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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사람들 Ⅰ

2024년 12월 26일

  • editor 강은주
  • photographer 전재호
  • 제작 지원 문경시청

들을 문, 경사 경. 새해 기쁜 소식을 들으러 경북 문경으로 떠났다. 이 땅에 기대어 사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또 걸었다.

새재를 넘고, 물길을 따라 걷고, 성곽을 오르고, 습지를 가로지른다.
문경은 끊임없이 여행자의 감각을 깨우는 땅이다.
가는 방법 수도권 출발을 기준으로 경기도 판교역에서 KTX를 타고 문경역까지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겨울날의 은신처, 돌리네습지에서

모든 것이 동면에 든 듯 고요한 습지에서 생명이 약동하는 소리를 들었다.

언 땅에 햇살이 스미기 시작한 아침, 버드나무 뒤편에 웅크린 고라니가 가냘픈 몸을 일으켜 물가로 다가갔다. 기척에 놀란 걸까, 잠자코 있던 오목눈이는 잰 날갯짓을 하며 빠르게 튀어 올랐다. 그 바람에 은백색 물억새꽃이 나부끼며 춤을 췄다. 분방하고도 눈부신 군무다.
산북면 우곡리의 굴봉산이 감춰 둔 생명의 사원, 돌리네습지에 발을 디딘다. 2007년 문경시청과 국립환경과학원 생태조사단의 공식 보고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 전까지 돌리네습지는 마을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었다. 10여 년 전에야 좁은 포장도로가 났을 만큼 오염되지 않은 땅, 오랜 시간 지게와 낫을 사용한 전통 농경 방식을 지켜 낸 정직하고 순전한 땅이었다. 2017년 습지보호지역, 2024년 경북 지역 최초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이곳엔 여전히 오미자밭과 사과를 기르던 과수원, 우물 터 세 곳과 논두렁 등이 남아 아득한 세월을 증언하고 있다.

문경 돌리네습지

약 49만 제곱미터(15만여 평) 규모에 달하는 생태의 보고로, 한국에서 스물다섯 번째 람사르 습지로 지정됐다.
2028년 유네스코 국제지질공원 등록을 추진하고자 복원 사업을 진행 중이며, 탐방 지원 센터 등 시설을 확충하고 있다.
문의 www.gbmg.go.kr/doline/

마르지 않는 땅,
마르지 않을 생명의 노래

방문객 일행을 실은 탐방용 전동차가 가파른 언덕을 아슬아슬하게 오르내린다. “돌리네는 탄산칼슘을 함유한 석회암 지표면이 지하수나 비에 녹아 형성된 둥근 웅덩이입니다. 배수가 잘 되는 보통의 돌리네와 다르게 이 웅덩이 바닥엔 풍화토인 테라로사가 깔려 있어 언제나 일정량 이상 물을 머금고 습지를 이루지요.” 운전대를 쥔 채 가이드 역할을 능란하게 수행하는 김한웅 자연환경해설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지구상에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곳이 2500여 곳인데, 그중 돌리네습지는 여섯 곳뿐입니다. 지질학적으로 매우 독특한 지형이지요. 932종의 생물이 깃들여 사는 거대한 집이기도 합니다.”

돌리네습지는 읍실마을 사람들의 생활 터전이었다.
오랜 시간 지게와 낫을 사용한 전통 농경 방식을 지켜 낸 정직하고 순전한 땅이었다.
람사르 습지로 지정된 이곳엔 여전히 사과를 기르던 과수원,
우물 터 세 곳과 논두렁이 남아 아득한 세월을 증언하고 있다.

김 해설사가 나고 자란 고향 또한 이곳이다. 그는 돌리네습지의 생태를 몸으로 배우고 경험한 읍실마을 토박이로, 수달·삵·고라니·담비 등 다종다양한 생명체를 목격해 왔다. 꽝꽝 언 물웅덩이에서 스케이트를 타다가 날이 풀리면 소를 먹이며 습지를 어슬렁거리는 게 이 동네 소년들의 일과였다고 했다. 때때로 습지 아래 형성된 석회동굴을 누비기도 했단다. “굴봉산이라는 이름에서 ‘굴’은 예부터 동굴이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돌리네습지는 굴봉산 자락 290미터 높이에 위치하지요. 서울 남산이 해발고도 262미터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쉽게 실감하실 겁니다.” 스마트폰에 ‘굴봉산 석회동굴’을 검색하려던 차, 통신 신호가 명멸하더니 끊어지고 만다. 김 해설사가 웃으며 말을 덧붙인다. “깊은 산중이라 전화 연결이 어렵습니다만, 오히려 잘됐다고 좋아하는 분도 많더라고요. 돌리네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침식되고 있어서 안전을 위해 동굴 진입을 막아 두었습니다.” 예기치 못한 디지털 디톡스의 순간. 점차 머리가 환해지고 긴장이 누그러진다. 비로소 자연과 맞닿을 준비를 마친 듯하다.

