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 식물을 구조하는 백수혜 작가와 함께 서울 불광동 재개발 단지를 꼼꼼히 살폈다. 공덕동 식물유치원에 들일 신입생을 찾아 나서는 여정이었다.



2 구조 활동할 때 사용하는 도구와 공덕동 식물유치원 입학을 앞둔 유기 식물.
서울의 재개발 단지를 돌며 식물을 구조하는 백수혜 작가에 대해 들었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식물을 애지중지 키우는 사람은 많이 봤지만, 버려진 식물의 안위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5년 전 공덕동 재개발 단지 근처로 이사한 백 작가는 골목을 배회하다 건물을 감싼 덩굴식물을 발견했다. 창문을 뒤덮은 담쟁이와 출입문을 가로막은 채 자태를 뽐내는 능소화가 그의 시선에 포착됐다. 여름볕을 받아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는데 공사가 시작되면 이들의 미래는 보장될 수 없었다. 시멘트 바닥에 뒹구는 알로카시아가 보였고, 쓰레기 더미 위에 누운 장미허브와 이름 모를 다육식물도 눈에 밟혔다. 안타깝게 버려질 운명을 잘 돌봐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 주자고 결심했다. 이렇게 우연한 계기로 공덕동 식물유치원의 유기 식물 구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첫 번째 입학생인 알로카시아를 포함해 재개발 단지에서 구조한 많은 식물이 공덕동 식물유치원을 거쳐 갔다. 봄부터 가을까지, 매달 한 번씩 열리는 졸업식에서 식물들이 새로운 반려인을 만난다. 버려진 식물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마음은 어떨까. 일일 식물 구조대로 활동하고 싶다고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2 새로 들인 부추는 전에 구조한 부추와 미나리가 자라고 있는 화분에 심었다.
불광동 식물 구조대로 나서다
백수혜 작가는 서울의 재개발 지역으로 구조 활동을 나간다. 처음엔 집 근처 공덕동을 돌아다녔고, 이후에는 연남동·노량진동·흑석동 등을 번갈아 가며 들렀으며, 올해는 불광동을 중심으로 다닐 예정이다. 불광역 근처 관동어린이공원에서 만난 그는 본격적인 활동에 앞서 자신만의 구조 원칙 두 가지를 공유했다. 버려진 식물인지 확인하기, 틈새에 깊이 뿌리 내린 식물은 구조하지 않기. 특히 누군가 키우고 있는 식물은 아닌지 꼼꼼히 살핀다. 벽에 붙은 이사 안내문, 잠긴 가스 배관, 출입 금지 스티커 등이 이곳에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알려 준다.
“2025년 10월 20일 아침 8시 이사 갑니다. 많은 양해 부탁합니다.” 빈집임을 알리는 문구를 발견한 뒤 구석에 놓인 화분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햇빛이 드는 곳으로 화분을 옮기니 백 작가가 호미를 손에 쥐여 준다. 숙련자의 말에 집중하며 주변의 흙을 파 화분에서 식물을 조심스럽게 꺼내 올렸다. 성공적인 구조를 축하하는 박수와 함께 식물 스티커 하나를 건네받으니 의욕이 생긴다. “얘는 돌나물이에요. 일상에서 쉽게 만나는 식물의 이름과 특징을 알리고 싶어 일러스트 스티커를 제작했어요.” 생애 첫 식물 구조를 기념하기 위해 화분에 돌나물 스티커를 붙이고 인증 사진을 찍었다.
한적한 골목을 걷던 그가 구조 대상을 찾았다고 손짓한다. 흔히 나물로 요리해 먹는 방풍이다. 초록색 박스에서 다시 호미를 꺼내 신중히 뿌리를 건져 올린 뒤 투명한 플라스틱 통에 담는다. 그냥 두면 버려질 운명이었던 방풍이 돌봄을 받고 자라 새로운 가족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묘한 기분이 든다. 다음 골목 귀퉁이에서는 이끼를 마주했다. 호미로 긁어서 채취한 이끼는 뽁뽁이로 감싼다. 수분 유지를 위해 분무기로 서너 번 물을 뿌려 주었다.
