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것 하나 똑같지 않은 색과 무늬, 자연 염색과 섬유공예를 기반으로 한 쿤스트호이테의 작업은 예측 불가능한 자연과의 협업이다.

인천 서구는 과거 제조 산업의 중심지였다. 1965년 국가에서 가좌동을 공업 단지로 지정하고, 1968년 경인고속도로가 개통하자 1000여 개의 기업이 입주해 거대한 산업 단지를 이뤘다. 환경문제와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 개발 등이 맞물리며 공단은 점차 쇠퇴했고, 당시 가좌동의 산업을 이끌었던 코스모화학 단지마저 2016년 울산으로 이전했다. 쓸모를 잃은 건물과 텅 빈 부지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지역의 큰 고민이 되었고, 뜻을 함께하는 몇몇 사람이 폐공장 한 동을 사들여 복합 문화 공간 ‘코스모40’을 만들었다. 이후 인천의 젊은 창작자들이 하나둘 가좌동으로 모여들었다. 자연 염색 기법을 바탕으로 개성 있고 실용적인 제품을 만드는 쿤스트호이테의 스튜디오도 이곳에 자리 잡았다.

일상에서 발견한 영감
독일어로 ‘쿤스트(Kunst)’는 예술, ‘호이테(heute)’는 오늘을 의미한다. 이 둘을 합친 쿤스트호이테는 ‘오늘의 예술’을 뜻한다. 코스모40에서 100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한 쿤스트호이테 스튜디오는 1970년대에 열처리 공장과 금속 공장이었던 건물을 개조한 공간이다. 붉은 벽돌과 직사각형의 징크 패널로 완성한 외관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쿤스트호이테를 이끄는 공동대표이자 연인인 오재엽, 윤서현 씨는 이곳에서 식물염료를 이용한 패브릭 제품을 기획하고, 디자인과 제작도 한다. 스플릿 플로어 구조로 설계된 네 층의 스튜디오는 높은 층고 덕분에 크고 긴 패브릭 작품을 전시하거나 작업하기에 적합하다. 3층 일부 공간에 쇼룸도 갖춰 놓았다.
2014년부터 생산한 쿤스트호이테 작업은 카페, 레스토랑, 호텔, 플래그십 스토어, 전시회장 등 다양한 상업 공간에서 쓰이고 있다. 최근 이들이 작업한 곳은 안성재 셰프의 레스토랑 ‘모수 서울’. 다이닝 룸으로 향하는 중문과 코트룸의 옷장 문을 장식한 짙은 쪽빛 패브릭을 쿤스트호이테가 만들었다.
쿤스트호이테는 어떻게 시작됐을까. “저희는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어요. 독립 영화와 상업 영화를 오가며 연출과 미술 작업을 했죠.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은 고민이 많은 때였어요. 창작에 대한 갈증은 컸지만, 동시에 지치지 않고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늘 생각했죠. 머릿속에 떠오르는 영감을 실용적인 형태로 구현하는 염색 공예의 자유로움에 매료된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어요. 오재엽 작가의 어머니가 패션 디자이너셨거든요. 덕분에 식물염료를 구하고 작업의 기초를 닦는 데 큰 도움을 받았죠.”


