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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극장에 간다

2025년 03월 26일

  • EDITOR 김수아
  • PHOTOGRAPHER 김은주

예술에는 장벽이 없다고 하지만, 어떤 이들은 미술관이나 공연장을 이용할 때 상당한 불편을 느낀다. 모든 사람에게 열린 공간이 되고자 노력하는 서울의 두 극장을 발견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의 저자 가와우치 아리오는 한 시각장애인과 함께 미술관에 가자는 친구의 말에 머뭇거린다. 빛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본다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의아해하는 그에게 시각장애인 시라토리 겐지는 무엇이 보이는지 말해 달라고 요청한다. 시라토리가 작품을 감상하는 법은 한 작품에 대한 여러 사람의 해석을 듣는 것. 볼 순 없어도 눈앞의 작품을 느끼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었다.
공연은 전시를 관람할 때보다 더 많은 감각을 필요로 한다. 배우의 움직임, 각종 음향, 무대를 구성하는 장치 등 수많은 요소가 결합된 복합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애인 관객이 공연을 감상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장벽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하더라도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일 방안을 고민하는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과 모두예술극장에서 이에 대한 답을 찾았다.

청소년극 <쾅!>은 자막 해설과 수어 통역을 함께 제공했다. 수어 통역사는 작품 내용에 맞춰 체육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

모든 관객은 극장의 손님
서울 혜화동에는 국공립 극장인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이 있다. 아르코예술극장은 국공립 극장이 더 필요하다는 연극인들의 요구에 따라 1981년 당시 문예진흥원이 설립했고, 대학로예술극장은 대학로에 중극장을 열겠다는 목적으로 2009년에 개관했다. 그리고 2010년 가까이에 자리한 두 극장이 손을 잡았다. 이 중 아르코예술극장 입구 경사로가 건물을 처음 세웠을 때보다 평평해진 점이 눈에 띈다. 경사로가 울퉁불퉁해 극장 안까지 휠체어로 이동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돌을 갈아 내 지금의 경사로가 탄생했다. 2018년에는 한영 상호교류의 해를 맞아 내한한 칸두코 댄스 컴퍼니의 공연에서 처음으로 객석 한 줄을 없애고 휠체어석을 추가로 마련했다. 이때 칸두코 댄스 컴퍼니 단원을 비롯한 다수의 장애 예술인과 스태프가 극장을 방문했는데, 이것이 접근성 문제를 인식한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일반 객석을 뜯어냈던 라 구역은 탈부착이 가능한 의자로 교체해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 바로 옆에 위치한 대학로예술극장은 2023년, 자막 해설 모니터를 부착하는 공사를 하면서 맨 앞줄을 바퀴가 달린 이동식 객석으로 바꿨다. 공연 때마다 무대 가까이에서 관람하기를 원하는 휠체어 이용객 수만큼 의자를 빼내고 그 자리에 휠체어석임을 표시하는 매트를 깐다.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서 일하는 이유진 접근성 PD는 장애인 관객이 다양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고민한다. 대관 공연을 신청한 단체에 공연장에 설치할 빔 프로젝터를 빌려 주고, 자막 해설 오퍼레이터 섭외에 필요한 비용을 일부 제공하는 등 지원을 이어 간다. 장애인의 접근성을 높일 방안을 제안하고, 나아가 같이 공연을 제작하기도 한다. 지난해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을 수상한 <공동창작 실패 다큐멘터리: 생존자프로젝트는 생존할 수 있을까>는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과 극단 생존자프로젝트가 공동 기획한 연극이다. 본주 연출가는 연극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편안한 분위기에서 공연을 보길 바랐고, 자문 회의를 거쳐 ‘열린 객석’으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열린 객석을 도입할 경우 공연 중 관객의 행동에 엄격한 제한을 두지 않아 자극에 민감한 사람도 충분히 관람할 수 있다. 입장과 퇴장도 자유롭다. 공연 중 뜻하지 않은 자극이나 불안감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유용한 ‘도움 가방’도 준비했다. 청각 자극을 줄이는 소음 감소 헤드셋과 일회용 이어플러그, 긴장을 완화해 주는 스트레스 볼, 공연 중 스태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데 사용하는 감정 카드 등 국내외 사례를 참고해 다양하게 구성했다.


이유진 접근성 PD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탈부착이 가능한 객석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라 구역만 미묘하게 색이 다르다.

