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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리듬을 따라 해남

2026년 04월 01일

  • WRITER 고아라
  • pHOTOGRAPHER 안홍범
  • 제작 지원 해남군청

이 계절엔 전남 해남의 색이 한층 더 깊어진다. 한반도 땅끝의 짙푸른 바다, 두륜산을 뒤덮은 연둣빛 나무, 울돌목을 물들인 붉은 노을, 거리에 만개한 홍매화까지, 봄기운 완연한 해남을 걸었다.

다도해를 굽어보는
두륜산

여덟 개 봉우리가 굽이치는 두륜산은 조선 중기 서산대사 휴정이 ‘만년 동안 훼손되지 않을 땅’으로 점찍은 곳이다. 한국 차(茶) 문화의 성지인 대흥사를 품고 있으며, 황홀한 절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케이블카와 스릴 넘치는 카트 레이싱 등 즐길 거리도 다양해 자연의 품 안에서 하루 종일 머무르기 좋다.

두륜산 품에 안긴 대흥사는 경내 어디서나 푸릇한 자연을 만난다.

호국과 차의 성지, 대흥사
해남 여행의 첫 목적지는 해남반도 끝자락에 우뚝 솟은 두륜산, 그중에서도 크고 작은 봉우리에 둘러싸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대흥사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곳은 514년(백제 무령왕 14년) 승려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대흥사로 향하는 길은 깊고 맑은 숲이 안내한다. 울창한 대숲에서 산책을 즐기다 보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눈앞에 펼쳐진다. 수목이 우거진 풍경이 늘 봄처럼 아름답다는 뜻의 ‘장춘동’이라 불리는 곳. 걷는 내내 청량한 물소리가 마음의 묵은때를 말끔히 씻어 준다. 해탈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용화당과 관음전이 두륜산 능선과 조화를 이룬다. 금당천을 건너 침계루를 지나면 비로소 대웅보전과 마주한다. 건물 뒤로 펼쳐진 두륜산의 능선이 부처님이 누워 있는 모습을 닮아 예로부터 길한 자리로 여긴 곳이다. 대웅보전 안에는 조선 후기에 만든 목조불과 1901년에 완성한 탱화가 있다. 대흥사는 한국 사찰 중 승탑이 가장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초의선사 부도인 초의 탑과 서산대사 탑 등 50여 기의 승탑을 비롯해 14기의 비석이 자리한다. 여기에 국보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보물 해남 대흥사 삼층석탑 등 소중한 문화유산을 품고 있어 한 바퀴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알찬 여행이 된다. ‘차 안에 부처의 진리와 명상의 기쁨이 있다’고 여긴 초의선사는 대흥사 계곡에 일지암을 짓고 여기서 40여 년간 수행에 전념하며 차를 연구했는데, 이것이 대흥사가 한국 차 문화의 성지로 우뚝 서는 계기가 됐다.
사찰에서의 여운을 뒤로하고 일주문을 나오는 길, 소담한 돌담 너머로 고즈넉한 한옥 한 채가 눈길을 끈다. 시원하게 뚫린 통창으로 두륜산을 감상하기 좋은 카페 유선이다. 돌담 안으로 들어서면 맑은 계곡과 함께 넓은 정원이 여행자를 반긴다. 따사로운 봄볕이 내리쬐는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시그너처 메뉴인 해풍쑥 아인슈페너를 주문한다. 우유와 에스프레소, 쑥 크림이 층을 이룬 아인슈페너는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나며 쌉싸름한 맛도 혀끝에 남아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곳의 또 다른 인기 메뉴는 ‘맑은 곳에 올라’.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어리고 고운 찻잎을 우린 녹차로 깊은 향과 건강한 맛이 여독을 기분 좋게 풀어 준다.

