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폭 산수화가 살아 움직인다. 비단에 수놓은 듯 산이 에워싸고 강이 흐르는 곳, 충남 금산에서 금수강산이란 관념적 이상을 맞닥뜨린다.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을 금산의 산천에 기댈 때다.
1. 달콤 쌉싸래한 쾌감
가을날 금산 인삼



시대가 바뀌고 세상이 달라져도 인삼은 여전히 귀하고 영험한 존재다. 유구한 세월 동안 일궈 온 한반도 인삼 문화 중심에 충남 금산이 있다. 국내 인삼 유통의 70퍼센트가량을 책임지는 금산의 인삼 재배 역사는 1500여 년 전 진악산 자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효심이 깊은 한 선비가 관음굴에서 기도하다 꿈에서 본 산신령의 말을 따라 ‘빨간 열매 셋 달린 풀뿌리’를 채취해 아픈 어머니에게 달여 먹이고는 크게 효험을 보았고, 그 뒤로 마을에서 약초 씨앗을 심어 기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 이것이 금산 인삼 재배의 효시가 되었다 한다. 볕과 바람을 활용한 재배 시설, 땅의 섭리에 근거한 윤작과 휴경 방식 등 자연 친화적인 전통 인삼 농법은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향긋한 제철 삼을 맛보려거든 금산수삼센터로 가면 된다. 수확철인 가을엔 하루 평균 150톤가량 거래가 이루어져 신선한 인삼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채웅주 금산수삼센터 과장은 인삼 고르는 법에 대해 이렇게 귀띔한다. “뇌두, 몸통, 뿌리가 골고루 발달하고 손에 쥐었을 때 단단한 질감이 느껴지는 게 훌륭한 삼입니다. 상처 없이 매끈한 표면, 원형이 유지된 잔뿌리 등 보기 좋은 삼이 몸에도 좋은 법이죠.” 삼 한 뿌리에 깃든 금산 사람들의 삶을 생각한다.
주소 충남 금산군 금산읍 인삼약초로 24(금산수삼센터)
문의 041-754-4185


이렇게 여행하세요
금산세계인삼축제 뿌리 깊은 전통을 자랑하는 제43회 금산세계인삼축제가 올가을 한층 성대한 모습으로 돌아온다. 방문객의 여독을 풀어 줄 ‘건강체험관’, 향긋한 인삼 가공품을 망라한 ‘국제인삼교역전’, 인삼을 어루만지며 감각하는 ‘인삼저잣거리’ 등 다채로운 볼거리와 알찬 즐길 거리가 우리를 기다린다. 축제의 백미는 밭에서 손수 인삼을 캐는 체험 프로그램. 직접 캔 삼은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바삭한 인삼튀김 한 입, 그윽한 인삼 막걸리 한 잔 맛보며 차오르는 기운을 만끽해 본다.
기간 9월 19일~28일
장소 금산세계인삼엑스포광장 및 인삼약초거리 일원
문의 www.insamfestival.co.kr
2. 계절을 건너는 시간
월영산 출렁다리


달그림자라는 뜻을 품은 신비로운 곳, 월영산의 맑은 기운을 받으러 간다. 예부터 금산 사람들은 정월대보름이면 산마루에 올라 특별한 의식을 치렀는데, 달이 떠오르는 방향을 보고 그해 농사의 길흉을 점쳤다고 한다. 이때 월영산 쪽은 풍년을 상징했으니 신묘한 힘을 품은 영산이라 할 만하다. 정상인 해발 529미터 월영봉은 그리 웅장하거나 거대하진 않아도 눈부신 풍광을 자랑한다. 가까이는 금산의 진산인 진악산과 충북 영동의 마니산, 멀리는 전북 무주 덕유산과 진안 마이산까지 내다보인다. 다행히 수고로운 등산을 하지 않아도 유려한 산세를 감상할 방법이 있다. 바로 월영산 출렁다리 건너기다. 높이 45미터, 길이 275미터의 아찔한 출렁다리는 긴장감과 설렘을 동시에 안긴다. 우아하게 휘청거리는 출렁다리 한복판에 이르자 짙푸른 금강 물길과 싱그러운 녹음이 두 눈 가득 담긴다. 산새도, 산신령도 부럽지 않은 한 폭의 수묵화다. 아슬아슬 한 걸음씩 내디뎌 강을 건너고 나서 부엉산 전망대에 다다르면 별안간 쏴아아 하는 물소리에 귀가 쫑긋해진다. 원골 인공 폭포가 쏟아내는 물줄기와 청량한 파찰음이 어수선한 머릿속을 환히 밝히는 순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이 계절의 공감각적 장면이다.
주소 충남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 168-5
문의 041-754-3837
3. 바람이 머무는 물길
적벽강



