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옛 탄광의 기억을 잇다, 문경

2026년 09월 01일

  • EDITOR 신송희
  • PHOTOGRAPHER 김은주

1960~1980년대 한국 석탄 산업의 중심지였던 경북 문경. 1994년 폐광 이후 탄광의 흔적이 새로운 풍경으로 되살아났다. 폐선된 철로 위로 자전거가 달리고, 광차가 오가던 간이역은 카페로 변모했다. 은성탄광 터에는 테마파크가 들어서 가족여행자의 발걸음이 이어진다. 문경에 옛 탄광의 시간이 다시 흐르고 있다.

1. 탄광 터에 들어선 테마파크
문경 에코월드

에코서클에서는 백두대간의 생태를 주제로 한 미디어 아트 ‘포레스트 판타지아’가 360도 대형 원형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석탄박물관의 거미열차를 타고 석탄 생성부터 채굴 과정까지 석탄 산업의 역사를 영상과 모형으로 재미있게 살펴본다.

아이와 함께하는 당일치기 문경 여행을 계획한다면 문경 에코월드가 제격이다. 문경 에코월드는 기존 석탄박물관과 가은오픈세트장에 에코타운, 자이언트 포레스트 등 다양한 체험 시설을 더한 복합 생태 문화 테마파크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1만 원. 103만 제곱미터의 너른 부지에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가득해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다. 문경 에코월드가 들어선 자리는 한국 최초의 무연탄광인 은성탄광의 터였다. 1963년 본격 채굴을 시작해 1980년대까지 국가 경제의 핵심 에너지원을 생산했던 은성탄광은 정부의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1994년 문을 닫았다. 은성탄광 터에 들어선 석탄박물관은 석탄의 기원과 채굴 과정, 광부 복장과 채탄 장비 등을 일목요연하게 보여 준다. 박물관 뒤편으로 이어지는 은성갱도와 탄광 사택촌에서 광부들의 작업 현장과 생활상도 생생하게 살펴본다. 탄광 사택촌 바로 옆 에코타운에는 백두대간의 생태를 미디어 콘텐츠로 풀어낸 에코서클부터 어린이 놀이 공간인 에코키즈 존, 첨단 농업 기술을 선보이는 에코팜까지 다채로운 체험 공간이 마련돼 있다. 야외 놀이터인 자이언트 포레스트는 모험심을 자극한다. 거인의 포크와 수저를 형상화한 미끄럼틀, 거인의 옷 속으로 들어가 길을 찾는 하트 미로, 시원한 물줄기를 내뿜는 거대한 종이배 연못 등 이색적인 시설이 많아 아이들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논다. 모노레일을 타고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면 사극 드라마 속으로 들어온 듯한 가은오픈세트장과 만난다. 가은탄광에서 나온 폐석을 쌓아 올린 뒤 흙을 덮고 나무를 심어 조성한 곳이다. 평양성과 안시성, 관아와 저잣거리 등을 정교하게 재현해 당장이라도 고구려 시대 복장을 한 사람이 튀어나올 듯하다. 삼국시대부터 석탄 산업 전성기를 지나 21세기 현대까지 서로 다른 시대가 한 공간에 펼쳐진 모습이 낯설고도 묘하게 느껴진다.
주소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왕능길 114
문의 054-572-6854

