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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안경 들고 도시 탐조 산책

2025년 11월 01일

  • EDITOR 신송희
  • PHOTOGRAPHER 김은주

아파트로 둘러싸인 도심에서도 동박새나 홍여새 같은 새를 볼 수 있을까. 국내 1호 탐조책방을 운영하는 박임자 대표와 함께 경기도 수원으로 도시 탐조에 나섰다.

아파트 뒤쪽 나무에 달려 있는 인공 새집을 박임자 대표와 함께 모니터링하고 있다.

노랑지빠귀, 뿔논병아리, 원앙, 큰고니 등 도시에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새들이 산다. 이들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새를 관찰하는 탐조 인구가 늘면서부터다. 특히 코로나19 시기에 도시 탐조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사람 간 만남이 줄어들면서 도시의 소음과 불빛이 줄었고 생태 환경이 차츰 복원된 결과였다.
박임자 대표가 운영하는 ‘아파트 탐조단’이 생긴 것도 이때다. 10년간 심리 치료 상담사로 일하던 박 대표는 2015년 우연히 생태관에서 진행한 탐조 교육 프로그램에서 직박구리의 매력에 빠져 탐조에 입문했다. 처음 5년은 계절마다 찾아오는 철새를 쫓으며 자연 탐조를 즐겼다. 그러다 2020년 탐조 환경에 변화가 찾아왔다. 코로나19로 대면 상담이 어려워지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것. 공백기의 답답함을 달래고자 카메라와 쌍안경을 들고 아파트 단지를 한 바퀴 돌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오색딱따구리, 곤줄박이, 박새 등 하루 동안 다양한 새를 만났고, 아파트에도 새가 많이 산다는 걸 알게 됐다.
그날 이후 자연 관찰 기록 플랫폼인 ‘네이처링’에 ‘아파트 탐조단’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매일 아파트 단지에서 만난 새를 기록했다. 처음 1년간 만난 새만 무려 47종에 달했다. 아파트에서도 탐조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너도나도 탐조에 동참했고, 아파트 탐조단 활동도 확대됐다. “집 주변에 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일상을 새롭게 보는 즐거움이 생겼어요.” 도시 탐조의 매력은 어떤 걸까. 직접 느껴 보기 위해 지난 10년간 탐조를 해 온 박임자 대표를 만났다.

새들은 가는 나뭇가지를 비롯해 땅에 떨어진 깃털과 사람이 버린 비닐 등을 가져다 둥지를 짓는다.
새집 안에서 새가 가져다 놓은 푸른 깃털을 발견했다.

아파트에 둥지 튼 새
첫 번째로 향한 곳은 인공 새집이 모여 있는 한 아파트 단지. 박 대표는 아파트 탐조를 시작한 첫해 겨울에 박새와 참새, 곤줄박이 등 작은 구멍에 둥지를 짓고 새끼를 키우는 새들을 위해 인공 새집을 달았다. 아파트 뒤쪽 나무들에는 10여 개의 인공 새집이 띄엄띄엄 매달려 있다. 상자는 박새나 참새가 드나들 수 있도록 조그만 구멍이 뚫린 모습이다. 덮개를 옆으로 여는 정사각형 새집, 초록 덮개가 달린 직사각형 새집 등 저마다 모양과 크기가 달라 호기심을 자극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처음엔 버려진 새집을 달았어요. 그런데 진짜 새가 들어온 거예요. 그때부터 새에게 맞는 집을 고민했죠. 덮개가 없는 폐쇄형은 청소하기 어렵고, 덮개가 옆에 달린 형태는 열어 보는 이가 많아 놀란 새끼가 날아가거나 둥지 재료가 빠져나왔어요.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정착한 것이 덮개를 위로 여닫는 형태예요.”
새가 오래도록 안전한 환경에서 살게 하려면 인공 새집을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새들이 입주했고, 번식은 잘 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는 모니터링은 물론, 새들이 떠나면 둥지를 털어 내는 청소도 해야 한다. 새집을 나무에 고정하는 스프링이 떨어졌다면 제자리에 걸어 두기도 한다.
박 대표의 시선을 따라 새집을 하나씩 들여다봤다. 참새가 지으려다 만 집, 새 대신 거미가 진을 치고 사는 집 등이 보인다. “참새는 아무거나 가져다 놔요. 깃털이 하나도 없으면 여름에 집 짓기를 시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새가 집 안에 둔 것을 보고 어떤 새가 다녀갔고 어떤 계절에 지으려고 했는지 알 수 있다니 신기하고도 흥미롭다.
또 다른 새집에는 이끼와 솜을 이용해 밥그릇 모양으로 쌓은 둥지가 놓여 있다. “새가 둥지를 지었다 떠난 자리예요. 새로운 새를 맞이하려면 안을 비워야죠.” 박대표가 길고 굵직한 나뭇가지를 가져다 새집 안을 털어 낸다. 짙은 회색, 주황빛 도는 갈색, 흰색 등 다채로운 빛깔의 깃털부터 심지어 텃밭 비닐과 담뱃갑 비닐까지 쏟아져 나온다. “새들은 쌀쌀한 시기에 새끼를 키우기 위해 땅에 떨어진 깃털과 사람이 버린 비닐도 가져다 보온재로 활용해요.” 갖가지 재료로 차곡차곡 성실하게 지은 집을 보며 지난봄과 여름에 무럭무럭 자라났을 새끼 새를 상상해 본다.

