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출장 중 독일에서 하루의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바로 떠오른 코스는 비트라 디자인 뮤지엄(이하 VDM). 그동안 메말랐던 디자인 영감을 충전하러 그곳에 다녀왔다. 가구를 좋아한다면 비트라라는 브랜드를 이미 알고 있거나 한 번쯤 들어봤을 터. 비트라는 잘 모르더라도 찰스 임스의 가구나 플라스틱 의자의 대명사 팬톤 체어는 여러 곳에서 자주 접했을 수 있겠다. 필자와 비트라의 인연은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부터 시작됐다. 그 당시엔 국내 호텔에 해외 브랜드 가구를 정식 수입해 사용하는 사례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JOH와 함께 설계를 진행하면서 이 브랜드가 사랑받는 이유, 역사와 제품의 기술력에 대한 공부는 물론이고 가구를 좋은 가격으로 사는 방법 등 다채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 지난해에는 서울 청담동 송은갤러리에서 열린 <아르텍 스툴 60 90주년 기념 전시>를 협업했는데 비트라 본사 담당자는 만일 유럽 방문 일정이 있다면 반나절 동안 이뤄지는 VDM 프라이빗 가이드 투어를 꼭 한번 직접 경험해보라고 추천했다.
VitraHaus by herzogdemeuron
익숙한 듯 낯선 느낌
스위스 바젤역에 도착해 택시로 20분 남짓 이동해 다시 독일 국경을 넘어 VDM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물은 사진으로 자주 봤던 헤르조그&드 뫼롱의 비트라 하우스. 2010년에 지어졌다고 보기에는 너무나 미래의 집 같은 외형과는 다르게 실내로 들어가 보니 심플한 고객 동선으로 이뤄진 편안한 분위기의 쇼룸이었다. 오각형 박공지붕(양쪽 방향으로 경사가 있는 지붕 형태)이 주는 친숙한 주택의 형태와 색색의 의자가 놀이동산의 관람차처럼 돌아가고 있는 모습은 익숙한데 낯선 이중적인 느낌이 동시에 들어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비트라 하우스에서 다양한 비트라 제품을 경험하는 것은 물론 1층에 디자인 뮤지엄 숍과 카페가 있어 유기농으로 재배한 식재료로 만든 요리로 건강한 식사도 할 수 있었다. 설계사인 헤르조그&드 뫼롱은 송은갤러리의 건축가이기도 한데, 삼각형 구조와 노출 시멘트를 활용해 심플하게 느껴지는 송은갤러리와는 다르게 12개의 긴 박공지붕을 겹쳐 쌓아 놓은 형태로 총 5층 빌딩의 높이로 이뤄져 있다. 가이드 투어를 담당했던 일본인 건축가는 헤르조그&드 뫼롱 팀 소속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어 그에게 비트라 하우스 프로젝트 후일담을 들으며 다음 건축물로 이동했다.
Vitra Design Museum by Frank Gehry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의 역사
비트라 디자인 박물관은 현재 명예회장인 롤프 펠바움에 의해 1989년 설립됐다. 처음에는 개인 가구 컬렉션을 전시하기 위해 고안돼 에리히 디크만, 론 아라드와 같은 소규모의 독점 전시회를 열었다. 그 후 롤프 펠바움은 2010년까지 박물관 관장으로 재직하며 창립 이사인 알렉산더 폰 베지삭의 뛰어난 리더십 아래 찰스와 레이 임스,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 루이스 바라간 등의 회고전과 국제적으로 찬사를 받는 주요 전시회를 개최했다.
Conference Pavilion by Ando Tadao
자연을 실내 공간으로 들여오는 방법
1993년 완공된 이 건물은 지금은 너무나 유명한 안도 타다오가 처음으로 해외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인 비트라 회의실. 자연환경을 우선시한 건축 철학에 따라 홀로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VDM이나 비트라 하우스와는 달랐다. 움푹 들어가 있는 안뜰을 안고 있는 형상처럼 가운데에 정원을 배치하고 주요 건물을 팔처럼 계획해 지하 회의실에서도 자연을 마주할 수 있게 했다. 지상층도 지면보다 낮게 건물을 배치해 회의실 내부에서 창밖을 바라보면 땅 아래의 위치에서 지평선을 올려다보는 느낌이 들도록 하여 시선에서 오는 안정감과 함께 평온한 기분이 들었다. 좁고 균형 잡힌 복도와 경사로는 다양한 회의실로 연결되며 세심하게 마감된 노출 콘크리트와 목재 바닥재로 인해 건물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차분하고 집중적인 분위기가 강화된다. 실내의 콘크리트 패턴은 일본의 다다미 패턴을 차용해 디자인돼 있는데, 비율과 디테일이 섬세해 2024년에 만들었다고 해도 의심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권혜리
@hyeree_kwon
대혜건축 신사업개발본부 사장.
6년간 이탈리아에서 건축&가구 디자인을 공부하고, 16년째 인테리어 전문 회사 대혜건축에서 대규모 프로젝트를 이끌며 맹활약 중이다. 대혜건축은 2010년부터 삼성 래미안 설계사로 등록돼 아파트 설계에 특화된 팀이 별도로 있고, 에테르노 청담 등 고급 주거 공간에 탁월한 노하우를 가진 대표 기업. 홍익대, 건국대 등 현장 실습과 특강을 통해 학생들의 실무 경험을 쌓는 일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