흐르는 것이 물인가, 바람인가, 마음인가. 붉은 절벽을 적시며 고요히 일렁이는 물길을 바라본다. 전북 장수에서 발원한 금강은 금산 부리면 수통리에 다다라 적벽강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중국 송대의 시인 소동파가 노닐던 장강 적벽의 풍경을 닮았다는 이유에서다. 시 짓고 노래 부르게 하는 아름다운 풍광은 물론, 살아 있는 지질학 박물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기기묘묘한 하천 지형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감입곡류 구간에서 발달하는 하식애(하천의 침식작용으로 발달하는 계곡 사면의 절벽), 하중도(퇴적작용으로 강 한가운데 생기는 섬), 사력퇴(하천 습지)를 맞닥뜨릴 때마다 절로 탄성이 새어 나온다. 물 좋고 바람 시원한 곳엔 으레 정자가 자리하는 법. 적벽강 변 한편에 동그란산이라는 자그마한 바위산이 있다. 조선 시대 광해군 때 한산군수를 지낸 양응해라는 인물이 벼슬길을 뒤로한 채 여기에 귀래정을 세우고 여생을 보냈다. 이곳은 훗날 벼슬아치들의 뱃놀이 장소가 되곤 했는데,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마을 주민들이 정자를 불태워 현재는 터만 남았다. 물결과 바람결에 무수히 쓸리고 깎인 기암괴석은 오늘도 기나긴 세월을 말없이 증언한다.
주소 충남 금산군 부리면 수통리 일원
문의 041-750-2371

한 걸음 더
적벽강가든 칼칼하면서도 풍미가 깊은 어죽으로 유명한 식당이다. 칼국수와 수제비도 담겨 든든하기까지 하다. 보통 주방에서 어죽을 끓여 뚝배기에 내오는데, 이 집은 반쯤 끓인 어죽을 냄비째 버너에 올려 내와 취향껏 점도를 조절해 먹을 수 있다. 이곳에서 직접 만든 손두부와 감칠맛 나는 양념을 발라 구운 도리뱅뱅이를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다. 지역 음식 경연 대회에서 수차례 입상하며 실력을 공인받은 식당으로, 3대째 손맛을 이어 오고 있는 이 동네 터줏대감이다. 적벽강을 마주한 위치라 전망도 빼어나다.
주소 충남 금산군 부리면 적벽강로 774
문의 041-753-3595
4. 싱그러운 은신처
보석사



진악산 남동쪽 자락에 안긴 듯이 자리한 보석사는 임진왜란 때 참전한 승병을 기리는 절이다. 입구엔 조선 헌종 때 세운 의병승장비가 서 있고, 조사전은 의승장과 종사관 스님 열네 분을 모신다. 호국 정신이 남다른 이곳엔 사찰 건립 당시인 886년 조구대사가 심었다고 알려진 은행나무가 있다. 천연기념물로 높이 34미터, 둘레 약 11미터의 위용이 넘치는 이 나무는 하나의 개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답다. 천년 세월을 버티고 선 나무 앞에서 우리는 존재의 유한함을 곱씹을 수밖에 없으니, 과연 가르치려 하지 않고도 가르치는 자연이다. 예부터 나라에 큰일이 생길 때마다 나무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흐느꼈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1945년 8·15광복과 1950년 6·25전쟁 등 역사적 사건을 지나는 순간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마을 사람들의 증언이 잇따른 것. 금산에서는 매년 가을 보석사은행나무대신제를 열어 사물놀이와 판소리, 승무, 부채춤 등 신명 나는 전통 연희를 펼친다. 오래도록 마을을 수호해 온 신께 정성을 바치는 행사다. 지난 7월에 열린 금산삼계탕축제에서는 이 나무에서 떨어진 은행 열매를 넣어 끓인 천년장수삼계탕을 선보이기도 했다. 천년의 시간과 정성을 응축한 맛이었을 테다.
주소 충남 금산군 남이면 보석사1길 30
문의 041-753-1523
5. 숲의 모든 것
금산산림문화타운


헤쳐 나가거나 하늘다리에 올라 산세를 감상한다.
걷고 뛰놀고 헤엄치다가 언제든 게으름 피우며 낮잠을 청해도 좋은 곳. 남이자연휴양림, 금산생태숲, 느티골산림욕장 등 여덟 개 시설을 아우르는 금산산림문화타운은 2008년 개장 이래 숲을 사랑하는 이들의 구심점이 되었다. 넉넉한 객실을 갖춘 숙박 시설과 편의 시설을 완비한 야영장, 계곡에 맞닿은 평상과 다채로운 부대시설은 물론, 최근엔 탐방 안내소부터 목재문화체험장까지 BF(Barrier Free, 장애물 없는 생활 환경) 인증을 받은 약 1킬로미터의 ‘무장애 나눔길’을 마련해 모든 방문객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북방계와 남방계 식물이 혼재하는 독특한 식생을 관찰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산딸나무·자귀나무·때죽나무·비복나무가 잎사귀를 팔랑거리고, 바람이 서늘해지는 이 계절엔 보랏빛 꽃잎을 틔우는 용담이 고개를 내민다. 숲 치유, 숲 해설과 함께 가장 인기를 끄는 프로그램은 목공 체험이다. 단풍나무, 편백나무, 박달나무 등 다종다양한 나무를 만지고 쓸고 쥐면서 손끝의 감각을 벼린다. 목재문화체험장 한편으로는 금산산림문화타운이 한눈에 담기는 하늘다리가 이어지고, 건물 아래쪽에는 하늘 슬라이드가 자리하니, 마음껏 숲을 가로지르며 달고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셔 본다.
주소 충남 금산군 남이면 느티골길 200
문의 041-753-57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