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그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2026년 01월 01일

  • WRITER 오유리(문화 예술 칼럼니스트)
  • PHOTOGRAPHER 서송이

혼란한 시대, 예술가의 사명은 무엇일까. 여기, 막 아흔 된 작가의 생애가 답이 될 수도 있겠다. 왕성한 호기심으로 새로운 재료를 탐색하고 예민한 감각으로 시대의 쟁점을 포착해, 보이는 것 너머의 세상을 펼쳐 보이는 일. 예술가들은 그렇게 미래를 사유한다.

백남준아트센터 특유의 복합적이고 유연한 공간을 무대로 묵직한 미술사적 의미를 갖는 조안 조나스의 대표작들이 리듬감 있게 펼쳐진다.
조안 조나스의 초기작 ‘바람(Wind)’(1968). 뉴욕 롱아일랜드 해변에서 촬영한 16밀리미터
흑백 무성 필름으로, 바람에 몸을 맡긴 퍼포머들의 움직임이 극대화 한 즉흥성과 우연성을 보여준다.

조안 조나스. 어쩌면 조금 낯선 이 이름이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특별하다. 퍼포먼스와 비디오 장르의 선구자로 ‘예술가의 예술가’로 불리며 50여 년 동안 주요한 예술적 흔적을 남기고, 작품뿐 아니라 발언과 행보 하나하나가 동시대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말하자면 ‘교과서에 나오는’ 작가인 셈이다. 그러나 그 명성에 눌릴 필요는 없다. 한국 관람객들에게 비디오로 전해 온 작가의 말을 먼저 들어 보면 마음이 조금 편해진다. “작품의 의미를 애써 알아내려고 하지 않길 바랍니다. 천천히 보고 느끼세요. 여러분이 감상하고 느끼는 것이 정답일 겁니다. 그저 즐겼으면 합니다.”
경기도 용인의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는 조나스의 국내 최초 미술관 개인전 <조안 조나스: 인간 너머의 세계>는 작가의 당부 그대로 천천히 감상하며 즐기기 좋은 전시다. 1968년부터 2025년까지 작가의 전 생애를 아우르는 주요 작업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은 그가 제8회 백남준예술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2024년 11월 조나스는 ‘인류 평화에 기여하고 미술사적 족적을 남긴 예술가’에게 백남준의 이름으로 수여하는 백남준예술상의 주인공이 됐다. 실제로 뉴욕 소호의 이웃이자(창문을 열면 서로의 집이 보일 정도로 가까웠다고 한다) 20세기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형태의 예술 발전에 기여한 동료이기도 했던 작가가, 다름 아닌 백남준의 뜰에서 한국 최초의 대규모 전시를 선보이게 된 것이다.

바람 부는 해변을 따라 움직이는 퍼포머들을 담은 비디오에 드로잉, 사운드를 결합한 작품 ‘강으로부터 심해의 평원으로(Rivers to the Abyssal Plain)’(2021). 함께 전시한 초기작 ‘바람’부터 50여 년에 걸쳐 자연의 힘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탐구하며 다양한 매체로 변주해 온 작가의 예술 세계를 함축한다.
관객이 작은 상자 크기의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밀착된 시야로 퍼포먼스를 경험할 수 있도록 설계한 ‘마이 뉴 시어터 III: 그림자 속의 그림자(My New Theater III: In the Shadow a Shadow)’(1999).

