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yle

장날 꽃구경, 강화풍물시장

2025년 03월 26일

  • EDITOR 강은주(여행 칼럼니스트)
  • PHOTOGRAPHER 전재호

꽃은 산천에만 피어 있지 않다. 인천 강화군의 얼굴, 강화풍물시장에 가면 알록달록한 화문석과 보랏빛 순무가 자아내는 꽃 같은 풍경을 맞닥뜨린다.

섬이라는 지형학적 특성은 언제나 여행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잘생긴 산과 바다, 눈부신 풍광과 유구한 문화를 품어 온 강화엔 섬 고유의 환경이 길러 낸 맛 좋은 먹거리도 여럿이다. 강화 인삼, 강화 사자발약쑥, 강화 속노랑고구마, 강화 섬쌀, 강화 섬포도···. 강화라는 이름에 따라붙는 특산물만 해도 다섯손가락으로 못다 헤아릴 정도다. 섬 곳곳에서 생산하고 수확한 농수산물을 한데 그러모은 강화풍물시장은 여행의 시작이자 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언제나 미더운 맛, 자매김치
시장 건물에 들어서자 ‘자매김치’라고 쓴 형형한 간판 아래 손님들이 북적북적하니 모여 있다. 강화의 또 다른 특산물인 순무로 담근 순무 김치가 이곳의 대표 메뉴다. 20여 년 전 직장 생활을 정리하고 자영업에 뛰어든 박경애 대표는 동생과 함께 무작정 장터로 나가 어깨너머로 순무 김치 담그는 법을 배워 생계를 잇기 시작했다. ‘자매’라는 정겹고 미더운 이름은 바로 그 시절에 탄생했다. 9년 전부터는 동생이 아닌 아들 부부와 함께 운영하고 있어 ‘가족김치’가 된 지 오래지만, 이미 자매의 맛과 정성에 길들여진 무수한 단골손님을 배려해 상호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순무 김치는 무를 미리 절이지 않아요. 납작하게 썬 순무와 양념을 휙휙 버무리고, 이틀에서 사흘 정도 익혀 먹지요.” 박 대표가 대야에 가득한 순무를 휘저으며 말을 잇는다. “그래야 달콤 쌉싸래하고 톡 쏘는 맛이 잘 살아나거든요.” 양념이 적당히 밴 청보랏빛 순무 한 조각을 베어 물자 인삼이나 겨자처럼 알싸한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진다. 기분 좋은 탄산감도 혀끝을 자극한다. “간이 딱 맞죠? 집에서 담그면 이 맛이 안 난다고들 하대요. 순무며 고춧가루며 제일 좋은 것만 쓰고, 가게에서 신선하게 버무려 내는 게 비법이라면 비법이지요.” 이렇게 말하지만, 그의 여문 손끝이야말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비법일 것이다.

