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의 8월은 불빛이 꺼지지 않는 화려한 행사가 열리는 달이다. 과거와 현재, 미래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콘셉트의 ‘대전 0시 축제’처럼 지역 곳곳을 누볐다.
나를 돌아보는 발걸음
대청호의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고, 상소동 산림욕장 돌탑 앞에서 소원을 빈 후 계족산 황톳길을 맨발로 밟으며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한다.


명상정원에서 다잡는 마음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면 물을 찾아 떠났다. 바다는 역동적인 움직임을 만들어 부정적인 감정을 씻어 낸다면, 호수는 잔잔한 물결로 생각을 차분히 정리하게 돕는다. 평정심을 되찾기 위해 대전에서 첫 번째 목적지를 대청호로 정한 이유다. 대청호는 대전과 충북에 걸쳐 있는 인공 호수로, 한국에서 세 번째로 담수량이 많은 호수로 알려졌다. 호수 변을 따라 조성한 대청호 오백리길의 4구간 호반낭만길 시작점에서 출발해 덱 길을 따라 쭉 걸었다. 노모가 탄 휠체어를 밀어 주며 농담을 주고받는 중년 남성, 유아차에서 꾸벅꾸벅 조는 아이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는 엄마 등 이동의 제약 없이 풍경을 감상하는 이들이 주변을 스쳐 지나간다. 둘레길 입구 안내판에 쓰인 것처럼 열린관광지 조성 사업 지원을 받아 모두의 관광 편의를 위해 시설을 개선한 덕분이다.
20분쯤 걸으면 호수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명상정원이 나온다. 드넓게 펼쳐진 푸른 호수와 흰 모래가 어우러져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물 높이에 따라 모래곶 또는 섬이 되는 일명 ‘홀로섬’이 신비로운 느낌을 더한다. 처음에는 이곳이 드라마 <슬픈연가> 촬영지임을 알리는 푯말만 꽂아 놨다가, 2020년에 돌담과 장독대, 대청마루 등 대청댐 건설로 수몰된 마을의 모습을 담은 조형물을 설치했다. 흔들의자와 벤치도 넉넉하게 마련해 잠시 쉬어 가기 좋고, 아예 돗자리를 챙겨 와 여유롭게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거위 가족도 일사불란하게 호수 위를 헤엄치며 생기를 더한다. 명상정원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꽥꽥 소리를 내어 인사를 건네는 듯하다.
호반낭만길 시작점으로 돌아가는 길에 높이와 방향이 서로 다른 사진기 두 대가 놓여 있다. 혼자 산책하러 온 사람도, 가족 단위 방문객도 모르는 이에게 사진 촬영을 부탁할 필요가 없다. 원하는 프레임을 선택하고, 화면 아래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5초 후 사진이 찍힌다. 대청호를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바로 전송된다. 고요하기만 한 줄 알았던 호숫가 에는 생각보다 배려가 넘쳤고, 온기가 가득했다.

염원이 깃든 상소동 산림욕장
이번에는 숲의 치유력에 기대려고 발걸음을 옮긴다. 대전 동구에 위치한 상소동 산림욕장에 도착하자 맑은 기운을 받으러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걸은 뒤라 울창한 메타세쿼이아가 내주는 그늘 아래 자리한 정자에 몸을 눕혔다. 온몸의 힘을 풀고 호흡에 집중하자 높낮이가 다른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백색소음 같은 풀벌레 소리, 일정한 리듬으로 방문자를 반기는 새의 노랫소리, 등산객의 발에 채인 작은 돌이 굴러가는 소리, 꺄르륵 멈추지 않는 아이의 웃음소리, 돌탑이 생각보다 근사하다며 친구와 전화로 속삭이는 소리···. 그동안 무심코 지나친 소리와 풍경이 얼마나 많았던 걸까.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는 존재들의 소리에 평상시와 다르게 주의를 기울였다.
상소동 산림욕장에는 이국적인 돌탑을 보기 위해 찾아온 관광객도 많다. 400기가 넘는 돌탑 중 유독 눈길을 끄는 17기의 독특한 조형물은 사실 한 사람의 작품이다.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이덕상 할아버지는 청년 시절 농한기인 겨울에 바위를 깨뜨려 6년간 돌탑을 만들었는데, 고향을 떠난 후 그가 쌓은 탑들이 산사태를 막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이후 대전 동구청이 주최한 돌탑 쌓기 캠페인에 참여한 그는 망치로 세심하게 돌을 다듬어 17기의 탑을 완성했다. 모두의 평안을 기원하며 희망탑이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정교하게 세운 탑은 하나하나 개성이 뚜렷해 혼자 설계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다. 돌과 돌이 연결된 짜임새가 헤링본 무늬 같아 이색적이고, 돌 표면에 드리운 나무 그림자가 바람에 일렁여 자꾸만 시선이 간다. ‘한국의 앙코르와트’라는 수식어가 붙었다는 게 납득이 가는 풍경이다. 찬찬히 둘러보니 어떤 탑은 꼭대기에 솔방울 장식이 있는 것 같고, 케이크 시트 위에 여러 개의 초를 올린 듯한 형태의 탑도 보인다.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돌탑을 쌓고 소원을 빌었다는 점에 착안해 촛불 모양으로 제작했을까. 제작자의 의도를 상상하며 ‘케이크 탑’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잠시 눈을 감아 보았다.