퍼포먼스, 비디오 그리고 미술관
1936년 미국 뉴욕 출생인 작가는 대학에서 조각과 미술사를 전공했다. 졸업 후 조각가로 활동을 시작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퍼포먼스로 전환, 196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펼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뉴욕은 플럭서스 운동의 중심이자 실험 예술의 뜨거운 둥지였다. 아이디어와 재능을 가진 이들로 가득한 이 도시에서 작가는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영감을 얻었고, 음악과 무용이 결합된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사실 훈련되지 않은 관람객에게 퍼포먼스는 조금 낯선 예술이다. 주제가 심화되고 변주될수록 관람객은 더 당황한다. 그러나 일찌감치 조나스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는 시, 조각, 영화, 춤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에게 하나의 몸짓은 드로잉과 같은 무게를 지닙니다. 그리고 지우고, 그리고 지우고….” 작가의 신체를 매개로 하는 퍼포먼스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밤새 고쳐 쓴 시어와 다를 바 없는 예술적 표현이라는 고백이다. 구도자와도 같은 이러한 태도는 조나스의 퍼포먼스가 소란하거나 충격적이기보다는 관조적이고 사유적인 이유일지도 모른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마주하는 ‘바람’(1968)이 바로 그런 작품이다. 뉴욕 롱아일랜드 해변에서 촬영한 16밀리미터 흑백 무성 필름으로, 작가를 비롯한 퍼포머들이 거센 바람에 몸을 맡기고 즉흥적으로 움직이는 5분 37초짜리 퍼포먼스 비디오다. 오로지 흑과 백만 있는 화면 속에서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 내는 날것의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묵직한 명상적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된다. 굳이 ‘자연과 신체의 상호작용’이라는 거창한 개념을 대입시키지 않더라도 사유를 촉발하는 조나스의 퍼포먼스 세계를 응축해 보여 주는 작업이다.
조나스는 1970년대 일본 여행 중 소니 포타팩 카메라를 구입하면서 퍼포먼스에 대한 접근법을 완전히 바꾼다. 퍼포먼스 장면을 한참 뒤에야 확인할 수 있는 기존의 녹화 방식과 달리 실시간으로 확인 가능한 폐쇄회로 비디오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전시장 한복판에서 CRT 모니터로 상영되고 있는 비디오 작업 ‘오개닉 허니의 시각적 텔레파시’(1972)다. 작가는 에로틱한 얼굴의 가면을 쓴 분신(자신의 페르소나와도 같은 이 부캐의 이름이 바로 오개닉 허니다)과 본래 모습으로 번갈아 등장하며 재현된 이미지와 현실의 간극을 시각적으로 실험한다.
소니 카메라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 조나스는 거울과 종이 연, 원뿔, 카메라 옵스큐라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사물과 장치를 능숙하게 다루며 시각적 실험을 발전시켜 나간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이어진 ‘마이 뉴 시어터’ 연작은 일종의 미니어처 휴대용 극장 형식의 작업이다.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영감받은 이 구조물 안에서 관람객은 조그만 상자를 들여다보며 온전히 몰입한 상태로 퍼포먼스를 경험하게 된다. ‘마이 뉴 시어터 III: 그림자 속의 그림자’(1999) 앞에 놓인 1인용 벤치에 앉은 관람객이 오랫동안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바람’을 통해 퍼포먼스에 대한 불편함을 덜어 낸 것처럼, 이 재미있는 상자 앞에서 비디오 아트에 대한 고정관념 역시 기분 좋게 부서진다. 사진이나 텍스트가 아니라 미술관에서 직접 작품을 만나야 하는 이유다.

작가의 반려견 오즈의 목에 소형 카메라를 부착해 오즈의 시선이 그대로 담기도록 한 비디오 작품 ‘아름다운 개
(Beautiful Dog)’(2014). 종간 경계를 넘어 교감하고 영감을 주었던 오즈의 존재가 전시장 전체에 온기를 불어넣는다.
여행 중 마주한 이미지들을 담은 사진과 비디오 위에 드로잉과 퍼포먼스를 중첩한 설치 작품
‘시내, 강, 비행, 패턴 III(Stream or River, Flight or Pattern III)’(2016/2017). 비디오 매체의 기술적 요소를 완벽하게 활용하는 동시에 수공예적 요소를 더해 강한 미학적 완성도를 구현해 낸다.  

