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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유람 II

2025년 04월 25일

  • EDITOR 김수진
  • pHOTOGRAPHER 안홍범

세계문화유산의 도시, 경북 안동을 걷는다. 조선시대 조리서 ‘수운잡방’의 음식은 오늘의 식탁으로 이어지고, 한 시대를 이끈 큰 어른의 가르침은 우리 삶에 이정표가 된다.

안동의 큰어른들

다 큰 사람도 어른의 위로와 가르침이 필요하다. 조선 시대와 일제강점기, 21세기에 이르는 동안 안동의 큰어른이 되어 준 세 분을 만났다.

퇴계가 살아생전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지은 도산서당.

시대를 초월한 가르침, 퇴계 이황
퇴계 이황의 발자취를 만나러 도산면으로 향한다. 선생의 태실이 자리한 터와 종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 온 퇴계종택, 그리고 퇴계의 학문과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도산서원이 길 위에 나란히 놓여 있다. 서원이 들어선 자리는 더할 나위 없는 명당이다. 앞으로는 낙동강의 너른 물길이, 뒤로는 야트막한 산자락이 서원을 감싸 안는다. 풍수를 모르더라도 몸으로 그 조화로움이 느껴진다. 매표소를 지나 서원까지 이어진 흙길을 걷는다. 낙동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가볍고 청량하다.
서원은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다. 퇴계 이황이 살아생전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지은 도산서당과 퇴계가 세상을 떠난 뒤 제자들이 세운 도산서원이다. 이 중 도산서당은 1557년 퇴계가 구상해 1561년 완공한 소박한 집이다. 온돌방과 부엌, 퇴계가 머물던 완락재(完樂齋) 세 칸뿐인 공간. 그 작은 세계에서 선생이 전한 가르침은 헤아릴 수 없이 크고 깊다. 툇마루 옆엔 제자들이 몰래 살평상을 덧대 마루를 넓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스승의 엄격함과 제자들의 애정 어린 장난이 겹쳐진 따뜻한 장면이다.
도산서원은 퇴계가 세상을 떠난 지 3년 후인 1574년, 유생들과 제자들이 세웠다. 서당에서 계단을 따라 오르면 ‘참되게 도를 따르라’는 뜻의 진도문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 너머로 전교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조선 명필 한석봉이 쓴 사액 현판은 서원의 품격을 높여 준다.
도산서원은 단순한 유적지가 아니다. 조선의 학문과 교육, 정치와 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성리학 정신의 상징이다.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도산서원은 지금도 수많은 성리학 관련 고서와 목판을 간직하고 있다.

© 안동시 블로그(마카다 안동)

총과 펜을 쥔 독립투사,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광야 위에 새긴 이육사의 목소리는 지금도 바람을 타고 온다. ‘광야’ ‘절정’ ‘교목’ ‘광인의 태양’ ‘꽃’ 등 세상에 남긴 96편의 글. 그러나 이육사는 시인이기 전에 독립운동가였다. 이름 대신 ‘264’라는 수인 번호를 가슴에 달고 살았던 그는 글로도 총으로도 일제에 저항했다. 조국의 광복에 반평생을 바쳤고, 열일곱 번이나 옥에 갇히는 고난 속에서도 침묵하지 않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생은 해방을 1년 앞둔 1944년 겨울, 베이징 일본총영사관 감옥에서 쓸쓸히 눈을 감았다.
선생이 태어난 곳은 안동 도산면 원촌리. 깊은 산그늘 아래, 이육사문학관이 그의 이름을 안고 조용히 서 있다. 이육사 탄신 100주년을 맞아 2004년 문을 연 문학관에선 그의 시와 삶을 만날 수 있다. 문학관은 전시관인 ‘정신관’, 체험 교육을 위한 ‘생활관’, 그리고 복원된 생가 ‘육우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표소를 지나 정신관으로 들어서면 먼저 영상실을 만난다. ‘행동하는 민족시인 이육사’라는 제목의 12분짜리 영상을 보면 전시 공간이 비로소 하나의 시간처럼 다가온다.
정신관을 나서 산길로 접어들면 그리 높지 않은 언덕 위에서 이육사의 묘소와 마주하게 된다. 초라하리만큼 작은 봉분. 그 앞에 서면 누구라도 고개가 숙여진다. 정신관 왼쪽으로는 복원된 이육사의 생가 ‘육우당(六友堂)’이 있다. 여섯 형제가 함께 나고 자란 집. 그 시절의 풍경이 오롯하다.

