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yle

안젤리나의 동묘 탐험

2026년 03월 01일

  • WRITER 송혜민(여행 칼럼니스트)
  • PHOTOGRAPHER 서세현

이 여행은 가장 한국다운 서울의 시간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온 친구 안젤리나와 함께 한국만의 빈티지가 살아 있는 서울 동묘 구석구석을 온종일 탐험했다.

아날로그의 매력, 헌책방과 레코드 숍

동묘 투어의 시작은 ‘없는 것이 없다’는 숭인풍물시장. 동묘공원을 지나 골목 깊숙이 들어서자 구제 의류부터 서적, DVD, 전자 제품, 자전거까지 온갖 종류의 물건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디스코나 트로트 CD를 장당 2000원에 파는 가판과 바닥부터 어깨 높이까지 책이 켜켜이 쌓인 헌책방이 안젤리나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골목에 빼곡히 늘어선 점포들을 구경하며 걷다가 하얀색 건물 2층에 자리한 예음레코드 앞에서 발길이 멈췄다. 서울 강남의 투라이온스 레코드 대표가 2024년에 새롭게 문을 연 곳이다. 벽면을 둘러싼 진열장에 올드 팝, 재즈, 록,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LP가 가득 채워져 있다. 오랜 시간 머물고 싶은 쾌적한 공간과 더불어 갖고 싶은 LP를 고민 없이 골라도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이 매력적이다. 안젤리나는 어릴 적 좋아했던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의 를 비롯해 명반을 찾는 재미에 푹 빠졌다. LP 마니아들 사이에서 ‘나만 알고 싶은 곳’으로 통한다고 하니, 아직 구하지 못한 음반이 있다면 예음레코드를 찾아가 봐도 좋겠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58길 41

흥미로운 골목 여행, 동묘시장

한 잔에 1500원인 냉커피와 막걸리, 1000원짜리 토스트 등 동묘시장을 걷다 보면 그냥 지나치기 힘든 갖가지 주전부리와 맞닥뜨린다. 식혜와 토스트, 달걀빵 등을 안젤리나와 한 입씩 나눠 먹으며 골목을 누비니 어느새 저녁 식사 시간이 가까워졌다. 우리가 선택한 곳은 동묘의 야장 맛집 ‘국수지짐이’. 동묘공원 돌담을 그늘 삼아 자리를 편 노포다. 플라스틱 간이 의자에 앉은 안젤리나가 능숙한 솜씨로 막걸리를 따라 마시며 안주를 기다린다. 막걸리의 흥취를 더해 주는 메뉴는 쫄깃한 면발을 자랑하는 국수와 노릇하게 구운 김치전. 푸짐하게 주문해도 2만 원을 넘지 않는 가격이 놀라울 따름이다. 한참을 먹고 마시다 보니 어느덧 좁은 골목에 노을빛이 스며들고 있다. 이제는 동묘의 밤을 즐길 차례. 동묘시장의 메인 거리, 동묘앞역 쪽으로 향했다. 주말과 공휴일 오후 12시부터 6시까지 보행 전용 거리로 바뀌어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차가 사라진 거리를 누비다 보면 나이 지긋한 어르신은 물론 빈티지 쇼핑에 나선 20~30대, 안젤리나와 같은 외국인도 제법 마주친다. ‘와우 유통’ ’백화점 썬그라스’ 등 손 글씨로 써 내려간 빛바랜 간판과 가판에 수북이 쌓인 잡동사니가 반세기 전 한국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숭인동 일대

리듬에 몸을 맡기는 시간, 빅테일

빅테일은 동묘의 주말 밤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곳이다. 좁은 골목에 비밀스럽게 숨어 있는 칵테일 바로, 매주 금·토요일 밤이면 라이브 공연이 열린다. 이 근방에서 젊은 아티스트의 라이브 공연을 감상할 수 있는 바는 빅테일이 유일하다. 국악을 전공한 소리꾼이 대표인데, 예술가들을 위한 무대를 마련해 재즈, 포크, 힙합 등 장르 가리지 않고 공연할 기회를 제공한다. 공연은 1부와 2부로 나뉘며, 2부는 대부분 오픈 마이크로 진행한다. 이때 관객들이 자유롭게 마이크를 잡고 공연에 참여한다. 운이 좋으면 대표의 국악 공연도 볼 수 있다. 놀이공원 콘셉트로 꾸민 실내와 어울리는 테마 칵테일도 매력적이다. 상어가 피를 뿜는 듯한 퍼포먼스가 곁들여지는 ‘상어의 습격’과 무려 4리터에 달하는 메가 사이즈 칵테일은 보는 것만으로도 입이 떡 벌어진다. 그 외에도 기본에 충실한 클래식 칵테일 100여 종이 준비돼 취향껏 선택할 수 있다. 한낮에 시작한 동묘시장 투어는 밤늦게야 끝이 났다. “파리를 빈티지 마켓의 도시라고들 하잖아요. 동묘도 파리의 빈티지 마켓 못지않게 매력적인 동네네요.” 걸음마다 다른 풍경이 펼쳐진 동묘. 외국인 친구의 시선을 따라 걸어서 더 낯설었는지도, 더 특별했는지도 모른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종로52길 43-17

안젤리나
프랑스 파리 출신의 콘텐츠 기획자로 한국살이 11년 차다. 전국의 맛집과 관광지 중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로 한국과 여행을 사랑하는 모험가다. 지도 앱에 빼곡히 찍힌 ‘즐겨찾기’ 표시만 봐도 한국에 대한 안젤리나의 애정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