서호엔 쇠백로와 중대백로, 흰뺨검둥오리 등 다양한 물새가 산다.

서호에서 마주한 새가 사는 세상
아파트 인공 새집 모니터링을 마치고 서호로 향했다. 수원 화성을 기준으로 서쪽에 위치해 서호라 불리는 이곳은 도서 <우리나라 탐조지 100>에서 서른 번째 탐조지로 소개된 곳이다. 서호에 다다르니, 저 멀리 나란히 서 있는 고층 아파트 단지 앞으로 우거진 나무와 너른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탐조 방법은 간단하다. 눈앞에 보이는 새를 관찰하거나, 주변에서 새소리가 들리면 그쪽을 향해 쌍안경을 들어 올리면 된다. 어떤 새인지 궁금하다면 도감을 확인한다. 본격적인 탐조 전, 먼저 박 대표를 따라 쌍안경을 더듬더듬 만지며 사용법을 익힌다. 두 눈을 쌍안경에 갖다 댄 뒤 두 개의 화면이 하나로 겹칠 때까지 두 눈 사이를 좁힌다. 이어 손가락으로 조리개를 돌리면 흐릿하던 장면이 선명해진다.
또렷해진 동그라미 안에 처음으로 포착된 새는 호수 가운데 작은 섬에 자리한 민물가마우지다. 바로 옆 나뭇가지에는 회색 왜가리가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자세로 앉아 있다. 새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는 따로 있다. 바로 서호의 하천 합류 지점에 놓인 어도(漁道). 물고기가 지나다니는 길로, 먹이를 찾는 새에게는 천국 같은 곳이다. 긴 다리를 뽐내는 중대백로와 발가락이 샛노란 쇠백로가 예리한 눈빛으로 물속을 들여다보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이번에는 새싹교를 건너다가 바로 아래에서 목욕을 즐기는 주황색 다리의 흰뺨검둥오리 두 마리를 만난다. 수중에서 날갯짓하며 머리를 물속에 담갔다 올리기를 반복하더니, 물가로 올라와 부리로 목, 옆구리, 날개깃 사이를 콕콕 쑤신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깃털에 기름칠을 하는 거예요. 보통 새 꽁지에서 기름이 나오는데요. 목욕하고 난 뒤 축축해진 깃털을 기름칠한 부리로 가지런히 정리하는 거죠. 물에 뜨기 위한 생존 방식이에요.” 다종다양한 새의 행동 양식을 유심히 살펴보니 새들이 사는 세상을 조금은 이해하게 된다.

한낮 오후에 목욕을 즐기는 흰뺨검둥오리.