길가에 울창하게 자란 사철나무도 구조 대상일까. “사철나무는 겨울에도 초록 잎을 유지해 구조하기 쉬워요. 몸집이 커서 뿌리째 가져가긴 어려우니 보통 가위로 잘라서 챙기죠.” 사철나무를 감고 올라간 나팔꽃의 씨앗 주머니도 모습을 드러낸다. 검은색 씨앗은 어떤 색의 꽃으로 피어날지 아직 모른다. “나중에 꽃 피면 알려 주세요.” 손에 놓인 작고 동글동글한 존재를 관찰하며 씨앗의 미래를 상상해 본다.
흔히 방앗잎으로 불리는 배초향의 쌉싸름한 향을 맡고, 해바라기 조화와 함께 버려진 부추도 구조했다. 마지막으로 동물 배설물 사이에서 하트 모양으로 구부러진 원추리도 만났다. 식물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울 때는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원추리는 시간을 두고 지켜보기로 하고 지도에 위치만 저장했다. 이 식물의 꽃말처럼 제대로 된 구조를 하려면 ‘기다리는 마음’도 필요하다. 제자리에서 잘 버텨 공덕동 식물유치원에 입학하라고 응원의 눈빛을 전했다.

유기 식물의 보금자리, 공덕동 식물유치원
식물로 가득 찬 박스를 안고 공덕동 식물유치원으로 이동했다. 작은 마당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식물들이 모두 이 유치원의 재학생이다. 이젠 신입생을 위한 입학 절차를 거칠 차례다. 앞으로 잘 성장하도록 각자의 자리를 찾아 주는 것이다. 식물마다 식재하는 방법이 다른데, 버려진 물건의 쓰임을 찾는 백수혜 작가는 이 과정에서 재활용할 방법을 고민했다. 다 먹은 에너지 드링크병은 사철나무를 담는 물꽂이용 미니 화병으로 사용하고, 빈 소스 통은 흙에 거꾸로 꽂아 물을 주는 용도로 변모한다. 새로 들인 부추와 돌나물은 각각 전에 구조한 부추와 돌나물이 자라고 있는 화분을 같이 쓰게 된다. 이끼를 구입할 때 받은 판에 흙을 판판하게 덮어 가져온 이끼를 올리고, 방풍은 화분에 흙을 부어 우뚝 선 채로 심었다. 유치원 마당에는 신입생을 위한 원예용 상토가 항상 자루째 비축되어 있다.
공덕동 식물유치원에는 구조한 식물과 새로 산 식물이 공존한다. 장아찌를 만들어 먹으려고 구매한 산마늘, 몸에 좋다고 알려진 당귀도 함께 키운다. 마당을 천천히 둘러보다 모든 유치원생이 졸업을 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첫 번째 입학생이자 졸업생인 알로카시아가 아직 여기에 살아요.” 뿌리를 여러 개로 나눠 물꽂이를 했고, 일부는 기념 삼아 간직하고 있다. 어쩌면 이 화분 속 알로카시아는 유치원을 졸업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독성을 지닌 줄 모르고 분재하다가 식물액을 만져 손이 얼얼했던 적도 있지만, 이제 알로카시아는 남에게 보낼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
하루 동안 불광동 재개발 단지를 살피며 가장 많이 한 질문은 “이 식물 살아날까요?”였다. 손으로 가리킨 식물 중 일부는 영 가망이 없어 보였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얜 살 거예요.” 보기와 달리 살아 있다는 말을 들으니 왠지 마음이 놓였다. 열정을 잃은 사람들, 축 처진 자신을 바라보며 실망한 사람들에게 시든 모습도 괜찮다고 얘기해 주고 싶다. 추운 계절이 지나면 다시금 활짝 피어날 거라고,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말라고 토닥여 주고 싶다. 식물과 공존하는 삶은 언제든 다시 회복하리라는 믿음을 키워 나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