이처럼 접근성 PD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공연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도록 돕는다.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까지 고려해야 할 수많은 가능성 앞에서 창작자가 포기하지 않도록 물심양면으로 지원한다. “공공 극장 PD는 경험을 공유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작 과정 기록집을 공개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죠. 어렵다는 생각에 시도조차 못 하는 창작자에게 정답은 없고 우리도 계속 실패한다는 걸 보여 주는 거예요. 어떤 공연이든 모든 관객을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극장이 조금씩 변화하면서 한 번도 공연장을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관객을 만날 기회도 늘었다. 모든 회차의 자막 해설을 제공하고 일부 회차에는 수어 통역사가 무대에 오르기도 한 청소년극 <쾅!>은 서울농학교 학생 100여 명이 단체로 보러 와 큰 기쁨을 안겼다. 그가 이토록 열심히 공연을 꾸려 가는 데에는 스스로를 위한 마음도 있다. “나이가 들어 감각이 퇴화하면 저도 소외될 거잖아요. 모든 관객을 고려한 공연 시스템이 정착되면 나중에도 지금처럼 예술을 향유할 수 있겠죠.” 공연을 사랑하는 한 명의 관객이 또 다른 관객을 부른다.

객석에서 무대까지
극장에 가는 사람은 작품을 보러 가는 관객일 수도 있고, 공연을 하러 가는 예술인일 수도 있다. 장애인도 객석에서 퍼포먼스를 감상하거나 무대 위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할 수 있다. 2023년 10월 서울 서대문구에 문을 연 모두예술극장은 장애 예술인의 창작을 지원하는 공연장이다. 개관 프로그램으로 기획한 뮤지컬 <푸른 나비의 숲>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배우가 함께 출연해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한 메시지를 전했다. 소리로 세상을 느끼는 주인공 던은 저시력 장애 배우 이근하가 맡았고, 푸른 나비 역할은 저신장 배우 김범진과 김유남이 연기했다. 여섯 명의 수어 통역사가 그림자처럼 배우와 함께 움직이며 통역에 안무와 연기를 더해 대사를 입체적으로 전달했다. 4월 13일까지 열리는 연극 <젤리피쉬>는 발달장애인 배우 백지윤이 주인공을 맡아 다운증후군 여성 켈리를 연기한다. 모두예술극장은 관객, 배우, 제작진 등 누구나 공간을 이용하는 데 제약이 없어야 하기에 공간 전체를 단차 없이 설계했다. 또 공연을 올리거나 연습할 공간이 필요한 장애 예술인에게 대관 기회를 우선 제공한다.
모두예술극장에서 기획 공연을 주로 담당하는 신현우 무대감독은 장애 예술인과 함께 일하며 새로운 시각을 배운다고 말한다. 소통하는 과정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시각장애인 배우가 사전 답사를 하러 와서 무대의 폭을 물어본 적이 있어요. 4미터라고 답했더니 미터 자체를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무대 크기를 감각하는 방식이 다른 거예요.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에게는 미터 개념을 익힐 법이 없었던 거죠. 무대를 같이 걸으며 크기를 가늠하도록 도왔어요.”
장애 배우가 출연하는 작품이 많아지는 건 어쩌면 비장애인 관객에게 더 큰 의미를 갖게 한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문 극장은 배우와 관객의 거리가 어깨를 스칠 정도로 가깝다. 바로 앞에서 장애 배우의 움직임에 집중하다 보면 혼란스러운 순간이 찾아온다. 일상에서 이들을 제대로 바라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쳐다보는 일 자체가 폭력적이라 여겨 의도적으로 눈길을 돌렸는데, 응시할 대상으로 마주하니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바라봐도 되나, 어떻게 봐야 하나. 찰나의 자문자답 속에서 그동안 장애인을 향한 시선에 소통과 공감이 아닌 폭력과 비폭력만 존재했음을 깨닫는다.
무대 위 배우가 관객의 존재를 확인하고 현장 반응을 살피는 수단은 박수와 웃음소리다. 박수 소리가 우렁차고 웃음소리가 호쾌하면 배우는 더 신이 난다. 그러나 장애인을 향한 웃음은 부정적으로 비쳐지기 쉬워 장애 배우가 던지는 농담에 편하게 웃기 어렵다. “왜 우리는 마주 보며 기꺼이 기쁘게 웃어 본 적도 없을까.” 장애인 극단의 창작 과정을 관찰해 온 공연 예술 연구자 김슬기의 말이 마음을 쿡 하고 찌르는 이유다. 먼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극장에서 자주 만나야겠다. 한 공간에서 눈을 맞추는 시간이 쌓이면 서로를 향해 웃는 행동이 자연스러워질 테다. 그러려면 누구나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극장이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