계족산 황톳길에 찍힌 수많은 발자국
충분히 휴식을 취했으니 이제 대전 땅을 제대로 밟아 볼 차례다. 산줄기가 닭의 발을 닮은 계족산에는 14.5킬로미터에 이르는 전 구간에 붉은 황토가 깔려 있다. 2006년 대전·충남 지역 소주 브랜드인 선양소주 조웅래 회장이 계족산을 맨발로 걷고 나서 숙면을 취했고, 다른 이들과 건강을 챙길 방법을 공유하고자 계족산에 황토를 깔아 전국 최초의 숲속 맨발 길을 만들었다. 매년 전북 김제와 익산에서 2000톤의 새 흙을 가져와 교체하면서 20년 가까이 관리해 오고 있다.
황토에는 인체에 유익한 미생물이 많아 혈액순환 촉진, 스트레스와 피로 해소 등의 효능이 있다고 알려졌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으러 온 사람들이 등산로 입구에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 놓고, 바지를 걷어 올린 뒤 천천히 오르막길을 걷는다. 황톳길은 두 명이 나란히 걸으면 딱 맞을 정도로 폭이 좁다. 한 집에 살아도 서로 맨발을 유심히 들여다볼 일은 없어서인지 가족들이 두 발을 한데 모아 ‘발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도 재미있다.
이런 모습을 구경하며 쭉 올라가다 보면 계족산 황톳길의 하이라이트라고 부를 만한 황토 머드 체험장이 나타난다. 진흙의 미끄러운 촉감이 어색해 웃고, 머드장을 나오면서 발을 헛디뎌 또 한 번 웃는 상황이 이어진다. 제각각 다른 아이들의 표현도 흥미롭다. 겁이 많은 동생은 형에게 어떤 느낌이냐고 여러 번 물어보고, “황토가 피부에 좋대” “초콜릿 같아, 초콜릿”이라고 말하는 친구들은 이 순간이 마냥 즐겁다. “이대로 마르면 황토 양말이 되는 거야.” 딸아이의 귀여운 상상력에 온 가족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한다. 계족산에서 내려오는 길, 문득 뒤를 돌아보니 발자국이 따라오고 있다. 내가 여기에 살아 있음을 분명하게 알려 주는 생생한 흔적이다.
대청호와 브런치 산책
경치 좋은 곳에서 먹는 음식은 더 맛있게 느껴진다. 대청호가 내려다보이는 브런치 카페 세 곳을 찾았다.

레이크뷰
호수를 연상시키는 푸른색의 야외 테라스가 손님을 맞이한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시금치 피자. 얇은 오징어 먹물 도우에 시큼한 발사믹 소스와 토마토를 더해 피클을 함께 먹지 않아도 느끼함이 없다. 시원한 맥주를 곁들이면 끝 맛이 더욱 깔끔하다. 식사 메뉴 외에도 설탕과 소금을 최소로 사용한 빵과 케이크를 판매해 출출한 속을 달래기 좋다. 3층 루프톱과 연결된 계단을 올라가면 또 다른 루프톱이 나온다. 더 높은 곳에서 대청호를 바라보고 싶은 이에게 추천한다.
주소 대전시 동구 회남로275번길 197-6
문의 042-272-8401

