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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인도 여행의 정수 조드푸르

2025년 04월 30일

  • writer•PHOTOGRAPHER 최갑수(여행 칼럼니스트)

인도를 여행할 때 기차를 타는 것만큼 강렬한 경험도 드물 것이다. 라자스탄의 사막 도시 조드푸르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인도의 진짜 얼굴을 마주했다.

인도에서 기차를 타면 보이는 흔한 풍경.

그는 우리 자리를 어떻게 알았을까
인도까지 가는 여정은 쉽지 않았다. 출발 공항이 김해였고, 방콕을 경유하는 일정이었다. 하루 전날 집에서 출발해 경남 김해에서 하루를 묵고 타이 방콕에 도착, 공항에서 8시간 동안 대기한 후 인도 델리까지 비행기를 갈아타고 다시 가야 했다. 오랜 비행 끝에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반쯤 녹초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가이드는 나와 있지 않았다. 지금까지 공항에 도착했을 때 가이드가 없었던 팸투어는 인도가 유일하다.
공항에서 1시간 정도 기다렸을까, 인도 전통 의상 사리를 입은 가이드가 모습을 보였다. 너무 피곤해서 항의할 힘도 없었다. “웰컴 뚜 인디아.” 가이드는 이를 하얗게 드러내며 두 손을 모았다. 델리에서 조드푸르까지의 거리는 약 585킬로미터. 기차로 11시간 정도 걸렸다.
‘인크레더블 인디아’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공항을 빠져나와 델리역에 도착했을 때 어디선가 머리에 커다란 터번을 두른 사람들이 성큼성큼 다가와 우리 짐을 어깨에 짊어지고 앞서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우리를 초청한 주최 측에서 보낸 사람으로 알고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우리 좌석 위에 짐을 얹더니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지폐 세는 시늉을 했다. 돈을 달라는 말이었다. 일행 중 누군가가 가이드에게 물었다. “가이드께서 짐꾼을 부른 것 아니에요?” 가이드가 대답했다. “아뇨, 제가 부르지 않았는데요.” 일행 중 한 사람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짐꾼들에게 돈을 주었다. 돈을 받은 그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도대체 그들은 우리 자리를 어떻게 알았을까. 지금도 궁금하다.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하는 메헤랑가르 성채.

라자스탄과 조드푸르
인도 북부에 자리한 라자스탄은 ‘라지푸트들의 땅’이라는 뜻이다. 라지푸트족은 라자스탄을 지배했던 전사 집단이다. 이들은 자부심으로 가득했고 누구보다 용감했다. 승리하지 못하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는 조하르(Johar)의 전통이 있었다. 여성과 아이들은 화장용 장작더미에 몸을 던지는 사티(Sati) 풍습을 지켰다. 라지푸트들의 이러한 용맹 때문에 인도 전역을 통일했던 무굴제국도 라자스탄 지역만은 무력으로 점령하지 않고 혼인 등을 통한 타협책으로 그들을 끌어안았다고 한다.
라지푸트들은 라자스탄의 수많은 성채와 전설의 주인공이다. 그들은 평지에 성을 지은 인도의 다른 지역과 달리 절벽에 성을 쌓고 소왕국을 세워 군림했다. 자이푸르의 자이가르성(Jaigarh Fort), 조드푸르의 메헤랑가르성(Meherangarh Fort), 자이살메르의 자이살성(Jaisal Castel)은 모두 적이 침략하기 힘든 천혜의 절벽에 들어섰다. 그리고 과거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성들은 지금 훌륭한 관광자원이 되어 전 세계 여행자를 불러 모으고 있다. 이 요새들은 대부분 최고급 호텔로 바뀌어 여행자에게 마하라자(인도 왕)라도 된 듯한 기분을 선사한다.
라자스탄 지역의 도시 중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곳은 조드푸르일 것이다. 영화 <김종욱 찾기>에서 서지우(임수정)의 첫 여행지이자 첫사랑 김종욱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주인공인 공유와 임수정이 메헤랑가르성이 보이는 노천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메헤랑가르성에 올라 도시를 굽어보기도 한다.

메헤랑가르성에서 내려다본 조드푸르. 대부분의 집을 푸른색으로 칠했다.
조드푸르 골목에서 만난 노인들.

사막 위에 우뚝 선 불가사의한 풍경, 메헤랑가르
조드푸르에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메헤랑가르성이다. 여전히 조드푸르의 마하라자가 소유하고 있는 이 거대한 성은 15세기 중엽에 착공해 19세기 초에 완성했다. 높이 125미터 언덕 위에 자리한 이 성은 한눈에 보기에도 인근 왕국들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지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고개를 180도로 꺾어야 바라볼 수 있는 메헤랑가르성은 사막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불가사의하게 다가온다. 여러 개의 안뜰과 궁전으로 이루어진 이곳에는 왕의 행차에 사용하던 소품과 초상화, 풍속화 등이 전시되어 있고, 왕이 행차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그린 세밀화도 보인다.
미로처럼 뒤엉킨 내부를 구석구석 돌아본 뒤에는 성채 꼭대기로 올라가 보자. 가장 먼저 구시가지를 향하고 있는 커다란 대포가 눈에 들어온다. 무시무시한 대포와 달리 이곳에서 바라보는 조드푸르 풍경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다. 거의 모든 집의 벽을 푸른색으로 칠한 도시는 말 그대로 푸르디푸르다. 사막 위의 도시 조드푸르가 푸른색에 집착한 이유는 푸른색이 인도의 최상위 계급인 브라만 고유의 색깔이기 때문이다. 1459년 조드푸르가 마르와르 왕국의 수도가 되면서 당시 브라만 계급이 다른 계급과의 신분 차이를 나타내기 위해 집에 파란색을 칠했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다른 계급 역시 신분 상승에 대한 기대감과 염원으로 자신들의 집을 푸른색으로 칠해 도시 전체가 푸른색이 되었다. 조드푸르를 ‘블루 시티’라고 부르는 이유다.
메헤랑가르성에서 좁은 골목길을 따라 내려가면 구시가지에 이른다. 골목은 술래잡기하는 아이들과 담배 피우는 노인, 소 떼와 오토릭샤,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여행자로 북적인다. 이 골목을 계속 따라가면 닿는 사다르 바자르(Sadar Bazaar)에는 채소와 향신료, 과자, 직물, 은, 수공예품을 파는 상점이 즐비하다. 이곳에서 짜이(인도식 밀크 티)를 마시며 바라보는 메헤랑가르성의 야경도 꼭 한번 볼만하다.

