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새로운 소비 스타일, 경험 사치

2026년 01월 01일

  • writer 김용섭(트렌드 분석가,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

우리는 지금 한 사람의 특별한 경험이 그의 욕망과 지위, 라이프스타일을 증명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경험 소비, 나아가 경험 사치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소비 트렌드다.

럭셔리의 재정의, 물질 소유에서 경험으로
본래 사치(럭셔리)란 고가의 물건을 사서 소유하는 것을 의미했다. 자동차와 명품 가방·시계 등이 대표적인 사치 소비재다. 이미 19세기부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고가의 사치품을 이용하는 이가 많았고, 그때 탄생한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라는 말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인간의 사치에 대한 욕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더 이상 물건 소유 중심으로 럭셔리를 소비하진 않을 수 있다. 흔할수록 가치가 떨어지고 희소할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불변의 진리다. 경험 사치(experiential luxury)가 바로 그것이다. 이젠 ‘무엇을 소유할 것인가?’에서 ‘무엇을 경험할 것인가?’로 무게중심이 옮겨 갔다. 이미 물건은 충분히 소유했고, 누구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드러내며 살아가고 있다. 즉 새로운 럭셔리가 필요해진 것이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배인앤드컴퍼니의 럭셔리 시장에 대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퍼스널 럭셔리 시장(의류, 가방, 시계, 보석 등)의 성장률은 전년 대비 1퍼센트 감소했으며, 이러한 현상은 2025년에도 이어졌다. 퍼스널 럭셔리 시장은 글로벌 금융 위기 때를 빼면 꾸준히 성장했는데 15년 만에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지속적인 가격 인상에 따른 피로감과 브랜드의 정체된 창의성도 명품 소비재 시장의 둔화 요인이지만, 결정적으로 소유보다 가치를 지향하는 경험 소비 흐름이 뚜렷해진 이유가 크다. Z세대는 이러한 경향이 더욱 두드러져 더 이상 명품 로고만 보고 소비하지 않는다. 경험 사치의 배경에는 전통적 부자를 일컫는 올드 머니(old money)가 있다. 수년째 그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데, 올드 머니가 누리는 여행과 예술, 식문화, 공간(건축·인테리어), 라이프스타일 등의 경험이 새로운 욕망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 가는 중이다.

경험 사치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여행
요즘 럭셔리 브랜드들이 여행과 호텔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드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대표적인 곳이 루이 비통이다. 40년 이상 운영한 뉴욕 맨해튼의 플래그십 스토어는 2024년부터 리노베이션을 하고 있다. 규모를 두 배 정도 확장하는데, 공사장 가림막을 대형 여행용 트렁크처럼 만든 것이 눈길을 끈다. 트렁크 6개를 쌓아 놓은 모습으로 높이가 무려 70미터나 된다. LVMH 그룹은 파리 샹젤리제에 루이 비통 브랜드 최초의 호텔을 짓고 있다. 이곳 공사장의 가림막도 루이 비통의 대형 여행용 트렁크의 모습을 하고 있다. 왜 공사장 가림막을 여행용 트렁크처럼 만들까? 루이 비통은 1854년 여행용 트렁크로 출발한 회사이고, 19세기 유럽 부자와 귀족의 호화 열차 및 유람선 여행의 유행으로 인기를 끌며 성장했다. 지금 다시, 여행이 루이 비통의 성장 동력으로 부상한 것이다. LVMH 그룹 계열사인 벨몬드는 19~20세기에 운행했던 호화 열차를 복원해 운행하고 있다. 글로벌 호텔 체인 아코르 그룹(반얀트리, 페어몬트, 소피텔, 노보텔 등 여러 브랜드의 호텔 5000여 개 보유)도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호화 열차를 운행한다.
경험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경험 그 자체는 변별력이 없다. 누구나 가능한 것이 아닌 제한된 경험, 바로 경험 사치가 필요한 이유다. 럭셔리가 가야 할 방향은 결국 경험 사치로 정해진 셈이고, 이는 럭셔리 시장만 바꾸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전반적인 욕망과 소비 시장 전체에 영향을 줄 것이다.

왜 백화점이 여행 사업에 나섰을까
신세계백화점은 국내 백화점 중 최초로 여행 상품을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업을 벌였다. 전국에 여행업체가 2만 개가 넘고, 종합 여행업체만 9000개가 넘는 치열한 시장에 왜 신세계백화점이 진입한 걸까? 국내 백화점 업계는 3년째 성장 정체 상태다. 2025년 상반기 기준 백화점 빅 3(롯데, 신세계, 현대)의 전국 57개 점포 중 39개는 전년 동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백화점 업계는 경험 소비를 지향하는 2030세대와 VIP 고객들의 경험 사치를 공략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신세계가 여행업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다루는 여행 상품이 좀 비싸다. 1인당 수천만 원에 달하는 상품이 많은데, 유명 건축가와 함께 떠나는 유럽 건축 투어, 유명 탐험가와 함께 하는 북극 탐사 등 초고가 경험 사치를 충족하는 프로그램을 내세운다. 프로그램 신청자가 프리뷰 아카데미를 통해 사전에 여행에 대한 강의를 듣거나 체험할 수 있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집에서 공항까지 대형 고급 세단으로 의전하며, 공항 수속도 지원한다. 누가 이용할까 싶지만 아직까지 반응이 좋다. 한국에서도 ‘비싸지만 개인화된’ 여행 상품이 확산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경험 사치를 여행에 적용하는 건 기존 여행업체보다 백화점 업계가 좀 더 유리하다. 백화점에는 이미 경험 사치에 얼마든지 돈을 쓸 VIP 고객이 있기 때문이다. 2024년 신세계백화점 전체 매출 중 VIP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은 45퍼센트로, 2020년 31퍼센트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롯데는 2020년 35퍼센트에서 2024년 45퍼센트로, 현대는 38퍼센트에서 43퍼센트로 증가했다. 따라서 백화점은 VIP 중심의 서비스 다각화가 필수적이다. 경험 사치 중심의 여행 상품이 백화점 업계로 확산된 지금, 관건은 누가 더 차별화된 프로그램을 제공하느냐다. 2030세대의 욕망 최상단에는 이제 물질 사치가 아닌 경험 사치가 자리 잡고 있다. 관광이 아닌 몰입감 있는 여행을 위해 한곳에 오래 체류하는 롱 스테이도 확산되고 있다. 초기에는 단지 길게, 오래 머무는 게 중요했다면, 이젠 한곳에 오래 머물면서 현지 문화를 얼마나 많이 경험하느냐가 중요해졌다. 같은 경험을 하는 이들이 어울려 공동체를 이루는 것도 자연스럽다. 경험의 확장이자 경험의 진화다. 2026년, 당신은 어떤 여행을, 어떤 경험 사치를 누릴 것인가?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어떤 욕망을 지향할 것인가? 얼마나 비싼 물건을 가졌는지보다 얼마나 즐거운 경험을 했는지가 더 중요해진 시대. 우리는 지금 경험 사치의 시대에 살고 있다.

김용섭
‘Trend Insight & Business Creativity’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자 트렌드 분석가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과 정부 기관에서 3000회 이상 강연과 워크숍을 진행했고, 트렌드 전문 유튜브 채널 <김용섭 INSIGHT>를 운영한다. 저서로 <라이프 트렌드 2026: 인간증명 + 경험사치> <라이프 트렌드 2025: 조용한 사람들> <프로페셔널 스튜던트> <언컨택트> 외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