두륜산을 즐기는 특별한 방법
두륜산은 달마산, 금강산, 흑석산과 함께 해남의 4대 명산으로 꼽힌다. 해발 703미터로 가장 높은 봉우리인 가련봉을 비롯해 두륜봉, 고계봉 등 여덟 개 봉우리가 능선을 이루며 다도해와 마주하고 있다. 힘들게 산을 오르지 않고도 이 절경을 온전히 누릴 방법이 있다. 대흥사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두륜산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8분 만에 고계봉에 오른다. 사면이 통창이라 정상에 오르는 동안 주변 풍경을 파노라마 뷰로 즐길 수 있다. 아담한 집과 논밭이 옹기종기 모인 해남읍부터 수려한 자태의 영암 월출산, 한반도 지도를 쏙 빼닮은 ‘한반도 지도 마을’을 차례로 구경하다 보면 어느덧 케이블카가 정상 부근에 닿는다. 문이 열리는 순간 밀려드는 쾌청한 공기에 고도가 높음을 실감한다. 정상까지 이어진 나무 덱을 따라 15분 정도 오르자 단숨에 시야가 트이며 고계봉 정상에 다다른다. 전망대에 서자 발아래 남도의 눈부신 비경이 시야 가득 들어온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125킬로미터 떨어진 제주 한라산까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눈 호강을 실컷 하고 두륜산을 내려오니 이번엔 즐거운 비명 소리가 발길을 붙든다. 두륜산 케이블카 탑승장 바로 맞은편에 자리한 두륜산 생태 힐링파크다.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꼬불꼬불한 트랙이 늘어서고, 그 위를 카트가 빠르게 미끄러진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스피드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며 홀린 듯 헬멧과 장갑을 착용하고 카트 레이싱장 안으로 들어섰다. 간단한 주의 사항을 듣고 카트에 올라타니 우렁찬 엔진음이 울려 퍼진다. 페달을 밟으며 서서히 속도를 높이자 밖에서 볼 때와는 차원이 다른 짜릿함이 전신을 감싼다. 달리는 내내 아찔한 속도감과 상쾌한 바람, 푸릇푸릇한 자연경관이 쾌감을 더한다. 고즈넉한 산속에 이토록 스릴 넘치는 공간이 있다니, 해남 여행의 추억이 한 페이지 더 늘었다.

두륜산 자락에 조성한 카트 레이싱장. 아찔한 경사와 짜릿함 속도감이 매력적이며 아이부터 어른까지 즐길 수 있다. © 해남군청
고산 윤선도와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삶을 꾸려온 종가 고택, 녹우당. © 해남군청

600년 전통의 종가 고택, 고산윤선도유적지
해남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조선 국문 시가 문학의 거장, 고산 윤선도다. 조선 시대 공조좌랑, 한성부서윤,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인으로, 효종이 대군이던 시절 스승이기도 하다. 그는 병자호란 때 왕의 항복 소식을 듣고 비통함을 금치 못해 보길도에 별서정원을 짓고 은거했다. 바로 이때 <오우가> <어부사시사> 같은 당대 최고의 문학작품이 탄생했다. 윤선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고산윤선도유적지는 해남의 중요 여행지로 꼽힌다. 안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고산윤선도박물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해남 윤씨 어초은공파 종손들이 보존해 온 고문헌과 유물을 비롯해 윤선도의 문학 세계가 담긴 작품, 윤선도의 가야금 등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 4600여 점을 보관·전시한다. 국보로 지정된 윤두서의 자화상도 소중한 자료로, 강렬한 눈빛과 사실적 묘사가 보는 이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박물관을 나와 5분 정도 걸으면 덕음산 아래 자리한 녹우당을 만난다. 해남 윤씨 어초은공파의 고택으로, 가지런한 돌담과 유려한 기와지붕, 고즈넉한 마당에서 조선 사대부의 품격이 엿보인다. 녹우당은 윤선도와 그의 후손들이 실제 거주한 공간으로 수백 년의 시간이 고스란히 쌓여 있다. 고택 입구에는 수령 500년 된 높이 20미터의 은행나무가 우뚝 서 있고, 뒤편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자나무 숲이 우거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녹우당의 ‘녹우(綠雨)’는 비자나무 숲에 바람이 불면 우수수 봄비 내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 해남군청

한반도의 시작
땅끝마을

달마산의 기암괴석을 병풍 삼아 자리한 미황사에서 천년 고찰의 고즈넉한 정취를 만끽하고,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을 찾아 유구한 세월 동안 바다를 지킨 수많은 생명을 마주한다. 땅끝전망대에 올라 육지의 끝과 바다의 시작이 맞닿은 장대한 풍광도 바라봤다.

아름다운 낙조로 유명한 미황사. 저녁 해가 처마 끝에 달린 풍경에 걸렸다.