손끝에서 핀 꽃, 고려화문석
서해 바다의 잔물결처럼 일렁이는 왕골의 짜임새를 들여다본다. 화문석. ‘꽃문양 자리’를 뜻하는 이름이 제 모습만큼이나 곱디곱다. 강화는 고려와 조선을 거쳐 오늘날까지 화문석의 주요 생산지로 손꼽히는 땅이다. 차진 흙과 소금기 어린 해풍이 질 좋은 왕골을 길러 낸 덕이다. 그리하여 화문석의 제조 공정은 상당 부분 강화의 자연에 의존한다. 먼저 봄에 파종해 여름에 거둬들인 왕골 줄기를 세 갈래로 갈라 바람과 햇볕에 건조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푸른빛이 가시고 미색으로 옅어진다. 이렇게 잘 말린 줄기를 고드랫돌로 엮어 돗자리 형태로 짠다.
알싸한 풀 냄새가 감도는 강화풍물시장 2층. 강화 화문석의 유구한 역사와 가치를 알리는 공예품 상점 ‘고려화문석’이 자리해 있다. 1980년 10월 영업을 시작한 이곳은 송해면 당산리 화문석마을에서 생산한 최상품을 선별해 판매하는 상점으로, 강화군 왕골 공예품 경진 대회 심사를 맡고 있는 이경옥 대표가 가업을 이어 오고 있다. “남편의 할머니가 화문석을 만드셨고, 저 또한 자리 짜는 법을 익혔지요. 보기보다 고된 일이랍니다. 화문석마을의 어르신 두 분이 자리 한 장 짜는 데 꼬박 보름이 걸릴 정도니까요.”
촘촘하게 얽힌 화문석 표면엔 원앙, 봉황, 기와, 완자 등 전통 문양은 물론 강강술래와 꽃가마 행렬 같은 옛 풍습을 표현한 알록달록한 그림이 들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색색의 문양도 좋지만 제 마음을 끄는 건 민무늬예요. 고른 짜임새로만 승부해야 하니 소재 선별이나 공정 등이 훨씬 까다롭고, 자연히 완성도가 높아지거든요. 곁에 두고 쓰면서 길들이는 동안 색깔도 한층 깊어져요. 세월에 멋이 더해지는 셈이죠.” 왜 아니겠는가. 진정한 멋이란 영영 변치 않는 게 아니라,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데 있다. 우리가 옛것을 지켜 내야 하는 이유다.

섬이 차린 식탁, 밴댕이가득한집
경남 거제 출신인 정복남 대표는 어머니가 만들어 준 멸치무침 맛을 잊을 수 없었다. 대체할 음식을 궁리하던 끝에 시도한 것이 바로 밴댕이무침이다. 멸치 대신 밴댕이, 막걸리 식초 양념 대신 과일 청을 사용해 풍미를 살렸는데, 반응이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30여 년 전, 강화풍물시장 전신인 강화장 노점에서 밴댕이무침을 팔았어요. 갖은 채소와 직접 짠 참기름을 듬뿍 넣어 맛을 냈죠.” 담백하고 고소한 밴댕이 살과 새콤달콤한 양념이 조화로운 이 음식은 머지않아 강화장을 대표하는 명물로 자리매김한다.
밴댕이무침이 한창 인기를 누리던 2004년, 강화장을 덮친 큰 화재로 점포를 잃은 정 대표는 2007년 개장한 상설 시장 건물 2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 ‘밴댕이가득한집’이란 간판을 걸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했다. “시장에 밴댕이를 파는 식당이 여러 곳이라 차별화가 필요했어요. 그게 놋그릇을 사용한 계기예요.” 악명 높은 ‘소갈딱지’ 탓에 잡아 올리자마자 금세 죽어 버리는 밴댕이. 이를 맛있게 요리하려면 선도 유지가 관건이라, 살균성이 좋고 담음새가 아름다운 놋그릇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반들반들한 놋그릇엔 밴댕이무침을 비롯해 구이와 회 등 밴댕이로 만든 다양한 음식과 맛깔스러운 밑반찬이 착착 놓인다. 이들이 한데 모여 ‘밴댕이 모둠’을 이룬다. 멸치와 새우, 김을 넣고 뭉근하게 끓인 김국이 애피타이저로 입맛을 돋운다. 가격은 2인분에 3만 5000원. 고물가 시대에 이보다 흡족한 코스 요리를 찾기란 결코 쉽지 않다. 고려산에 진달래 피는 계절, 밴댕이 가득한 식탁이 상춘의 흥을 돋운다.

강화풍물시장
이 고장의 멋과 맛이 집약된 곳, 강화풍물시장이다. 오일장이 서지 않는 날에도 상설 시장이 열려 언제나 성업 중이다. 3월 마지막 주부터 늦가을까지는 주말 야시장이 개장해 즐거움을 더한다.
주소 인천시 강화군 강화읍 중앙로 17-9
문의 032-934-1318, 카카오톡 채널 ‘강화풍물시장’
장날 2일, 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