롤라
숨은 동네 빵집을 모은 지도 ‘빵빵도시 대전 동구’에 소개된 카페다. 향이 진하고 고소한 피스타치오 티라미수가 가장 인기가 많고, 망고 말차 크림 라테와 피스타치오 크림 코코넛 라테는 봄과 여름에만 준비한다. 롤라는 A, B, C동 세 건물로 이루어졌고 C동 3층에 루프톱을 조성했다. 일부 공간은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하고, 강아지용 디저트 멍스크림도 있다. 잔디가 깔린 정원은 사람과 동물이 어우러져 자유롭게 놀거나, 여러 각도에서 호수를 감상할 만큼 충분히 넓다.
주소 대전시 동구 회남로275번길 123
문의 0507-1380-9522

비스트로 팡시온
레이크뷰에서 2분 거리에 위치한 음식점으로, 바질 토마토 치즈 파니니와 게살 로제 파스타 등 배를 든든히 채워 줄 메뉴가 여럿이다. 그중 셰프가 권하는 몽골리안 해물덮밥에는 새우, 오징어, 관자 등 해산물 외에도 숙주와 부추를 푸짐하게 넣는다. 아삭아삭한 채소의 식감에 집중하며 맛보는 것도 별미다. 은은한 불 향이 매력적이고, 소스가 맵지 않아 어린아이가 먹기에도 괜찮다. 2층 창가 자리에서 호수가 가장 잘 보이고, 식사 후엔 건물 앞 벤치에 앉아 여유를 즐겨도 좋다.
주소 대전시 동구 회남로275번길 227
문의 042-272-1777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기억의 창고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옛사람들을 상상하기 좋은 방법은 그들이 머물렀던 공간에 가 보는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의 독립을 지원했던 선교사, 충남도청에서 일했던 공무원의 흔적을 따라가 본다.


대학교에 남은 선교사의 발자취
빵을 목적으로 대전을 찾는 사람이 많지만 대전은 건축 여행을 하기에도 적합한 도시다. 2015년부터 전국을 돌며 건축 여행을 이어 온 김예슬 작가가 <서울 건축 여행>의 후속작으로 <대전 건축 여행>을 출간한 것도 우연은 아닐 테고, 근현대 건축물이 여러 개 보존된 덕에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대전 원도심이 주목받은 건 꽤 오래전부터의 일이다. 한남대학교 안쪽에 자리한 오정동 선교사촌도 영화 <덕혜옹주> <정직한 후보>와 드라마 <마더> 등 시대극부터 현대물까지 다양한 작품의 배경이 되었다.
오정동 선교사촌은 1955~1958년에 지은 선교사 사택 일곱 채가 모여 형성된 작은 마을이다. 일제강점기에 한국의 독립을 지원하고 해방 후 한남대학교(구 대전대학교)를 설립한 인돈 목사를 비롯해 한국 근대 교육의 기틀을 마련하고 의료 사업에 힘쓴 선교사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사실만으로도 뜻깊지만 가장 먼저 지은 북측 건물 세 동에선 한식과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건축 형태를 볼 수 있어 건축 답사 필수 코스로 꼽힌다. 벽돌이나 돌을 시멘트 등으로 붙여 쌓는 서양 건축 방식, 조적조의 단층 구조에 대들보와 서까래를 올리고, 측면에 삼각형의 합각이 생기는 한국의 팔작지붕을 얹었다. 세 건물 모두 ㄷ자 형태인 것도 한옥 양식을 참고했음을 드러낸다.
1999년에는 오정동 선교사촌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하마터면 기록에만 남을 뻔했다. 이때 언론인, 법조인, 종교인 등 50여 명의 지역민이 주축이 되어 ‘오정골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을 결성했고 ‘땅 1평 사기 운동’을 벌여 선교사촌을 지켜 냈다. 그리고 1955년에 지은 인돈 하우스, 서머빌 하우스, 크림 하우스가 2001년 6월 대전시로부터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보존되고 있다. 한남대학교 또한 인돈 선교사를 기념하는 인돈학술원 주변에 오동나무를 심는 등 자연과 건축물이 조화를 이루도록 관리에 공을 들인다. 오후 다섯 시경, 마침 햇빛이 부드러운 색으로 변할 때 한적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만나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그 많은 영화나 드라마가 왜 이곳을 촬영지로 선택했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 마을에 쭉 늘어선 수령 50년 이상 된 아름드리나무는 산책자의 그늘막이 되어 준다.


