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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의 기쁨

2026년 03월 01일

  • EDITOR 김수아
  • PHOTOGRAPHER 김은주

의류 수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는 캔버스가든의 박정원 대표를 만났다. 개개인의 취향이 가득 모여 있는 서울 동묘 구제시장에서 그와 첫인사를 나눴다.

지난 1월 21일에 출간된 박정원 대표의 에세이 <직물을 잇고 조각을 수선합니다>.

환경에 끼칠 영향을 생각하면 옷 사는 걸 주저하게 된다. 어떤 제품을 골라야 지구에 덜 해로울까 고민하는 사람들은 각자 기준점을 정한다. 패스트 패션 브랜드를 지양하거나 동물 착취 없이 만든 제품을 찾아보는 등 지속 가능성을 고려한 실천 방법을 모색한다. 비건을 지향하는 이들은 잔혹한 도축 방식과 생명 윤리 문제로 논란이 되는 동물성 가죽 제품만은 구매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환경에 대한 책임과 소비 욕구 사이에서 괴로워하던 중에 식물성 가죽을 활용한 캔버스가든의 가방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다양한 크기와 색상의 가방이 홈페이지 화면에서 저마다 개성을 뽐내고 있었다. 구제시장에서 구한 옷으로 하나뿐인 가방이나 모자 등을 만들어 파는 죠각마켓, 수선의 즐거움을 나누는 죠각워크숍까지, 이 브랜드의 행보가 계속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1월에는 박정원 캔버스가든 대표의 에세이 <직물을 잇고 조각을 수선합니다>가 출간되었으니 이젠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 때다.

빈티지 숍에 들른 박 대표가 옷의 패턴과 소재를 살핀다.
조끼를 활용한 단추 달린 갈색 구두, 구두 모양의 핸드백 오브제, 구슬 달린 회색 신발 등 자투리 천을 이어 붙여 만든 작업물.

직물에 대한 상상력을 넓히다
박정원 대표가 선택한 식물성 원단은 선인장·닥나무·사과 가죽이다. 버섯 가죽이나 대나무 가죽 등 여러 소재에 도전해 본 뒤 형태가 잘 무너지지 않고 원하는 질감이 구현되는 원단을 선별했다. 선인장 가죽은 선인장에서 셀룰로오스를 추출해 제작하는데, 다육식물 특성상 재배할 때 물이 적게 들고 잘라 내도 빠르게 자라는 장점을 지녔다. 닥나무 껍질로 만든 한지에 식물성 원단을 접합한 닥나무 가죽은 땅속에서 빠르게 분해돼 환경에 덜 해롭다. 사과 가죽 또한 버려지는 사과 껍질을 활용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2022년 8월 캔버스가든의 가방이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식물성 가죽으로는 보통 정적인 디자인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저는 다르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프릴이나 꽃 장식으로 포인트를 준 가방은 물론 녹두색, 적갈색, 은색 등 다채로운 색감의 제품도 출시했다. 상시 판매하는 제품 외에 비정기적으로 마켓을 열어 헌 옷으로 만든 세상에 하나뿐인 제품도 선보인다. ‘죠각마켓’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는 온라인 장에서 판매자는 실험적인 시도를 할 수 있고, 구매자는 희소성 높은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얻는다. 서울의 동묘 구제시장·동대문 일요시장·아름다운가게, 강원도 춘천의 창고형 빈티지 가게, 경기도 광주의 구제특화거리, 경기도 일산의 구제집하장 등 전국 각지에서 모은 조각이 박 대표의 손을 거쳐 새로운 얼굴을 갖는다. 모자 두 개를 덧대어 손가방으로 탄생시키거나, 청치마를 활용해 데님 특유의 빈티지한 느낌을 살린 숄더백을 만들기도 한다. 흰색 주름 원피스와 물방울무늬 블라우스가 만나 매력적인 가방이 되고, 핫 핑크 바지는 허리 고무줄 부분을 활용해 프릴 장식 가방으로 변신한다. 같은 원단에서 나온 다양한 작업물을 구경하다 보면 직물이 지닌 무한한 가능성에 새삼 놀란다.
박 대표의 작업 과정이 궁금해 죠각마켓에 사용할 옷을 구하기 위한 탐방에 동행했다. 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난 뒤 그가 구매한 건 기하학적 패턴의 검은색 외투였다. “빅 백을 만들면 좋겠어요. 가방이 작으면 패턴의 임팩트가 사라지니까 큰 사이즈로 작업하려고요.” 죠각마켓의 제품은 옷감을 구매할 때부터 이미 무엇으로 변모할지 결정된다. 즉석에서 옷의 디테일을 보며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다. 옷 등판이 위로 가도록 반듯하게 접고, 소매를 이어 손잡이 모양으로 형태를 잡으니 결과물이 얼추 짐작된다.

