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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선사하는 울림, 사울 레이터

컬러 사진의 선구자 사울 레이터. 그의 시선을 빌려 세상을 바라봤다.

On March 1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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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메이드 영화를 꼽는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오감을 자극하는 거대한 스케일, 울림을 주는 탄탄한 스토리, 믿고 보는 배우의 독보적 연기, 매력적인 배우들의 조합까지. 작정하고 나눠보자면 끝이 없다. 이 가운데 색채에 매료돼 몇 번이고 같은 영화를 돌려보는 이들도 있다. 기자가 그렇다. 아름다운 색의 조합을 자랑하는 영화를 언급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이 있다. 바로 영화 <캐롤>이다. 극을 가득 채우는 아름다운 색채와 부드러운 분위기는 이전까지는 듣도 보도 못했던 것이다. 궁금해졌다. 감독은 무엇을 보고 느끼면서 살아왔길래 이토록 동화 같은 색채를 구현할 수 있었을까? 그에 대한 답은 사진작가 사울 레이터(1923~2013)에 있었다. <캐롤>의 감독 토드 헤인즈는 영화 개봉 당시 사울 레이터의 작품에 영감을 얻어 영화 전반의 시각적 이미지를 구상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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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남창동에 위치한 피크닉에서 전시하고 있는 <사울 레이터 :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컬러 사진의 선구자이자 순간을 포착한 작품들로 사랑받는 사울 레이터의 회고전이다. 국내에서 최초로 열리는 작가의 회고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사진뿐만 아니라 작가의 그림, 슬라이드 필름, 1950~1970년대를 장식한 그의 패션 화보 등을 만날 수 있다. “유명인의 사진보다 빗방울 맺힌 유리창이 더 흥미롭다”는 작가의 말처럼 창 너머로 보이는 뉴욕 거리와 일상을 살아가는 인물을 포착한 작품이 다수 전시됐다.

그는 뉴욕의 화려함이 아닌, 뉴욕이라는 한 도시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조명했다. 물방울이 가득 맺혀 흐릿해진 창으로 바라본 세상, 눈이 쏟아지는 거리에서 우산을 쓰고 걸어다니는 사람들, 쇠창살에 가려져 명확하게 보이지 않는 인물. 창이라는 하나의 창구를 통해 바라보는 피사체의 경계는 허물어져 있지만 사울 레이터에겐 그만한 흥미로움이 없었다. 그의 관심은 화려한 무언가가 아니다. 평범한 일상이지만 다신 오지 않을 순간들이다. 무채색의 건조한 도시지만 사울 레이터의 작품은 다르다. 흐릿한 색상 속에서 따뜻함이 느껴진다.

사진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던 사울 레이터. 사진작가로 활동하기에 앞서 화가가 꿈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만큼 그림에 대한 애정이 크다고. 그런 그답게 흑백사진에 다양한 색채의 수성 물감을 덧대 완성한 작품도 다수이며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장 내부에서 가장 오래 발길을 머물게 한 섹션은 사울 레이터의 뮤즈이자 동반자였던 솜스 밴트리와 보낸 시간들이다. 패션모델로 활동 중이던 솜스와 사울 레이터는 그림과 사진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공유하며 누구보다 깊은 관계를 맺었다. 그런 두 사람의 기록은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사랑이 담긴 시선으로 피사체에 접근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작품이 있을까?

화려함에서 느껴지는 황홀함도 있지만 우리는 때때로 일상에서 얻는 크고 작은 울림에 반응한다. 사울 레이터의 작품이 그렇다. 그가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사울 레이터 : 창문을 통해 어렴풋이>

기간 ~2022년 3월 27일
장소 피크닉
관람료 1만5천원
문의 02-318-3233

CREDIT INFO
에디터
김연주
사진
서민규
2022년 03월호
2022년 03월호
에디터
김연주
사진
서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