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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로 돌아온 이유, 의사과학자 차유진 박사 인터뷰

On March 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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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과학자’는 의사이면서 과학자로서 두 방면의 경험을 충분히 가진 연구자를 말한다. 기초과학과 임상이라는 두 영역을 넘나들며 지식과 경험을 두루 갖춘 전문가다. 우리나라는 IT와 바이오, 의료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의학과 공학을 잇는 고리가 약해 반도체보다 몇 배나 큰 바이오 시장을 놓치고 있다. 생명을 살리는 의학이야말로 궁극의 융합 학문이다. 과학과 의학의 융합만이 생명을 살린다고 말하는 차유진 박사는 KAIST(카이스트)에서 과학을 연구하다가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의사로 직업을 바꿨다. 그러나 결국 우리 의학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기초연구가 소중하다는 과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연구자로 돌아온 것이다.

“의학의 한계, 과학이 극복할 수 있다고 느꼈다”

KAIST에 입학했지만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로를 바꾼 결정적 이유가 무엇인가요?
과학자가 되겠다며 어렵게 KAIST에 입학했지만, 학부 생활은 제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고등학교 과정보다 훨씬 깊어지고 어려워진 기초 과목들을 따라가기도 벅찼죠. 진정한 의미에서 과학자가 되려면 박사과정까지 마쳐야 하는데 어려운 공부를 접하니 이 길을 끝까지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됐어요. 어떻게 보면 정신적으로 어린 나이에 준비되지 않은 채로 KAIST에 입학했었던 것 같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방황하며 학부 생활을 보냈어요. 결국 대학원 진학이 어렵게 되자 과학자의 길보다는 안정적인 의사의 길이 눈에 들어왔어요. 안정적인 삶을 찾아 저와 현실적인 타협을 했던 거죠.

의대 열풍 시대에 결국 의사가 됐는데, 또다시 KAIST 연구자로 되돌아온 이유는 무엇인가요?
원래 과학자가 꿈이었다 보니 가슴 깊은 곳에 조금의 미련이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과학자는 해결이 안 되는 문제를 풀어 한계를 극복하는 일을 하잖아요. 하지만 일반적인 임상 의사들은 이미 정립된 지식을 환자에게 적용하는 진료가 주된 일이고 미해결 의학 문제를 연구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암을 치료하는 임상 의사로 살면서 환자들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요. 더 나아가 답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왜 의학은 한계가 있으며,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그 길은 결국 ‘연구’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상의학의 바탕을 이루는 원리 역시 과학기술이니까요.

의대 광풍 시대를 지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나요?
한정적으로 보이는 진로 선택지 앞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되는 의사의 길을 과잉 선호하는 현상이 한편으론 이해가 되기도 해요. 다른 분야에 투신했을 때 기대되는 안전망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니까요. 하지만 수학이나 경영, 예술처럼 의료와는 다른 분야에서 재능이나 적성이 뛰어난 학생들까지 의대에 진학하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손해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실적으로 의사의 소득은 대기업 연구원이나 교수처럼 비슷한 수준의 전문 직장인과 비교해 큰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약간의 추가적인 기대 소득을 위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자기 적성을 포기해야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불행한 일이겠죠.

“암을 치료하는 임상 의사로 살면서 
 환자들이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어요. 
 더 나아가 답을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왜 의학은 한계가 있으며,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그 길은 결국 ‘연구’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상의학의 바탕을 이루는 원리 역시 과학기술이니까요.” 

과학자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의사는 일정하게 정해진 길을 따라가면 안전망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반면, 과학자는 안정적인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상대적으로 많은 장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과학자를 춥고 배고픈 직업이라고 보는 시선이 있고 저 역시 일부 공감합니다. 과학자의 업무는 본질적으로 인류가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창의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과학자가 갈 수 있는 길의 끝, 즉 잠재력은 의사보다 월등히 높습니다. 과학자 중에서도 특히 공학자는 과학 지식을 경제적 가치로 전환하는 직업입니다. 과학기술 외에는 먹고살 길이 없는 나라에서 과학자나 공학자가 배고프게 살아야 한다면 그런 사회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요? 안정적인 측면에서 평균적으로 과학자의 길이 의사보다 어렵지만 의사보다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한 과학기술자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 과학계의 발전을 위해 연구자의 입장에서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과학자가 경제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끝, 잠재력이 임상 의사보다 크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안정적인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많은 장벽이 존재합니다. 젊은 과학도들이 이러한 장벽에 가로막혀 포기하지 않도록 충분한 안전망이 구축돼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실패에 관대하지 않습니다. 세금을 지원받아 수행하는 연구를 쉽게 해서는 안 되겠지요. 그러나 연구에 실패하면 그 책임이 무척 가혹하기에 과학자들은 성공 가능성이 높은 연구에 대한 유혹에 노출됩니다. 이런 현상은 결국 전체적인 연구의 질적 성장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하지 않은 새 연구에 도전하기보다는 기존 연구를 개량하는 연구가 더 쉬우니까요. 어려운 연구에 대해서도 결과를 기다려주고, 과정이 합당했다면 실패도 용인할 수 있는 사회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와 앞으로 매진해보고 싶은 궁극의 연구는 무엇인가요?
저는 인공지능을 연구하는 의사과학자입니다. 챗GPT 등 인공지능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고 있지만 이러한 기술들은 아직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럴듯한 텍스트를 만들어내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은 잘하지만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미래의 인공지능은 새로운 지식을 만들 수 있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의학 역시 결국 의학 지식의 확장을 통해서만 발전할 수 있습니다. 의료 지식 확장에 기여할 수 있는 인공지능 기술을 연구하는 것이 저의 궁극적 목표입니다. 이러한 인공지능은 의사와 함께 의학 지식을 학습하고 서로의 지식을 발전시켜가면서 새로운 의학 지식을 개발하는 역할로 발전해갈 것입니다.

차유진 / 공학박사

차유진 / 공학박사

의사과학자
KAIST 의과학연구센터
신경과학-인공지능 융합연구센터
방사선종양학과 전문의

CREDIT INFO
기획
하은정 기자
취재
유정임, 백재훈(교육 칼럼니스트)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2024년 03월호
2024년 03월호
기획
하은정 기자
취재
유정임, 백재훈(교육 칼럼니스트)
사진
게티이미지뱅크