충남도청에서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대전시는 지난해 근현대 건축 문화유산 전수조사를 마치고 역사성과 희소성이 있는 308건을 우수건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낡은 외관과 달리 모던한 인테리어가 시선을 사로잡는 옛 충남도청 본관도 그중 하나다. 일제강점기인 1932년에 충남도청사를 건설해 충남도청이 홍성으로 이전할 때까지 사용하다 2013년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탈바꿈했다. 건물 외관을 보고 중앙 계단을 오르면서 왠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착각이 아니다.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 <미스터 션샤인> 등 특정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서 자주 등장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라이프 온 마스>에서 1980년대로 돌아간 정경호(한태주 역)가 일하는 경찰서가 바로 여기였다.
1920년대까지 도청사 건물은 대부분 지붕에 경사가 있고, 벽체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등 외관을 꾸미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1930년대부터 유럽과 미국에서 발전한 국제주의 양식의 영향으로 비교적 단순한 형태로 바뀌었는데, 이러한 경향이 충남도청사 건물에서도 잘 드러난다. 평평한 지붕을 택했고 세부 장식을 덜었다. 그렇다고 디테일이 부족하지도 않다. 자세히 살피면 군데군데 설계자의 욕심이 엿보인다. 1층 바닥의 오동나무꽃 모양 타일은 암호 같고, 아치를 두른 코너 타일은 쭉 늘어 놓은 치아처럼 보인다. 충남도청을 대전으로 옮길 때도, 건물을 짓는 과정에서도 친일파와 조선총독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기에 왠지 모를 씁쓸함이 남았다.
대전근현대사전시관 1층에서는 한때 연회장과 수영장, 온천탕을 갖춘 대전 대표 호텔로 꼽혔던 유성호텔에 관한 특별전 <유성온천 전성시대>가 열리고 있다. 1 전시관은 유성온천 목욕탕을 그대로 재현한 데다 팸플릿마저 때밀이 타월 모양으로 제작해 호기심을 자극한다. “어린이 여러분들의 국민학교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이제부터 의젓한 중학생입니다. 따라서 목욕 요금도 일반 요금 800원을 내야 합니다.” 목욕탕 벽에 붙은 안내판에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단어와 현재 물가로는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 적혀 있어 웃음을 자아낸다. 2 전시관에는 지난해 폐관한 유성호텔 객실을 복원해 두었다. 유성호텔은 1994년 국내 최초 온천관광특구로 지정된, 유성구 일대에 처음으로 생긴 호텔이자 1988년 서울올림픽에 참여했던 대전 선수들의 숙소였으며, 대전 시민의 추억이 담긴 건축물이다. 107년의 영광을 끝으로 사라진 호텔의 전성기를 전시장 안에서 잠시 회상했다.