2 <빛과 그림자로 본 만화>전에서 우리나비와 협업한 패브릭 설치 작업 ‘황금동 사람들’(2024).
함께 염색 공예를 해보자 의기투합한 둘의 눈에 들어온 건 버려진 소파. 쿤스트호이테의 시작을 알리는 강렬한 계시와도 같았다. “소파를 보는 순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어요. 왜 버려졌을까, 여기에 우리가 새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보면 서툴렀지만 소파에 색을 입혔을 때 물질적인 변화를 넘어서 소파가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어요.”
섬유는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소재다. 어떻게 만들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천 가지 얼굴을 가질 수 있다. 그 무한한 가능성이 두 대표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덕분에 쿤스트호이테의 영역은 점차 확장되기 시작했다. 전공을 살려 영화 기획과 연출, 편집도 했다. 섬유 염색과 승무를 소재로 만든 아트 필름 <수련, The Water Lily>에선 그들이 직접 만든 한복과 패브릭 소품이 등장한다. 가좌동에 위치한 신진말공원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해 패브릭을 활용한 설치 작품 ‘산호초의 자리’를 전시하고, 무인양품 코리아와 함께 헌 옷을 석류 껍질로 염색해 재활용하는 ‘리무지(ReMUJI)’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회색빛은 석류 껍질에서 얻는다.
자연에서 온 깊고 아름다운 색
오재엽 작가가 섬유 염색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여 주겠다며 작업실로 안내한다. 먼저 천연 재료를 염료화하는 과정이 첫 번째다. 직접 수확해 말린 금잔화 꽃을 푹 달인 뒤, 체에 걸러 염액을 만든다. 꽃 색만큼이나 짙은 노란색 염액이 식기 전에 정련 과정을 거쳐 불순물을 제거한 원단을 담근다. 염색은 뜨거운 온도에서 가장 잘된다. 천이 염료를 잘 머금을 수 있도록 손으로 충분히 주무른 뒤 매염 작업에 들어간다. 매염은 염료가 섬유에 잘 붙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원하는 색을 낼 매염제(명반, 철 등)를 푼 물에 천을 담갔다 헹궈 말린다. 원하는 색을 얻기 위해선 수차례 반복해야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염색은 인내를 요구하는 섬세한 작업이다. 어느 과정 하나 허투루 지나칠 수 없다. 추출 온도와 시간의 차이는 빛깔의 농담을 결정짓는다. 염료에 따라 발현되는 색도 다르다. 푸른빛은 쪽에서, 붉은빛은 꼭두서니, 노랑과 황록 계열은 금잔화, 분홍과 다홍은 홍화에서 나온다. 회색빛은 의외로 석류 껍질에서 얻는다. 같은 염료로 염색하더라도 직물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실크는 부드럽고 은은하게, 소창·무명은 담백하게, 리넨은 투명하게, 삼베는 투박하게 색을 머금는다.
여기에 다양한 기법이 더해진다. 원단의 일부를 묶어 무늬를 만드는 홀치기염색, 천을 접고 꺾쇠(클램프)를 사용해 특정 부분에 염료가 스며들지 않게 하는 클램핑 기법, 풀을 활용해 문양을 내거나 바느질을 해 실로 당겨 방염 효과를 내고 무늬를 만드는 방식 등 다양한 방법과 도구를 이용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패브릭을 완성한다.


2 나무 손잡이에 쪽으로 염색한 보자기를 묶어 만든 가방.
자연 염색 재료에 대한 탐구는 두 사람을 염료 재배로 이끌었다. 재료를 이해하면 더 많은 색을 다룰 수 있다는 믿음으로. “지금까지 오 작가 어머니가 일구던 밭을 함께 가꾸며 재료를 수급했어요. 올해부터는 강화도에 약 660제곱미터 규모의 밭을 마련해 금잔화와 쪽, 홍화 등 염료로 쓰일 꽃과 식물을 심었습니다. 여름부터 수확할 꽃이 어떤 색을 보여줄지 벌써 설레요.”
계절마다, 지역마다 자라나는 식물이 다르니 얻는 색도 달라진다. 오재엽, 윤서현 작가는 지금 살고 있는 인천에선 얻을 수 없는 색을 찾으러 종종 여행을 떠난다. 이를테면 초여름 군산에서 수확한 흰찰쌀보리나 겨울 산자락에 떨어진 솔방울 같은 것. “사계절을 마주하며 그 시기에만 볼 수 있는 풍경과 정취, 그리고 색을 연구합니다. 자연의 색을 패브릭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건 단순히 천을 물들이는 게 아니에요. 여름엔 바다, 겨울엔 곶감처럼 떠오르는 이미지를 어떻게 표현할지 끊임없이 고민합니다. 새로운 색을 찾는 작업은 저희가 평생 해야 할 숙제 같아요.”
브랜드 팝업 스토어, 협업 프로젝트, 마켓 참가 등 외부 작업으로 분주했던 작년과 달리 올해는 텍스타일 상품을 만드는 공예 스튜디오이자 브랜드로서 쿤스트호이테의 정체성에 더욱 집중할 계획이다. 쿤스트호이테만의 색을 찾는 여정도 계속된다. 더 깊이, 더 세심하게 실험을 거듭하며 색을 탐구해 나갈 것이다. 자연과의 협업은 늘 예측할 수 없기에, 쿤스트호이테는 유연한 마음으로 색을 기다린다. 그 기다림 속에서 진짜 ‘오늘의 예술’이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