인도 카레에 대한 슬픈 추억
몽골에서는 양고기를 먹고 양고기를 먹고 또 양고기를 먹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슈니첼을 먹고 슈니첼을 먹고 또 슈니첼을 먹었다. 인도에서는 카레를 먹고 카레를 먹고 또 카레를 먹었다. 호텔 조식을 빼고 매 끼니 카레를 먹었다. 닭고기 카레, 채소 카레, 매운 카레, 덜 매운 카레, 많이 매운 카레 등 카레의 연속이자 카레의 대향연이었다.
인도 여행 나흘째 되는 날, 일행 중 한 명이 가이드에게 말했다. “제가 초등학생 입맛이라 이제 카레가 좀 힘드네요. 게다가 인도 카레는 우리나라 카레와 너무 달라서…” 가이드는 “노 쁘라브럼”이라고 답했다. 일주일째 되는 날, 점심으로 또 카레가 나왔다. 다들 으레 그렇듯 당연하게 생각하며 스푼을 들었는데,
한 명이 스푼을 식탁 위로 툭 던지며 말했다. “또 카레다!” 낮았지만 비장하게 말하는 그의 얼굴은 분노에 찬 시바 신처럼 보였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난 이제 더 이상 단 한 숟가락도 카레를 먹지 않겠다’는 결의가 느껴졌다.
취재를 마치고 방콕으로 떠나는 뉴델리 공항. 기내식을 제공하는 카트가 다가왔다. 인도 국적기니까 당연히 카레가 나오겠지. 아니, 국제선이라 샌드위치 같은 것도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며 눈을 떴다. 스튜어디스가 물었다. “치킨 오아르 치킨?” “어어응, 왓?” ‘닭 먹을래 아니면 닭 먹을래?’라니. 보통 ‘치킨 오어 비프’ 아닌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스튜어디스는 특유의 인도 억양으로 웃으며 말했다. “완 이즈 스빠이시(One is spicy).” 초등학생 입맛을 가진 일행이 건너편 자리에서 맥스봉 소시지를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노 쁘라브럼.”

알아 두세요

조드푸르 가는 법
한국(서울, 부산)에서는 조드푸르로 가는 직항 노선이 없다. 주로 델리나 뭄바이 같은 인도의 주요 도시로 입국한 뒤 국내선 비행기나 기차, 버스를 타고 조드푸르로 이동한다. 델리에서 조드푸르까지 비행기로는 약 1시간 30분, 기차로는 11시간 소요된다. 뭄바이에서 조드푸르까지도 비슷하게 걸린다.

인도 철도 이용 팁
인도의 국영 철도인 인도 철도(Indian Railways)는 버스보다 요금이 저렴하지만 장거리 여행 시 기차가 더 쾌적하고 안전하다. 기차 종류는 1등석 에어컨 침대칸(1A), 2등석 에어컨 침대칸(2A), 3등석 에어컨 침대칸(3A), 슬리퍼 칸(SL), 일반 좌석(2S), 무예약 좌석(UR)으로 나뉜다. 장거리 여행에는 1A, 2A, 3A를 추천한다. 슬리퍼 칸은 저렴하지만 혼잡하다. 1A는 가장 우등 칸으로 개인실이 있는 경우가 많고, 3A는 대중적이면서 에어컨이 작동된다. 예약은 인도 철도 공식 웹사이트(www.irctc.co.in) 또는 앱에서 가능하다. 출발일 기준 약 120일 전부터 예약이 시작되며, 빨리 예약할수록 좌석 확보에 유리하다. 특히 관광지 간 노선(델리-조드푸르, 델리-자이푸르 등)은 금세 매진되므로 조기 예약이 필수다. 관광객 전용 쿼터(Tourist Quota)가 따로 있어, 예약 마감 시 현지 기차역 관광객 창구에서 구매할 수도 있다. 출발 전 반드시 기차 번호와 플랫폼을 확인하고 승차해야한다. 역마다 플랫폼이 다르고, 출발 직전에 변경될 수도 있다.
문의 및 예약 www.irctc.co.in

조드푸르 즐길 거리
사다르 바자르에서는 활기찬 인도의 시장 분위기를 느끼며 향신료와 직물, 기념품을 쇼핑해 보자. 시계탑 간타 가르(Ghanta Ghar) 주변에는 짜이를 마시며 휴식하기 좋은 곳이 많다. 조드푸르 왕족의 거대한 궁전이었던 우메이드 바완 궁전(Umaid Bhawan Palace) 일부는 럭셔리 호텔, 일부는 박물관으로 개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