감각으로 기억할 문화 공간, 테미오래
충남도청이 홍성으로 이전하자 공무원들이 살던 관사촌 또한 주인을 잃었다. 대전시는 충남도지사관사촌을 매입해 문화 예술 공간으로 꾸몄고, 2019년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게 개방했다. 새로운 이름은 ‘테미오래’. 관사촌이 위치한 마을 이름인 ‘테미’에 ‘테미로 오라’와 ‘관사촌의 오랜 역사’라는 중의적 의미를 담은 명칭이다. 관사촌 건물은 같은 재료를 사용해 동일한 형태로 지었으며, 서구의 건축 기술과 일본의 전통 양식을 혼용한 화양 절충식을 택해 복합적인 건축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지금은 공사 중이라 들어가지 못하는 도지사 공관은 손님을 맞는 응접실에 벽난로를 놓았고, 온돌방과 다다미방이 공존한다는 점이 특이해 주목받았다.
소실된 3, 4호 관사와 지난 5월에 운영을 종료한 7, 9호 관사를 제외하고 1, 2, 5, 6호 관사를 차례대로 둘러보았다. 1호 관사는 시각, 촉각, 청각, 후각을 통해 테미오래의 건축적 특성을 느껴 보는 테마 체험관으로 조성했다. 창문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해 큰 창으로 들어오는 색색의 빛을 감상한다. 종교 건축물에 주로 사용하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일반 주택에서 만나는 특별한 경험이다. 테미오래의 작은 정원처럼 꾸민 촉각의 방에서는 벽돌, 기와, 유리의 표면을 만지며 건축물의 특징을 촉감으로 익힌다. 2호 관사는 전통놀이부터 오락기, 보드게임까지 놀이의 역사를 훑어 보는 곳이다. 주사위를 굴려 올해의 운세 엽서를 뽑으니 토적성산(土積成山), 흙이 쌓여 산을 이룬다는 문구가 나왔다. 차근차근 기초부터 쌓아 간다면 더 좋은 성과를 이룰 수 있는 한 해란다. 응원 같은 문구에 힘입어 다시 몸을 일으킨다. 빈티지한 소품과 가구를 배치해 실제 집 안처럼 꾸민 5호 관사, 김은희 한국화가와 방대근 대전시 무형유산 소목장 보유자가 협업한 전시가 한창인 6호 관사까지 꼼꼼히 살폈다.

눈길 둘 곳이 많다.
설렘을 싣고 미래로 가는 기차
한 지역의 과거와 현재를 훑은 후 마음이 충만한 상태로 기차에 오른다. 오감으로 흡수한 풍경을 천천히 소화시키기 위해 휴대전화도, 책도, 음악을 듣는 이어폰도 꺼내지 않는다. 의자에 편히 기대어 차창에 눈을 둔다. 창문 밖으로 수많은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여행을 하면서 가장 자주, 가장 오래 마주하는 사물은 창문이다. 여행의 목적을 창문이라 말한대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안희연 시인의 여행 에세이 <줍는 순간>의 대목이 겹쳐지는 순간이다.
대전 0시 축제가 열리는 8월에는 이보다 많은 사람들이 대전의 시간을 만끽하러 올 것이다. 잠을 물리치고 이른 아침부터 대전의 명소를 향해 돌진할 테고, 날이 저문 것도 괘념치 않고 중앙로 일대를 누비며 새벽녘까지 즐거움을 찾아 나설 거다. 화려한 불빛 아래 환하게 웃는 사람들의 표정을 가만히 그려 본다. 대전에서 세 번의 아침과 두 번의 밤을 보내며 먼저 시간 여행을 떠났다.
대전 보훈 투어
광복 80주년을 맞아 독립운동가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현충 시설과 대전의 주요 관광지를 탐방하는
투어를 마련했다. 친구 또는 가족과 함께 역사를 공부하고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기회다.

윤봉길 의사상
1908년 6월 21일 충남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서 태어난 윤봉길 의사는 국내에서 문맹 퇴치와 농촌 계몽운동을 전개하다 백범 김구 선생이 지휘하는 한인애국단에 입단했다. 1932년 상해 훙커우 공원에서 일본군 대장에게 폭탄을 투척해 현장에서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그해 12월 2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를 추모하고 민족의 얼을 되새기고자 1972년 동상을 건립했다.
주소 대전시 중구 대종로 373

문충사
일제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을사늑약과 국권피탈을 통탄해 자결한 송병선·송병순 형제의 위패와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1908년 충북 영동에 건립했다가 1966년 송병선 60주기를 맞아 고향으로 옮겼다. 1970년 강당인 용동서원을 세워 서원 건축양식을 갖추었으며, 1989년 대전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두 형제 형상의 조형물은 2014년에 설치했다.
주소 대전시 동구 용운동

