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이끼바위쿠르르의 新산수화

2024년 12월 26일

  • wrtier 염하연(미술 컬럼니스트)
  • photographer 고승욱

한반도 곳곳에 버려진 불상이 전시장에 소환됐다. <이끼바위쿠르르: 거꾸로 사는 돌>전에서 과거의 돌이자 미래의 존재, 미륵불을 마주한다.

인간이 질병과 전쟁 등으로 존재의 위기를 겪을 때마다 지구는 반대로 상처를 회복했다. 코로나19가 지구를 점령했을 때, 대기오염 물질과 탄소 배출량이 급감하면서 인도 뉴델리 시민들은 몇십 년 만에 대기오염 없는 맑은 하늘을 보았다. 인적이 드물어진 영국의 해안 도시에는 산양 떼가 내려와 거리를 활보했다. 지구에 잠시 세 들어 사는 인간이 빠르게 지구를 좀먹어 가는 상황에 대한 고민은 최근 10년간 우리에게 가장 긴요한 문제다. 예술에서도 마찬가지다. 재난의 시대에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는 아마도 이 시대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고민하고 풀어 나가야 할 과제일 것이다.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는 돌, 미륵

이끼가 덮인 바위를 뜻하는 ‘이끼바위’와 의성어 ‘쿠르르’를 결합한 이끼바위쿠르르는 고결, 김중원, 조지은이 구성한 ‘시각 연구 밴드’다. 자연과 환경의 일부로 자생하고 있는 농부들, 열대와 해초 등 자연현상을 연구해 온 이들의 작업 태도는 어떤 것도 해하지 않고 자신의 경계를 확장하는 이끼와 닮았다.
첫 번째 개인전 <이끼바위쿠르르: 거꾸로 사는 돌> 역시 그러한 작업의 일환이다. 이들은 오랜 시간 비바람에 풍화되고 이끼와 풀과 들꽃을 자신의 몸 가장자리에 피워 가며 자리를 지킨 ‘돌’들의 시간, 그중에서도 돌로 만들어진 미륵의 시간을 거꾸로 더듬어 올라간다. 모든 것은 무상하므로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남기고 떠난 석가모니의 뒤를 이어 중생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하는 미륵은 일종의 구원자였다. 그만큼 셀 수 없이 많은 미륵불 조각상이 전국 각지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미륵은 버려졌고, 이제는 아무도 찾지 않는 돌로 남겨졌다. 이끼바위쿠르르는 이 버려진 미륵들을 전시장 안으로 불러 모아 그들의 몸에 새겨진 과거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미륵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든 뒤 56억 7000만 년이 지나면 도솔천을 떠나
사바세계에 출현해 중생을 교화한다는 미래불(未來佛)이다.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것은 미륵의 손바닥, 수인이다. ‘부처님 하이파이브’는 부처가 중생의 모든 두려움과 근심을 없애는 수인인 시무외인(施無畏印)의 형상을 한 조각으로, 실제 미륵 조각상의 손을 본떠 주조했다. 미륵의 환대를 받으며 전시장에 들어서면 전시와 동명의 영상 작업 ‘거꾸로 사는 돌’을 만난다. 이끼바위쿠르르는 구원자이자 신앙이었던 미륵이 이제는 수도권 외곽이나 논과 밭 같은 장소에서 발견된다는 점에 주목해 그 일대를 원경으로 응시했다. 영상은 도시 개발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뼈대만 구축한 잿빛 건축물, 산업폐기물과 쓰레기로 가득 찬 외딴 곳, 바다의 먼 풍경을 포착한다. 그 한편에 돌처럼 자리한 미륵의 모습이 보인다. 버려진 미륵은 마치 영원히 그 자리에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존재할 것처럼 자연과 어우러져 한 몸이 됐다. 영겁의 시간 동안 녹아들어 어떤 것도 해하지 않는 미륵. 인간을 광대무변한 자연의 일부로 여겼던 동양철학과 산수화의 정신성을 떠오르게 한다.
스크린의 대각선 방향에는 영상 속 논밭에 자리하던 미륵을 실제 크기로 본떠 만든 동명의 조각 ‘거꾸로 가는 돌’이 있다. 손때가 묻어 깎여 나간 코와 인자한 미소를 띤 미륵을 정면에서 마주하자 그 뒤편으로 조금 전 보았던 영상 ‘거꾸로 가는 돌’이 시야에 들어온다. 조각 ‘거꾸로 가는 돌’을 다시 영상 위에 포개어 감상하는 동안 공간은 문득 고요한 사찰로 변모한다. 관람자는 미륵의 눈, 귀, 입, 손바닥에 둘러싸여 미륵이 지나온 과거의 시간을 조용히 따라가게 된다.