이육사 선생의 시에서 이름을 가져온 264청포도와인 4종.

이육사문학관에서 멀지 않은 곳엔 이육사 선생의 시에서 이름을 딴 ‘264청포도와인’ 양조장이 있다. 국내 개발 청포도 품종인 청수로 와인을 빚는데 풍부한 과일 향과 은은한 산미가 특징이다.
청수 단일 품종을 껍질째 발효시키는 제조 방식도 특별하다. “껍질에서 나오는 거칠고 투박한 풍미가 이육사의 시처럼 단단한 인상을 남깁니다. 그 떫은맛이 흡사 이육사 시인의 정신을 닮은 듯해요.”
264청포도와인 이동수 대표의 말이다. 8년에 걸쳐 재배부터 숙성, 품질 테스트까지 마친 그의 와인은 ‘베를린 와인 트로피’를 비롯해 국내외 와인 대회에서 수차례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264청포도와인의 와인은 이름도 이육사 선생의 시 <광야>, <절정>, <꽃>,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에서 빌려 왔다. 이 중 가장 인기 있는 와인은 미디엄 드라이 화이트 와인인 ‘절정’. 잘 익은 과일 향과 싱그러운 풀 내음이 기분좋게 퍼지고, 깔끔한 산미가 혀끝을 감싼다.
복잡하지 않으면서도 깊이 있는 맛. 테이블 와인은 물론 선물용으로도 훌륭하다. “와인에 머무르지 않고 ‘264’ 브랜드로 브랜디도 만들 계획이에요. 우리 입맛에 맞는, 그리고 우리 이야기와 어울리는 술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 대표의 말처럼, ‘절정’은 시처럼 빚어진다. 잔 속엔 말로 다하지 못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그 이야기는 천천히 입안에 스며든다.

폐교를 리모델링한 권정생동화나라는 권정생 작가의 작품 세계를 면밀히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방과 도서관도 마련되어 있다.

세상 모든 강아지똥에게, 권정생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강아지똥이 민들레꽃을 피우는 거름이 되듯, 세상의 낮고 외로운 자리에서 가장 따뜻한 이야기를 써 내려간 사람이 있다. 동화 <강아지똥> <몽실언니> <엄마 까투리> 등을 쓴 아동문학가 권정생 선생의 삶은 비록 가난과 투병의 연속이었지만, 그의 동화 속 아이들은 늘 밝고 씩씩하다. 선생을 만나러 안동 일직면에 위치한 권정생동화나라로 향한다.
폐교된 일직남부초등학교를 개보수해 2014년 8월 개관한 동화나라. 이곳에서 방문객을 가장 먼저 반기는 건 벽면 가득 메운 책 표지와 삽화, 그리고 애니메이션 <엄마 까투리>의 4남매, 마지·두리·세찌·꽁지 인형이다. 복도에는 권정생 작가의 대표작과 사진, 작품 해설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하나하나 바라보다 문득 ‘밭 한 뙈기’라는 시가 적힌 액자 앞에서 발걸음이 멈춘다. “… 밭 한 뙈기/ 돌멩이 하나라도/ 그건 ‘내’ 것이 아니다/ 온 세상 모두의 것이다”. 이름이 알려진 뒤에도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고, 세상의 낮고 작은 것들을 기꺼이 품었던 작가의 마음이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전시실 안쪽으로 들어서면 그를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다. 육필 원고와 일기장, 학창 시절의 생활기록부, 병마와 싸우던 시절의 의료 기구, <강아지똥>으로 받은 첫 상장, 인터뷰 영상, 그리고 그가 남긴 두 통의 유언장 등이 전시되어 있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은 것이니, 여기서 나온 인세는 어린이들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 제 예금통장이 다 정리되면 나머지는 북쪽 굶주리는 아이들에게 보내 주세요. 제발 그만 싸우고, 그만 미워하고 따뜻하게 통일이 되어 함께 살도록 해 주십시오.” 삶의 마지막까지도 아이들의 동무로 남고자 했던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권정생동화나라에서 차로 10분, 그의 생가로 발길을 옮긴다. 작고 허름한 흙집. 문 위엔 ‘권정생’이라 적힌 종이 문패가 걸려 있다. 마당에는 유일한 가족이던 강아지 ‘뺑덕이’의 집이 남아 있고, 집 뒤로는 그가 사랑하던 빌뱅이 언덕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좁은 방 하나, 누울 자리 하나뿐이었던 집에서 그는 100여 편이 넘는 동화와 시를 썼다. “좋은 동화 한 편은 백 번의 설교보다 낫다.” 천 번 만 번 맞는 말씀이다.

