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Style

다정함이 세상을 바꾼다

2026년 04월 01일

  • WRITER 이미선(문화 칼럼니스트)
  • PHOTOGRAPHER 황필주
  • 촬영 협조 아산나눔재단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실천이 모여 세상을 바꾼다. 기술과 우정을 매개로 이동 약자와 그 친구들의 막힘 없는 이동을 위해 접근성 정보를 수집해 온 계단뿌셔클럽. 박수빈·이대호 공동대표는 계단뿌셔클럽을 통해 사람들의 작은 움직임이 각자의 우주를 넓히고 타인의 꿈을 확장하는 기적을 목도하고 있다.

정복 크루는 게스트 크루와 함께 산책하듯 동네를 거닐며 접근성 정보를 수집하고 앱에 업로드한다.

모두의 막힘 없는 이동을 위해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다만 서로의 세계를 인정하고 공감하려는 노력이 오해를 줄이고 관계를 유연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나에게 사소한 일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전부가 될 수 있고, 나는 의식하지 못할 정도의 작은 틈이 누군가에게는 넘기 어려운 장벽이 될 수도 있다. 나와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상은 그래서 소중하다. 계단뿌셔클럽은 계단 하나, 문턱 몇 센티미터가 일상의 동선을 완전히 바꿔 놓는다는 것을 몸으로 겪어 온 이동 약자 박수빈 대표와 동료 이대호 대표가 만든 접근성 정보 앱 서비스다. 지금은 도시 곳곳에 숨은 계단을 허무는 사람들의 연대로 발전했지만, 식사를 하러 가거나 미팅 장소를 정할 때마다 접근성 정보를 확인해야 하는 생활에 지쳐 이런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그렇게 2021년 4월 20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에 맞춰 계단뿌셔클럽이 탄생했고, 직장 생활을 하며 사이드 프로젝트로 운영했다.
서비스를 만들고 보니 어려운 건 기술이 아니라 데이터를 수집할 사람을 모으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지인을 동원했고, 다음에는 지인의 지인이 참여했다. 이후 ‘체험단’을 모집해 주말마다 산책하듯 동네를 걸으며 식당과 카페, 병원, 약국, 편의점 등 생활 편의 시설의 계단과 턱, 경사로 유무를 기록하는 행사를 열었다. 그렇게 하다보니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행사를 마친 참가자들의 표정이 마치 게임을 한 것처럼 밝아진 것이다. 누군가의 불편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기록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재미있고 마음을 건드리는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차가운 앱 위로 뜨거운 우정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웹으로 서비스하던 정보를 2023년 가을, 앱을 출시해 제공하면서 정보 접근성도 높아졌다.

우리 안의 문턱을 낮추고 허무는 일
계단뿌셔클럽은 시즌제로 운영한다. 매년 봄과 가을에 크루를 모집해 4개월 동안 활동하는데, 핵심은 접근성 정보를 수집하고, 이동 약자 당사자가 리뷰를 만드는 것이다. 크루는 외부 접근성 정보를 모으는 정복 크루와 방문 리뷰를 남기는 에디터 크루로 나뉜다. 정복 크루는 주말마다 자체적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열어 접근성 정보를 수집하는데, 계단뿌셔클럽은 이들의 활동을 온라인으로 홍보하고 게스트 크루 모집을 지원한다. 에디터 크루는 휠체어 사용자가 대부분인데, 매거진 에디터처럼 동네 곳곳을 다니며 공간 경험을 자세하게 리뷰한다. 이동 약자는 접근성 정보를 알면 ‘어디에 갈 수 있는지’ 알 수 있고, 나와 닮은 에디터 크루의 리뷰를 보면 ‘갈 만한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다. 갈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이 생기는 것이다. 2026년 봄 시즌에는 108명의 정복 크루와 32명의 에디터 크루가 모였다. 게스트 크루가 더해지면 400~500명이 활동하게 될 것이다. 이 외에도 기업과 학교의 봉사 활동 프로그램 협업 형태로 진행하는 파트너십 활동이 있다. 인원이 적을 때는 외부 활동을 하면서 접근성 정보를 수집하고, 많을 때는 비대면 교육 후 2~3주 동안 각자의 일상 속 접근성 정보를 등록하는 활동을 한다. 계단뿌셔클럽은 ‘이동 약자와 그 친구들의 막힘 없는 이동’을 지향한다. 그들이 부수고 있는 것은 콘크리트 계단이 아닌, 눈에 띄지 않는 고정관념과 내 문제가 아니라는 태도 같은 우리 안의 문턱이다.