미륵의 얼굴 조각에서 시선을 양옆으로 옮기면, 사찰의 탱화만큼 거대한 벽면 드로잉 ‘더듬기’를 만날 수 있다. 총 16점으로 구성된 이 드로잉은 직접 미륵 조각상에 한지를 댄 후 그 표면을 숯으로 더듬고 문질러 미륵의 형상과 질감을 살린 작품이다. 석상의 재료인 화강암의 거친 표면이 숯의 흔적과 미세한 요철로 고스란히 드러나니, 얇은 한지 위에 미륵의 시간이 그대로 녹아 있는 듯하다.
전시장 한가운데 위치한 ‘우리들의 산’은 한국 석산의 기개와 아름다움을 조각해 만든 상상의 산이다. 지점토와 먹으로 만든 석산은 먹을 번지게 하는 발묵법으로 그린 산수화가 조각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다. 이 석산은 대상화하지 않은 자연 그 자체로, 영상 ‘거꾸로 사는 돌’의 풍경과 대비를 이루며 작품과 공간 사이의 여백을 채우고 균형을 조율한다.

잠시 멈추어 서서 뒤를 돌아보자

영상 작업 ‘쓰레기와 춤을’은 어쩌면 이끼바위쿠르르가 이 전시를 빌려 우리 모두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직설적으로 담아낸 메시지함인지도 모르겠다. 영상의 배경은 아마도 오랜 시간이 지난 먼 미래의 지구, 그러니까 56억 7000만 년 후의 지구다. 미륵은 약속대로 인간을 구하러 지구에 내려왔다. 그런데 이미 인간은 멸종했는지 흔적조차 보이지 않고,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운 벌판과 쓰레기만 남아 있다. 쓰레기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굴러다니며 춤을 춘다. 미륵은 그것을 그저 바라본다. 미륵의 시선을 좇는 동안 우리의 비관적인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 인류에게 미래는 있을까.

수인은 불보살이 양쪽 손가락으로 나타내는 모양을 뜻한다.
깨달음의 내용이나 활동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시다.

이제는 과거를 살아 낸, 모든 시간을 몸에 새긴 자애로운 미륵처럼 우리도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이 전시는 말한다. 재난의 시대에 이 전시의 의미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버려진 미륵을 공간 안으로 소환하는 것, 그 공간을 미륵의 과거-체험적 시공간으로 탈바꿈하는 것, 그럼으로써 인류의 과거와 잘못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한다.
“계속 전진만 거듭하다가 지난날을 돌아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더 가슴에 와닿으리라 생각한다.” 전시를 기획한 김지나 큐레이터가 밝힌 의도다. 우리는 뾰족하게 자신을 소진하며 앞으로 나아가려는 욕망이야말로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문명을 추동한다 믿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탈이 난다. 모두가 잠시 멈추고 과거의 시간을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인류가 자신의 잘못으로 극한 상황에 몰린 지구를 위해 그렇게 해야 하듯, 저마다 쉼 없이 달려온 시간을 돌아보며 숨을 고르고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있기를.


한 걸음 더

지구 환경 문제를 논하는 전시가 필연적으로 직면하는 문제 중 하나는, 전시 폐기물이 오히려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자가당착적 상황이다. 이끼바위쿠르르는 이 문제를 염두에 두고 친환경적인 전시 공간을 구성하고자 했다. 가령 영상 작업의 경우 블랙박스를 설치하는 대신 조도를 조정하는 등 영상의 집중도를 높이는 방식을 사용했고, 이전 전시에 썼던 가벽을 재활용해 최대한 폐기물의 양을 줄였다. 공간의 적절한 여백과 작업 사이의 균형감 역시 인위성을 최대한 덜어 내고 전시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일조했다.

<이끼바위쿠르르: 거꾸로 사는 돌>
기간 1월 26일까지
문의 02-733-8949(서울 아트선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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