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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사람들 Ⅱ

2024년 12월 26일

  • editor 강은주
  • photographer 전재호
  • 제작 지원 문경시청

경치 좋은 금천 변에는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근사한 풍경이 이어진다.

물길 따라 흐르는 마음

<문경에서 만난 사람>
채훈식

주암정을 날마다 쓸고 닦는 그는 이따금 자신이 쓴 시를 객들과 나눈다.

금천 변의 구곡 문화

아름다움을 공유하려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우리가 멋진 풍경을 디지털 이미지로 복제한 뒤 ‘스토리’에 올리듯, 선인들은 경관마다 이름을 붙이고 시를 짓거나 그림을 그렸다. 여기에 이따금 정사(精舍), 즉 자연의 기운으로 몸과 마음을 닦기 위한 학문적 은신처를 세워 올리기도 했다. 송나라 주희가 중국 무이산의 아홉 굽이 계곡을 가리켜 무이구곡이라 부르고 구곡가를 지어 부른 것이 이러한 구곡 문화의 시작점이었다.
물길이 유려한 문경 땅은 안동, 영주와 더불어 경북 지역의 구곡 문화를 대표한다. 문경읍의 화지구곡, 농암면의 쌍룡구곡, 신선이 노닐 만큼 눈부신 가은읍의 선유구곡도 이름 높지만 이번 여정에서는 산양·산북면에 걸친 금천 변의 원림 석문구곡의 일부를 들여다보았다. 석문구곡은 조선 정조 때 문신인 근품재 채헌이 스승인 청대 권상일의 청대구곡을 계승해 농청대에서 석문정에 이르는 아홉 굽이를 꼽은 것이다.

주암정의 신선
채훈식 옹을 만나다

제2곡 주암에 올라선 주암정은 문경의 구곡 문화를 논할 때 단연 ‘섬네일’로 꼽을 만한 장소다. 뱃머리를 닮은 바위 주암에 지어 올린 그림 같은 정자. 홍길동전보다 100년 앞선 한글 소설 <설공찬전>을 쓴 나재 채수의 6세손, 유학자 주암 채익하를 기리기 위해 1944년 후손들이 세운 건물이다. 봄이면 진분홍 박태기나무꽃이, 여름이면 색색의 연꽃이 피어나 운치를 더한다.
여기 신선이 산다. 나재의 10세손 채훈식 선생. 그는 몸소 주암 아래 연못을 파서 ‘배를 띄운’ 인물로, 거동이 불편한 몸을 일으켜 날마다 정자를 쓸고 닦으며 손님을 환대하고 있다. 경치 좋은 자리에 주전자와 커피 믹스를 두곤 “주인이 없어도 차 한잔 드시고 가세요”라는 메시지를 써 붙이는 일도 잊지 않았다. “땅을 팔아 연못을 만들고 나무를 심어 정원을 가꿀 때 다들 나를 조롱했지요. 순탄치 않은 세월이 흘러 백발이 되었으니, 평생을 이 정자에 바쳤네요.” 우공이 산을 옮길 때, 채공은 풍경이 되었다.

금천 변의 또 다른 정자

경체정 벽정이라고도 부르며, 청대구곡 제2곡이다. 금천 부벽과 어우러지는 풍광이 한 폭의 산수화다.
우암정 청대구곡 제1곡, 석문구곡 제3곡인 우암대 위에 우암 채덕동 선생이 선조를 기H리기 위해 지은 정자.
비파정 잘생긴 소나무와 함께 기암괴석 위에 올라선 정자로, 석문구곡 제6곡 반정에 해당한다.

문경의 이야기꾼

감홍 사과를 전국에 알린 주인공이자 가은읍에서 나고 자란 문경 사람, 신현국 문경시장이 우리에게 초대장을 건넨다.

<문경에서 만난 사람>
신현국

문경시장. 고향의 자연과 먹거리에 깊은 애정을 느낀다. 지역 특산물 감홍 사과를 손수 재배하고 있다.