옷을 해체해 다시 활용하려고 하니 주름이나 무늬 등 디테일이 새로 보인다.

낯선 재봉틀과 친해지기
박 대표는 지난해부터 수선 워크숍을 열어 수강생들과 표현의 즐거움을 나누고 있다. 재봉틀을 사용하는 워크숍은 주로 다섯 번에 걸쳐 진행하는데, 첫 번째 수업에서는 재봉틀 사용법을 익히기 위해 행주나 티 코스터를 만든다. 보통 각자 가져온 헌 옷을 활용하지만, 이날은 이전 수강생들이 남긴 원단으로 티 코스터를 제작하기로 했다. 보관함을 뒤적거리다 짙은 주황빛 치마에 끌려 그와 어울릴 만한 옷감 두어 가지를 함께 챙겨 자리로 돌아왔다.
차분한 마음으로 재봉틀 앞에 앉자 어떻게 만들 거냐는 질문이 들어온다. 완벽주의 성향인 사람이 새로운 분야에 첫발을 들이는 일은 항상 어렵다. 일일 선생님이 된 그에게 눈빛으로 도움을 구하자 무언의 응원을 전한다. ‘어떤 걸 만들어도 좋아요.’ 그렇다면 이 옷의 빈티지한 색감과 꽃무늬를 살려 일단 사각형으로 자르기로 한다. 마침 치마에 잎사귀 무늬도 있으니 그것도 오려 박음질하면 되겠다. 재봉틀 위에 적힌 순서대로 실을 꿰고, 원단도 바늘 아래 제자리를 찾았다면 이젠 페달을 밟을 차례. 우렁찬 소리와 함께 수선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 재봉틀이 돌아가는 속도에 맞춰 천을 밀고, 틈틈이 천이 울지 않게 펴 주고, 원하는 방향으로 각도를 트는 내내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기 위해 발에 들어가는 힘도 조절해야 한다. 그런데 묘한 희열이 느껴진다. 사용법을 익히니 자신감도 붙는다. 기계를 작동하는 순서를 따르고 방향과 속도만 조절하면 재봉틀은 머릿속으로 그린 작품을 눈앞에 그대로 보여 준다.

한 수강생이 평화를 주제로 직물 액자를 완성해 나가는 모습. 반려견이 어릴 때 입던 옷을 사용해 천사를 표현했다.

조각조각 표현하는 개성
재봉틀 사용법을 익혔다면 직물 액자 만드는 과정을 거친 뒤 마지막으로 가방을 완성한다. 처음에는 헌 옷을 콜라주해 가방 만들기 수업을 바로 진행했는데, 수강생 대부분이 옷을 어떻게 자르고 활용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걸 보고 직물을 마음껏 해체하고 이어 붙이는 시간을 먼저 갖기로 했다.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결과물은 액자에 담아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한다. “밑실이 엉켜 뭉텅이지면 스티치로 포장해 또 다른 모양을 내도록 돕고, 밑그림보다 많이 비뚤어지면 틀어진 대로 과감히 더 밀고 나가 추상적인 형태로 바꾸는 방법을 함께 궁리했어요.” 수강생들이 실수를 실수라고 여기지 않도록 의견을 보태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직물 액자 만들기 수업이 열리는 날, 각자의 과업을 마치고 온 수강생들이 하나둘 작업실에 모인다. 아이패드 화면에 시안을 띄워 놓고 배경이 되는 천 위에 원단 조각을 하나씩 더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결을 살리기 위해 파란색 천을 손으로 쭉 찢어 또 다른 배경을 만드는 사람도 보인다. “뭐 하나 들어맞는 게 없어요.” “원래 그런 게 재미예요.” 의도한 대로 구현되지 않아 속상해하는 수강생들에게 박 대표가 유쾌한 위로를 건넨다. “실밥 정리 안 해도 잔디 같은 느낌이 나서 좋네요.” 작업 과정을 지켜보다 감상도 덧붙인다. 여백을 채울 방법을 고민하는 이에게는 색연필로 칠하거나 메탈 단추를 붙여도 괜찮겠다고 힌트를 준다. 작은 실수에 아쉬워하던 수강생들은 어느새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개성을 자유롭게 펼치는 일에 집중한다.
입거나 버리기. 옷을 대하는 두 가지 선택지에서 벗어나 이제 수선이라는 길을 탐색해 보는 건 어떨까. 직물을 해체하고 새롭게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의 취향을 세심히 살피고, 어울리지 않을까 봐 망설이던 패턴이나 소재에도 과감히 도전할 수 있다. 마음을 빼앗는 실과 원단을 만나면 누구나 수선의 매력에 빠져들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