‘기술’과 ‘우정’을 핵심 키워드로 설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박수빈 처음부터 우정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거라 믿은 건 아니에요. 되도록 많은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직장 동료와 수다 떨다가 아이디어가 나왔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진행했기에 든든한 자본이나 크루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요. ‘산책하면서 근처 정보를 모으자’고 했고, 각자의 지인들이 동행했어요. 지인이 지인을 데려왔고, 다음에 그 지인의 또 다른 지인을 데려오면서 활동을 이어 나갔어요. 그런데 예상 밖의 것을 발견한 거죠. 활동하면서 대화하고, 활동을 마친 후 소감을 나누면서 우정이 쌓인다는 걸 알게 됐어요. 금전적인 보상보다는 그러한 우정이 사람들을 우리의 활동에 끌어들이는 힘이 됐죠. 고무적인 것은 계단뿌셔클럽 초기에는 비이동 약자만 참여했는데, 활동이 쌓이면서 휠체어 사용자와 이동 약자의 지인들이 참여하게 됐다는 거예요. 비이동 약자와 이동 약자가 함께하는 순간, 생각보다 많은 문제가 해결돼요.

기대하지 않았던 강력한 힘을 발견했네요.
박수빈 휠체어 사용자의 경우 도움을 조금 받으면 계단이나 단차 같은 물리적 장벽을 쉽게 넘을 수 있어요(그렇다고 경사로가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우정과 다정함은 도움을 주고받는 것을 자연스러운 문화로 바꿔 놔요. 이는 이동 약자의 심리적 장벽을 무너뜨리죠. 계단뿌셔클럽의 활동이 정보를 모으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걸 발견한 거예요. 누군가의 세계를 넓히는 데 큰 도움을 주는 솔루션임을 알게 되면서 기술과 우정을 동등하게 놓고 있어요. 도움을 청하는 일도, 돕고 싶다고 말을 건네는 것도 어려운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아는 게 중요해요. 알면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더 빨리 확인할 수 있고,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을 수 있는 마음도 생기는 거죠. 그래서 클럽에서는 도움을 주고받는 게 굉장히 자연스러워요.

접근성 정보를 업로드하면 정복자 아이디를 새겨 주는 등 계단뿌셔클럽 활동이 마치 게임하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데, 이는 의도한 건가요?
이대호 재미가 리워드인 게임이죠! 계단뿌셔클럽이 지속되려면 활동이 즐거워야 해요. 그 결과로 개인이 보람이나 의미를 느낀다면 금상첨화고요. 하지만 굳이 의미를 앞세우고 싶지는 않았어요. 사람들은 의미 있는 일은 1년에 한두 번만 하면 충분하다고 여기지만, 재미있는 일은 열 번, 스무 번 이상도 해요. 계단뿌셔클럽의 활동이 가볍고 편안하되 재미있고 즐거워야 우리가 목표로 한 정보 수집에 유리하겠다고 생각한 거죠.
박수빈 우리가 간과하는 건 누구나 어린 시절 이동 약자였고, 부모님이 나이가 들면 내가 이동 약자의 가족이 되고, 내가 나이가 들면 다시 이동 약자가 된다는 사실이에요. 모두를 위한, 미래의 나를 위한 활동인 거죠. 피할 수 없는 일이고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 내가 이동 약자가 아니라고 해서 우리 활동을 타인을 위한 시혜적 활동이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처음에는 쉽게 접근하고, 게임 퀘스트 깨듯이 적극적으로 재미있게 참여하다가 의미까지 생각해 주면 감사할 따름이죠.

세상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고급 정보를 수집하는 셈인데, 앱의 확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나요?
박수빈 지금은 접근성 정보에 이어 이동 약자의 공간 경험 리뷰를 많이 만드는 것이 목표예요. 접근성 정보 외에 음식점이나 카페의 메뉴 리뷰까지 더해지면 비이동 약자도 즐겨 찾는 앱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게 우리의 지향점은 아니에요. 한국에서 교통 약자로 분류되는 이동 약자는 통계로 1600만 명이에요. 장애인이 250만 명 정도 되고 어린이와 임산부, 유아차 이용자와 동행인, 노인 인구까지 합친 거죠. 한국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기 때문에 그 수는 점점 늘어날 거예요. 지금은 이동 약자 중에서도 불편을 가장 많이 겪는 휠체어 사용자 위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지만, 점차 다른 이동 약자를 위한 콘텐츠도 늘려 갈 거예요.
이대호 그동안 5000여 명의 크루와 게스트들이 수도권 중심으로 약 11만 곳의 접근성 정보를 수집했어요. 시즌마다 100명 넘는 크루가 활동하고, 게스트는 그 네 배 정도 되거든요. 기업과의 협업 행사는 더 규모가 클 때도 많고요. 계단뿌셔클럽이 안정적으로 비즈니스를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우리만 가지고 있는 접근성 데이터로 서비스 제휴를 맺는 거예요. 예를 들면 구글이나 카카오맵에 접근성 정보를 제공하고 이용료를 받는 거죠. 그런 팀들이 관심을 가져 주면 좋겠어요.

