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에 문을 연 KT 온마루에서 전화기의 역사를 한눈에 살핀다. 전시관에는 소통 방식의 변천사도 함께 녹아 있다.

전화받는 모습을 표현하는 손동작으로 그 사람이 어느 시대를 살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손바닥을 귀에 갖다 대는 사람과 엄지와 새끼손가락만 펴서 귀로 가져가는 사람. 집이나 공중전화 부스에서 유선 전화기를 사용해 봤다면 두 동작을 모두 이해하겠지만,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을 이용한 세대에게는 후자의 동작이 낯설다. 또래 사이에서도 전화기 형태나 사용 방식이 구별될 만큼 한국의 통신 기술은 빠르게 발달했다. 그 변천사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KT 온마루를 찾았다. 전시관에 들어서니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방문 후기에서 본 것처럼 주제와 관련된 흥미로운 체험이 가득했다. 수신자와 발신자의 통화를 연결해 주는 전화 교환원이 되어 송수신 선을 조명이 켜진 포트에 꽂고, “용건만 간단히”라는 문구가 적힌 전화기 앞에서 다이얼을 돌리는가 하면, 송수화기를 손에 든 채 공중전화에 동전을 넣어 보기도 했다. 통신수단이 제한적이던 시절의 전화기는 지금보다 더 큰 의미를 지녔을 거다. 낯섦과 익숙함이 혼재하는 전시관에서 연결의 가치를 되새겼다.
시간의 회랑

한국 통신의 변천사를 살펴보는 상설 전시관이다. 덕수궁에 설치한 국내 최초 전화기 ‘덕률풍’부터 손가락으로 돌리는 다이얼 전화기, 동전을 넣어 이용하는 공중전화, 광고 음악을 연상시키는 추억의 스마트폰까지, 시대별로 다른 형태의 전화기를 한데 모았다. 전보 보내기, 공중전화 카드 키링 만들기, PC 통신 채팅방 접속하기, 삐삐 영수증 출력하기 등 흥미로운 체험도 마련되어 있다.

전신은 전류를 이용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통신 기술이다. 글자 수에 따라 요금이 부과되기 때문에 내용을 최대한 간략하게 전달하는 전보체가 사용됐다. 키오스크에서 용지 디자인을 선택한 뒤 엄마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입력했다. 앞날을 응원한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전보체로 변환하자 “당신의 내일 항상 응원함”이 되었다. 효율을 챙겼지만 예의가 생략된 문구 완성. 다시 변환하니 이번에는 “빛나는 나날 늘 당신 곁에”로 바뀌었다. 정해진 글자 수 내에서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고민했던 표어 짓기 대회가 떠오른다.

1990년대 PC 통신 서비스 ‘하이텔’ 이용자의 방을 재현한 공간에 들어섰다. 초기 PC 통신 시대의 채팅 문화가 궁금해 닉네임을 입력하고 채팅방에 접속하자 익명의 사람들이 “어솨요” “방가방가”라는 말과 함께 새로운 참여자를 반긴다. 채팅이 마무리될 즈음 한 명이 밤새 대화할 생각이 있냐고 묻고, 다른 이들이 “전화비 폭탄 맞는다” “통신비 때문에 밤에 몰래몰래 한다”고 답한다. 추천 답변을 참고해 “통신비 때문에 못 올지 모른다”고 보내니 해피엔드 님의 다정한 인사말이 돌아온다. “못 오셔도 괜찮아요. 전 그냥 가끔 여기서 기다릴게요.” 제한된 연결이 알 수 없는 애틋함을 만든다.

동전을 넣어 공중전화를 사용해 봤지만 카드는 낯설다. 궁금증을 안고 공중전화 카드 키링을 만드는 기계 앞에서 줄을 섰다. “용건만 간단히” “통화는 짧게 배려는 길게” “기다림의 미학” “언제 어디서나 이용 가능” 등의 문구가 적힌 디자인 중 고민하다가 “용건만 간단히”를 고르고 다이얼 전화기 스티커로 꾸며 완성했다. 당시에는 뒷사람을 위한 배려의 말이었지만, 과도한 통화로 피로를 느끼는 현대인에게도 필요한 문구 같다.

