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전남 나주에 의병 전문 박물관이 개관했다. 남도 의병의 함성과 숨결이 깃든 남도의병역사박물관에서 기억해야 할 이름을 눈에 담았다.

남도의병역사박물관, 이런 곳이에요
나라를 위해 싸운 남도 의병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자 전남 나주에 설립한 박물관이다. 건물 외관을 둘러싼 3만 3000개의 알루미늄 패널이 바람에 흔들리며 맑은 소리를 내는데, 이는 남도 의병의 함성과 숨결을 상징한다. 남도의병역사박물관은 2019년부터 유물 3000여 점을 수집했으며, 주요 유물로 고광순 의병장의 불원복 태극기, 이순신의 수결이 적힌 임명첩, 왕의성 의병장이 사용한 칼 2점이 있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춘 체험형 공간도 마련했다.
주소 전남 나주시 공산면 의병박물관길 1
문의 061-286-7087
제1전시실 & 기획전시실

남도의병역사박물관 상설전시실은 제1전시실과 제2전시실로 나뉜다. 전시동 1층의 제1전시실은 임진왜란과 대한제국 전후 남도 의병의 역사를 소개한다. 사건의 흐름에 따라 의병장의 초상, 문집, 지도 등을 비치해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기획전시실에서는 개관 기념 사진전 <사진으로 본 나주 정렬사의 어제와 오늘>이 열린다. 임진왜란 당시 호남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김천일을 비롯해 나주 의병 5위를 모신 사당인 정렬사의 변천 과정을 되돌아보는 전시로, 4월 23일까지 이어진다.

수화기를 들자 흑백사진이 컬러 영상으로 바뀐다. AI를 활용해 의병과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연출한 것이다. 남편을 따라 의병이 된 양방매는 뜻을 이루는 데 성별 구분은 없다고 말한다. “이 땅에 나처럼 나라를 위해 일어선 용감한 여성들이 있었음을 여러분도 기억해 주세요.” 진정한 기억이란, 사건의 결과만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 있던 사람도 들여다보는 일일 테다.

남도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의병은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평생 학문을 닦던 유생은 붓 대신 칼을 들었고, 여성은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의병을 치료하고 보살폈다. 가마를 타고 전투를 지휘한 맹인 의병장 백낙구도 있었다. 참혹한 현실 앞에서 장애는 방해물이 되지 않았다. “귓가를 스치는 소리는 고통에 찬 백성들의 비명이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의병으로 나선 이들의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김천일 의병장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호남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다. 1606년 나주 유림들이 김천일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자 월정봉 아래에 정렬사를 건립했는데, 현재는 대호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나주 지역민들은 매년 김천일 의병장의 창의일인 음력 5월 16일에 정렬사에서 제향을 지낸다. 기획전시실에서 정렬사의 변천 과정과 함께 나주 시민의 옛 모습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상설전시실의 주요 유물

고광순 의병장의 불원복 태극기
1907년 을사늑약에 맞서 담양과 구례에서 활약한 고광순 의병장의 불원복 태극기가 약 40년간 천안의 독립기념관에 보관됐다가 남도의병역사박물관에 기탁되어 남도로 돌아왔다. 태극기에 새겨진 ‘머지않아 국권을 회복한다’는 뜻의 글귀, 불원복(不遠復)에는 독립을 향한 남도 사람들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 2008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순신의 수결이 적힌 임명첩
1597년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기용된 후 목포 고하도에 머무를 당시 고흥에 거주하던 신군안을 의병장으로 임명했다. 이때 발급한 임명첩으로 이순신의 수결인 일심(一心)이 적혀 있다. 임진왜란 전 기간을 통틀어 이순신 장군이 특정 인물을 의병장으로 임명한다는 유일한 문서로 확인돼 높은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왕의성 의병장이 사용한 칼
정유재란 당시 구례 석주관 전투에서 왕의성 의병장이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칼 2점이다. 제1차 석주관 전투에서 아버지 왕득인이 순국하자 아들 왕의성은 구례 지역에서 의병을 모집했고, 이에 응한 화엄사 의승 153명과 함께 싸웠다. 구례 화엄사에 군량미와 의승 파견을 요청하고 그에 대한 회신을 받은 문서도 같이 전시한다.
제2전시실 & 무명의병 추모실