인간과 비인간이 공존하는 곳,
문경의 허파 돌리네습지

물과 흙, 풀과 나무로 빚은 크고 질박한 찻사발. 전망대에서 굽어보는 돌리네습지의 모습은 문경 전통 공예품 다완처럼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과 생동감이 흘러넘친다. 자연의 생명 활동이 은밀하게 벌어지는 겨울, 산벚나무와 층층나무가 꽃망울을 틔우는 봄, 모든 생명이 살아 있음을 소리쳐 외치는 여름, 복자기나무와 신나무가 잎을 물들이는 가을. 어떤 계절이든 고유한 활기를 뿜어낸다.

돌리네습지의 지형적 특성은 마을 풍습과 생활상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아낙들이 길어 온 물을 항아리에 부어 석회 가루가 가라앉기를 기다릴 때, 사내들은 키버들 가지를 삶아 채반이나 키를 만들고 대나무 가지로 자리를 짰습니다. 참방거리며 물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이따금 붕어, 미꾸라지, 민물새우를 한 움큼씩 건져 올렸어요. ‘물밤’이라고도 부르는 물풀인 마름을 따서 묵을 쑤어 먹기도 했죠.” 옛 농로에 설치한 생태 탐방 덱을 거니는 동안 김 해설사가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를 두런두런 풀어 놓는다.
읍실마을의 아이로 자라 어느덧 일흔이 훌쩍 넘은 그는 날마다 이 땅을 수호하는 마음으로 희귀 동식물을 관찰, 보존하고 있다. “몇 해 전 이곳에서 길이가 3미터나 되는 구렁이를 발견해 보고하기도 했어요. 곳곳에 카메라를 설치해 시시각각 변화하는 돌리네습지의 풍경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고라니는 제 앞에 서면 포즈도 취해 주지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왜가리 한 마리가 그림인 양 우아한 자태로 날아와 앉는다. 수면에 비친 제 옆얼굴이 얼마나 근사한지 알까. 거울보다 투명하고 고요하던 겨울날의 돌리네습지. 가만히 숨 죽이며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었다.

돌리네습지의 희귀 동식물

수달 족제비과에 속하며 멸종위기 1급에 해당한다. 예민한 청각, 후각으로 서식지를 탐지한다.
구렁이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인 유린목 뱀과의 파충류. 한국의 뱀류 중 몸집이 가장 크다.
들통발 산림청 지정 희귀 식물로, 습지의 유충을 잡아먹는 수생 식충 식물이다. 겨울에는 잎이 검어진다.
꼬리진달래 여름에 토끼 꼬리처럼 생긴 탐스러운 꽃을 피운다. 양지바른 산기슭에서 잘 자란다.

문경을 굽어보다

유려한 성곽길과 깎아지른 듯한 벼랑길을 거닐며 이 땅을 밟았을 옛사람들을 생각했다.

<문경에서 만난 사람>
박원일

문화관광해설사.
문경에 얽힌 옛이야기를 수집한다.

선비의 길을 따라서,
새재에서 돌고개까지

경상도를 가리키는 영남이란 표현은 소백산맥의 고갯길인 조령과 죽령의 남쪽이란 뜻을 지닌다. 조령은 문경의 새재, 즉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를 한자어로 표현한 것이다. 그토록 높고 험준한 새재건만, 선비들은 과거를 치르기 위해 이곳을 곧잘 오르내렸다. 가장 빠른 지름길이거니와 다른 경로인 추풍령을 지나면 추풍 낙엽처럼, 죽령을 지나면 죽죽 미끄러지듯 시험에 낙방한다는 우스개가 떠돌았기 때문이다. 겨우 새재를 통과한 선비들은 돌고개를 경유했다. 돌고개의 다른 이름은 ‘꿀떡고개’. 영남대로를 드나들던 많은 이가 여기서 조청 묻힌 떡을 사 먹었다는 민담이 전해 온다. 오늘날 꿀떡고개 표지판 너머엔 성황당과 주막을 복원해 놓은 다정한 거리가 펼쳐져 있다.
겨울 볕이 흙바닥을 뭉근하게 달구는 오후, 박원일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돌고개를 넘어 성곽길을 누비기로 했다. 돌리네습지 옆 마을에서 유년을 보냈다는 그는 한때 문경탄전의 단산광업소에서 광부로 일했고, 청송을 비롯한 경북 지역 교도관으로 근무했으며, 퇴임 후 귀향해 문화관광해설사가 되었다. 남다른 길을 걸어온 까닭일까, 그의 설명엔 풍부한 예시와 생생한 장면이 가득했다. 돌고개 성황당에 얽힌 전설부터 영남대로에 산재한 문화 유적의 내력까지, 그는 걸음걸음마다 문경의 역사와 자연의 이야기를 선명하게 아로새겨 주었다.