달마산에 안긴 사찰, 미황사
1500여 년 전 중국 고승 달마대사가 머물렀다 하여 이름 붙은 달마산은 소백산맥이 두륜산을 거쳐 땅끝을 향해 뻗어 내려가다 남해에 이르기 전 마지막으로 힘을 쏟아 낸 바위산이다. ‘남도의 금강산’이라 칭송할 만큼 산세가 수려해 해남의 4대 명산 중 하나로 꼽힌다. 달마산 중턱에는 고즈넉한 사찰 하나가 자리한다. 등 뒤로 거칠게 솟은 기암괴석을 둘러치고, 앞쪽으로는 평화로운 다도해를 마주한 미황사다. 750년(신라 경덕왕 8년) 창건한 이 사찰은 오랜 세월 불교의 요람 역할을 했다. 달마산의 능선과 어깨를 나란히 한 대웅보전의 자태만 봐도 위용이 느껴지는 미황사는 한때 열두 개의 암자를 거느리기도 했다. 도시와 완벽히 차단된 덕분에 생각을 비우고 싶은 이들이 즐겨 찾는 템플스테이 명소로 사랑받는다.
현재 미황사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암자인 도솔암을 찾아가기 위해 달마고도에 오른다. 총길이 17.74킬로미터에 달하는 보행로로 과거 달마대사가 다니던 길을 새롭게 단장해 2017년에 개통했다. 미황사에서 출발해 능선에 오르자 탁 트인 조망이 눈앞을 가득 채운다. 층층이 겹쳐진 능선과 점점이 박힌 남해의 섬들이 어우러진 풍경에 자연스레 걸음이 느려진다. 큰바람재와 몰고리재를 지나면 가파른 암벽 위 바위에 둘러싸인 도솔암이 신비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도솔’은 미륵보살이 머무는 천상 세계를 뜻하는데, 이름처럼 세상의 끝에 다다른 듯 신비로운 풍광을 자랑한다. 소백산맥의 수려한 산세가 도솔암을 감싸듯 펼쳐지고,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배경은 온통 푸르다.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전시장. 검푸른 조명 아래 범고래와 백상아리, 가오리 등의 실물 표본을 전시해 마치 심해로 들어온 듯하다.

심해를 여행하는 시간,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
달마산에서 내려와 땅끝으로 향하는 길목, 건물 위에 올라앉은 대왕문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국내 최대 규모의 해양 자연사박물관, 땅끝해양자연사박물관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바다에 사는 화석류와 어류를 전시하는데, 그 규모가 무려 2700여 종 15만여 점에 이른다. 더 놀라운 점은 이 많은 전시품이 모두 실제 자연 표본이라는 것. 과거 원양어선 선장이었던 임양수 관장이 1979년부터 전 세계 바다를 누비며 직접 모은 수집품이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캄캄한 전시장에 푸른 조명이 켜져 마치 바닷속 깊이 들어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건 천장에 매달린 대왕고래 뼈. 총길이 2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에 입이 떡 벌어진다. 모래사장과 산호초로 꾸민 양쪽 벽면에는 다채로운 물고기 표본이 자유롭게 걸려 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 다음 전시관으로 가면 더 깊은 심해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검푸른 조명 아래 밍크고래와 범고래, 백상아리, 가오리가 공중에 떠 있는데 금방이라도 헤엄쳐 나갈 듯 생생하다. 마지막 전시실에서는 다양한 바다 생물을 만난다. 극지방에 사는 펭귄부터 갯벌의 주인 도요새, 바다와 육지를 오가는 악어 등의 실물 표본과 정교하게 재현한 전시 공간이 높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땅끝 꿈길랜드의 스카이워크. 바닥을 투명한 유리로 제작해 마치 바다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한반도 육지의 끝과 바다의 시작이 한눈에 담기는 땅끝전망대.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는 땅끝관광지
한반도 최남단에 자리한 해남, 그중에서도 국토 끝자락에 땅끝관광지가 있다. 시작은 갈두산 사자봉 정상에 자리한 땅끝전망대. 타오르는 횃불을 형상화한 독특한 외관이 시선을 끈다. 꼭대기 층인 9층 전망대에 오르면 망망대해가 파노라마 뷰로 펼쳐져 가슴이 뻥 뚫린다. 발아래 보석처럼 박힌 다도해의 작은 섬들도 특별한 볼거리다. 모노레일을 타면 땅끝마을에서 땅끝전망대까지 단 7분 만에 닿는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두 발로 직접 땅끝을 밟아 보기로 한다. 북위 34도 17분 32초, 육지 끝에 자리한 땅끝탑이다. 과거에는 땅끝전망대에서 가파른 길을 넘어와야 했지만, 최근 무장애 걷기 길인 ‘땅끝 꿈길랜드’를 조성해 누구나 편하게 찾아갈 수 있다. 해안가를 따라 나무 덱 보행로를 설치했는데 경사가 완만해 여유롭게 바다 풍경을 즐기며 걷기 좋다. 모노레일 매표소에서 시작해 5분쯤 걷자 기념사진 명소인 스카이워크가 나타난다. 길이 41미터로 전 구간을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 바다 위를 거니는 듯 짜릿하다. 여기서부터 10여 분 더 발걸음을 옮기면 거대한 삼각뿔 형태의 땅끝탑이 나온다. 바다를 향해 꿈을 싣고 나아가는 배의 돛을 형상화했는데, 푸른 바다와 어우러진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 해남군청