수도권 위주로 정보를 수집하는데, 전국구로 확장할 계획은 없나요?
이대호 올해 안으로 서울의 접근성 정보를 정복하는 것이 목표예요. 서울에 있는 생활 편의 시설, 특히 식당, 카페, 약국, 병원, 편의점 같은 생활 밀착형 업종이 주요 상권 140여 구역에 12만 개가량 있어요. 그중 60퍼센트 정도의 정보를 수집했는데, 계획대로 된다면 올해 안에 서울은 웬만한 지역의 접근성 정보를 모두 확보하게 돼요. 내년부터는 비수도권으로 진출할 건데, 솔직히 구체적인 계획은 없어요. 수도권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기보다 지역의 장애인 복지관과 제휴해 우리의 노하우나 인프라를 동원해 정보 수집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야 할 것 같아요.

박수빈 대표는 휠체어 사용자인데, 여행을 많이 하는 편인가요?
박수빈 여행을 좋아하죠.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것을 보고 리프레시하는 걸 정말 좋아해요. 몰랐던 세상을 경험하며 나의 세계를 조금 확장할 수 있는 기회잖아요. 가능하면 늘 하고 싶은 게 여행이죠. 국내뿐 아니라 호주, 캐나다, 미국 등 해외여행도 다녀왔고 일본은 자주 가는 편이에요. 최근에는 계단뿌셔클럽 관련 출장이 잦아 KTX를 많이 이용합니다.

계단 복지가 좋은 나라나 도시는 어디였나요? 한국의 수준도 궁금해요.
박수빈 호주가 가장 좋고, 그다음이 일본이에요. 호주 사람들은 도움을 주고받는 문화에 열려 있어요. 건물을 못 찾아 헤매고 있으면 다가와 주고, 눈만 마주쳐도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어요.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러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편해지더라고요. 먼저 도움을 청하기도 수월했고요. 거절하면 또 그대로 쿨하게 갈 길 가더라고요. 한국은 낯선 사람과 눈을 마주 보는 문화도 아니고, 거절하면 불안한 눈빛으로 멀어지면서 끝까지 지켜보거든요. 좋은 마음인 건 알지만, 가끔은 부담스러워요. 도움 요청도, 거절도 쉬운 산뜻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일본은 도쿄 올림픽 이후로 시설이 많이 좋아졌고 인식도 많이 개선됐어요. 시트를 젖혀 휠체어째 탈 수 있는 택시도 많아서 편했고요. 한국은 여전히 아쉬운 점이 있어요. 특히 버스 이동이 어려워요. 서울을 제외한 지역 내 이동은 지하철이 촘촘하지 않거나 아예 없어서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데, 저상 버스가 드물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해요.

앞서 이동 약자가 1600만 명이라고 했는데, 잘 안 보여요.
이대호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 줄 사람이 없고, 어디를 가야 하는지 알기 어려워서 그럴 거예요. 지금까지 얘기한 정보 불확실성과 도움 불확실성 때문이죠. 물리적 장벽도 있습니다. 타인의 도움 없이 대중교통을 편리하게 이용하고, 노면이 매끄러워 이동하기 편하면 많은 이동 약자가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올 거예요. 하지만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일이죠. 우리는 정보 불확실성과 도움 불확실성을 줄이는 것이 물리적 장벽을 낮추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하며 활동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동 약자의 막힘 없는 이동을 위해 필요한 것이 기술과 우정이라고 강조한 거군요.
이대호 저희는 가고 싶은데 못 가는 사람보다, 가고 싶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누군가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면 왜 가고 싶냐고 물어요. 보통은 예능 프로그램이나 친구 인스타그램에서 본 사진, 영상에서 자극을 받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휠체어 사용자는 나와 상관없는 얘기로 받아들이죠. 예능 프로그램에 휠체어 사용자의 아이슬란드 여행기가 나오면 ‘휠체어로 갈 수 있는 곳이구나’ 하고 여행을 꿈꾸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일상의 많은 부분이 그래요. 계단뿌셔클럽에서 휠체어 사용자인 에디터 크루가 직접 콘텐츠를 만드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에요. 휠체어 사용자가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콘텐츠를 접하면 ‘나도 저곳에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계단뿌셔클럽을 통해 그리는 미래가 궁금합니다.
이대호 살면서 타인의 크고 작은 고통을 수없이 목격하게 돼요. 평범한 저는 잠깐 흔들릴 뿐 외면한 채 살아가죠. 누군가 제 어려움을 외면해도 서운하지만 그냥 넘겨요. 그러나 누구나 한 번쯤은 타인의 어려움에 함께 맞서는 다정한 친구가 되고 싶을 거예요. 저와 함께 활동하는 수많은 동료 크루들에게 계단뿌셔클럽은 그 한 번의 사건입니다. 마음이 뜨거워지는 명랑한 모험에 1000만 명이 합류하는 것, 이동 약자와 그 친구들의 힘으로 장벽을 부수는 것이 제가 바라는 미래입니다.
박수빈 저처럼 다정함을 발휘할 기회를 기다려 온 수줍은 사람들에게도 계단뿌셔클럽이 그런 곳이 되길 바랍니다. 이동 약자가 서로의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고, 더 자주 마주치고, 턱 하나쯤은 함께 뛰어넘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목격되는 미래. AI 기술도, 사람도 이 방향을 향해 함께 달리고, 굴러가는 세상을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