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yle

정이 피어나는 용인중앙시장

2024년 12월 26일

  • writwe 김영은(프리랜서)
  • photographer 김은주

쿰쿰한 냄새를 따라 순대와 족발 가게가 늘어선 골목으로 빨려 들어간다. 소복이 쌓인 눈 위로 새들의 발자국이 총총히 찍히고, 상인들의 발걸음도 분주해진다. 경기도 용인중앙시장에서 마주한 삶의 생생한 순간들.

시대를 관통하는 만물상

흰 눈이 소복이 쌓인 풍경만큼이나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것들이 있다. 딱 이맘때 볼 수 있는 제철 재료. 혹독한 겨울이 오기 전, 알알이 영양분을 품은 것들 말이다. 온라인으로 장을 보거나 마트에서 물건을 구입한다면 ‘제철’이 어딨느냐 하겠지만, 시장에 가면 단박에 알 수 있다. 큼지막한 노란 호박과 고슬고슬한 팥앙금이 가득 든 국화빵, 말린 노가리, 소박하게 담긴 시금치가 그렇다. “시금치 한 소쿠리에 얼마예요?” 하고 물으니 무심한 표정의 아주머니가 “4000원인데, 3000원만 줘유” 한다. 이곳에서만 통하는 계산법인가. 손톱 밑에 거멓게 흙물이 든 할머니가 내 손에 쥐여 준 3000원어치 시금치 봉투. 그 푸릇하고 넉넉한 마음에 죄송한 생각이 먼저 든다. 용인중앙시장은 예나 지금이나 용인 중심가에 자리한다. 그 시작이 언제쯤이냐면, 무려 25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 영조 46년(1770년)에 편찬한 <동국문헌비고>에 용인중앙시장의 현 주소지인 ‘김량장’이란 지명이 처음 등장한다. 그 옛날 김량장의 금학천을 따라 상권과 주막촌이 형성되었다. 이후 김량장의 명성은 용인 시내로까지 뻗어 갔고, 행정과 경제, 유통의 중심 거리로 성장했다. 김량장은 용인재래시장이란 이름을 거쳐 현재의 용인중앙시장이 되었고, 명실공히 용인에서 가장 큰 전통시장으로 자리 잡았다.

골목 사이로 겨울의 맛이 차오른다

하루하루 매서워지는 날씨 속에도 용인중앙시장이 활기를 띠는 것은 상인들의 오랜 자부심과 손님들의 웃음소리 덕분이다. 보통 전통시장이 장날에만 북적이고 평소에는 한산한 것과 달리, 용인중앙시장은 언제나 많은 사람으로 붐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 백암순대의 명맥을 이어 온 60년 전통의 재래식 순대 골목부터 떡·만두·족발 골목 등 먹거리가 풍성해 식사 시간이면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뿐 아니다. 닭꼬치, 호떡, 매운 어묵 등 추억의 간식부터 타이완 길거리 토스트나 튀르키예 케밥 같은 외국 음식도 맛볼 수 있다. “어디 유튜브예요?” 몇몇 상인이 사진을 찍는 우리에게 익숙한 듯 질문을 쏟아 낸다. 용인중앙시장의 다채로운 먹거리가 입소문을 타다 보니 방송국과 잡지사는 물론 SNS 채널에서도 취재를 온다고. 유튜브에 익숙한 한 사장님은 영상 찍는 건 자신 있다며 옆집 뒷집 할 것 없이 주변 맛집들을 소개해 준다. “백암순대는 옛말이여! 여기 이 집도 맛있고, 저 집도 맛있고, 우리 다 맛있게 잘해! 들어와 봐!” 이 골목에서 경쟁은 없다. 용인중앙시장 상인들은 그렇게 오랜 시간 똘똘 뭉친 의리와 자부심으로 백암순대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뜨끈한 순댓국이며 쿰쿰한 냄새를 풍기며 익어 가는 족발, 차가운 공기 중에 피어오르는 김 너머 겹겹이 쌓인 시장의 푸근한 얼굴이다.

세대를 뛰어넘는 축제의 공간

시장의 진짜 즐거움은 골목에 있다. 용인중앙시장은 점포가 500여 개인 규모가 꽤 큰 시장이다. 먹거리 골목과 의류·잡화 골목 사이를 비집고 다니면 30년 된 순댓국집과 2대째 진한 국물 맛을 이어 온 만둣국집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렇다고 옛날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다. 2017년에 문을 연 순댓국집도 있고, 빈티지 의류 숍과 타투 스튜디오 등 청년 상인도 꿈을 펼치는 중이다. 외국 식품 도소매 상점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대기업이나 제조업체 등에서 일하는 외국인이 많이 와요. 장사 잘돼요!” 한국에 온 지 8년째라는 파키스탄 상인 무쉬타크 아흐맛은 이국적인 비즈 공예 숍과 케밥집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3년 전부터는 용인중앙시장에서 ‘별빛마당 야시장’도 열어 활기를 더한다. 지난해 여름과 가을에 개최된 별빛마당 야시장에는 분식, 꼬치 등 먹거리 관련 팀과 액세서리, 수공예품 판매 팀 등이 대거 참여해 흥겨운 축제 한마당을 펼쳤다. 여기에 버스킹 공연이 가세해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별이 총총히 뜬 밤에는 플루트 연주가 용인중앙시장을 감미로운 멜로디로 물들였다. 미래 세대와 소통하며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전통시장, 용인중앙시장이 즐겁고 유쾌한 이유다.

주소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김량장동 133-1
문의 031-336-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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