끊이지 않는 즐거움
우수영 권역

산이정원과 오시아노 관광단지에서 자연이 내주는 휴식을 누리고, 명량해전의 격전지 울돌목과 공룡 발자국을 간직한 박물관에서 해남이 품은 생생한 역사를 마주했다.

해남 공룡박물관에서는 생생하게 재현한 공룡을 만날 수 있다. © 해남군청
해남공룡박물관의 귀여운 포토존. © 해남군청

지구의 시간을 건너, 해남공룡박물관
전남 해남군 황산면 우항리에 발을 들이면,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8500만 년 전 아득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초식공룡과 육식공룡, 하늘을 나는 익룡 등 중생대 백악기 시대 공룡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익룡 발자국은 무려 443점에 이르는데,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다. 이곳에 해남공룡박물관을 세운 이유다.
박물관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중생대를 호령하던 티라노사우루스를 생생하게 재현한 중생대재현실이 자리한다. 티라노사우루스의 우렁찬 울음소리와 실감 나는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국내 최초의 해양파충류실과 중생대익룡실을 차례로 둘러본 뒤 전시장 밖으로 나오면 백악기 후기 공룡 조바리아를 만난다. 조바리아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니제르 지역에서 발견된 백악기 후기 공룡으로, 높이 21미터의 거대한 몸집이 시선을 압도한다.
야외 정원에는 여유롭게 거니는 공룡도 있다. 태고의 자연 풍광과 어우러진 공룡 조형물을 따라 걷다 보면 수만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공원 내에는 대형공룡관, 익룡조류관, 조각류공룡관 등 실제 공룡 발자국을 보여 주는 전시관도 있다. 그중 우항리에 유독 많은 공룡 발자국의 주인공, 익룡의 흔적을 다룬 익룡조류관을 찾았다. 전시관 내에 길게 늘어선 바위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크고 작은 익룡 발자국이 한가득이다. 아시아 최초로 발견된 익룡 발자국 443점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물갈퀴새 발자국 1000여 점이다.
해남공룡박물관에서는 매년 어린이날 전후로 해남공룡대축제가 열린다. 공룡가족음악회, 낙화놀이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해 공룡을 좋아하는 이라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동심의 세계로 빠져든다. 축제 기간에는 박물관을 무료 개방하니 해남이 품은 공룡 이야기를 마음껏 즐겨 보자.

하늘마루에 자리한 유영호 작가의 ‘브리지 오브 휴먼’.
오시아노 해수욕장을 따라 늘어선 캐러밴. 이곳에서는 하늘과 바다를 온통 주홍빛으로 물들이는 황홀한 노을을 보며 캠핑을 즐길 수 있다. © 해남군청