안동시티투어 버스
안동의 주요 관광지를 알차게 둘러볼 수 있는 안동시티투어 버스가 매주 금·토·일요일에 운행한다. 요금은 1만 원. 입장료와 식사, 여행자 보험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월영교와 낙강물길공원, 안동댐 정상, 주토피움, 웅부공원과 임청각, 안동찜닭 골목 등을 둘러보는 주간 도심 코스와 안동갈비 & 찜닭 골목, 영호루, 낙동강 음악분수, 월영교 야경, 웅부공원을 방문하는 야간 도심 코스 두 가지로 운영된다. 희망 장소에서 자유롭게 승하차도 가능하다. 출발 장소는 KTX 안동역과 안동버스터미널. 홈페이지 또는 전화 예약도 가능하다. 잔여석에 한해 당일 현장 구입도 할 수 있다.
문의 www.gbtour.kr

안동관광택시
안동관광택시를 이용하면 안동을 편하고 알차게 둘러볼 수 있다. ‘2025 경북 방문의 해’ 기념으로 2만 원 할인 혜택이 제공되며, ‘안동 여행가는 달’인 4~6월, 12월에는 추가로 3만 원 더 할인 해 준다. 웰컴 키트로 안동 특산품도 제공된다. 최소 5시간에서 최대 7시간 이용할 수 있으며 4인승 또는 12인승 차량 중 선택 가능하다.
문의 andongtourtaxi.com

다시, 안동
권기창 안동시장

‘착한 관광, 안동으로 여행 기부’ 캠페인을 전개 중인 안동시청. 권기창 안동시장에게 안동의 봄 관광 코스와 추천 음식에 대해 물었다.

지난 3월 산불로 안동 역시 피해가 컸습니다.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해 올 상반기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불행 중 다행히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 도산서원, 봉정사와 만휴정 등 안동의 주요 관광지는 많은 분의 헌신과 노력 덕분에 큰 피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산불 발생 지역’이라는 인식 탓에 안동을 찾는 발걸음을 머뭇거리는 현실이 안타까워요. 지금 필요한 건 다시 여행자를 맞이하는 일입니다. ‘여행으로 기부한다’는 마음으로 안동을 찾아 주신다면, 안동의 일상 회복도 그만큼 빨라질 것입니다. 올 상반기 ‘착한 관광, 안동으로 여행 기부’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어요. 안동시티투어, 안동관광택시 할인 이벤트를 비롯해 KTX 이용객을 위한 유네스코 안동세계유산 기차여행 운영, 전통주 체험 행사, 수도권 지역 안동 관광 홍보 행사 등을 선보입니다. 단체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여행사 인센티브도 100퍼센트 증액했습니다.

