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며 놀던 순간이 있다. 경남 거제의 영공방은 그 시절의 설렘을 되살리는 나무 모형을 만든다.

인천 서구는 과거 제조 산업의 중심지였다. 1965년 국가에서 가좌동을 공업 단지로 지정하고, 1968년 경인고속도로가 개통하자 1000여 개의 기업이 입주해 거대한 산업 단지를 이뤘다. 환경문제와 산업구조의 변화, 도시 개발 등이 맞물리며 공단은 점차 쇠퇴했고, 당시 가좌동의 산업을 이끌었던 코스모화학 단지마저 2016년 울산으로 이전했다. 쓸모를 잃은 건물과 텅 빈 경남 하동의 황포돛배, 전남 목포해양유물전시관의 청자 보물선, 그리고 경남 거제 옥포대첩기념공원의 거북선과 판옥선. 전국 곳곳에서 만나는 이 거대하고 정교한 선박들은 과연 누가 만든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경남 거제로 향했다.

손으로 만드는 우리 배
통영과 거제를 잇는 신거제대교를 건너 10분쯤 갔을까, 오래된 학교 건물 앞에 ‘영공방’이라고 적힌 큼지막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1999년에 폐교된 숭덕초등학교 학산분교에 자리한 영공방을 이끄는 사람은 박영종 대표. 그는 2000년부터 목재 모형 키트를 제작했다. 한국의 전통 배와 건축물은 물론 비행기, 자동차, 동물 등 다양한 모형이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손재주가 남달랐던 어린 시절, 모형 만들기를 유난히 좋아하던 부산 소년은 성장한 후에도 모형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한 그는 입사 지원서 취미란에 ‘모형 제작’이라 적은 것이 계기가 되어 세계적 해운 강국 노르웨이에서 선박 내부의 배관 모형을 제작하는가 하면, 모형 제작실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직장 생활 20년 동안 조금씩 독자적인 모형 제작의 꿈을 키워 온 그는 밀레니엄 시대가 열린 2000년, 드디어 영공방이란 배의 닻을 올렸다.
“아무리 바빠도 틈만 나면 모형 배를 만들었습니다. 도면을 찾거나 그리고, 종이로 만들었다가 나무로 옮겨 보기도 했죠. 곡선이 예뻐서 옥포 바닷가에서 배 사진을 찍어 그대로 구현해 보기도 했고요. 그렇게 하나씩 만든 모형을 촬영해 홈페이지에 올렸더니 꽤 많은 사람이 문의를 해 왔습니다.”
박 대표가 특히 공을 들이는 분야는 한국의 전통 배 한선(韓船) 모형이다. 해외에서 국가별로 다양한 범선 키트를 접했는데, 정작 전통 선박을 구현한 국내 제품은 찾아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전국을 돌며 고증 자료를 수집하고, 영공방 내에 ‘우리 배 연구소’를 설립해 전통 선박 복원에 매달렸다. 그리고 그의 남다른 노력은 뭉클한 성과로 이어졌다. 2002년 거북선 키트를 미국에 처음으로 수출했고 같은 해에 ‘전통 배 모형 키트’로 제5회 전국관광기념품공모전 대통령상을 받았다.
2003년 그는 지금의 자리를 임대해 공장 규모를 확대했다. 거북선과 판옥선, 경복궁 같은 한국적 소재에 집중해 본격적인 생산 체제를 갖춘 것이다. 이듬해엔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영공방이 제작한 극 중 거북선과 판옥선도 주목 받았다. 2006년 경복궁 경회지에 띄운 유선(遊船), 2007년 전남 광양 월드마린센터에 세운 약 20미터 길이의 판옥선, 2014년 부산 기장의 롯데몰에 납품한 5미터 길이 어선 등 영공방의 배가 전국 곳곳에 정박해 있다.

작은 조각으로 완성한 시간
박 대표는 ‘만드는 즐거움’이 제작자가 아닌 사용자에게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영공방이 디자인한 조립 키트는 600여 종. 거북선과 전통 한옥, 궁궐, 군함, 근대건축물 등 초보자부터 마니아까지 모두 만족시킬 제품을 만든다. 디자인 팀은 매달 새로운 키트를 개발하고 수차례 수정작업을 거친 끝에 정교한 모형을 완성한다. 겉모양만 비슷한 게 아니라 내부 구조까지 실제와 흡사해야 비로소 영공방의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사람들은 종종 작품이라고들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그냥 제품입니다. 설명서와 재료를 함께 담아 누구나 조립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제품을 만드는 건물에 들어서자 벽에 걸린 키트 박스들이 눈길을 끈다. 1:65 비율의 거북선과 1:25 비율의
7톤급 연근해 목재 어선. 영공방이 미국에 처음 수출할 때 제작한 제품들이다. 세월만큼 빛은 바랬지만 여전히 존재감은 또렷하다. 복도에는 ‘1학년 3반’ 대신 ‘생산실’ ‘포장실’ 팻말이 보이고 초록 게시판에는 ‘착한 어린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다. 과거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교실엔 레이저 절단기와 UV 프린터기가 돌아가고, 완성된 키트는 포장해 가지런히 정리해 두었다. 박 대표는 누구보다 이곳에 각별한 애정이 있다. 손은 비록 현장에서 멀어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작업실에서 떠나지 못했다.

집무실에서 그의 열정을 다시 한번 마주한다. 선반 가득 나무 모형이 정돈되어 있고, 그 옆에는 반쯤 조립된 작은 집이 놓여 있다. 아이디어는 그의 손을 거쳐 형태를 갖췄고, 미완의 결과물은 하나둘 쌓여 작은 탑을 이룰 정도다. “일이란 징검다리 같아요. 하나하나 밟고 나아가야 하죠. 건너뛰면 넘어집니다.” 큰 강을 한 번에 건너기보다 작은 돌을 하나하나 딛고 건너가는 것. 그는 늘 그렇게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 왔다.
영공방의 스테디셀러는 단연 거북선과 판옥선이다. 청계천 판잣집, 옥포파출소, 둔덕우체국 등 지역의 옛 건물과 한국의 궁궐, 동서양의 가옥 등을 축소한 ‘미니 시리즈’도 인기다. 감상용을 넘어 기능을 갖춘 제품군도 인상적이다. 2013년 발명 특허를 받은 8자 노 방식의 거북선,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비행기, 태양광 전지와 회전 기어가 장착된 ‘테크 모델 시리즈’까지. 그는 늘 ‘지금의 취향’에 어울리는 제품을 고민한다. 아이와 어른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쉬우면서도 몰입을 요하는 시간을 선사하려는 것이다.
“이제 은퇴할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새로운 모형을 조립할 때가 가장 즐거워요. 사업 운영이라는 현실적인 무게와 내가 좋아하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여유롭게, 오롯이 좋아하는 일을 즐기고 싶어요. 누군가는 그걸 취미라 하고, 또 누군가는 추억이나 위로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박 대표가 건넨 모형 조립 키트 하나. 박스를 열자, 얇게 절단된 나무 부품과 정성스러운 설명서가 들어 있다. ‘꾸준히 집중하면 누구나 무언가를 완성할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사용자는 손끝의 감각에 몰입해 하나의 결과물을 완성해 나간다. 그 과정 안에는 누구나 완성의 기쁨을 맛볼 수 있도록 노력한 모형 애착자의 오랜 진심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