자연과 예술의 만남, 산이정원 & 오시아노 관광단지
우수영 권역에 울돌목만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영암호와 금자천으로 둘러싸인 해남군 산이면 끝자락에는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특별한 여행지가 있다. ‘산이 정원이 된다’는 뜻의 산이정원이다. 산이면에 개발 중인 미래 도시 ‘솔라시도’의 랜드마크로 조성한 이곳은 ‘미래와 함께하는 정원’이라는 슬로건 아래 2024년 5월 문을 열었다. 산이정원으로 향하는 길, 영암군에서 삼포대교를 건너자마자 완만한 연둣빛 구릉과 바다처럼 드넓은 영암호가 펼쳐진다. 당장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싱그러운 풍경이다.
약 53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공원에는 저마다 다른 매력을 품은 테마 정원이 가득하다. 가장 먼저 방문객을 반기는 맞이정원을 시작으로 잔잔한 수면 위로 초록빛 풍경이 비치는 물이정원, 화려한 꽃과 풍성한 덩굴식물이 어우러진 서약의 정원을 차례로 걸어 본다. 중간중간 자연의 일부처럼 녹아든 예술 작품이 산책의 즐거움을 더한다.
가장 오래 머무른 곳은 유영호 작가의 ‘브리지 오브 휴먼’이 자리한 하늘마루. 몸을 숙이고 양팔을 벌려 사람들의 다리 역할을 하는 거인을 마주하니 어쩐지 숙연해진다. 양팔 위에는 42명의 사람이 올라타 있는데, 이 작품은 지구와 환경, 인간과 자연, 모든 생명을 포용하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존재하는 조형물과 그 속에 담긴 메시지가 깊은 울림을 전한다.
산이면에서 금호도를 지나 화원면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또 다른 방법으로 해남의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 나타난다. 남도의 쪽빛 바다를 품은 휴양지, 오시아노 관광단지다. 봄기운이 완연한 4월이면 오시아노 캠핑장은 가족 단위 여행객들로 북적인다. 파쇄석과 잔디, 덱 등의 오토캠핑 사이트와 캐러밴이 마련돼 어디에 머물러도 완벽한 바다 전망을 누릴 수 있다. 캠핑장 아래쪽의 오시아노해수욕장은 수중보를 설치해 파도가 잔잔한 것이 특징이다. 갯벌에 모래를 덮어 모래사장을 조성한 덕분에 밀물과 썰물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연출된다. 해 질 녘이면 커다란 카메라를 든 사진작가들이 앞다퉈 찾아올 만큼 환상적인 낙조도 빼놓을 수 없다. 오시아노 관광단지 옆 나무 덱을 따라 걷다 보면 바다를 향해 비죽 솟은 전망대가 나온다. 사면과 바닥이 투명한 전망대 끝자락에 선베드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어 잠시 쉬어 가기로 한다. 향긋한 봄바람을 맞으며 햇빛에 반짝이는 윤슬을 보고 있으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명량해상케이블카에 오르면 이순신 장군 동상과 길이 484미터의 진도대교, 거세게 몰아치는 울돌목이 파노라마 뷰로 펼쳐진다. © 해남군청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명량대첩해전사기념전시관.

격정적인 역사 현장, 우수영국민관광지
진도와 해남 사이, 바닷물이 차고 빠지며 하루 네 번 조류가 거세게 부딪힌다. 1597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빠른 유속을 활용해 명량대첩의 신화를 쓴 해협, 울돌목이다. ‘우는 바다 길목’이라는 뜻의 순우리말로, 실제 거친 파도 소리가 거대한 짐승이 우는 것처럼 들린다. 울돌목 주변에 조성한 우수영국민관광지에는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명량대첩해전사기념전시관을 비롯해 울돌목의 파도를 발아래로 내려다보는 스카이워크, 임진왜란 당시 의병과 관군의 전투 모습을 재현한 조각상 등이 있다. 우수영국민관광지의 하이라이트는 이 모든 명소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명량해상케이블카다. 해남에서 진도까지 약 1킬로미터 구간을 흔들림 없이 운행해 여유롭고 편안하게 풍경을 즐길 수 있다. 특히 해 질 무렵이면 하늘과 바다를 온통 붉게 물들이는 황홀한 노을까지 감상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호텔 울돌소리가 문을 열면서 우수영국민관광지에서 숙박도 가능해졌다. 그동안 마땅한 숙박 시설이 없어 생생한 역사 현장과 넘치는 즐길 거리를 당일치기로 경험하는 것이 아쉬웠는데, 해남군이 이런 여행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울돌목 근처에 호텔을 조성한 것이다. 총 32개 객실은 슈페리어 더블, 패밀리 스위트, 로열 스위트, 핸디캡 더블(장애인실) 등 여섯 개 타입으로 이루어졌으며, 시원한 창과 우드 톤 인테리어가 아늑한 휴식을 선사한다. 전면을 통유리로 마감해 개방감이 뛰어난 레스토랑 ‘라운지 1597’에서의 조식도 놓치지 말자. 천장에도 유리창을 내 아침 햇살이 양껏 쏟아지고, 지역의 제철 식재료로 차린 건강한 한 끼가 하루의 시작을 활기차게 채워 준다.
어느덧 잔잔해진 울돌목을 바라보며 여행을 마무리한다. 끝은 곧 새로운 시작이라 했던가. 해남 땅을 밟던 발걸음이 다시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