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불안하고 불완전한 것”
영화 <파묘>로 천만 관객을 사로잡은 김고은이 이번엔 청춘 영화로 돌아왔다.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은 눈치 보는 법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재희’(김고은 분)와 세상에 거리 두는 법에 익숙한 ‘흥수’(노상현 분)가 동고동락하며 펼치는 그들만의 사랑법을 그린다. 베스트셀러이자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과 국제 더블린 문학상 후보에 오른 박상영 작가의 동명 연작소설이 원작으로, 배우 김고은과 노상현이 캐스팅돼 화제를 모았다.
<파묘>에서 원혼을 달래는 무당 ‘화림’을 강렬한 카리스마로 연기해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여자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한 김고은은 극 중 자유분방하고 사랑스러운 매력의 재희로 분해 20살 대학생부터 30대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청춘의 얼굴을 특유의 현실 공감 연기로 그려냈다. 박상영 작가가 “김고은 배우의 캐스팅 소식에 너무 행복했다. 재희를 제대로 입어줄 만한 배우에게 찾아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할 만큼 재희 그 자체였다는 후문이다.
<대도시의 사랑법>은 토론토국제영화제에 먼저 초청된 작품이다.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가 좋다. 현지에서 1,200명 관객과 함께 봤는데 콘서트처럼 박수도 치고 신나게 봐주셔서 행복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남자 배우 캐스팅이 어려워 제작이 늦춰진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기다리며 애정을 쏟은 이유가 무엇인가?
처음에 대본이 후루룩 빨리 읽혔다. 두 인물의 서사 안에 성장 과정이 잘 담겨 있었다. 사실 그런 작품이 드물어 귀한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시나리오가 꼭 제작됐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영화 포스터만 보면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실상 내용은 그렇지 않다. 이런 방식을 낯설어하는 관객들도 있을 것 같은데.
이 영화는 결국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다룬다. 소재에 대한 불편함도 있겠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고, 다양한 정체성이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다름’에 대한 존중이 필요한 영화이기도 하다. 다름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올바르게 내 다름을 표현할 수 있을지, 올바른 표현을 해나가기까지의 성장 과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그래서 결국 우리 삶을 그린 영화이지 않을까 싶다.
30대 관객이라면 과거 대학 시절이 떠오를 만한 작품이다. 실제로 10학번인데, 대학 시절은 어땠나?
이 캐릭터가 10학번이기 때문에 반가웠다. 내 세대가 아이폰이 처음 나왔던 세대였다. 처음에 아이폰이 나왔을 때 모시듯 사용했던 터라 그 모습도 생각나더라. 재희와 내가 대학 시절이 비슷했다고 느껴지는 지점이 있다면 20대 초반에 겪는 고군분투의 과정들이다. 나 역시 그 당시에 혼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여러 생각을 했다. 덧붙이자면 재희만큼 놀지는 못했다.(웃음)
이 작품은 성 정체성, 편견, 사회적 정의에 대한 얘기를 한다. 개인적으로 해외 생활을 오래 한 것으로 아는데 한국에서의 적응은 어땠나?
청소년기까지 중국에서 보냈기에 완전히 한국적인 마인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적응하는 과정에서 충돌하는 것들이 있었고, ‘왜 다 똑같길 바라지?’ 하는 생각도 있었다. 다르게 생각하면 잘못된 것처럼 받아들이고 ‘별나다’는 인상을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20대에는 그게 억울하다고 느꼈다.(웃음) 이후 나이를 먹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점은, 결국 생각이 똑같아지는 게 어른이 되는 과정이 아니라 나의 다름을 올바르게 표현해나가는 게 어른이 되는 과정인 것 같다는 것이다. 극 중에서 주인공들은 자신의 특별함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려고 노력한다. 잘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는 시행착오라고 생각한다. 나의 20대도 그랬다.
다름을 표현하는 게 쉽지 않다.
나도 그 과정에 있다. 어른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웃음) 내 주변의 이준익 감독님이나 윤제균 감독님을 보면 너무 유연하게 어떠한 표현을 하신다. 좋은 어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느끼기에 무조건적으로 상대방의 말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되는 사람이 많은데, 그래서 더 의견을 내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 김고은과 인간 김고은 간의 괴리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다움’을 어떻게 찾아가고 있나?
내가 언제 가장 편안한지에 집중하고 있다. 나다움은 결국 내가 가장 편한 상태에서 나온다. 그래서 편안함에 포커스를 맞춘다. 연기를 할 때도 편안한 순간을 찾으려고 노력하는데, 그래야 본연의 매력이 나온다. 편안해야 내가 준비한 것들을 헤매지 않고 드러낼 수 있고 실수를 줄일 수 있다.
그동안 작품에서 ‘청춘의 얼굴’을 많이 그렸다. 이번에는 어떤 청춘을 보여 주고 싶었나?
청춘에는 아름답고 좋은 것만 있는 게 아니다. 불안하고 불완전하다. 나는 그 시기가 20대라고 생각한다. 사회에 내던져졌는데 아는 건 없고 성인이기 때문에 또 그걸 해내고 이겨내야 한다. 실전에 투입되는 느낌이랄까. 이 작품은 그 과정은 누구나 다 겪는 거니까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영화다. 그 과정이 있어야 30대가 편하다는 것도 얘기해주는 작품이다.
극 중에서 직장인을 연기한다.
내 친구들 중에 직장인이 많다. 같이 수다를 떨다가도 회사 상사에게서 전화가 오면 목소리 톤이 바뀐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재미있다. 그런 친구들을 10년 넘게 지켜봐왔다.(웃음)
과거 한 인터뷰에서 촬영하면서 마음대로 안 되는 순간이 있으면 자기최면을 건다고 했다. 이번 작품은 어땠나?
모든 작품마다 힘든 신이 있고, 상황적으로 안 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며 최면을 걸며 지나갔다.
tvN 예능 <삼시세끼 Light>에도 출연했다. 후일담을 들려준다면?
예전에 (유)해진 선배님과 촬영할 때 티키타카하면서 재미있게 일했던 기억이 있다. 촬영이 고되니까 유머로 풀어주셨는데 덕분에 너무 좋았다. 주로 아재 개그를 하시지만 간혹 숨이 넘어가게 웃겨주시기도 한다. 덕분에 이번에도 좋은 추억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