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옛것을 귀하게 여겨도 궁금해하지는 않았다. 전통과 현대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는 예술가를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우리를 놀라게 한 음악가와 무용수를 소개한다.

“마음을 놓아/ 이곳에서 날 불러/ 눈물은 닦고/ 달려온 나의 저 길을 바라봐”. 가사로는 전해지지 않는 청아한 목소리와 자유로운 몸짓. ‘국악 소녀’라고 불리던 송소희의 미발매곡 ‘Not a Dream’의 라이브 영상이 공개되자 사람들은 환호했다. 민요 대신 영어가 섞인 자작곡, 전형적인 국악은 아니지만 국악 창법이 섞인 독특한 가창 등 하나의 장르로 규정하기 어려운 그의 음악에 많은 이가 매료되었다. 송소희의 목소리를 해금, 대금 등 국악기에 비유하기도 했다. 영상이 올라간 지 두 달 뒤 음원이 정식 발매되고, 실내 뮤직 페스티벌 ‘더 글로우 2025’와 올해 20회를 맞는 ‘2025 인천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라인업에도 송소희의 이름이 올라 공연 마니아들의 기대를 모았다. “그래 내가 바란 거야”라고 노래하며 관객을 향해 환하게 웃는 그에게 팬들은 국악 소녀라는 수식어 대신 ‘해답을 찾은 소녀’라는 별명을 안겨 주었다.

국악의 대중화를 이끄는 음악가들
사실 대중이 국악인에게 열광한 건 처음이 아니다. ‘국악의 대중화’를 언급할 때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를 빼놓을 수 없다. 2020년에 발표한 곡 ‘범 내려온다’는 한국관광공사 유튜브 캠페인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 서울’ 영상에 사용되며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이날치는 판소리의 매력을 밴드로 가져오되 색다른 인상을 주고자 과감히 기타를 빼고 베이스 두 대와 드럼만 활용했다. 판소리보다 박자를 빠르게 바꾸고 강약을 주었으며, 멜로디를 단순하고 반복되는 형태로 만들었다. 판소리 ‘수궁가’ 중 별주부가 호랑이를 만나는 대목을 편곡한 이 노래에서 우리는 판소리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전에도 국악을 기반으로 새로운 음악 스타일에 도전한 사례는 많다. 국악과 록을 결합한 밴드 잠비나이는 기타, 피리, 태평소, 해금, 거문고, 드럼, 베이스 등 음향 밸런스가 안 맞는 악기를 모아 맹렬한 소리를 만들어 낸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무대를 장식했을 뿐 아니라 영국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미국 코첼라 페스티벌 같은 대규모 행사에 초청받는 등 국내외로 사랑받고 있다. 경기민요 이수자 이희문을 주축으로 구성한 민요 록 밴드 씽씽은 미국 공영방송 NPR이 제작하는 콘서트 영상 시리즈 ‘타이니 데스크’에 한국 가수 최초로 초대됐다.

2023년에 등장한 신예 뮤지션 삼산도 주목할 만하다. 한 손에는 가야금을, 다른 손에는 해금을 쥐고 노래하는 그는 제22회 한국대중음악상 신인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리며 잠재력을 인정받았다. 일곱 살 무렵 가야금을 시작했고 초등학생 때 사물놀이를 배운 후 중학생 때 해금을 전공했다. 국악고를 다니면서는 작곡에 뜻을 품었다. ‘아니, 그 돈을 벌써?’ ‘줄줄줄 팍팍팍’ ‘모르겠어’ 등 노래 제목에서 얼핏 느껴지듯 삼산은 본인의 생각과 고민을 가사에 풀어내며 공감대를 형성한다. 거기에 위트도 놓치지 않는다. 말하듯이 노래해 장기하가 떠오른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줄줄줄 팍팍팍’의 간주에 흐르는 구슬픈 해금 소리는 현대인의 고달픈 심정을 대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전통 의복의 발칙한 변신
이처럼 전통의 소리를 변주한 음악이 있는가 하면, 전통 의복을 재해석해 시선을 끄는 무용 공연도 있다. ‘범 내려온다’의 퍼포먼스 영상에서 귀를 사로잡은 건 이날치의 목소리와 연주였지만,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던 이유를 꼽으라면 단연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안무와 의상이다. 춤이 하나의 언어가 된다고 믿는 현대무용단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관객이 무용수의 얼굴이 아닌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도록 모든 단원이 선글라스를 착용한다. 거기에 정장부터 운동복까지 통일되지 않은 의상에 털 조끼를 겹쳐 입거나 다양한 종류의 갓을 쓰는 등 시대와 상황을 구별하지 않은 착장이 낯선 느낌을 준다. 8월까지 이어지는 전국 투어 공연 의 메인 포스터에 나오는 색동을 활용한 옷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갓을 소재로 한 공연도 큰 호응을 얻었다. 윤별발레컴퍼니의 <갓>은 한국 전통 의복인 갓과 서양 무용인 발레를 결합한 작품이다. 신분과 장소에 따라 다르게 사용하는 패랭이, 삿갓, 족두리 등을 발레리나와 발레리노가 머리에 쓰고 무대에 오른다. 사극에서 수없이 갓을 봤더라도 갓을 쓴 무용수가 곰방대를 문 채 우아하고 절제된 동작을 선보이는 모습은 색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전국 투어를 진행한 <갓>은 서바이벌 TV 프로그램 <스테이지 파이터>에 출연한 강경호, 김유찬, 정성욱 무용수의 인기에 힘입어 티켓을 발매하자마자 빠르게 매진됐다.

국립무용단의 신작 <미인> 또한 화제였다. 양정웅 연출가, 정보경 안무가, 서영희 스타일리스트, 장영규 음악감독, 신호승 아트 디렉터 등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제작진이 협업한다는 소식에 사람들의 관심이 더욱 쏠렸다. 모든 좌석이 매진된 후 추가 예매 문의가 많아 최종 드레스 리허설까지 공개했다. 정보경 안무가는 나비춤, 부채춤, 칼춤 등 한국 춤을 재해석해 여성 무용수의 강인함과 아름다움을 극대화했다. 30여 년간 패션 잡지 <보그 코리아>에서 활동한 서영희 스타일리스트는 삼베, 모시, 실크, 벨벳 등 소재와 색채를 폭넓게 사용해 의상과 오브제를 디자인했다. 강강술래에서 둥근 원을 그리며 돌다가 한 명씩 앞으로 나오는 장면은 패션쇼 런웨이의 일부 같았고, 여러 색깔의 가발을 쓰고 추는 탈춤은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 참여해 재치 넘치는 안무로 사랑받은 훅 크루를 연상시켰다.
전통 예술의 색다른 변신에 많은 사람이 긍정적으로 응답했지만, 일각에서는 신선함을 추구하려다 본질을 잃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중화라는 명목 아래 기술을 모방하거나 흉내 내는 예술가들이 출현할 수 있음을 고려한 것이다. 다만 어떤 장르든 소위 ‘입문용’ 작품이 있듯 관심을 높일 틈이 필요하다. “국악에는 정답이 존재해요. 정해진 틀 안에서 저마다 추구하는 톤이나 개성이 있기는 하지만, 대중음악처럼 개인의 주관이 드러나면 안 돼요.” 하지만 송소희는 자기만의 방법으로 전통을 계승하길 원했고, 국악원을 나와 광범위한 장르를 흡수한 끝에 대중 앞에 다시 나타나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 전통 예술을 이어 가려면 더 넓은 연령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