인동 만세로 광장
대전시 동구 인동시장 근처는 1919년 일제의 폭압에 항거한 인동 장터 독립운동이 일어난 장소로, 대전 지역 만세 운동의 시발점이 된 곳이다. 이를 잊지 않도록 만세로 광장 근처에 이야기를 담은 테마 광장을 조성했다. 매년 3월 독립 만세 운동 재연 행사 등을 개최해 광복을 위해 목숨 바친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린다. 평화의 소녀상, 강제 노역 노동자상이 광장에 나란히 놓여 있다.
주소 대전시 동구 인동 351-2
대전 보훈 투어 코스
10:00 대전역 동광장
10:15 윤봉길 의사상
독립을 위해 투쟁한 윤봉길 의사 동상 앞에서 그의 업적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11:00 문충사
헌화 및 참배를 하며 일제에 저항한 송병선·송병순 형제를 기리는 시간을 갖는다.
12:00 장동 계족산 농촌체험 휴양마을
대전에 왔으니 칼국수를 빠뜨릴 수 없다. 투어 참여자는 밀가루를 반죽하고, 면을 뽑고, 국물을 내 칼국수를 끓여 먹는 동안 즐거운 추억을 쌓는다.
14:30 명상정원, 대청호자연생태관
명상정원에서 대청호를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잠시 쉬었다가, 대청호자연생태관에서 자연을 재해석한 미디어 아트를 감상하며 충만한 시간을 보낸다.
16:30 인동 만세로 광장
이야기가 담긴 테마 광장을 거닐며 독립투사들의 힘차고 굳건한 목소리를 떠올려 본다.
17:00 대전역 동광장
신청 안내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초·중·고생 또는 청소년을 포함한 가족 단위 대상으로 대전 보훈 투어 참여 접수를 받는다. 무료로 진행하는 행사라 선착순으로 280명을 모집하며, 조기 마감될 수 있다. 9월 13일, 20일, 27일 중 하루를 골라 신청한다.
문의 042-254-4555(대전시티투어)
한여름 밤의 대전 0시 축제
지난해보다 풍성하고 알찬 콘텐츠로 대전 0시 축제가 돌아온다. 행사가 열리는 8월을 기다리며 이장우 대전시장에게 축제를 즐길 팁과 대전의 매력적인 명소를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대전 0시 축제가 부활한 이후 올해 3회째를 맞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는지, 이전과는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려 주세요.
8월 8일부터 16일까지 과거, 현재, 미래로 떠나는 시간 여행 콘셉트로, 대전 중앙로 일원에서 축제가 열립니다. 2년 연속 안전사고와 쓰레기, 바가지요금이 없는 축제로 호평받은 만큼 올해도 세 가지 요소를 특히 신경 썼습니다. 대전역을 중심으로 모든 방향으로 개방된 무대를 조성하고, 빵을 시식하는 공간을 마련했고요. 옛 충남도청사에서 진행하는 패밀리 테마파크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중앙로 꿈돌이 순환 열차를 운영하는 등 방문객의 편의를 고려해 다방면으로 보완했습니다. 프로그램이 많은 만큼 헷갈리기도 쉬울 것이라, 일정과 장소를 안내하는 공연 프로그램 책자도 제작했습니다. 본축제를 시작하기 전 8월 1일부터 2일까지 대전 서구·유성구·대덕구에서 사전 행사를 개최해 도시 전역을 예열할 계획입니다.
축제에 처음 참여하는 방문자를 위한 팁이 있을까요? 혹은 재방문자라도 축제를 더욱 알차게 즐길 방법이 있다면 귀띔해 주세요.
행사장 규모가 크고 콘텐츠가 다양해 축제를 어떻게 경험해야 할지 고민하실 수 있어요. 그런 분께는 대전역에서 출발해 시간 순서대로 행사장을 둘러보길 추천합니다. 대전역 앞 중앙로에 들어서면 웰컴존이 여러분을 맞이할 거예요. 꿈씨패밀리 조형물과 함께 사진을 남기고, 대전 우수 제과업체가 참여하는 빵시존에서 빵을 맛보며 시작하세요. 목척교까지 이어지는 과거존에서는 기차에 올라 잠시 추억 여행을 떠나고, 목척교 너머로 펼쳐지는 현재존에서는 중앙로 프린지 무대를 비롯해 전시와 공연을 관람하는 등 문화 예술을 향유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마지막으로 미래존은 과학 도시 대전을 만나는 곳입니다. 4D 어트랙션, 미래 과학 체험관에서 이색적인 체험도 놓치지 마세요.