제1전시실과 기획전시실을 관람한 뒤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면 제2전시실이 나온다. 영상실에서는 국가 위기 앞에서 나라를 지키고자 봉기했던 이들의 활동을 조명하고, 기록물 전시실에서는 임진왜란과 대한제국 시기에 활약한 의병의 기록물을 살펴본다.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의병들을 기리는 추모 공간도 조성했다. 전남 22개 시군과 광주에서 보내온 석재를 지리적 위치에 따라 세운 무명의병 추모실에는 들꽃을 바치는 헌화대가 있다.

기록물 전시실에 들어서면 황현의 초상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혼란한 시대에도 붓으로 진실을 기록해 지식인의 책임을 다하고자 했던 황현은 1910년 국권피탈로 나라를 빼앗기자 절명시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자결하며 남긴 절명시를 비롯해 연적, 벼루, 안경 등 집필 활동에 쓰던 유품이 비치되어 있다.

경사로를 따라 제2전시실로 내려가는 길에 만나는 영상 작품 ‘이름을 남긴 의병들’이다. <호남절의록>에 적힌 임진왜란 시기에 활동한 의병 1500여 명과 공훈전자사료관에 기록된 대한제국 시기 의병 800여 명의 이름으로 남도 의병의 모습을 표현했다. 고경명, 안규홍, 이충실···. 크게 쓰인 이름만이라도 소리 내어 불러 본다.

의병 정신의 현대적 계승을 주제로 한 영상을 의자에 앉아 관람했다. “의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총칼을 들 필요는 없었다. 가장 작은 깃발 하나로도 지켜야 할 가치는 뚜렷했다.”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 6·10 민주항쟁 등 독재자의 억압이 극에 달할 때마다 반복된 투쟁의 역사가 눈앞에 펼쳐진다. 칠흑 같은 시대의 밤을 밝힌 촛불과 야광봉 또한 잊지 못할 것이다.
어린이박물관

전시동 맞은편에 위치한 교육동 지하 1층에는 어린이박물관이 있다. 5세부터 7세까지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 만든 공간으로, 화순 쌍산 항일의병 유적을 ‘우리들의 의병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재해석했다. 의병 막사, 의병 생활관, 의병 훈련장, 무기 제작소, 히어로즈 책방 등 총 다섯 공간으로 구성했다. 동굴에 몸을 숨기거나 구조물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시설로 구성된 의병 훈련장이 특히 인기가 높다. 물품 보관함과 유아차 보관 장소도 마련했다.

‘의리’ ‘의지’ ‘당당’ ‘의로운’은 팽나무 아래에서 의병을 일으키는 스토리의 주인공 캐릭터다. 다섯 가지 체험을 완료한 어린이에게 이 캐릭터 모양 키링을 제공한다. 캐릭터 네 개를 다 모으고 싶다면 어린이박물관에 여러 번 방문해도 좋다.

나무 손잡이를 앞뒤로 빠르게 움직이면 바람이 나와 불꽃 그림이 점점 환해진다. 철을 녹여 무기를 제작하는 과정 일부를 재현한 것이다. 빠른 속도를 일정 시간 유지해야 빛이 들어오기 때문에 의병 동료의 응원이 필요한 구간이다. 옆쪽 벽면에는 무기 제작 방법과 당시 의병이 사용한 무기 종류를 설명하는 글이 적혀 있다.

의병들은 서로를 알아보기 위해 비밀 신분증인 신표를 가지고 다녔다. 박물관에 입장해 의병 사령부에서 신표 팔찌를 받고 키오스크에 QR코드를 찍으면 몇 번째 의병인지 화면에 나타난다. 다섯 가지 체험을 하는 동안 곳곳에 숨겨진 QR코드 리더기에 신표 팔찌를 찍어 체험 달성률 100퍼센트가 되면 소정의 선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