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식 장애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허술한 치료 체계는 환자를 고립시킨다. 극심한 다이어트의 부작용으로만 여기는 병을 이젠 제대로 들여다봐야 할 때다.

지난 7월 11일에 방영된 KBS 시사 교양 프로그램 <추적 60분>의 제목은 ‘섭식 장애, 삼키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방송은 섭식 장애를 앓는 이들의 모습과 섭식 장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했다. 국내 섭식 장애 발병 양상과 추이를 언급하며 나날이 높아지는 섭식 장애의 심각성과는 달리 빈약한 한국의 섭식 장애 치료 시스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환자의 70퍼센트 이상이 여성인 섭식 장애는 심리적 문제가 음식 제한, 폭식, 구토 등 이상 섭식 행동으로 나타나는 정신 질환이다. 섭식 장애는 정신 질환 중 치사율이 가장 높고 중독, 자해, 우울증 같은 증상이 동반되는 사례가 많아 내과적 치료와 외과적 치료를 병행해야 한다. 과거에는 환자 대부분이 청소년기 여성 또는 젊은 여성에 한정되었으나 발병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남성 환자 수도 증가하는 추세다. 이러한 병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섭식 장애 유병률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조차 없고, 입원이 가능한 섭식 장애 전문 병원도 흔치 않다. 몇 곳 존재하지만 대부분 수도권에 몰려 있어 지방에 거주하는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은 매우 낮다.
사실 섭식 장애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방송과 신문 등을 통해 여러 번 언급됐다. 최근에는 청소년들 사이에서 키빼몸 120(키에서 몸무게를 뺀 숫자가 120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기), 뼈말라(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몸), 먹토(먹고 토하기), 씹뱉(씹고 뱉기) 같은 은어로 섭식 장애 증상이 다이어트의 한 방법이라고 공유되는 현상을 언론에서 다루기도 했다. 이번 <추적 60분> 방송은 섭식 장애가 단순히 살을 빼고자 하는 일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는 데 방점을 뒀다는 점에서 그동안의 보도와는 방향이 달랐다. 섭식 장애는 개인과 사회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발생한 정신 질환이기에 사회적 책임과 의료적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섭식 장애 치료는 나침반 없이 사막을 걷는 일과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루하고 고된 과정이며, 길을 잃기 쉽고 이 길이 맞는지 확신하기도 어렵다. 섭식 장애 치료가 특히 어려운 이유는 겉으로 드러나는 증상을 완화하는 데만 집중했다가 그 너머에 있는 진짜 문제를 간과하기 쉽다는 것이다. 그런 접근은 결국 병을 고착화하거나 다른 증상으로 이행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어쩌면 나의 경우가 그렇다.
17년 전 섭식 장애 치료는 대부분 증상 완화에 초점을 두었다. 외래 진료에서는 음식 섭취량과 체중 증량에 대해 주로 언급했고, 가족의 관심도 전부 내 식사와 체중에만 쏠렸다. 한 달 반 동안 입원 치료를 통해 하루 2200킬로칼로리의 식판을 비우는 데 성공했지만 음식에 대한 거부감과 식욕에 대한 두려움은 해결하지 못한 채 퇴원했다. 오히려 치료받기 전보다 음식을 섭취하는 데 더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식이 제한이라는 표피를 들춰 보니 그 아래에는 존재에 대한 불안이 자리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걸까? 가족에게도 언젠가 버림받지 않을까? 실패해도 용서받을 수 있을까?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음식과 몸은 유일하게 개인의 의지로 바꿀 수 있고 조절이 가능했다. 나는 음식과 몸을 통제해 불안을 낮추고자 했고, 그것이 섭식 장애로 이어졌다. 신체에 관한 평가도 식이 제한을 시작한 계기 중 하나였다. 날씬한 몸은 예나 지금이나 긍정적 평가를 받는 방법 중 하나다. 돌이켜 보면 미취학 아동일 때부터 쭉 몸매와 다이어트에 신경 써 왔다.
섭식 장애를 앓는다는 건 스스로를 평가하는 기준과 삶을 구성하는 요소가 음식 섭취와 체중으로 제한된다는 뜻이다. 처음에는 명료한 평가 기준 아래 마침내 내 삶을 의지대로 꾸려 나가는 듯해 안정감과 성취감을 느끼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스스로 만든 틀 안에 고립된다. 섭식 장애는 대부분 청소년기에서 20대 초반에 발병한다. 한창 사회적 관계를 확장하고 자신을 탐구해야 할 시기에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차단하고 몸과 음식에만 몰두하면서 다양한 성장과 변화의 기회를 놓치고 만다. 발병 연령이 낮아지는 현상은 지금 많은 아이들이 삶을 불안하고 불행하게 느끼고, 고작 한두 가지 평가 기준으로 자아상을 만들어 얕고 좁은 세상 안에 갇혀 산다는 증거일 테다.
성인이 된 섭식 장애 당사자로서, 어린 아이들에게 남을 신체적 후유증보다 그들의 회복을 도울 사회적 자원이 없는 한국의 현실이 더 걱정스럽다. 최소한의 의료적 지원도 받기 어려운 현실과 정신건강의학과 의료진마저 부족한 섭식 장애에 대한 이해, 정신 질환을 향한 사회적 낙인까지. 특히 정신 질환을 개인의 문제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는 병의 존재를 감추게 만들어 환자와 그 가족을 더욱 고립시킨다. 병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인식의 변화 그리고 의료 지원 시스템 마련이 이들의 고립을 막고 병의 치명률을 낮출 수 있다.
지금 17년 전 상황을 돌이켜 보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만약 그때 의료진과 가족의 관심이 섭식과 체중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에 기울었다면 어땠을까? 퇴원 후 ‘정상 식사’에 집중하는 대신 음식을 음미하고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섭식 장애를 극복한다는 건 정상 식사를 하고 정상 체중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찌그러진 자아를 다시 빚어 내고 땅으로 곤두박질친 삶에 대한 기대를 끌어올리는 과정에 가깝다. 섭식 장애 당사자로서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건 음식과 체중 외의 세상을 알려 준 사람들 덕분에 가능했다. 아픈 몸과 마음을 가진 채로도 사회의 한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더 나은 삶에 대한 바람도 생겼다. 섭식 장애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도록 사회의 변화와 관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