5월은 ‘가정의 달’이자 ‘계절의 여왕’이지요. 안동에서 가장 아름다운 봄 여행 코스를 소개해 주세요.
안동에는 많은 명소가 있지만,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은 늘 그 자체로 완벽한 여행지입니다. 부용대에 올라 하회마을을 내려다보며 봄바람 속에 잠시 멍하니 머무는 시간은, 바쁜 일상 속 큰 위안이 될 겁니다. 병산서원 만대루에 앉아 눈을 감고 자연의 숨결을 느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한국국학진흥원을 추천합니다. 세계기록유산전시체험관과 유교문화박물관에서는 한국 전통문화의 뿌리를 배우고 느낄 뿐 아니라, 아름다운 전망까지 즐길 수 있습니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바라보면 안동호에 비친 산의 모습이 마치 ‘누워있는 용’의 형상을 닮은 산세를 지녔어요. 만물이 소생하는 5월, 자연의 정기를 받기에 여기보다 더 좋은 장소가 있을까 싶습니다.

평소 걷는 것을 즐기신다고 들었습니다. 안동의 걷기 좋은 코스를 소개해 주세요.
봄이 오면 안동은 걷기 좋은 도시로 변모합니다. 안동호반길을 따라 걷다가 월영교를 지나 낙강물길공원까지 이어지는 코스는 저만의 힐링 루트죠. 도산서원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예끼마을과 선성수상길을 따라 걷는 코스도 추천합니다. 부처님오신날 즈음에는 봉정사를 찾아도 좋아요. 그윽한 산속 숲 내음을 깊이 들이마시고, 송강미술관에서 전시를 감상하며 편안하게 휴식하는 시간도 여행에 꼭 필요합니다.

안동의 먹거리는 무엇 하나 고를 수 없을 만큼 훌륭하죠. 시장님의 추천 메뉴가 궁금합니다.
안동을 대표하는 음식으로는 찜닭, 간고등어, 갈비, 국시, 헛제삿밥 등이 있습니다. 진짜 안동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이중 안동국시와 헛제삿밥을 권하고 싶어요. 안동에서 먹는 국시는 밀과 콩가루로 반죽한 면을 사용합니다. 맑은 육수는 담백하고 시원해서 자꾸 손이 가죠. 여기에 양념간장을 곁들이기도 합니다. 헛제삿밥은 제철 산나물에 간장과 참기름으로 간을 맞춘 안동의 건강한 음식입니다. 심심하지만 깊은 맛, 잔잔하게 오래 남는 여운이 있지요. 고향사랑기부제를 통해 안동에 기부하시고 우수한 품질의 안동 특산물을 답례로 받아 가는 것도 안동을 맛보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안동이 ‘2026 동아시아문화도시’에 최종 선정되었습니다. 어떤 콘텐츠를 준비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안동은 오랜 시간 인문 정신 문화의 맥을 지켜 온 도시입니다. 이런 깊이 있는 문화가 2026 동아시아문화도시 선정을 이끌었다고 생각합니다. 안동시는 ‘우리의 안녕한 동아시아’라는 비전 아래 ‘평안이 머무는 곳, 마음이 쉬어 가는 안동’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어요. 사유와 성찰이 있는 정신 문화, 재미와 감동이 있는 놀이 문화, 이야기와 정성이 담긴 음식 문화, 그리고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문화유산이라는 네 가지 핵심 가치를 담아 서로 다른 문화가 어우러지고, 함께 배우며 성장할 수 있는 문화 공감의 장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향후 개막식을 시작으로 동아시아 청소년 기후 위기 인문·예술 캠프, 동아시아 탈전시·체험 프로그램, 접빈과 풍류가 있는 저녁 프로그램, 동아시아 종이·문자 비엔날레 등 다채로운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에요. 한·중·일 3국 간 국제문화 교류는 물론 문화, 예술, 관광이 한데 어우러지는 지속 가능한 문화 도시 안동의 새로운 얼굴을 만들어 가는 여정이 펼쳐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