조안 조나스, 끝나지 않은 실험
초창기 인간 중심의 서사를 벗어나 1980년대부터 신화와 문학을 토대로 새로운 생태적 내러티브를 구축한 조나스는 2000년대에 이르러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학적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 그리고 마침내 인간과 함께 지구를 이루는 새와 물고기, 바람과 바다를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작가는 “지구가 직면한 상황은 끔찍하고 저는 이 위기에 깊은 슬픔을 느낍니다. 제 작업을 통해 바다와 육지의 생물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기적 같은 생명체들의 중요성을 이해하면 우리 자신도 더 잘 이해하게 된다고 믿습니다”라고 말한다. 작업실에 갇히기보다 세계를 누비며 시야를 넓혀 온 작가의 종착점이 인간이 아닌 ‘지구 타자(인간과 더불어 지구를 이루는 생명과 환경을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는 용어)’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를 전달하기 위해 조나스는 독특한 설치 형식을 고안했다. 조각과 회화, 퍼포먼스와 비디오, 영상과 음향, 구조물과 스크린 등 온갖 요소를 하나의 공간에 중첩시키거나 펼쳐 놓는 방식이다. 전시장 한쪽의 작은 방에서 마주하는 ‘시내, 강, 비행, 패턴 III’(2016/2017)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작가가 여행 중 마주한 풍경, 사물, 동물의 흔적을 모아 비디오, 드로잉, 오브제로 엮은 은밀한 공간으로 들어가면 온갖 이미지가 혼재되어 동시에 말을 걸어오는 듯한 묘한 세계가 펼쳐진다. 싱가포르의 새 보호구역에서 촬영한 영상 클립 위에 작가의 퍼포먼스가 겹쳐지고, 나무 보드에 마커로 그린 새 드로잉 위로 하노이에서 수집한 연이 부유하는 기묘한 중첩! 언뜻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요소들이 어지럽지만 조화롭게 뒤섞이며 다층적 감각을 확장하는데, 바로 이것이 작가가 관람객의 생태적 감수성을 깨우는 방식이다.
돌이켜 보건대 조나스는 전 생애를 통해 쉼 없는 실험과 깊은 사유로 예술가의 일에 몰두해 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관람객이 작가를, 아니 예술을 조금 더 가깝게 느끼는 순간은 작품 속에서 작가의 아주 사적인 순간이 포착될 때다. 관람객이 오랫동안 걸음을 멈추고 미소 지으며 들여다보는 비디오 작품 ‘아름다운 개’(2014)의 주인공은 조나스의 반려견 오즈다. 오즈의 목에 소형 카메라를 부착해 개의 시선이 그대로 담긴 비디오 작품이다. 반려동물이 주인공인 예능 프로그램에서 본 듯한 앵글이 익숙한 탓일까. 심하게 흔들리거나 뒤집힌 화면으로 느껴지는 오즈의 신이 난 듯한 걸음과 호흡, 그 안에 담긴 주인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작가의 모습, 들뜬 분위기와 자유로운 움직임, 바다와 숲 풍경은 전시 공간 전체에 따뜻한 감각을 불어넣는다. 고흐의 힘찬 붓질을 보며 감동하는 것처럼 생명력 넘치는 오즈의 영상 앞에서 벅찬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감각은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라 할 ‘빈 방’ (2025)에 들어서는 순간 더욱 확장된다. 실험적일 뿐 아니라 철학적이고 명상적인 작가 특유의 미학이 응축된 최신작으로, 작품 이름과 달리 조각과 드로잉, 비디오와 음악 등 다양한 예술 언어가 한 공간에서 교차하는 대규모 설치 작품이다. 허공에는 다양한 형태의 미색 종잇조각이 부유하듯 떠 있고, 앙상하게 마른 나뭇가지 드로잉 40여 점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며, 정면에는 소녀들의 그림자를 담은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종잇조각에서 나오는 연약한 빛과 작가의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재즈 뮤지션 제이슨 모란이 작곡한 피아노 선율이 어우러져 꿈과 현실, 소리와 침묵이 교차하는 가운데 생명의 순환을 함축한다. 무려 50여 년의 서사를 담은 방대한 전시의 끝에 선 관람객이 조나스의 세계를 고요히 감각할 수 있도록 긴 벤치를 놓아 둔 것도 인상적이다. 명성만으로 작가를 평가할 수는 없지만 ‘왜 지금 조안 조나스인가’에 대한 답이 될 만한 공간이다.
백남준아트센터 특유의 유연한 공간성을 해치지 않으며 리듬감 있게 배치된 작품들을 작가의 당부대로 천천히, 오래 즐기다 전시장을 나서며 문득 재밌는 상상에 빠졌다. 100세가 된 이 예술가는 어떤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볼까. 그 너머 세계에는 무엇이 있을까. 현재로선 그 누구도 가늠할 수 없는 10년 뒤 지구의 생태와 인류의 문제를 어떤 재료와 형식으로 담아낼까. 조나스에 대한 백남준예술상 심사 평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지속적인 미디어 실험 정신뿐 아니라 창작과 예술을 통해 인류와 세계 평화에 기여했다.” 일찌감치 미래를 사유해 온 조안 조나스 방식의 실험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이왕이면 희망이 담긴 평화의 언어로.

© Joan Jonas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Courtesy of the artist and Gladstone
Photography by Toby Coulson

조안 조나스
제8회 백남준예술상 수상 작가로 1936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비디오, 퍼포먼스, 설치, 사운드, 텍스트, 조각 등 다양한 미디어를 아우르며 자신만의 장르를 개척해 온 세계적인 아티스트다. 인간을 둘러싼 모든 것, 동물과 식물, 기후와 지형, 나아가 자연 전체를 다뤄 온 작가의 실험적 작품은 퍼포먼스와 비디오부터 개념미술과 연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대 예술의 장르적 결합과 확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카셀 도큐멘타(1972, 1977, 1982, 1987, 2002, 2012)와 베니스비엔날레(2015) 등에 참가하고 런던 테이트 모던, 뮌헨 하우스 데어 쿤스트, 뉴욕 현대미술관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전 생애에 걸쳐 미술이 세계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질문하고 실천해 온 ‘예술가의 예술가’로서 현재도 여전히 실험을 이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