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다고요. 최근에는 어떤 풍경이 마음을 건드렸는지 궁금해요.
지난 2월 스위스에서 라인 폭포를 구경했는데, 10년 전 아르헨티나에서 이구아수 폭포를 봤을 때와 느낌이 확연히 달랐어요. 그때는 폭포를 보러 가는 중에 시냇물에 시선을 두고 나의 잠재력은 언제 발휘될까, 고민이 깊었거든요. 마침내 길 끝에서 폭포를 마주했을 때, 지금처럼 성실하게 노력하면 목표에 다다를 거라는 믿음이 생겼죠. 이번에는 폭포를 먼저 봤는데 오히려 잔잔한 물결에 시선이 가더라고요. 지금 평온한 상태를 원한다는 걸 자각했죠. 같은 대상이라도 상반된 감정을 느낀다는 점이 흥미로워서 나중에 작품에 담아 보려고요.

대부분의 작품이 먹색인데 종종 다른 색도 보였어요. 작품에서 색을 쓰는 기준이 있나요?
먹색이 아닌 다른 색으로 글씨 쓰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오래 쳐다보기가 어려워서요. 배경을 채우거나 작게 꽃을 그릴 때 다른 색을 사용하는 편이죠. 포인트를 줄 때는 웬만하면 오방색을 골라요. ‘꽃은 꽃이었던 흙이 키워준다’라는 작품은 지금의 삶이 누군가의 희생 덕분이라는 생각으로 할머니와 손주의 관계를 풀어 낸 건데, 봄의 시작을 알리는 개나리를 표현하려고 노란색을 썼어요. 또 아이를 개나리에 비유하기도 하잖아요.

한글 서예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후 달라진 점이 있나요? 주변 반응이나 개인적인 마음가짐에 변화가 있을까요?
서예를 하는 동료들 사이에서는 축제 분위기예요. 드디어 때가 왔다고 말하죠. 간혹 ‘서예’라는 용어가 어렵다고 ‘먹글씨’ ‘붓글씨’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서예’를 그대로 사용한 점도 마음에 들어요. 한글 서예를 ‘먹과 붓을 통해 쓴 글씨’로 정의한 것도 인상적이었고요. 제가 강의할 때 붓과 먹은 절대 포기하지 못하거든요. 미술 시간에 사용하는 붓은 서양 붓인데 그 붓으로는 서예의 맛을 낼 수 없으니, 100명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에는 붓을 100개 가져가요. 앞으로도 이 자세를 쭉 유지해야겠다 생각했죠. 아리랑 유랑단으로 해외에서 한글 서예를 알린 것처럼 앞으로는 또 어떤 방법으로 전 세계에 소개할지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한글 작품을 더 많이 선보이겠다고 다짐하게 되었죠.

지난 2월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제1회 한국 서예 아트 페어에 참여했는데, 그 과정이 알고 싶어요.
전통 서예를 현대 예술로 표현하는 손동준 교수님이 의견을 내셨어요. 아트 페어에 많이 참여하는 분인데 행사에서 서예가 눈에 잘 띄지 않아 서예가들끼리 새로운 아트 페어를 만들자고 제안한 거죠. 한글 서예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시기와 우연히 맞물렸어요. 저는 판소리하는 친구와 협업해 그 친구의 소리를 서예로 표현했어요. 앞으로 2회, 3회도 열릴 예정이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28년 동안 서예를 하며 시기별로 다른 의미가 있었을 것 같아요.
10대 때 서예는 당연한 거였어요. 부모님이 서실을 운영한 데다 당시 서예 학원이 많이 생겼고 배우는 친구들도 많았으니까요. 20대 때는 놓을 수 없는 유일한 끈이었던 것 같아요. 주변 친구들이 각자 꿈을 찾아 나아갈 때 저는 이걸 업으로 정했으니 절박한 심정이었죠. 30대인 지금은 생의 끝까지 동행할 친구라고 생각해요. 아직 30대 중반이라 단언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세월이 아무리 많이 흘러도 제 손에 붓 하나쯤은 들려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