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남의 연애가 더 재밌다

2025년 09월 29일

  • writer 정덕현(대중문화 평론가)

연애보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는 게 더 낫다? 최근 몇 년간 쏟아져 나온 연애 리얼리티에 대한 대중의 과몰입을 보면 이런 소리가 절로 나온다. 무엇이 이런 현상을 불러온 걸까.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전성시대
<나는 솔로> <하트시그널> <환승연애> <솔로지옥>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신들린 연애>…. 지금 한국은 연애 리얼리티 전성시대다.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로맨틱한 분위기의 연애를 담은 <하트시그널>, 보다 현실적인 연애의 정경을 담는 <나는 솔로> 같은 전통적인 방식의 연애 리얼리티는 물론이고, 헤어진 연인들이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는 <환승연애>나 천국도와 지옥도를 오가며 서바이벌에 가까운 연애의 아찔함을 담는 <솔로지옥>, 연애에 남매라는 가족의 시선을 더한 <연애남매> 같은 변주된 프로그램도 있다.
너무 많아진 연애 리얼리티들이 차별점을 찾기 위해 독특한 출연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새로운 스토리를 그려 나가는 경향도 생겼다. 모태솔로들이 참여해 모든 게 낯설고 처음이라 서툴러서 생겨나는 새로운 연애 스토리를 담은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나 무속인, 점술가 같은 운명을 점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을 한데 모아 운명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독특한 연애를 보여 주는 <신들린 연애>가 그렇다. 또 최근에는 나영석 PD와 김태호 PD가 함께 코멘터리로 참여해 각 회사 후배 PD들의 미팅을 들여다보는 <사옥미팅>이라는 유튜브 콘텐츠도 등장했다.
본래 연애는 ‘먹히는’ 예능 소재였다.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방영된 <사랑의 스튜디오>가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소박한 구성임에도 큰 인기를 끌었고, 2000년대 들어 리얼리티 시대가 시작되면서 <산장미팅-장미의 전쟁>이나 <천생연분> 같은 연예인들의 이른바 ‘짝짓기 프로그램’으로 인기를 이어 가기도 했다. <우리 결혼했어요> 같은 연예인들의 가상 부부 연애 리얼리티도 등장했고, 드디어 2011년에 <짝>이 일반인 연애 리얼리티 시대를 열었다. 연애는 늘 소위 ‘장사가 되는’ 소재였지만, 이를 다루는 방식은 타인의 사생활을 바라보는 대중의 감수성 변화에 따라 달라졌다. SNS가 일상화되어 사생활 공개와 관찰에 대해 불편을 느끼지 않으면서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연애 리얼리티는 본격적인 전성시대를 맞았다.

연애하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연애 리얼리티 전성시대는 연애라는 보편적인 관심사를 건드리는 소재와 더불어 사생활 공개에 대한 감수성 변화가 더해진 결과지만, 여기에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이 작용했다. 대중의 연애에 대한 관점 변화가 그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의 결혼율은 지난 10년간 거의 반토막이 날 정도로 뚝 떨어졌다. 특히 청년층에서는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경제적인 문제다. 연애는 물론이고 결혼, 나아가 출산과 육아는 모두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취업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은 결혼은커녕 연애도 부담스러워하는 상황이다. 특히 여성에게 결혼 후 이어지는 출산,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문제는 사회에서 자아 실현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연애조차 꺼려지는 중요한 이유로 작용한다. 또한 실제 연애 상황에서 겪는 심리적 부담감도 영향을 미친다. 오프라인 만남보다 온라인에 더 익숙한 세대는 직접 겪는 연애에서의 거절이나 이별에 대한 상처, 교제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부담을 느끼는 면이 있다. 실제로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를 보면 연애 경험이 없어서 이성 앞에만 서면 뚝딱거리는 이들은 물론이고, 잘못된 관계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로 불편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결국 한국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경제적·심리적 부담으로 실제 연애를 하기 어려운 이들에게 대리 충족을 안겨 주며 전성기를 맞았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과몰입과 현실 사이
최근 연애 리얼리티에 대한 대중의 과몰입은 SNS 개인 채널을 통해 올라오는 시청자들의 ‘리액션 영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프로그램을 보며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내보이는 시청자들의 리액션 영상 중에는 무려 100만 조회 수를 기록한 것도 여럿 있다. 그만큼 연애는 누구나 한마디씩 얹을 수 있는 보편적 소재이기도 하지만, ‘남의 연애’를 향한 적극적인 리액션은 이들이 얼마나 과몰입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하지만 방송 프로그램으로서의 연애 리얼리티는 형식 자체가 현실 연애와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연애 리얼리티는 대부분 남녀 출연자들을 일정 기간 특정 공간에 함께 지내게 하면서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감정적 변화를 들여다본다. 기간과 공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이들 간에 나타나는 감정 변화가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띠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처음에 마음이 간 이성이 있었지만, 하루이틀 만에 그 마음이 다른 사람에게 가는 일이 쉽게 벌어진다. 현실에서라면 보다 긴 시간을 두고 일어나는 일들이 한 공간에서 여러 이성이 ‘경쟁적으로’ 부딪치다 보니 짧은 기간에 생겨나는 것이다. 즉 연애 리얼리티의 제한적 시공간은 현실 연애와는 다른 감정이 생기게도 만든다.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폭발적으로 쏟아지면서 일반인들도 영향을 받아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이것 역시 현실 연애와는 다른 ‘방송용 연애’의 부작용 중 하나다. 이런 부분을 오인했다가는 남녀 간의 자연스러운 연애 관계를 곡해할 수도 있다. “연애를 책으로 배웠어요”라는 말처럼 “연애를 연애 리얼리티로 배웠어요”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현실 연애와 연애 리얼리티는 그렇게 다르다.
실제 연애를 하기가 부담스러운 현실에서 연애 리얼리티를 통해 대리 만족하고 즐거움에 빠지는 게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실제 연애와는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적당한 거리감과 균형감을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남의 연애가 제일 재밌게 느껴지지만, 그것이 실제 연애의 효용만큼 클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