‘길의 박물관 ’에 닿다,
진남문과 진남교반

이제 진남문으로 천천히 내려가 봅시다.” 박 해설사의 말을 듣자 하니 이 부근엔 ‘진남’이란 지명을 내건 지형지물이 여럿이다. 진남휴게소, 진남터널, 진남숲, 그리고 TV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에도 출연한 식당 ‘진남매운탕’···.
그중 제일은 누가 뭐라 하든 진남교반, 그러니까 진남교 주변의 경관일 것이다. 진남이란 단어의 연원은 임진왜란 당시 남쪽을 진압하기 위해 쌓은 석현성의 관문인 진남문에서 엿볼 수 있다. 이 문을 분기점으로 신라 시대에 축조한 성곽인 고모산성을 따라 올라가거나, 영남대로 옛길인 토끼비리를 따라 내려가면 진남교반의 눈부신 풍광을 맞닥뜨린다. 조령천과 영강이 만나 휘몰아치듯 흐르는 물길, 어룡산과 오정산의 푸른 능선이 빚어 낸 병풍 같은 산세, 철길과 다리와 도로가 한데 교차하는 역동적인 모습은 과연 ‘살아 있는 길의 박물관’이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을 만큼 벅차게 다가온다.

무수히 많은 이의 발길에 차여 반들반들하게 닳은 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름다운 길은 결코 쉬운 길일 수 없다고, 때로는 온몸으로 기어 넘어야 하는 벼랑길이라고.

오정산 자락의 아찔한 잔도,
토끼비리에서 배운 것

우리의 걸음은 고모산성 남문지에 펼쳐진 돌무지와 동·북·서문지를 지나 다시 진남문으로 돌아왔고, 마지막 코스 토끼비리에 다다랐다. 이곳은 오정산 자락의 협곡에 낸 아찔한 잔도로, 영남대로 옛길에서 특히 험난한 구간이라 손꼽힌다. 어떤 구간은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큼 폭이 좁기에 발을 내디딜 때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곤 했다.
“‘비리’란 벼랑의 사투리입니다. 고려 태조 왕건이 벼랑길을 따라 달아나는 토끼를 좇아 진군했다는 설화를 간직한 곳이죠.” 토끼비리는 2007년 문경새재와 죽령 옛길, 강원도의 구룡령 옛길과 함께 ‘길’로는 최초로 문화유산에 지정됐다. 여말선초의 문인 어변갑은 이곳을 두고 “넘어지는 것은 빨리 가기 때문이요/ 기어가니 늦다고 꾸짖지는 말게나”라며 노래하기도 했다. 이 길을 지나는 과정이 그만큼 고되고 험난했음을 말해 주는 시구다.
무수히 많은 이의 발길에 차여 반들반들하게 닳은 길. 앞장서 걸어가는 박 해설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름다운 길은 결코 쉬운 길일 수 없다고, 때로는 온몸으로 기어 넘어야 하는 벼랑길이라고.

  • 돌고개 영남대로를 오가던 길손을 위한 주막이 늘어섰던 옛 고개다. 문경의 마지막 주막 ‘영순주막’을 재현해 옛 정취가 느껴진다.
  • 성황당 마을 사람들과 과객의 안녕을 기원하던 건물. 1976년 제작한 상량문이 발견되어 2013년 12월 문경 옛길박물관에 기증됐다.
  • 진남교반 문경 8경의 하나로, ‘경북 제1경’으로도 불린다. 1933년 한 언론사가 진남교반을 경북 최고의 명승으로 선정했다.
  • 진남문 임진왜란 당시 남쪽을 진압하고자 세운 석현성의 관문이다. 2004년 복원 당시 서예가 황규욱 선생이 현판을 썼다.
  • 진남숲 영강이 진남교반을 휘도는 지점에 청청한 솔숲이 펼쳐진다. 1급수에서만 서식한다는 꺽지가 이 일대에서 발견된다.
  • 토끼비리 <신증동국여지 승람>에 관갑천과 토천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잔도다. 영남대로에서 가장 험한 길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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