1982년에 출시한 무선 호출 서비스 ‘삐삐’를 통해 사람들은 짧은 숫자로 마음을 전했다. 알쏭달쏭한 삐삐 암호를 누른 뒤 영수증을 인쇄해 정답을 확인했다. 사랑의 표현도 여러 가지인데, 암호라서 그런지 화끈하고 강렬하다. 1010235(열렬히 사모해), 4486(죽도록 사랑해), 1 177155 400(I Miss You), 0000(당신은 나의 0순위)···. 11010은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서 보면 ‘흥’이 된다.

튀어나올 듯한 눈으로 관람객을 빤히 바라보는 이것은 바로 한국 최초의 전화기 덕률풍이다. ‘Telephone’을 발음이 비슷한 한자로 옮겨 덕률풍이라 불렀다. 수화기를 들어 귀에 대고 발전기 손잡이를 돌리면 이 전화기에 얽힌 흥미로운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덕률풍이 김구 선생을 살렸고, 고종이 무덤에 전화선을 설치해 세상을 떠난 어머니 신정왕후에게 예를 올렸다는 이야기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온다.
빛의 중정

빛과 미디어가 어우러진 몰입형 미디어 아트 공간. 1982년 세계에서 열 번째로 개발에 성공한 한국의 전화 교환기, TDX(Time Division Exchange)를 주제로 한 미디어 아트 영상이 펼쳐진다. 입장하기 전 키오스크에서 얼굴을 촬영하면 AI가 디지털 아트로 변환해 화면에 띄워 준다. 관람 후에는 QR코드를 통해 결과물을 다운로드할 수 있다.
이음의 여정

KT의 기술력을 살펴보고 이를 활용한 굿즈를 만들어 보는 공간이다. AI 라이브 드로잉 존에서 AI 기술로 완성한 그림을 인쇄해 에코백을 제작한다. 11미터 규모의 대형 LED 미디어 방명록에 방문 소감을 남기면 재방문 시 검색 기능을 통해 추억을 소환할 수 있다. 3~4개월 주기로 콘텐츠를 변경하는 팝업 형태로 운영한다.

전시관 개관을 기념해 한정판 굿즈를 마련했다. 1903년의 벽걸이형 자석식 전화기와 1977년의 시내 공중전화 형상을 딴 자석이다. 네이버 지도 ‘KT 온마루’에 응원 메시지를 남기면 수량이 소진되기 전까지 굿즈를 제공한다.

‘미래 도시’ ‘꽃’ ‘자연 풍경’ 중 원하는 테마를 골라 화면에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면 AI가 실시간으로 인식해 예술적인 그래픽으로 변환한다. 꽃 테마를 선택한 후 꽃잎과 수술을 그리고 잎사귀 두어 개를 더하니 세밀한 그림이 탄생했다. 리사이클 코튼 소재로 만든 가방 위에 근사한 작업물이 그대로 올라간다.

KT 온마루, 이런 곳이에요
지난해 12월 KT 광화문빌딩 West 2층에 체험형 전시 공간 ‘KT 온마루’가 문을 열었다. 온마루는 ‘모든’을 뜻하는 ‘온’과 ‘가장 높은 곳이자 중심이 되는 장소’를 뜻하는 ‘마루’라는 순우리말을 결합한 이름이다. 전시관은 ‘시간의 회랑(상설 전시)’, ‘빛의 중정(미디어 아트 전시)’, ‘이음의 여정(팝업 전시)’ 세 파트로 이루어졌다. 1885년 광화문 한성전보총국에서 시작된 한국의 정보 통신 역사를 훑으며 시대별로 다른 소통 방식을 경험하고, 기술 발전이 일상의 풍경을 어떻게 바꿨는지 알아본다. 매주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무료 개방하며, 사전 예약을 하면 국·영문 도슨트 투어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