도심 속 새를 위한 작은 노력
서호에서 마음껏 물새를 탐조한 후 박 대표의 공간인 탐조책방을 둘러보기로 했다. 서호공원에서 도보 5분이면 닿는 탐조책방은 농민회관 제1별관 210호에 입주해 있다. 책방 건물에 다다를 때쯤, 그가 갑자기 방향을 틀어 책방 앞 마당으로 안내한다. 마당에는 논화분과 해바라기, 도깨비풀, 목화 등 서로 어울리지 않는 식물이 자라고 있다. 단순한 관상용이 아닌 새들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심은 것으로, 그중 화분에서 벼가 자라는 논화분이 유독 눈에 띈다.
“겨울철에 부족한 물과 먹거리를 채워 줄 방법을 고민하다가 지난해 겨울, 2리터짜리 생수통에 씨앗을 채운 먹이대와 논화분을 책방 앞 마당에 놓아 두었어요. 수경 식물인 벼는 광합성을 통해 물을 정화하죠. 깨끗해진 물은 새들에게 옹달샘이 되어 줘요.” 아니나 다를까, 하루만에 논화분의 물이 마르고 먹이대 한 통이 빌 정도로 새들이 많이 찾아왔다.
이후로 새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씨앗을 심었다. 해바라기 씨앗은 방울새와 참새가 즐겨 찾는 먹이가 되었고, 목화씨에서 피어난 목화솜은 곤줄박이의 폭신한 둥지 재료로 활용됐다. 적막하던 책방 앞 마당은 새뿐 아니라 벌과 나비도 찾아오는 생기 가득한 곳이 되었다. 이름도 ‘새가 오는 정원’이다.
새와의 우연한 만남을 기대하던 그때, 쇠박새 하나가 해바라기를 향해 날아온다. 부리로 검은 씨앗만 쏙 빼서 날아가더니 바로 옆 나뭇가지에 앉아 씨앗을 까먹는다. “조금 있으면 또 올 거예요.”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쇠박새가 다시 날아온다. 이후로도 몇 번을 오가고 나니 쇠박새가 다녀간 해바라기에 노랗게 파인 자리가 점점 더 넓어진다. 그 모습에 뿌듯하다는 듯 박 대표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작고 아담한 탐조책방엔 새와 관련한 책과 아기자기한 새 굿즈가 가득하다. 그야말로 ‘새의 세상’이다.

탐조의 매력 속으로, 탐조책방
쇠박새를 뒤로하고 탐조책방 안으로 들어섰다. 작고 아담한 공간에서 방문객을 제일 먼저 맞는 건 큰고니를 닮은 인형. 천장에 매달린 참매와 청둥오리 모형도 인사를 건넨다. 한쪽 벽면에는 <찌르레기의 노래> 같은 새를 주제로 한 그림책부터 새들의 행동 양식을 재밌게 풀어낸 만화책, 새들의 생태를 다룬 새 도감 등 새와 관련한 책이 가득 꽂혀 있다.
반대쪽에는 엽서, 배지, 인형 등 새 굿즈가 모여 있다. 그중 단연 인기 코너는 박 대표의 어머니인 맹순 씨가 그린 새 그림엽서다. 아파트에서 관찰한 새를 그린 엽서를 손주들에게 세뱃돈과 함께 주던 것이 시초였다. 엽서에는 색연필로 칠한 알록달록한 새 그림과 할머니가 손주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이 담겨 있다. “정훈이 아프지 않는 게 할머니 소원이야” “연우야 막내로 예쁘고 건강하게 커 줘서 고맙다” 등 엽서에 적힌 글귀에서 손주를 향한 할머니의 사랑이 듬뿍 느껴진다.
박 대표는 책과 굿즈를 판매하는 것은 물론, 탐조 문화를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다양한 생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새를 OO하는 시간’이 대표적으로, 검은머리물떼새의 형상을 뜨개질하는 ‘물새를 뜨는 시간’, 탐조 후 새의 생김새를 그리는 ‘새를 그리는 시간’, 나무를 깎아 새를 만드는 ‘새를 깎는 시간’ 등이 있다. “새를 뜨고, 그리고, 깎는 행위는 새를 깊이 있게 관찰하는 과정이기도 해요. 박새를 그리고 색칠하면서 박새의 등이 청록색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거든요.”
이처럼 도시 탐조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일이다. 동시에 새가 처한 상황과 우리가 사는 도시의 환경을 함께 살펴보는 일이기도 하다. “새에 대한 애정이 생기면 좋아하는 새가 위험에 처했을 때 기꺼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새가 둥지 틀 곳이 없으면 인공 새집을 달아 주고, 물 마실 곳이 없으면 물 한 그릇을 놓아 둘 수 있는 마음을 갖게 되는 거죠.” 박 대표에게서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박 대표의 어머니인 맹순 씨 그림으로 만든 ‘아파트 새 지도’. 2020년 한 해 동안 아파트에서 관찰한 새 47종의 그림이 담겨 있다.

박임자 대표가 알려 주는 탐조 방법

“아파트 단지, 근처 공원 등 가까운 곳부터 시작해 보세요. 새들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쌍안경을 사용해 멀리서 바라보는 건 필수랍니다. 새의 정체가 궁금하다면 <화살표 새 도감>이나 <한국의 새> 같은 새 도감을 찾아봐도 좋아요. 탐조 후엔 관찰한 내용을 꼭 기록해 보세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새의 생김새와 행동을 떠올리며 그려 보면 다음에 같은 새를 만났을 때 단번에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