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yle

벌꿀의 달콤한 변주, 워커비

2025년 07월 25일

  • WRITER 고아라(여행 칼럼니스트)
  • PHOTOGRAPHER 김은주

새로움은 익숙함에서 비롯된다. 예스러운 한옥마을 어귀에 자리한 워커비 전주와 전통 꿀에 취향을 더한 워커비 블렌딩 허니가 그렇듯.

버려진 건물을 따뜻하고 단정하게 단장한 워커비 전주.
워커비는 벌꿀을 비롯해 프로폴리스, 화분 등 양봉 산물 전반을 활용한 제품을 선보인다.

전주 한옥마을은 단순히 오래된 골목과 다르다. 수백 년 세월이 켜켜이 쌓인 기와지붕 아래 현대미술을 선보이는 갤러리가 들어서 있고, 해의 움직임에 따라 깊이를 달리하는 중정에는 청년 바리스타가 내린 고소한 커피 향이 그윽하다. 여기 전주에서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꿀을 팔고 싶다고 말하는 워커비 정은정 대표를 만났다.

도시를 닮은 공간
전북 전주 완산구의 버스 정류장 ‘전동성당.한옥마을’ 앞에 적벽돌의 아담한 2층 빌라와 네모반듯한 흰색
3층 맨션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벌꿀에 천연 재료를 블렌딩해 달콤한 혁신을 일으킨 워커비의 보금자리, 워커비 전주다. 이곳에는 워커비의 시그너처 제품을 맛볼 수 있는 매장과 블렌딩 허니로 만든 음료를 내는 카페, 워커비를 이끄는 (주)로컬웍스 직원들의 작업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2018년 브랜드 설립 후 온라인을 중심으로 성장한 워커비는 고객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공간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론칭 5년 만인 2023년 말 전주 한옥마을 인근에 워커비 전주를 오픈했다. “워커비는 전북 익산 국가식품클러스터에서 제품 생산과 물류를 책임지는 기업이에요. 지역에서 성장한 브랜드이기에 전북에 오프라인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죠. 그중에서도 전북 최대 관광도시인 전주는 선물용 소비가 많은 워커비와 잘 맞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워커비 전주가 들어선 두 건물은 오랫동안 주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비인후과와 병원 원장 사택이었던 곳. 정은정 대표는 수년간 방치되었던 노후 건축물을 새롭게 단장했다. 덕분에 전주 여행의 시작점인 버스 정류장 앞 풍경이 바뀌었다. “전주에서 중요한 위치에 자리한 만큼 관광객부터 여행자, 지역 주민 모두가 이 공간을 충분히 누렸으면 좋겠어요.”
정 대표의 바람은 공간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좌석마다 콘센트를 설치해 휴대폰을 충전하거나 노트북 작업을 하는 데 불편함이 없고, 테이블 간 공간을 넉넉히 두어 만석이어도 여유롭게 느껴지도록 했다. “관광만 하고 싶은 도시가 있는 반면, 살아 보고 싶은 도시도 있잖아요. 저에게 전주는 살아 보고 싶은 도시예요. 워커비 전주도 여행자들에게 그런 곳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오프라인 공간을 갖춘 워커비는 날개를 단 듯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 갔다. 로컬 브랜드와 전국의 브랜드가 한데 모이는 시즌성 플리마켓 ‘워커비 하우스 마켓’을 개최해 지역 간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신제품을 출시할 땐 시식 행사를 열어 고객의 반응을 직접 살피기도 했다. 워커비의 인기 제품 중 하나인 프로폴리스 꿀 캔디는 고객들의 시식과 투표로 탄생했다.