2. 광부의 고된 하루를 위로하던 맛
광성식당 & 메밀꽃 & 소마

메밀꽃의 족살찌개는 능이버섯을 더해 깊고 진한 풍미를 살린다.
석쇠 위에서 노릇하게 익어 가는 약돌돼지가 군침을 돌게 한다.
소마의 시그너처 메뉴인 은성탄광눈꽃빙수. 삽 모양 숟가락으로 달콤한 팥을 캐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국의 젊은이들이 탄광으로 몰려들던 문경의 옛 영광은 사라졌지만, 그 시절 광부들의 허기를 달래던 음식은 여전히 명맥을 잇고 있다. 탄광촌에서 일하던 광부들은 고된 일을 마친 후 목에 낀 탄가루를 씻어 내기 위해 기름기 많은 돼지고기를 먹었다. 그중 약돌돼지는 광부들이 즐겨 먹던 돼지고기를 고품질로 개발한 문경 특산물이다. 약돌은 가은읍 수예리에 분포한 특수 광물을 가리킨다. 이 돌을 갈아 넣은 사료를 먹여 키운 약돌돼지는 쫄깃하고 맛이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30년째 약돌돼지 석쇠구이 정식을 파는 광성식당에서는 고추장 특제 소스에 재운 고기를 일주일가량 숙성한 뒤 주문 즉시 연탄불에 구워 낸다.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자글자글 익은 고기를 상추에 올리고 편마늘을 곁들이면 은은한 불 향과 함께 매콤 달콤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 탄광 시절 음식으로 족살찌개도 빼놓을 수 없다. 문경에서는 돼지 앞다리에 붙은 살코기와 껍데기를 묶어 ‘족살’이라 부른다. 족살찌개 전문점 메밀꽃에서는 족살에 돼지고기와 궁합이 좋은 능이버섯을 넣어 풍미를 더한다. 자작하게 끓인 찌개를 흰밥에 얹어 한술 뜨면 고소한 육즙과 짙은 능이버섯 향이 어우러지면서 칼칼한 국물이 입안을 개운하게 한다. 탄가루를 뒤집어쓴 광부들이 퇴근 후 둘러앉아 얼큰한 찌개 한 그릇 비우는 모습을 떠올리면 그 맛이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사라진 탄광의 모습을 디저트로 재현한 메뉴도 있다. 카페 소마의 은성탄광눈꽃빙수다. 검은 탄광을 축소해 놓은 듯한 흑임자 빙수에 석탄을 연상시키는 흑임자 인절미와 오색 젤리를 빙 둘러 장식하고, 볶은 메밀과 초코 크럼블을 올린다. 삽 모양 숟가락으로 빙수를 깊숙이 파면 안에 숨어 있던 팥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소한 흑임자와 달콤한 팥이 어우러진 빙수를 한 숟가락씩 떠먹다 보면 하루의 고단함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주소 경북 문경시 문경읍 새재로 918(광성식당), 신흥1길 11(메밀꽃), 가은읍 대야로 2426-4(소마)
문의 054-572-3466(광성식당), 054-553-9990(메밀꽃), 054-571-7475(소마)

3. 옛 간이역이 내준 쉼표
불정역 폐역 & 카페 가은역

불정역 인근 폐터널은 벽면이 창문처럼 뚫린 독특한 구조로, 햇살이 드는 시간에 신비로운 풍경을 빚어낸다.
카페로 변모한 가은역에 여행자들의 발길이 이어진다.
벽에 걸린 역장 제복과 승강장 간판이 옛 간이역 풍경을 떠올리게 한다.

탄광 주변 간이역은 광부와 석탄을 실은 열차로 북적이던 곳이었다. 그러나 석탄 산업의 쇠퇴와 함께 열차가 멈추고 철로도 차례로 폐선됐다. 이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옛 정취를 간직한 간이역은 그대로 남아 있다. 불정역과 가은역이다. 문경선의 시작점인 점촌역과 철로 자전거가 다니는 진남역 사이에 자리한 불정역은 1955년 경북 최대 탄광이었던 대성광업소의 석탄을 실어 나르기 위해 건립했다. 보통 간이역은 목조나 시멘트로 짓는데 불정역은 하부는 화강석으로, 상부는 영강 변에서 채집한 자연석으로 지은 석조 건축물인 점이 흥미롭다. 역사 앞 녹슨 철로는 형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성한 풀에 덮여 있고, 그 안에서 풀벌레가 뛰논다. 철로 앞에는 국토 종주 자전거길 인증 센터가 자리해 전국의 자전거 여행자가 이곳에 들러 스탬프를 찍고 평화로운 풍경 속에서 잠시 쉬었다 간다. 문경 에코월드에서 도보 5분이면 닿는 가은역은 1955년 문을 열어 은성탄광에서 캔 석탄을 실은 열차가 다니다가 2004년 운영을 마쳤다. 단층 건물에 삼각 모양의 박공지붕, 세로로 긴 수직 창문 등 1950년대 목조 간이역의 건축 형태를 간직해 2006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굳게 닫혔던 역사에 다시 불이 켜진 것은 2017년. 역사적·건축적 가치가 높은 가은역을 그대로 방치하기 아쉬웠던 주민들이 뜻을 모아 이곳에 카페를 열었다. 대표 메뉴는 가은역 크림 라테. 고소한 크림 라테 위에 문경 특산물인 사과로 만든 쿠키 크럼블을 올린다. 주말에는 스콘과 마들렌, 피낭시에 등 수제 디저트도 정성껏 구워 낸다. 공간 한쪽에 놓인 역무원 모자를 쓰고 가은역 앞 철길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어도 좋다. 기차가 떠난 철길에는 여행자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그 위에 새로운 추억이 하나둘 쌓여 간다.
주소 경북 문경시 불정강변길 187(불정역 폐역), 가은읍 대야로 2441(카페 가은역)
문의 054-571-2441(카페 가은역)