온 세상이 초록빛으로 물드는 여름이니 자연 풍경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특히 이 계절에 가면 어울릴 휴식 공간이 있을까요?
대전은 광역시이지만 천혜의 산수로 둘러싸인 친환경 생태 도시이기도 합니다. 먼저 장태산자연휴양림은 메타세쿼이아 숲으로 유명합니다. 숲속 산책로와 하늘다리 외에도 체험 시설을 잘 갖춰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 제격이죠. 계족산에는 질 좋은 황토 2만여 톤을 투입해 조성한 14.5킬로미터 길이의 황톳길이 있는데, 맨발로 걷다 보면 더위도 잊고 몸과 마음이 가벼워질 거예요. 동구와 대덕구 일대에 펼쳐진 대청호 오백리길은 수변 산책로와 자전거 길이 있어 여름철 시원한 호수 바람을 맞으며 걷기 좋습니다. 특히 4구간인 호반낭만길은 새벽 물안개가 멋진 황새바위 전망대와 드라마 <슬픈연가>, 영화 <창궐> <7년의 밤> 등의 촬영지로 유명해요.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한 한밭수목원은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지는 곳이에요. 여름에는 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읽거나 가족과 피크닉을 하기에도 좋죠. 마지막으로 누구나 무료로 족욕을 할 수 있는 유성온천 족욕체험장을 권하고 싶네요. 미네랄 성분이 풍부한 온천수가 피로를 풀어 주니 하루의 끝에 방문하기에 알맞습니다.
대전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키워드 중 하나가 빵입니다. 지난해 성황리에 마무리된 빵 축제를 비롯해 동구청에서 제작한 빵집 지도도 인상적이었어요.
대전은 개성 있는 베이커리가 즐비한 지역입니다. 그중에서도 성심당은 1956년 대전역 앞에서 작은 찐빵집으로 시작해 이제는 명실상부 대전을 대표하는 빵집이 되었습니다.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튀김소보로와 제철 과일을 듬뿍 넣은 딸기시루·망고시루 케이크 등을 사러 전국에서 많이 찾아오시죠. 이 외에도 주목할 만한 빵집이 다수 있습니다. 우선 몽심은 2022년과 2024년 대전 빵 축제에서 1위를 차지한 디저트 맛집으로, 마들렌이 대표 메뉴입니다. 소금 식빵 또한 시그너처 메뉴로 인기가 많죠. 이 외에도 하레하레, 정인구팥빵, 싶빵공장, 정동문화사, 르뺑 99-1 등 숨은 동네 빵집이 많으니 하나씩 도장 깨기 하는 느낌으로 방문해 보세요. 10월 18일부터 19일까지 소제동 일원에서 열리는 2025년 대전 빵 축제에 참여해 내 마음속 1등 빵집은 어디인지 선정해 보는 것도 재미있겠네요.
여행을 마치기 전, 대전의 마스코트인 꿈돌이와 함께 사진을 찍는 게 필수 코스가 되었습니다. 꿈씨패밀리를 만날 수 있는 곳을 소개해 주세요.
2023년 대전 엑스포 30주년을 맞아 마스코트 꿈돌이의 세계관을 확장해 꿈씨패밀리라는 이름으로 총 10종의 캐릭터를 개발했습니다. 먼저 꿈씨 부부인 꿈돌이·꿈순이가 있고, 첫째 꿈빛이, 둘째 꿈결이, 넷째와 다섯째 꿈별이와 꿈달이가 있어요. 꿈돌이 동생은 꿈동이, 꿈씨 가족의 반려견은 몽몽이에요. 네브와 도르는 꿈돌이 친구죠. 이제 꿈씨패밀리를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소개해야겠죠? 엑스포과학공원 한빛탑, 대전 한화생명 볼파크, 대동하늘공원의 꿈씨패밀리 풍차, 대청호자연수변공원에 가면 꿈씨패밀리 조형물과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굿즈를 구매하고 싶다면 대전 신세계 아트 앤 사이언스 7층에 자리한 ‘꿀잼도시 대전홍보관’, 대전역 3층에 위치한 ‘꿈돌이와 대전여행’, 대전역 근처의 ‘꿈돌이 하우스’와 ‘대전트래블라운지’를 찾아가면 됩니다. 선화동과 탄방동의 몇몇 카페에서는 꿈돌이 캐릭터를 활용한 디저트를 판매하고요. 끝으로, 우주에 사는 꿈돌이 엄마와 아빠, 우주를 여행 중이던 꿈씨 부부의 셋째를 대전 0시 축제에서 최초로 선보일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