1월, 문경을 방문할 여행자에게 코스를 추천해 주세요. 겨울은 우리를 추위에 웅크리게 하지만 그만의 정취를 간직한 계절입니다. 문경의 첫 번째 여행지, 문경새재는 겨울에 유독 더 아름답습니다. 제1관문에서 제3관문까지 이어지는 옛길의 풍경을 두 발로 누비며 감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바람을 피할 곳도 추천해 드립니다. 문경 에코월드는 탄광 역사를 간직한 문경석탄박물관과 가은오픈세트장을 아우르는 테마파크입니다. 옛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갱도 열차를 타고 시간 여행을 즐기세요. 문경오미자테마터널에 들러 색색의 조명을 배경으로 근사한 사진을 남겨도 좋겠습니다.

문경에서 반드시 맛봐야 할 먹거리가 있을까요? 제철 과일을 눈여겨보았다면 감홍이란 이름이 반가울 겁니다. 한국에서 개발한 품종인 감홍 사과는 껍질 색깔이 검붉은 편이라 한동안 시장성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문경 사과 축제에서 껍질 벗긴 과육을 시식한 방문객들에게 빼어난 맛이 알려지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장미꽃 같은 향기에 과즙이 많아 한 입 베어 물면 잊을 수 없는 풍미가 입안 가득하니까요. 오미자도 빼놓을 수 없죠. 품질이 뛰어난 문경 오미자는 시고, 달고, 맵고, 쓰고, 짠 다섯 가지 맛이 또렷합니다. 음료, 술, 한과 등으로 가공해 다채롭게 즐길 수 있습니다.

드라마 & 영화 속 장면에서 종종 문경의 풍경을 만납니다. 촬영지를 짚어 주신다면요. 지난봄 TV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 문경 곳곳이 등장하면서 여행객이 부쩍 늘었습니다. 이야기의 배경 ‘용두리’가 된 문경읍 용연리는 물론, 구랑리역과 문경 에코월드가 아름답게 소개되었지요. 그런가 하면 지난가을에는 우리 고장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문경>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주인공 이름이 지명인 문경과 가은일 뿐 아니라 주암정과 고모산성, 선유동계곡과 잉카마야박물관&캠핑장 등 우리 지역의 명소가 멋지게 그려져 눈길을 끕니다. <문경>의 주인공처럼 문경의 산천에서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좋은 소식을 듣는 땅, 문경이란 지명에 깃든 유래가 궁금합니다. 한반도 중부를 탄탄히 받치고 있는 문경은 예부터 교통의 요지였습니다. 새재를 넘고 나면 경사스러운 소식이 들려온다고들 했지요. 선비들이 조령을 거쳐 과거를 보러 가는 경우가 많았기에, 좋은 소식이란 흔히 과거 급제를 의미했습니다. 여기서는 시간을 더 거슬러 역사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가은역이 있는 가은읍은 견훤 장군이 태어난 지역인데, 태조 왕건이 여기서 견훤의 아버지인 아자개가 투항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이를 좋은 소식이라 여긴 겁니다. 바로 여기서 문경이란 이름이 비롯되었다는 설화가 전합니다.

앞으로 기대해도 좋을 문경의 여행 콘텐츠를 소개해 주세요. KTX 문경역에서 출발하는 시내버스를 1월 1일부터 전면 무료로 운행할 계획입니다. 새재를 비롯한 유수의 여행지로 쉽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문경의 새로운 랜드마크인 봉명산 출렁다리, 야경이 아름다운 영강보행교도 놓치지 마시고요. 머지않아 주흘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해 이동 약자도 편리하게 여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중입니다. 계절이 바뀌고 봄이 오면 찻사발축제가, 가을이 오면 사과·오미자·한우 등 3대 특산물을 알리는 축제가 성대하게 열리니 문경의 맛과 멋을 두루 음미해 보세요.

카페 가은역

옛 가은역 건물에 들어선 카페다. 민트색 지붕과 창틀, 벽 한편에 걸어 둔 역장 제복 등 곳곳에서 역사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문경 사과로 정성껏 만든 사과쿠키크림라테와 사과밀크티, 사과콩포트, 사과버터 등이 향기롭고 맛깔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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