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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과 채움의 시간 유원재

2025년 05월 28일

  • EDITOR 최현주
  • PHOTOGRAPHER 김은주

마당과 차실, 노천탕을 갖춘 16개 객실, 건강한 식재료로 정성껏 차린 9코스 다이닝과 13첩 조식, 그리고 숲에 둘러싸여 즐기는 온천욕. 우아하고 프라이빗한 여름 휴가지를 찾는다면 유원재가 정답이다.

유원재의 객실 4개 타입 중 하나인 수정. 객실마다 약 165제곱미터(50평)의 정원을 품고 있다.
객실 수정의 침실. 장응복 디자이너의 벽지 작품이 인상적이다.

유원재가 자리한 곳은 1970년대 대한민국 최고의 신혼여행지로 각광받은 충북 충주의 수안보 온천 관광 특구. 유서 깊은 온천 호텔과 충주의 명물 꿩고기 요리 전문점들을 지나, 아래로 남한강 줄기가 흐르는 온천교를 건너자 드디어 돌담을 낮게 드리운 유원재가 모습을 드러낸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오후 2시. 유원재 로비에 들어서자 체크인을 도와줄 담당자가 ‘라운지 수’로 일행을 안내한다. 따스한 귤피차와 양갱을 음미하며 라운지의 통유리 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온통 물 세상이 펼쳐진다. 마치 호수 위에 떠 있는 느낌. 라운지 수와 건너편 카페, 그 사이를 연결하는 회랑과 돌담 안쪽으로 물의 정원을 만들어 각기 다른 시선으로 물결의 일렁임을 바라보게 한 것이 이채롭다. 첫인상부터 돋보이는 섬세함. 유원재가 더욱 궁금해진다.

객실 유순의 노천탕. 정원을 바라보며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정원을 품은 쉼과 사색의 집
2023년 9월에 문을 연 유원재는 한옥의 전통미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객실 16개로 이루어졌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각각 독립된 객실 7채와 9채가 2열로 나란히 자리한 모습이다. 검은색 지붕을 얹은 건물들이 각기 다른 높이로 물결치듯 이어져 주변 산세와 부드럽게 조화를 이룬다. 객실 사이사이엔 담을 두어 사적 공간을 확보하고, 모든 객실에 개별 정원과 노천탕을 설치해 쉼과 사색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대청마루와 디딤돌, 격자무늬 창 등 한옥의 건축적 요소를 객실 곳곳에 적용한 것도 멋스럽다. 유원재의 객실 타입은 유순, 겸화, 청심, 수정 네 종류. 퇴계 이황의 마음을 다스리는 서른 가지 비법에서 이름을 따왔다. 크기는 20평형과 30평형 두 종류로, 기본 2명부터 최대 4명까지 이용 가능하다.
이 중 에디터가 묵은 객실은 유순. 문을 열고 들어서니 짙은 고동색과 금색으로 마감한 인테리어가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거실 앞 통창 너머로 보이는 흙 마당 정원. 살구나무와 노각나무가 서 있는 마당 한가운데에는 둘이 앉아 오순도순 이야기 나누기 좋은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다. 거실 안쪽, 디딤돌과 대청마루로 꾸민 공간은 차실 겸 침실. 욕실을 통과해 밖으로 나가면 마당 풍경을 감상하며 온천을 즐길 수 있는 노천탕이 비밀스럽게 자리해 있다. 눈길 닿는 곳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공간들. 서둘러 짐을 풀고 노천탕에 몸을 담그니 긴장된 근육이 스르르 풀리며 머리가 시원해지는 기분이다.

레스토랑 미선의 룸. 통창 밖으로 싱그러운 정원이 보인다.
‘왕의 밥상’이 부럽지 않은 13첩 조식.