특별한 꿀을 팝니다
양봉 산업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평가에 정 대표는 워커비를 ‘그저 꿀을 파는 브랜드’라고 말한다. 다만 그 꿀이 조금 특별하다는 것. 워커비는 양봉 농가에서 매입한 토종꿀에 천연 재료를 더한 블렌딩 허니를 선보인다. 유자, 얼그레이, 초코, 시나몬, 모히토, 그린티 등 다양한 맛의 꿀을 출시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기존 꿀이 그저 단맛을 내는 부재료였다면 블렌딩 허니는 그 자체로 존재감이 있는 주재료란 점이 다르다. “핫초코 대신 우유에 초코 꿀을 타 먹고, 시럽이 들어간 밀크티 대신 얼그레이 꿀을 넣어 맛을 내요. 탄산수에 모히토 꿀을 타면 논알코올 칵테일이 되죠. 이런 식으로 설탕 대신 꿀을 사용하면 맛은 물론 효능도 강화됩니다.”
이 외에도 정 대표는 그동안 꿀을 먹으며 느낀 점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제품 전반에 변화를 이끌었다. 꿀이 손이나 병에 묻어 끈적거리는 것을 막기 위해 투박한 유리병 대신 유연한 플라스틱 용기를 도입하고, 찬물에도 꿀이 쉽게 녹도록 용해 속도를 개선했다. 감각적 패키지는 인테리어 소품처럼 사용하거나 선물하기에도 그만이다. 워커비의 블렌딩 허니가 특별하면서도 쓸모 있는 선물을 찾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크고 무거운 유리병 대신 손안에 쏙 들어오는 귀여운 패키지, 취향을 고려한 다양한 맛, 여기에 합리적인 가격대까지.워커비는 ‘선물’이라는 카테고리 밖에 있던 꿀을 인기 선물 리스트에 올리며 굳건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꿀과의 운명적 만남
정 대표에게 꿀은 어릴 때부터 친숙했다. 지리산 벌꿀로 유명한 경남 산청에서 양봉업을 하던 조부모님 덕분에 방학 때마다 꿀과 벌을 찾으며 놀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할아버지 댁을 찾는 횟수는 줄었지만, 달콤한 꿀 냄새와 다정한 이웃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시골집에 대한 추억은 언제나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 정 대표가 다시 벌꿀과 인연을 맺은 건 아버지가 은퇴 후 귀향을 하면서다. 아버지를 따라 할아버지 댁을 찾은 그는 수십 년 전과 다르지 않은 양봉 농가의 현실을 마주하고 충격에 빠졌다. 꿀은 값어치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에 거래되었고, 진짜 천연 꿀인지 소비자들의 의심은 여전했다. 게다가 꿀 소비량이 꾸준히 줄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행복한 유년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이웃들의 고충이 마치 자신의 일처럼 안타까웠다. 오랜 숙고 끝에 내린 결론은 ‘직접 해 보자’였다.
우선 꿀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했다. “11년간 운영하던 사업을 접고 떠난 세계 여행에서 꿀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졌어요. 우리에게 꿀은 보통 찬장 깊숙한 곳에 두었다 필요할 때 조금씩 덜어 쓰는, 커다란 단지 안에 든 저장 식품인데, 외국에서는 작은 패키지에 담겨 잼이나 소스처럼 식사 때마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어요. 양봉가의 손녀인 저보다도 꿀과 가깝게 지내더라고요.” 꿀에 라벤더나 로즈메리 등의 허브류를 재워 먹는 모습도 신선했다. 집집마다 꿀에 재우는 허브나 향신료 종류가 다르니 한국의 된장, 고추장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꿀 소비량이 적은 젊은 세대에게도 어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카페에서 단 음료를 즐기면서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요. 카페 음료 중 설탕이나 시럽 대신 사용할 수 있는 꿀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 꿀에 천연 재료를 섞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맛이 좋다고 한들 소비자 눈에 띄지 않으면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 정 대표는 워커비의 ‘일벌’ 동료들과 함께 밤낮으로 머리를 맞대고 워커비의 정체성을 만들어 갔다. 동료들은 각자의 경험과 아이디어를 활용해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 싶을 만큼 깜찍한 디자인의 패키지를 완성했다. 대용량 유리병이 아닌 소스 통처럼 작고 가벼운 병으로. 정 대표는 꿀과의 만남이 그러하듯 동료들과의 만남도 운명이라 믿는다. “워커비의 성장 동력은 끈기와 능력이 출중한 동료들입니다. 제품 기획부터 디자인, 해외 진출까지 워커비의 성장을 이끄는 주인공들이에요.”
워커비 전주는 올해 매장 리뉴얼을 앞두고 있다. 워커비 제품이 어떻게 탄생하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전북 익산의 생산 설비를 전시 형식으로 설치할 예정이다. “브루어리나 와이너리를 구경하고 나면 그곳의 제품이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워커비 꿀도 생산 과정을 보고 상상할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워커비 전주, 그리고 정 대표의 목표는 단순하고도 명확하다. 10년, 20년이 지나도 ‘전주의 꿀 파는 집’으로 기억되는 것. 그렇게 지속 가능한 공간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