4. 숲과 하늘, 철길에서 즐기는
문경 액티비티

단산 활공장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 발아래로 백두대간과 고요리 일대의 집들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진남역에서 출발한 철로 자전거는 반환점인 구량리역을 찍고 돌아온다. 성문을 본떠 만든 건물이 이색적이다.
하늘로 솟아오른 클레이 접시가 총에 맞아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 짜릿한 쾌감과 함께 묵은 스트레스도 날아간다.
산악 바이크를 타고 굽이굽이 이어지는 숲길을 달리며 짜릿한 질주를 즐긴다.
단산 활공장에서 하늘로 날아오르기 직전, 긴장감이 극에 달해 심장이 벌렁거린다.

문경 하면 문경새재, 문경찻사발축제, 문경 사과 등이 먼저 떠오르지만, 사실 문경은 스포츠의 도시이기도 하다. 철로 자전거, 산악 바이크, 패러글라이딩 등 꽤나 다채로운 레포츠를 즐길 수 있다. 그중 철로 자전거는 과거 석탄을 나르던 기찻길을 달리는 액티비티다. 진남역에서 출발해 진남교반과 영강 변을 거쳐 구량리역까지 달리는 총 7.4킬로미터의 진남역 코스는 왕복 1시간 정도 걸린다. 자전거에 전동 보조 시스템이 탑재돼 큰 힘 들이지 않고도 가볍게 페달을 밟으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철로 자전거보다 더 빠른 속도감을 느끼고 싶다면 산악 바이크에 몸을 맡겨 보자. 6~7킬로미터의 오프로드 코스에 자갈길과 숲길, 철길, 물웅덩이가 쉼 없이 이어져 지루할 틈이 없다. 특히 ‘모래 파도 코스’에서는 굴곡진 모래언덕을 넘을 때마다 바이크가 거칠게 요동치며 스릴이 최고조에 달한다. 최근 이색 체험으로 떠오른 문경관광사격장도 놓칠 수 없다. 4종의 사격을 체험할 수 있는데, 그중 클레이 사격은 전국에 전문 시설이 열 곳이 채 되지 않는다. 하늘로 솟아오른 클레이 접시가 총에 맞아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 짜릿한 쾌감과 함께 묵은 스트레스가 단번에 날아간다. 공기 소총과 권총, 스크린 사격은 계절이나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초보자도 안전하게 경험할 수 있다. 하늘에서 문경의 산세를 감상하고 싶다면 패러글라이딩이 제격이다. 해발 866미터 단산의 활공장을 힘차게 달려 도약하는 순간, 몸이 붕 떠오르며 구름이 손에 잡힐 듯한 높이까지 금세 날아오른다. 발아래로는 백두대간의 웅장한 능선과 고요리 일대의 아기자기한 집들이 아스라이 내려다보인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기분. 땅에 발을 딛고 나서도 한동안 하늘에서 바라본 풍경이 아른거린다.
주소 경북 문경시 마성면 진남1길 155(문경철로자전거 진남역), 마성면 문경대로 1325(문경산악바이크), 사격장길 155(문경관광사격장), 문경읍 활공장길 122(문경패러글라이딩)
문의 054-553-8300(문경철로자전거 진남역), 054-554-3912(문경산악바이크), 054-553-0001(문경관광사격장), 1688-6707(문경패러글라이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