숲에 안겨 예술을 먹다
온천욕으로 몸의 피로를 풀었다면 이젠 건강한 음식으로 에너지를 채울 차례. 유원재가 야심 차게 준비한 다이닝을 즐기러 레스토랑 미선으로 향한다. ‘모든 슬픔이 사라진다’는 꽃말을 지닌 미선나무는 유원재의 마음을 담은 상징. 레스토랑 이름도 미선이다.
유원재 객실에는 주방과 다이닝 공간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체크인 당일 저녁 식사와 이튿날 조식을 모두 제공하기 때문이다. 하루 두 번 카페에서 파티시에가 준비한 디저트와 음료도 제공해 유원재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배가 출출할 틈이 없다. 레스토랑 미선의 룸은 객실 수와 동일한 16개. 한 칸의 공간이 하나의 객실을 위해 오롯이 준비돼 기다리는 일 없이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레스토랑 미선의 문을 열자,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돌과 이끼, 수형이 아름다운 나무로 꾸민 정원이 감탄을 자아낸다. 숲속 만찬에 초대받은 기분. 상큼한 사과주에 한 입 거리 안주 4종을 곁들인 맞이 차림을 시작으로 최고 등급 한우와 싱싱한 해산물, 충주에서 난 제철 채소와 과일 등으로 차린 9코스 요리가
2시간 동안 눈과 입을 즐겁게 한다.
가장 인상적인 코스는 온천을 표현한 해산물 플래터. 도미와 참소라로 만든 물회와 매실에 절인 문어 숙회 등 4종의 요리가 유리 접시에 담겨 나오는데, 접시 아래로 파인 볼에 온천수를 부으니 하얀 김이 구름처럼 피어오른다. 마무리 코스는 충주 잎새버섯 솥밥에 간장과 기버터를 넣고 비벼 주는 솥밥. 졸깃한 버섯에 눌은밥의 오독한 식감, 고소하고 감칠맛 나는 간장과 버터의 조화가 먹을수록 입맛을 당긴다.
경북 문경에서 9대에 걸쳐 전통 방식으로 도자기를 빚어 온 조선요, 수작업 특유의 자연스러운 질감이 돋보이는 거창유기 등 음식을 담은 그릇에서도 품격이 느껴진다. 유원재의 식탁을 책임지는 사람은 김유재 총괄 셰프. 미국과 캐나다, 남미, 일본에서 정교한 이탈리아 요리와 프렌치, 일식 요리를 섭렵한 실력자로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창조적 레시피를 선보인다.

자연석과 정원수로 꾸민 노천 온천탕.
대중탕의 실내 온천탕. 수질이 부드럽고 경쾌한 수안보 온천수는 피부병과 신경통, 피로 해소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원재란 이름의 안식처
저녁을 먹고 나니 졸음이 밀려오지만 한밤에 즐기는 온천욕도 포기할 수 없다. 유원재에는 객실별 온천 외에 노천탕이 포함된 남녀 대중탕과 대여탕도 있다. 서로 다른 스타일의 대중탕을 모두 경험하도록 매일 남탕과 여탕을 바꾸니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이 중 자연석과 조경수로 꾸민 대중탕에 몸을 담그니 깊은 산속 천연 온천탕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대중탕 옆에는 4명까지 수용 가능한 대여탕도 있다. 돌담과 정원으로 둘러싸인 넓은 노천탕에서 연인이나 가족이 프라이빗한 온천을 즐기기 좋다. 유원재에서 온천을 하고 나면 몸이 개운하고 피부가 매끄러워진 느낌이 드는데, 이는 부드러운 수질의 수안보 온천수 덕분이다. 수안보 온천은 지하 250미터에서 용출되는 수온 53도, 산도 8.3의 약알카리성 온천 원액으로, 인체에 이로운 각종 광물질이 함유되어 피부병, 신경통, 피로 해소 등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왕조실록>에는 태조 이성계가 악성 피부염을 치료하기 위해 수안보 온천을 자주 찾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수안보 온천을 ‘왕의 온천’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725년에 개발한 이래 국내에서 수질이 가장 좋은 것으로 인정받은 수안보 온천수는 현재 충주시에서 중앙 집중 방식으로 공급하고 있다.
유원재에서의 이튿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또 노천탕을 찾았다. 따스한 물에 몸을 담그며 천천히 하루를 시작하는 호사라니. 조식은 또 어떤 감동을 줄까 기대하며 레스토랑 미선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버터헤드 상추 샐러드에 이어 사과와 당근, 요구르트를 넣어 만든 디톡스 주스로 시작되는 13첩 반상은 가히 ‘왕의 밥상’이 부럽지 않은 구성이다. 전복과 닭, 능이버섯을 넣고 맑게 끓인 유원재 시그너처 보양탕에 장어구이와 항정살 수육, 미역과 톳으로 쑨 묵과 보리굴비 등 하나하나 정성스러운 맛과 차림새에 절로 감동이 인다.
결코 만만치 않은 숙박료에도 오픈 런을 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프리미엄 온천 호텔. 유원재에서의 1박 2일은 비움과 채움, 쉼과 사색의 의미를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주소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주정산로 6
문의 043-820-8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